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메인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유재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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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인

영과 역이 만나 미지의 영역을 이루었다

"서로 연결고리가 없는 미완의 영역의 집합체가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다."

유재영 작가의 소설 <도메인>을 읽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봤다. 이런 식의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느낀 감정에 정답이 있지는 않을 터이니 마냥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양한 이야기들의 집합의 미묘한 연결성은 마치 우연히 친한 친구를 만나는 듯한 묘한 반가움이 있었다.

주차된 차량도, 텐트도 없었다. 설기와 임자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다. 지혜는 컨테이너 맞은편 억새 군락지를 향해 걸었다. 물비린내가 났고 이편에서 보이는 건 억새뿐이었다.

영 (P50)

<영>과 <역>, 두 개의 챕터로 구분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나의 단어만으로는 그 뜻을 예측하기가 힘들다. <영>은 숫자 0 일수도 있고, 영혼의 영을 의미할 수도 있다. <역>이란 단어 역시 거꾸로 혹은 스테이션 등의 다양한 뜻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래서 뭔가 챕터의 제목만으로는 예측이 힘들었다.

하지만 <역>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인 '영역'이라는 유튜버의 등장으로 그 연결고리를 짐작한다. 인터넷 용어로 익숙한 <도메인>은 영역이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한다.

이런 연결고리를 하나씩 찾는 재미가 있는 게임같은 단편소설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 연결고리를 모두 연결할 수 없다. 작가의 의도다. 각 이야기는 미완의 상태다. 그 미완의 이야기들은 어느 한 매개로 조금씩 연결이 되어 있다. 매우 강한 연결이라 볼 수는 없고 약한 연결이기에 소설을 읽는 매순간 뭔가 불안감이 엄습한다.

영화나 소설에서 만나는 다양한 클리셰를 적절하게 사용해 긴장감이 유지된다. 묘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만으로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지고 그 궁금함에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모든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연결짓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 영역은 뭔가 불편한 수도 있다. 사라 윈체스터의 성, 크리에이티브 캐슬에서 종적을 감추는 느낌처럼 이 소설의 막도 종적을 감춘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가 서로의 변형된 사본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생명체는 서로 모방하고 모사하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온 셈이죠. 창작의 영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역 (P55)

<영>은 두 커플의 캠핑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체의 잔해, 뭔가 께림칙한 캠핑장 관리인, 어둑한 곳에서 나누는 무서운 이야기, 그리고 차량 안 자살의 현장, 야영장에서 주운 다이아 몬드들... 자살의 현장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는데 캠핑장 주인은 자신에게 먼저 말하지 않았다면 화를 낸다. 기묘한 분위기를 끌고 가면서 소설은 우리에게 정답을 쉽사리 알려주지 않는다. 뭔가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쉽사리 확신할 수 없다.

<역>은 주인공은 소설 창작 온라인 강의를 수강한다. 선배의 유튜버 채널의 말을 받아 적는 숙제를 하는 과정에서 '크리에이티브 캐슬: 사라 윈체스터 성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이야기를 접한다. 그 바로 전에 '반딧불이 캠핑장과 저수지의 시체들' 이란 언급을 통해 <영>과 작은 연결고리를 넣었다. 선배 '영역'은 주인공이 말했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인양 말한다.

뭔가 후속편이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명확하게 마무리 지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를 더 궁금하게 했다. 유재영 작가의 후속 작품들에 <도메인>의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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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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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단순하고 소박한 삶, 작지만 확실한 행복



에피쿠로스는 14세에 처음 철학을 접했고, 32살에 자신의 이름을 딴 학교를 세우고 자신의 철학을 전파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600년 정도 지속되며 나름 큰 영향력을 가졌다. 하지만 스토아학파와 기독교에 의해 에피쿠로스학파는 점차 쇠퇴했다. 에피쿠로스는 700권이 넘는 책을 썼다고 하나 지금까지 온전한 것이 거의 없고 이 책에 담긴 서신들이 전부다. 에피쿠로스의 재산이 많았나보다.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나본데 자신의 재산을 분배하는 방법을 글로 적을 정도면 그 부가 상당했음을 짐작한다.

