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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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

'광기'서린 파멸과 비극의 서사

1996~1997년의 나이지리아가 책 안에 펼쳐져 있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1996년의 나이지리아에서 내가 9살의 벤저민이 되어 형제들과 함께 숨쉬고 생활한 느낌이다. 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벤저민에게 이입되었다. 책 안의 벤저민이 내가 됐다. 그 생활 안에서 가슴이 쓰렸고 슬펐고 탄식이 흘러 나왔다. 어린 벤저민의 시각에서 일련의 사건과 과정들이 담담하게 그려졌다. 어린 아이의 시각이지만 산뜻하고 발랄한 느낌보다는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가 소설을 지배한다.

'어부들'이란 단어는 매우 상징적이다. 아쿠레 마을의 주민들에게 버려진 오미알라강은 1995년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통행금지령을 내리지고 강은 경멸의 대상까지 됐다. 형제들은 어른들 몰래 이 강으로 고기를 낚으러 간다. 이 형제들은 스스로를 '어부들'이라 칭한다. 책을 모두 읽고 난 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매우 소름돋았다. "우리가, 우리 어부들이 너를 잡았으니 너는 도망칠 수 없어!" (p27) 무심히 지나갔던 이 노래 가사가 이 책 내용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시적 문장과 표현들, 박진감 넘치는 서사, 기독교와 미신, 정치적 이슈들까지 이 모든 것이 이 한 권에 잘 버무려져 있다. 어느 하나 이질감없이 완벽한 하나의 소설로 표현되었다. 작가의 감각에 감탄할 정도다. 완벽하게 완성된 소설 속의 세계는 마치 가상의 게임 공간에서 체험을 한 듯한 느낌의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나도 한 아들을 둔 아버지가 된 지금은 더욱 자주 그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우리 인생과 세상이 바뀌어버린 것은 강으로 이런 여행을 떠나던 어느 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시간이 중요해진 것은 바로 이곳, 우리가 어부가 된 그 강에서였다.

p24

지금은 성인이 된 벤저민의 시각으로 그려지는 소설은 매우 생생하다. 과거를 돌아보며 어느 잘못된 순간, 바꾸고 싶은 한 순간을 꼽으라 하면 어디일까. 벤저민은 성인이 되어 과거를 돌아봤을 때 어부가 된 그 강으로 여행을 떠난 순간을 떠올렸다. 책을 모두 읽고 나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냥 그 강이 싫어질 듯 하다.

아구 부부와 이켄나, 보자, 오벰베, 벤저민, 데이비드, 은켐까지 모두 중요한 인물들이다. 마지막 벤저민에게 벌어진 사건까지 도달하기 위해 형제들과 부모의 처한 상황들이 물 흐르듯 연결되어 있다. 이 물줄기의 끝은 넓은 바다다. 시체가 떠 다니던 멀리하고 싶은 오미알라강의 물줄기들은 모두 결국 바다가 포용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마치 바다와 같았다. 부모와 형제들에게 매 사건은 상처투성이지만 결국 마지막에 도달해서는 모두를 포용하고 있다.

"아불루는 '이케나, 너는...'" 오벰베는 말을 멈추었다. 둘의 얼굴을, 그다음에는 땅을 바라보는 오벰베의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오벰베는 땅으로 시선을 돌린 채로 말을 이었다. "아불루는, 이켄나, 너는 어부의 손에 죽을 것이라, 라고 말했어."

p116

아불루의 예언은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처음에는 그 미친 아불루의 말에 왜 그리도 사람들이 동요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아불루에 대한 그간의 이야기들을 들으니 예언이 필히 일어날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간 아불루의 예언대로 모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미신이나 예언을 믿지 않는 나지만 이미 아불루의 예언에 깊이 동화되었고 언제 사건이 터질지 모를 불안감이 감돌았다. 형제들 역시 그 예언을 애써 부정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아불루의 예언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벤저민의 가족에 불안감은 날로 증폭되었고 불행의 씨앗 역시 점차 커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느 순간 벌어져서는 안될 사건이 이내 발생하고야 만다. 너무 안타까운 사건이라 그저 소설을 읽는 내 가슴이 쓰리고 아렸다. 형제의 시각에서 부모의 시각에서 벌어진 사건을 두루 생각하고 내 일처럼 고민했다. 가족의 분노는 이런 예언을 한 아불루에게로 향한다. 나 역시 그러하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가 특히 나에게는 유독 특별하게 다가왔다.

