괜찮지만 괜찮습니다 - 섬에서 보내는 시 편지
시린 지음 / 대숲바람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괜찮지만 괜찮습니다

제주의 감성을 만나다





스스로 '도시촌년'이라 칭하며 제주의 자연에 흠뻑 빠진 그녀의 글에는 제주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 있다. 바다, 꽃, 말, 돌, 바람, 풀, 숲, 태풍까지 자연의 아름다움이 유독 더 진하게 빛나는 제주다. 자연을 한껏 바라보며 누리는 제주의 시간이 그저 부럽다.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그녀의 글에서 위안을 받는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저자 '시린'은 언제나 여행 중이고 싶어 제주에 머물고 있다. 그녀의 뷰파인더와 글을 통해 접하는 제주 이야기는 나에게 제주의 청명함과 아름다움을 전한다. 글과 사진에 담긴 제주는 내가 앉아 있는 이곳에서 제주를 눈 앞에서 생생하게 바라보게 한다.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제주로 떠나고 싶어진다.




*****

모든 것을 품고 있는 한라산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보기 위해.

풀이 무성하게 자란 무덤과 작은 풀씨 하나, 모래알 하나까지 아껴품고 있는 저 산이 말한다.

괜찮다. 여기 있어도 된다고. (중략)

괜찮다. 슬프면 목놓아 울어도 되고 다시 웃어도 된다.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p28)

제주를 여러 번 갔지만 아직 한라산에 가지 못했다. 제주 섬 전체가 한라산이라 봐도 무방하다 할 정도로 제주를 품고 있는 한라산의 위용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 한라산은 산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과 죽은 존재들까지 안고 있는 땅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제주의 어디서든 맑은 날에는 한라산이 보인다고 한다. 그 언젠가 한라산에 오르고 싶다.


하루쯤은 내키는 대로 가다가 아무 데서나 멈춰 느릿느릿 걸어보자. 맘에 드는 곳을 찾으면 앉는다. 무엇이든 해도 좋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거나 바람소리를 듣거나. 우리에게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여름의 시작, 소나기 (p121)

이런 여행을 하고 싶다. 목적없이 자연을 따라 이리저리 흩날리는 여행. 시간에 쫓기듯 하는 여행이 아닌 유유자적하는 여행. 자연을 벗삼아 노니는 여행. 회사 생활을 하다 얻는 휴가는 뭔가 빡빡한 일정 안에서 여행을 하게 된다.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고 하다 보면 여행은 끝이 난다. 맛집도 가야하고 구경도 하느라 여행은 휴가라기 보다 일에 가깝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여행이 나에게도 필요하다. 다음에는 느릿느릿 즐기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숲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멈춰서 버린다. 말을 잃게 하는 풍경. 원시림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사람을 압도한다. 곧고 높은 나무가 빽빽이 늘어선 숲은 어두울 지경이다. 초록이 깊다 못해 온통 갈맷빛이다. 드물게 파고드는 햇살은 아주 잠깐 연둣빛을 반짝 뿌리고 이파리에 닿자마자 스며든다. 이파리를 쓸며 나무 사이로 미끄러지는 바람에도 새소리에도 초록이 묻어 있다.

숨어 있기 좋은 숲 (p164)

저자가 좋아하는 색은 초록이다. 나 역시도 초록을 좋아한다. 숲을 좋아하는 저자의 모습에 공감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한라생태숲에 가보고 싶다. 세상과 담을 쌓은 듯 나무로 둘러 싸인 숲 속에서 지나친 초록을 즐기고 싶다. 좋아하는 초록을 마음껏 보고 싶다. 말을 잃게 하는 풍경을 만나고 싶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려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사무실 한 켠의 작은 화문에 위안을 삼는다.


낭만 하면 떠오르는 것? 어떤 이에게는 비 오는 날 커피숍. 어떤 이에겐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 누군가에겐 밤을 새워 밤하늘의 별과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일.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겨울바다.

낭만 하면 겨울 바다(p269)

지금 글을 쓰고 있는 2020년의 2월은 겨울 바다를 즐기기에 딱 좋다. 봄의 문턱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어대는 이 시기에 제주의 바다는 어떠할까.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 겨울에 제주로 떠나기가 쉽지는 않다. 따뜻한 나라로 떠나거나 실내를 찾을 수 밖에 없다. 나중에 그 언젠가 제주의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낭만에 빠져보고 싶다.

*****

사진과 글을 통해 만나는 제주의 모습은 나의 기대를 뛰어 넘는다. 그저 좋다는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좋음을 저자 '시린'은 자신만의 언어로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표현들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제주를 느낀다. 글은 한계를 가지지만 그 한계에 아랑곳하지 않고 섬 제주의 아름다움과 멋을 꾹꾹 눌러 담았다.



제주에 몇 번 여행 다녀온 나에게 제주는 돈이 많이 드는 여행지로 변모했다. 남들 다 가는 휴가철에만 가야하기에 자금 압박이 있는 여행지다. 남들 열심히 일할 때 훌쩍 제주로 여행을 가고 싶다. 한달 살기 해보고 싶다. 언젠가는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 때 이 책을 다시 읽고 싶다. 한가로이 제주를 거닐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