그리스 철학의 한 획을 긋는 에피쿠로스의 철학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가 말하는 쾌락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 책을 읽는다. 에피쿠로스는 서양의 '노자'로 불린다. 참고로 '노자'는 '무위자연'을 주장하는 도가 사상 창시자로 대표 저서는 '도덕경'이다.

쾌락을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쾌락은 가장 으뜸가는 선이자 선천적으로 주어진 선으로 인식하고, 모든 선택과 회피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p112

쾌락의 의미를 오롯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한 번 읽고 두 번 읽어도 좀처럼 내 것으로 확 스며들지 않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박문재님의 해제를 읽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또 한 번 읽어보면서 조금씩 에피쿠로스의 쾌락에 대해 이해를 넓혀갔다.

쾌락이 우리의 목표이자 목적이라고 말할 때, (중략) 방탕한 자들이 추구하는 쾌락이나 어떤 것을 즐길 때 생기는 쾌락을 의미하지 않고, 몸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괴로움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쾌락의 삶을 만드는 것을 끊임없이 술 마시고 흥청거리는 것도 아니고, 동성애나 이성애를 통해 애욕을 즐기는 것도 아니며, 사치스러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생선 요리 같은 것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오직 맑은 정신으로 이성적으로 추론하여 모든 선택과 회피를 위한 근거들을 찾아내고, 마음에 가장 큰 소동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잘못된 생각들을 몰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p114

책의 제목이 <에피쿠로스의 쾌락>이니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쾌락'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의 정의를 알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쾌락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때문에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그 당시 시대에도 같은 이유로 오해와 비방이 있었다. "에피쿠로스는 인생의 유일한 목적은 '쾌락'이라고 천명하고, 모든 고통과 괴로움의 부재를 최대치의 쾌락으로 보았으므로(p194)" 라고 옮긴이 박문재님의 해제에서도 쾌락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내가 이해한 바로 '쾌락'은 '마음이 평온한 상태'가 아닐까 생각한다. 몸이 건강하고 평온한 상태인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어지럽다면 쾌락의 상태라 하기 힘들다.

사려 깊고 아름다우며 정의로운 삶 없이는 쾌락의 삶도 없고, 쾌락의 삶 없이는 사려 깊고 아름다우며 정의로운 삶도 없다. 예컨대 아름답고 정의로운 삶이지만 사려 깊지 않다면,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없는 삶은 쾌락의 삶이 아니다.

p124

아름다움은 모든 미덕을 갖춘 삶, 정의로움은 본성과 일치하는 삶이다. 쾌락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한 후에 어렵지 않은 철학이라 여겼으나, 내용이 조금씩 추가되면서 역시나 쾌락의 삶을 위해서는 결코 쉽지 않음을 느끼는 대목이다. 모든 미덕을 갖춘 아름다움과 본성과 일치하는 정의로움이 필수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또한 본성의 선을 강조하고 있는데 '성선설'에 가까운게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최고선은 세계의 작동 원리와 욕망, 쾌락, 고통의 한계에 대한 참된 지식을 통한 '아타락시아'(마음이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평정한 상태)와 '아포니아'(몸 고통의 부재)라는 소박하고 지속 가능한 쾌락을 누리기 위해 야심과 경쟁으로 마음의 평정을 해칠 수 있는 공적인 삶을 멀리하고, 모든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났을 때 얻어지는 최고의 쾌락을 인생의 유일한 본성적인 목적으로 삼아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으므로 우리가 보통 말하는 '쾌락'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p194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란 단어가 우리를 이끈다. 미니멀리즘, 마음챙김이란 말이 유행처럼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처럼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우리에게 '아락타시아'와 '아포니아'가 쾌락이라 말한다. 욕망으로 들끓는 우리의 삶에 다시 무소유의 마음을 강조하는 에피쿠로스의 철학에 마음이 간다. 새해에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새해가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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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여자들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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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여자들