한때 그랬듯, 우리는 어부들처럼 저녁에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갈고리가 달린 낚싯대를 낡은 래퍼에 숨기고 있었다. 지평선의 모습은 내 안에 강한 기시감을 일으켰다. 지평선 표면에는 연지가 발라져 있었고, 태양이 붉은 구체처럼 걸려 있었다. 아불루의 트럭을 향해 가는 동안, 나는 거리의 나무 전신주가 쓰러지는 바람에 걸려 있는 전등이 산산조각 나고, 전구를 등에 달아놓았던 전선이 풀려 형광 심지가 꺾인 채 낮게 늘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p314

다른 어느 부분보다도 나는 이 구절에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아불루를 사냥하러 나가는 오벰베와 벤저민의 모습이 비장하고도 처절했다. 다양한 마음이 공존했다. 마음 한 켠에 이 어부들이 무사했으면 하는 마음, 아불루에 대한 내 자신도 모를 증오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아불루가 대체 무슨 잘못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러운 미치광이라지만 절대 악이라고 하기엔 사실 뚜렸한 악행을 저지른 부분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어부들을 응원하게 된다. 형제들, 이 어부들과 함께한 이 시간 이미 나는 한 어부가 되었다. 그저 제발 무사하기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불루와의 실랑이와 어부들의 사냥, 군인들과의 조우, 그 이후의 일들 등은 순식간에 흘러 갔다. 한국의 법과 나이지리아의 법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2021년 현재 한국은 소년법 폐지 및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벤저민과 함께 했던 1996년 나이지리아 여행은 매우 인상깊었다. <어부들>이 세운 놀라운 기록들이 매우 합당하게 여겨진다. 이미 치고지에 오비오마 작가의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를 읽고 인상에 크게 남았었다. 데뷔작인 <어부들> 역시 엄청난 소설임을 직접 확인했다. 세계 5대 문학상 수상, 부커상 파이널리스트, 31개국 출간 계약, 뉴욕타임즈, 옵저버 등 올해 최고의 책 선정 등 굵직 굵직한 기록들이 어쩌면 매우 당연한 결과다. 이 방구석에서 이 책 <어부들>을 읽고 작가 치고지에 오비오마에게 기립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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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 -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선 사상가 10인의 대답
미하엘 하우스켈러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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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아가는여정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묻는다. 인간은 태어난 이래 지금까지 삶과 죽음에 의문을 가졌다. 오랜 시간 수많은 철학자 및 사상가들이 고뇌하고 연구하고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부투해 왔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쉽사리 답을 낼 수 없었던 주제다. 누군가 나에게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삶과 죽음에 대해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쉽사리 답을 낼 수 없는 동일선상의 물음이다.

저자 미하엘 하우스켈러의 <왜 살아야 하는가>의 원제는 <The meaning of Life and Death> 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10인의 사상가를 통해 알아가는 이 여정이 우리에게 어스름한 힌트를 던져준다. '삶과 죽음은 바로 이거야' 라는 명확한 답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철학이다. 그렇기에 철학이 어렵고도 재미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5명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쇠렌 키르케고르, 프리드리히 니체, 윌리엄 제임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와 3명의 소설가 (허먼 멜빌, 마르셀 프루스트, 알베르 카뮈), 2명의 소설가 및 사상가(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레프 톨스토이) 를 만날 수 있다.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라 무언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10명의 사상가로 부터 깊고도 심오한 삶과 죽음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펼친다. 그 중 유독 내 마음을 뒤 흔드는 세 명의 사상가들에 대한 내용을 아래에 살짝만 적어봤다.