스릴러의 여왕 메리 쿠비카의 웰 메이드 스릴러 소설






스릴러의 여왕 메리 쿠비카의 소설이다. 그녀의 <디 아더 미세스>를 2021년 8월에 읽고 매우 신선한 충격에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는데, 이번 <사라진 여자들>도 역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정말 예상치 못한 결말과 나름의 해피엔딩에 감탄과 함께 나의 연말을 장식했다.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한다고 한다. 내가 제작자라면 분명 욕심을 낼만한 미스터리 스릴러다.

<사라진 여자들> 도입부부터 압도적이다. 첫 60페이지 정도를 단숨에 휙휙 넘겼다. 프롤로그에서는 한 여자의 불륜을 암시하는 내용과 1부는 딜라일라의 시선에서 납치된 현장에서 탈출하는 내용을 다룬다. 소설의 시작부터 독자를 빨아들이고 소설이 준비한 세상에 한 발을 들이게 된다. 2부부터는 본격적으로 사건의 진실에 점차 다가서는 여정이 펼쳐지고 범인을 유추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부의 내용이 진행되면서 다양한 스릴러의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사건의 진실을 모르고 누가 범인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세 여자의 실종에 모두가 두려운 상황이며 모두가 범인으로 의심이 된다. 그러다 비가 억수로 오는 가운데 갑자기 집에 정전이 되는데 앞집은 전기가 들어오는 상황이랄지, 석연치 않은 산부인과 의사의 권위적인 진찰, 어두운 거리에서 누군가 뒤를 쫓는 듯한 느낌 등의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께림칙한 여자의 공포심을 잘 녹여내고 있다.

등장인물 모두를 의심하게 된다. 아래와 같이 등장인물과 관계도를 그려가며 가장 의심이 되는 사람을 추려보지만 쉽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과 갑작스런 사건이 발단이 되어 11년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둔 살인, 납치, 자살의 진실은 수면 위로 서서히 드러난다. (아래 정보들은 책을 반절 정도 읽었을 때 정리된 내용이다.)







"이름이 뭐예요? 말해줄 수 있나요?" 내가 답하지 않자 여자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원치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요."

내 이름을 묻는 이유는 뭘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말해주었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학한 사람 같아 보이니까. 남의 아이들을 납치해 지하실에 가둘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딜라일라." 목소리가 떨렸다. (중략)

여자의 눈이 점점 커지고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p57

11년 전 사건이 발생한다. 세 명의 여자들이 실종되었다. 그 당시의 3월과 5월 매러디스와 케이트의 관점에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또 하나의 관점인 매러디스의 아들 레오의 관점은 현재의 시점이다. 이렇게 세 명의 시각에서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모든 이야기가 서로 촘촘하게 연관되어 있다.

매러디스는 출산 도우미와 요가 강사일을 하며 딸 딜라일라와 아들 레오를 키우는 엄마다. 옆집에는 케이트와 비아가 함께 사는데 레즈비언 커플로 아이들을 가끔 돌봐주는 친한 이웃이다. 셸비는 임산부로 매러디스가 출산 도우미로 도움을 주고 있다.

11년 전 셸비는 주검으로 발견되고 매러디스는 자살했다. 그 당시 실종된 딜라일라는 11년이 지난 지금 살아 돌아왔다. 11년이라는 세월 지하실에서 감금되어 생활한 딜라일라는 트라우마에 힘든 시간을 보냈고, 다시 돌아온 지금도 원래의 생활로 적응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다. 11년 전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고, 왜 이런 끔찍한 일에 휘말리게 되었을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매러디스는 왜 자살을 했을지

의문 투성이다.





상처에는 시간이 약이라고 한다.

조시와 딜라일라, 레오가 그 증거였다.

내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지만, 언젠가 그때가 내게도 올거라 믿고 있다.

p464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옮긴이의 말에서도 언급되었는데, 바로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주인공을 따라가는 여느 소설과는 다르게 모든 등장인물들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세 사람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의심이 가는 사람이 시시각각 달라지고 그 관점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남에 따라 독자의 입장에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심정이었다. 조이고 푸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맛이 한 가득이다.


또 하나의 특징을 꼽는다면 바로 해피엔딩이다. 이 특징은 다른 소설들과도 비슷한 부분이긴 하지만 다양한 반전을 숨겨 놓고 있음에도 결국 해피엔딩으로 이끌어가는 부분도 작가의 능력이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당위성을 놓쳐선 안되는데 살짝 애매한 부분이 있기 때문인데 소설을 완주한 분들은 이 포인트를 분명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냉정하게 내가 범인의 입장이라면 철저하게 모든 가능성을 차단시킬테니 말이다. (스포를 피하기 위해 이 정도만 적겠다ㅎ)




스릴러의 여왕 <메리 쿠비카>

메리 쿠비카의 소설 중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은 현재 총 세 권이다. (2021년 12월 기준)

- 해피북스투유 출판 <디 아더 미세스>(2021.07)

- 해피북스투유 출판 <사라진 여자들>(2022.10)

- 레디셋고 출판 <굿 걸>(20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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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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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죽음을 마주하고 현재의 삶을 매만지는 시간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구나 반드시 죽음을 마주한다. 그 시기는 물론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죽음으로 가는 과정의 삶은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결국 마지막은 죽음이 온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도 같다.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고 조금 더 나은 현재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브라질 완화의료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아나 아란치스'의 <죽음이 물었다>를 읽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이미 죽음과 관련된 책 <죽음의 에티켓>, <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등을 읽었고 죽음을 마주하고 깊은 생각의 시간을 가졌다. 어떤 책이라도 좋다. 지금까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한 번은 이런 책을 읽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길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죽음에 대한 책을 읽기에 좋은 추천하는 연령대로 20대 보다는 30~50대에 읽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이유는 삶을 어느 정도 맛본 사람이 죽음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에는 삶을 이리저리 맛보고 경험하고 즐기는 시간이면 좋겠다. 삼십대 후반의 나 역시 아직 삶이 어렵다. 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가느냐의 질문에 쉽사리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외과 의사이자 작가인 아툴 가완디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의과대학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사망은 거기 포함되지 않았다." 의과대학에서는 아무도 죽음에 대해, 죽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심각한 불치병 말기의 환자를 어떻게 돌볼지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p45)

고통 속에 죽어가는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현실에 의문을 가진 저자는 완화의료에 관심을 갖게 된다.

"완화의료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관련된 문제에 직면한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접근으로, 조기 진단과 정확한 평가, 그리고 통증과 기타 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 문제의 치료를 통해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고 경감시킨다 - 세계보건기구" (p65)

우리에게 어쩌면 생소할 수 있는 영역인 완화의료는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우리와는 무언가 동떨어진 영역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게 그 언젠가 죽음의 문턱에서 완화의료의 도움을 받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한다. 이러한 책을 통해 많은 일반 독자들을 이해시키는 과정도 완화의료 분야의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의 시간을 맞이한 환자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거기 있어주는 것이다. 거기 그의 곁에 그 사람을 위해, 오직 연민을 통해서만 가능한 다면적 존재의 형태로 있어주는 것이다.

어떤 길이든 같은 곳으로 이어진다 (p147)

"죽음이라는 인생길에서 언젠가는 맞닥뜨리게 되는 거대한 장벽(p143)" 우리는 삶의 길을 나아간다. 잠시 휴식을 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을 만난다. 바로 죽음이라는 장벽이다. 이 장벽을 만나게 되면 넘을 수도 돌아갈 수도 없다. 참 막막할 것 같다.