우리의 삶이 무의미해 보이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벌어지는 일에는 어떤 종합적인 계획이나 합리적인 구상도 반영돼 있거나 실현돼 있지 않다. 그 대신 세게의 중심에는 맹목적이고 강력하지만 전적으로 우둔하고 목적도 없는 분투가 이루어지고 있다. 계속해서 존재하는 것 외에는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르는 채 하염없이 바라기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세계에는 이런 사실만이 반영돼 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p43)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인간이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통과 고난은 삶 곳곳에 만연하고 삶의 본질이라는 사상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가장 핵심이다. 고통은 언제나 올 수 있는 것이기에 미리 준비하고 감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할 수 있는 세계 중 최악의 세계'라는 부제목이 쇼펜하우어가 매우 부정적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 오히려 우리의 삶을 희망차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삶이 왜 이리 무의미한 것 같지?" 라는 의문에 원래 삶이 무의미 하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삶을 더 바람직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다. 즉, 행복하지 않음이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계가 원래 이렇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 고통이 그리 고통스럽지 않게 된다. 쇼펜하우어 철학을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마찬기지로 나는 죽음이라는 용이 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려고 여지없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이해한 채 삶이라는 나무에 매달려 있다. ... 물론 나에게는 끔찍한 진실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들어주는 꿀 두 방울이 있다. 바로 가족을 향한 사랑과, 내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글쓰기를 향한 사랑이다. 하지만 이조차 더 이상 달콤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레프 톨스토이 (p194)

삶은 뛰어난 사기꾼으로 온갖 유혹을 통해 죽음이라는 진실을 숨기려고 애쓰고 있다고 톨스토이는 <고백록>에 표현했다. 레프 톨스토이 편에서는 동부유럽 우화 '죽음이라는 용'을 통해 삶과 죽음을 빗댄 표현들이 매우 공감된다. 나의 삶에서 달콤한 꿀 두 방울은 무엇일지를 생각해 본다. 톨스토이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향한 사랑이 나에게도 역시 꿀 한 방울이 되겠으나 나머지 한 방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또한 중요한 것은 이 생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아느냐 모르느냐는 매우 큰 차이를 가져 온다고 생각한다. 한 편으로는 우리의 삶이 이 꿀을 찾아 떠도는 여정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저 나뭇가지에서 버티다보면 용이라는 죽음이 기다릴 뿐이다. 이 삶은 달콤한 꿀을 맛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과정이다. 생각만으로도 힘들고 고달프다. 이런 저런 참 많은 생각이 들게하는 우화다.

신의 죽음은 인간이 스스로를 재창조할 기회를, 더 고등한 형태의 인간으로 소생할 기회를 주었다. 신의 죽음은 곧 우리 인류의 부활이다. (중략) 확실성을 갈망하지 않는, 안전망이 필요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 돼야 한다. 오히려 자신이 누리는 자유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에 기뻐하면서 가능성만을 즐기는 영혼이 돼야 한다. 삶이 무엇을 내놓더라도, 심지어 심연의 끝자락에 있더라도 춤을 출 줄 아는 자유롭고 쾌활한 영혼이 돼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p236)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다. 니체가 참 많은 명언을 남겼듯 이 책에도 상당히 많은 니체의 명언을 만날 수 있다. "죽음은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전쟁의 결과물이다. 죽음은 피할 수 없으며 피해서도 안된다. 장수는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니체의 가장 특이하고 난해하다고 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인데 언젠가는 도전해보고 싶은 책이다. "죽음은 삶의 조건이라는 점에서 좋은 것이다. 죽음 없이는 성장도 없다. 삶은 자기초월적이다."라는 말로 니체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인간의 삶을 인정해야 한다는 자세다.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나갈 용기를 내기만 한다면 죽음 조차도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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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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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위로를 건네다

저자 정영욱님의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는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당신에게 건네는 치유와 위로의 에세이다.

전혀 일면식도 없던 누군가가 삶에 지쳐 울고 있는 나를 포근하게 안아 준다면 어떨까. 나의 마음은 스스로 녹아 내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나에게 그저 따스한 품을 내 주었을 뿐인데, 그저 나를 안아 주었을 뿐인데 그 넓은 포용이 나에게 힘이 되고 치유가 된다.

이 책은 정말 따스하다. 품이 참 포근하다.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받고 싶은 날, 이 책은 나에게 내가 원하는 그 조언을 건넨다.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그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그 따스함이 한 글자, 한 문장마다 듬뿍 듬뿍 담겨 있다. 팔벌려 자신에게 안기라 한다. 그 품에 안겨 느껴보자. 그 포근한 위로를.