공감력이 가장 큰 무기인 저자는 환자의 고통에 크게 공감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오랜 경험과 힘든 시간을 지내오면서 그 강한 공감력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거기 있어 주는 것. 이것 하나만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 환자의 고통을 목도하면서 나까지 고통을 느낀다면 분명 마비되고 만다. 우리는 그 고통에 즉, 그 장벽에서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좋다.

"당신 자신이 어디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 할지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찾도록 도울 수 있겠는가? (p149)" 뭔가 가슴의 울림이 생겨나는 말이다. 지금껏 나는 내 안의 평화를 찾았을까. 나는 과연 행복하고 평화을 느끼는 사람일까.

"우리 모두 그럴 자격이 있다. 아파서 죽어갈 때조차도 자신이 소중하고 중요하며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낄 자격 말이다. (p150)"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고 싶은 것은 죽기 전일까 아니면 지금 당장일까. 우리는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다.

자신으로 살 수 있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고 충만함이다. 반대로 사랑받기 위해 다른 삶이 되어야만 한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필시 후회가 뒤따른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가장한 모습이 진정한 내가 될 수는 없으니까. 그건 매우 위험한 길이다.

후회 (p185)

어쩌면 이 책에서 죽음이라는 단어의 매개체를 통해 진정으로 하고 싶고 묻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이라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과연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진정한 나의 삶을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결단코 후회를 남긴다.

"병원이 있는 환자들이 모두 외로울 거라는 속단은 피해야 한다.(p188)" 이 말도 참 인상적이다. 환자 스스로 충실한 삶을 살았다면 결코 병원에서의 삶이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사람이라면 병원에서의 시간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평생 많은 이들을 도우며 살았지만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는 홀로 남은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남을 도운 단 한 가지 목적은 안전함을 느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들은 진실한 관계를 쌓지 못했다.( p194)" 진실한 관계를 쌓지 못한 사람이란 말이 '쿵'하는 울림이 되어 나아게 돌아오는 느낌이다. 나에게 충실한 삶이란 바로 타인과의 진실한 관계에서 온다.

삶을 잘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상 속에서 다음의 다섯 가지를 지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표현하기, 친구들과 함께하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스스로 선택하기, 일하는 동안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의미를 지니는 일 하기. 그러면 어떤 후회도 남지 않을 것이다.

행복을 위한 조건 (p221)

평생 기억해 두고 싶은 말이다. 어떤 후회도 남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 위 다섯 가지를 꼭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다섯 가지를 잘 지키며 살아가고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참 힘들다. 다섯 가지 중 한 가지라도 잘 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겨난다. 후회없는 삶을 나는 정말 살아가는 것일까. 나는 감정을 잘 표현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에게 정말 진정으로 좋은 친구가 있는 걸까. 내 스스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살아가는 걸까.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일가. 내 삶 전체에서 의미를 지니는 일이 무엇일까.

어렵다. 사람을 잘 사는 일이 이렇게도 어려운 거였나 싶다. 이제라고 알아서 다행이라 할 수도 있겠다. 후회없는 삶. 정말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자가 전하는 다섯 가지를 지키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정말 후회없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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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은 채, 버찌관에서
레이죠 히로코 지음, 현승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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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은 채, 버찌관에서

이별의 슬픔과 마주한 소년

이 소설은 사전 정보 없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온전히 소설 내용에 집중하고 작가가 준비해 둔 모든 코스 요리를 맛있게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내용이 나올지 이미 알고 있다면 소설이 시시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소설에 대한 정보 전혀 없이 소설을 읽었다. 그래서 소설이 매우 흥미로웠고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래서 다시금 당부하고 싶다. 뭔가 가슴 뭉클해지는 가벼운 소설 하나를 읽고 싶다면 이 서평을 읽을 것이 아니라 부담없이 이 소설을 펼쳐보기를 바란다.

청소년 문학 장르로 잔잔한 일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연히 작가의 삶을 살게 된 대학생 소년 모도리노가 버찌관에 잠시 머물게 된다. 그러다 생각치 못하게 어린 소녀 리리나를 만나게 된다. 집을 관리하면서 글을 쓰고자 했던 모도리노는 예상치 못하게 천방지축의 당돌한 리리나를 돌보게 된다. 졸지에 보모 역할을 하며 하루 세 깨 밥을 해 먹이느라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서 둘을 조금씩 친해지게 된다.

"그렇구나, 저건 양벚나무였구나!"

스마트폰 화면에 뜬, 만개한 양벚나무는 가지 가득 새하얗게 꽃이 피어나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화면을 내리자 빨갛게 익은 귀여운 버찌 사진이 나타났다.

'버찌 열매는 5,6월에 익습니다. 오오오! 좋은데? 그래서 버찌관이었구나!'

그 나무의 정체 (p77)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한 소년 모도리노가 있다. 약 100페이지까지는 뭔가 일이 벌어질듯 하면서도 잔잔한 흐름이 지속되었다.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잔잔함도 잠시 세상은 송두리째 뒤흔들리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새로운 세상으로의 이동은 매우 자연스러워 책을 읽는 나 역시도 혼란스러웠다. 분명 작가도 그 부분을 노렸을 것이다.

모도리노가 느끼는 감정을 오롯이 느끼는 동시에 혼란스런 상황이 조금씩 정리되어 가는 그 과정에서 놀라움과 다양한 의문과 슬픔이 몰려왔다. 지금이 꿈인 것인지 현실인지 조차 분간하기 힘든 상황에서 차츰 숨겨진 내막이 겉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짧지만 매우 강렬했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는 그 과정에서 이런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며 뒤늦게 마음 한 켠에 쓰나미가 밀려왔다. 슬프다고 하기에는 뭔가 아련하고 가슴 미어지는 탄식이 나왔다.

아니야,분명 나아리랑 손을 잡고 언덕을 올랐는데.

아니야, 잠깐만. 아니야, 잠깐만.

기억이 폭포처럼 내 머릿속에 흘러들어와 요란하게 소용돌이쳤다. 혼란에 빠진 나를 소용돌이가 삼켜버렸다.

기억의 소용돌이 (p173)

먼저 형과의 기억을 찾는다. 내가 알던 것들을 어머니는 모르고 있다. 아버지의 눈빛이 싫다. 또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아리다. 후반부에 나아리의 정체가 나온다. 나아리 어머니도 만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 난다. 그렇게 소용돌이 속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 기억을 되찾고 안정을 얻는다. 그리고 슬픔이 밀려온다.

"너희는 사이가 좋았으니까. 고등학교에서도, 대학에서도 항상 붙어 다녔고. '우리는 버찌 같아. 열매 두 개가 이어져 있는 느낌이야!'라는 나아리의 말에 다들 몸서리쳤던 거 기억해?"

"그랬었지. 버찌라고." (중략)

나아리는 나와 정반대라고 생각했다. 나아리는 어떤 일에도 긍정적이고, 기본적으로 의욕이 가득한 아이였다.

잊어서는 안 되는 (p177)

꿈과 현실, 그리도 동화의 연결고리가 드러나는 순간은 감탄이 나왔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등장 인물은 결코 이유없이 등장해서는 안 된다는 소설의 기본을 잘 지키고 있다. 모든 등장 인물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 연결 고리를 알게 되고 난 후 모든 것이 평온해진다. 이제 그녀와의 이별을 받아 들일 때가 되었다.

슬픈 이야기지만 미래의 희망이 담겨 있다. 현실은 가혹하지만 꿈과 동화는 활기차고 빛난다. 현실의 슬픔을 꿈을 통해 이겨내는 형상이다. 주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이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 허나 이별에 대한 내용이기에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이별에 대한 내용이지만 책 내용이 좋아 가볍게 읽기 좋은 것 같아 추천한다는 말을 꼭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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