삶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늘 후회와 아쉬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걸 기억하자. 나만 유독 후회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님을. 나의 선택에 대해 자꾸만 미심쩍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가깝다.

인생의 슬럼프가 왔을 때 기억해야 할 것 (p24)

'인생의 슬럼프'가 나에겐 언제였을까. 대학에 입학했을 때, 군대에 갔을 때, 취업 준비할 때, 신입 사원 시절... 더 많았을 수 있겠으나 문득 나의 선택을 후회했던 시간들을 되돌아 본다.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두근거리는 마음보다 힘들다는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새로운 것에 누구나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선택으로 인해 다른 길로 가지 못하는 그 자체에 대해 미심쩍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다른 길로 갔다 하더라도 후회하고 미심쩍었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라는 말에 공감 된다.

아름답다, 소중하다, 귀중하다. 세상의 좋은 단어를 모두 빗대어도 모자랄 만큼의 당신이다.

당신의 존재 (p66)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흔하고도 그저 범용적인 좋은 말이라 생각했다. 이 짤막한 말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었다. 그런데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번 읽으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아름답다'. '소중하다'. '귀중하다'. 아내와 아이들, 부모님, 가족들, 내 주변의 한 사람씩 모두를 떠올리고 생각해 봤다. 그 어느 누구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름답고, 소중하고, 귀중할까. 의심보다는 확신이 든다. 그들 역시 내가 소중한 가족이다. 내 자신을 바라보는 나의 눈만이 유독 냉정하게 바라보는 듯 하다. 조금은 관대하게 좋은 단어들을 나와 겹쳐 보면 어떨까 싶다. 물론 너무 과한 나르시시즘은 주의하자. 적당한 자기애는 자존감을 높이고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우리는 여러 면에서 미완이어도 된다. 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완성으로 가고 있다. 무언가 해내지 않아도 된다. 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에게 됨됨이가 있다.

나는 되고 있는 중이다. (p130)

사람에게 완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것일까. 과연 사람이 완성될 수 있을까. 어떤 것이 과연 완성이라 말할 수 있을까. 사람과 완성이라는 단어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어울리기 힘든 관계인지도 모른다. 완성으로 다가가는게 과연 필요한 것일까. 그냥 언제나 사람은 미완일 수 밖에 없다고 인정하는게 더 마음이 편해지는 듯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완성이라는 단어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 완성이라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잘 모르면서도 끊임없이 나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에는 어쩌면 희망이 담겨 있다. 이 희망때문에라도 완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관계는 식물과 같아서 관심을 주면 자라고 관심을 주지 않으면 시든다. 관계는 정직한 편이다. 저 스스로 자라는 것 없고, 저 스스로 시드는 것 없다. (중략) 관심을 많이 줬는데도 자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뿌리까지 썩은 관계이고, 조금 주었는데도 무럭무럭 자라 준다면 나의 조그만 마음도 몇 배로 흡수해 주는, 놓치지 말아야 할 관계인 것이다.

관계는 식물과 같아서 (p148)

서른이 넘어 마흔에 가깝게 다가가는 나이이다 보니 관계가 식물과 같다라는 표현이 참 와닿는다. 어렸을 때는 관계가 참 어렵고 고달펐는데 이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된 듯하다. 어린 시절에는 싫은 관계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그나마 내 마음대로 조절이 되는 듯 하다. 억지로 관계를 만들기 보다 자연스럽게 관계가 이어지다보니 스트레스도 덜 받고,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내가 가진 것을 더 주고자 함에 따라 그 관계가 오히려 건강해진 느낌이다. 건강한 관계에 물을 주는 것에 더 신경 쓸 시간이다.

사랑하는 사람아. 미련한 마음과 미련한 마음이 만나 미련한 만남을 할지라도 우리 서로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서로에게 이미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그것만으로 서로에게 좋은 사람일 수 있는 이유가 충분히 되었지 않을까.

미련한 마음과 미련한 마음이 만나는 것 (p224)

미련한 사람이 되고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없이 미련한 사람이고 싶다. 나는 원래가 계산적인 사람이다. 분석과 등호에 익숙한 사람이기에 사소한 것 하나라도 계산에 들어 맞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사랑 앞에서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런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고 싶다. 그저 한없이 베푸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한없이 미련해 지더라도 상대는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미련해지고 싶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고 함께 하고 싶은 만큼 미련해지면 그만큼 좋은 사람이 된다. 내가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며 그 사람도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 사랑은 한없이 미련해지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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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미세스 - 정유정 작가 강력 추천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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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미세스

뛰어난 몰입감, 예측 불가한 반전, 최고의 스릴러 작품

께림칙한 기분이 계속 맴돌았다. 스릴러의 여왕이란 수식어가 붙은 '메리 쿠비카'의 소설 <디 아더 미세스>는 매우 흡인력이 있다. 독자의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을 모조리 의심하게 만들고 예측할 수 없는 반전까지 선사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고 스릴 넘치는 소설을 쓸 수 있나 싶었다.

주인공 세이디의 굵직한 시각에 타인의 시각이 더해지고, 타임라인을 넘나들며 독자의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킨다. 조금씩 맞춰지는 듯 하면서도 그 실마리가 보이지 않지만 어느 순간에는 흩어졌던 모든 퍼즐 조각이 완성되는 쾌감을 선사한다. 퍼즐 조각의 윤곽이 드러날 때 우리는 반전이란 선물을 받는다.

이 소설 <디 아더 미세스>를 읽고 저자 '메리 쿠비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녀의 다른 소설이 벌써부터 매우 기대된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굿 걸>, <프리티 베이비>, <톤트 유 크라이>는 전 세계 20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살인 사건이라니! 우리 섬에서!"

누군가 탄식했다. 순식간에 사람들은 침묵에 빠졌고, 갑자기 진료소 문이 열리고 한 남성이 들어서자 나이 든 여성이 비명을 질렀다. 그는 환자일 뿐이었지만 흉흉한 사건이 발생하자 서로 의심하는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두려움에 짓눌릴 수 밖에 없었다.

p39

세이디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집을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그 집의 주인이었던 앨리스는 섬유근육통으로 고통 받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딸 이모젠은 그 집에 홀로 남겨졌다. 앨리스의 형제인 윌은 세이디의 남편이다. 홀로 남겨진 이모젠을 돌보는 조건으로 윌의 가족은 섬안의 이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윌과 세이디, 아이들 오토와 테이트 그리고 엄마 앨리스의 죽음을 목격했던 딸 이모젠은 한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 가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어떠한 것도 예상하기 힘들었다.

세이디는 착하고 성실한 의사이자 아내, 그리고 엄마다. 듬직한 남편 윌과 잘 자라주는 아이들, 그녀는 의사의 임무도 착실하게 잘 수행한다. 물론 함께 살고 있는 이모젠이 문제이긴 하다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좋아질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섬 생활에 불연듯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 사건을 필두로 세이디의 세계는 점차 혼란에 빠진다. 범인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는데 이상하리만큼 이 살인 사건이 자신의 주변으로 점점 다가옴을 느낀다. 어둠 속의 알 수 없는 인기척, 누가 그랬는지 알지 못한느 집 안의 수상한 흔적들 등 세이디를 옥죄어 오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숨이 막혀 온다.

마우스의 눈에도 아빠가 가짜 엄마를 무척 좋아하는 것이 보였다. 아빠가 가짜 엄마를 바라보는 표정을 보면 가짜 엄마가 아빠를 무척이나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가짜 엄마가 집에 오기 전에도 아빠랑 마우스는 행복했지만, 가짜 엄마는 아빠에게 마우스가 줄 수 없는 행복을 주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p205

세이디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이외에 무시할 수 없는 굵직한 시선이 있다. 첫째는 마우스의 시선이다. 마우스와 가짜 엄마의 내용을 읽으며 매우 궁금했다. 과연 어린 소녀 마우스가 어떤 등장 인물과 연결이 될지 말이다. 누군가의 과거로 생각되었으나 선뜻 그 연결고리를 가늠하기 어려웠고 궁금증 때문에 책장은 술술 넘어갔다. 섬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피해자와 연관된 것인지, 이모젠과의 연결일지, 카밀과 연관된 것인지 그 궁금증은 계속 증폭되었다.

다른 또 하나는 바로 남편 윌과 불륜 관계에 있는 카밀의 시선이다. 세이디를 싫어하지만 그녀처럼 되고 싶은 욕망의 소유자다. 윌과의 불륜 관계에 정신과를 찾아가 마음을 털어 놓지만 윌에게 버림 받는 것보다 불륜 관계라도 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욕망이 넘쳐나며 거침 없으나 어쩌지 못하고 세이디 주변을 맴돈다.

제프리는 감정이 격해져 있었다. 아내의 추도식에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서 있던 남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동요하고 있었다. 호소하듯 내게 다시 한번 강조했다.

"코트니는 이 사건과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제 아내를 협박했어요. 누군가 제 아내가 죽길 바랐습니다." 이제야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p363

살인 사건은 세이디를 힘들게 만들었다. 세이디는 모두가 의심스럽다. 비뚤어진 인성을 가진 이모젠도 의심스럽고,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으나 칼을 들고 등교했던 아들 오토마저도 의심스럽다. 죽은 모건의 남편인 제프리의 작은 행동들조차 의심을 거둘 수 없다. 혹여 빈집에 숨어 있는 제 3자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세이디의 입장에서 주변 모든 것들이 의심되었고 선뜻 결론을 내기 힘들었다. 의심의 골이 깊어질수록 불안함과 궁금증은 날로 심해져 간다.

이러한 불안한 마음이 극에 달했을 때 사건의 실마리는 서서히 드러난다. 그리고 숨겨졌던 범인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은 정말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나름 추리 소설을 좀 읽어 봤다 생각했는데 추리력은 전혀 늘지 않은 듯 싶다. "설마 이건가?"라며 살짝 의심했던 부분이 정답이어서 30퍼센트 정도는 맞았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이야기의 흐름에서 이 반전을 절대 생각하지 못하도록 장치를 참 잘 만들어 놨다.

<디 아더 미세스>는 넷플릭스 영화 제작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고나니 어떻게 연출을 할지 전혀 감이 안온다. 이 책의 반전을 숨긴 채 내용을 진행시키기에는 뛰어난 연출력이 요구될 것만 같다. 그렇기에 더욱 영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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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마음 - 심리학, 미술관에 가다
윤현희 지음 / 지와인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미술의 마음 : 심리학, 미술관에 가다

A급 도슨트와 함께 하는 미술관 여행

나만 그러한지 모르겠으나 미술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미술에 대해 지식 탐구를 하지 않는다. 미술관에 찾아간다거나 미술 작품에 대해 정보를 습득한다거나 하는 작은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미술에 대해 궁금하고 알고 싶은 마음은 항상 마음 한 켠에 있다. 이 책을 읽는 것도 어쩌면 그 작은 노력 중 하나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보는 미술 작품도 많았고, 익히 보아 알고는 있지만 그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그림도 많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지현님의 추천사 내용에 매우 공감한다. 이 책은 세 번 읽어야 한다고 하는 부분에 특히 공감했다. 책에 수록된 대가들의 그림을 먼저 감상한 후, A급 도슨트와 함께 미술관을 돌아다니듯 책을 읽고, 그 다음 다시 그림들을 보는 방법이다. 책을 읽고 난 뒤, 그림을 바라보는 눈이 달려졌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저자 윤현희는 임상심리학자로 종합병원 신경정신과에서 근무하며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쳤다. 심리학 전문가가 바라보는 미술 작품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림을 통해 그림을 그린 작가의 생애를 심리학의 관점으로 어루만지기 때문이다. 미술과 심리학의 만남은 뭔가 선뜻 어울리지 않는 듯했지만 의외로 미술을 더욱 깊숙하게 들여다 보는 하나의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다.

카라바조 자신도 이상한 방식으로 옷을 입으며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용모를 하고 다녔다는 점은 조현병을 진단하는 한 가지 준거인 위생 관리의 곤란을 의미한다. 예측 불가하고 이유 없이 흥분하는 점을 보면 차분하고 냉정한 상태에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이코패스보다는, 지각 혼란과 피해망상으로 인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1부 : 바로크의 황금빛과 자존감 / 미켄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p47)

카라바조의 작품들이 매우 인상깊다. 어두운 배경과 두드러지는 인물 묘사가 일품이다. 마치 살아 숨쉬는 듯한 인물의 표정이 나에게 전해진다. 엄청난 작품들의 주인공인 카라바조의 일대기는 매우 충격적이다. 열다섯번의 폭력 전과 및 두 차례나 살인을 저질러 투옥되었고, 교수형을 언도 받고 탈옥을 하는 등 구제 불능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화 제작자로 인정받은 그는 카톨릭 지도자들의 보호 아래 기사 작위를 받음으로써 사면을 받았다.

저자는 이러한 카라바조의 모습이 사이코패스보다는 조현병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카리바조는 충동 조절 실패로 인한 인지행동 장애에 가까우며, 전두엽의 통제 능력과 관련된 인지적은 결함에서 비롯된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조현병은 100명 중 한 명이 겪는다고 한다. 알려지지 않은 사람까지 더한다면 그 수는 더욱 높을 것이다. 조기 발견과 치료가 중요한 조현병에 주변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햇살이 비친 구름과 파르스름한 빛에 감싸인 여인, 그녀의 드레스를 휘감은 바람이 들꽃 위로 흩어지는 <양산을 쓴 여인>과 <양귀비 들판>은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작품들로 모네의 스타일을 대표한다. 두 그림 모두 사랑하던 아내와 아들 장이 함께 있는 산책길이다. (중략) 원래 몸이 약했던 아내는 둘째 아기를 낳은 후 얻은 합병증 때문에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카미유 임종의 순간,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마지막 순간마저도 모네는 그림으로 영원히 기록했다. 인상적이게도 아내가 떠난 후 모네는 더 이상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2부 : 낭만시대의 색채와 감성 / 클로드 모네 (p149)

그저 하늘거리는 모습의 아름답게만 보이는 <양산을 쓴 여인>은 모네를 대표하는 그림인데 이런 슬픈 사연이 담겨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부모의 반대에도 사랑하는 아내 카미유와 결혼해 아이를 키웠다. 어려운 시절 아내는 언제나 모네를 지지하고 사랑이 많았다. 그러나 카미유는 둘째를 출산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아내가 떠난 후 모네가 더 이상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연을 그림으로 옮기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모네는 역동적이며 생동감 있는 그림을 다양한 색채로 그려냈다. 모네는 젊은 시절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냈으나, 평생 좋아하는 일에 매진했고 주변 동료들은 그를 지지하고 후원을 멈추지 않았다. 세계인에게 사랑 받는 화가 모네이다. 저자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모네가 심리적인 부자, 행복의 달인이라 칭하고 있다.

1922년 작품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본 도시>는 밤의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불빛들로 가득 찬 뉴욕의 전경을 담았다. 도시 전체가 마치 불이 켜진 하나의 전구처럼 환하다. (중략) 플랫아이언 빌딩 옆을 지나는 도시철도와 고가 다리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맨해튼이 산업도시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4부 : 우울과 불안을 달래는 도시의 빛 / 존 슬로안 (p298)

페이지를 넘기며 처음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본 도시>를 봤을 때 단순히 도시의 풍경을 담아냈다고만 생각했고 감흥은 없었다. 일찍부터 빈곤에 익숙했고 도시 변두리의 삶을 그림으로 그린 존 슬로안이 살아온 배경을 알게되었다. 지상을 수놓은 불빛을 관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건물의 옥상이 가진 낭만적이 공간의 이미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읽었다. 존 슬로안에게 옥상은 생활의 민낯을 웃으며 관조할 수 있는 장소였다. 또한 세상의 꼭대기에서 관망하는 시가지를 통해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리고 다시 존 슬로안의 작품을 보니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다른 그림들도 좋지만 유독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본 도시> 작품이 계속 눈이 갔다. 어두움과 반짝이는 불빛이 공존하는 뉴욕의 도시를 옥상 위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 풍경을 담은 이 그림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거짓말을 살짝 더하자면 이 장소에 마치 서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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