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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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죽음을 마주하고 현재의 삶을 매만지는 시간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구나 반드시 죽음을 마주한다. 그 시기는 물론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죽음으로 가는 과정의 삶은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결국 마지막은 죽음이 온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도 같다.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고 조금 더 나은 현재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브라질 완화의료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아나 아란치스'의 <죽음이 물었다>를 읽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이미 죽음과 관련된 책 <죽음의 에티켓>, <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등을 읽었고 죽음을 마주하고 깊은 생각의 시간을 가졌다. 어떤 책이라도 좋다. 지금까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한 번은 이런 책을 읽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길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죽음에 대한 책을 읽기에 좋은 추천하는 연령대로 20대 보다는 30~50대에 읽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이유는 삶을 어느 정도 맛본 사람이 죽음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에는 삶을 이리저리 맛보고 경험하고 즐기는 시간이면 좋겠다. 삼십대 후반의 나 역시 아직 삶이 어렵다. 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가느냐의 질문에 쉽사리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외과 의사이자 작가인 아툴 가완디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의과대학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사망은 거기 포함되지 않았다." 의과대학에서는 아무도 죽음에 대해, 죽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심각한 불치병 말기의 환자를 어떻게 돌볼지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p45)

고통 속에 죽어가는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현실에 의문을 가진 저자는 완화의료에 관심을 갖게 된다.

"완화의료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관련된 문제에 직면한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접근으로, 조기 진단과 정확한 평가, 그리고 통증과 기타 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 문제의 치료를 통해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고 경감시킨다 - 세계보건기구" (p65)

우리에게 어쩌면 생소할 수 있는 영역인 완화의료는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우리와는 무언가 동떨어진 영역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게 그 언젠가 죽음의 문턱에서 완화의료의 도움을 받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한다. 이러한 책을 통해 많은 일반 독자들을 이해시키는 과정도 완화의료 분야의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의 시간을 맞이한 환자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거기 있어주는 것이다. 거기 그의 곁에 그 사람을 위해, 오직 연민을 통해서만 가능한 다면적 존재의 형태로 있어주는 것이다.

어떤 길이든 같은 곳으로 이어진다 (p147)

"죽음이라는 인생길에서 언젠가는 맞닥뜨리게 되는 거대한 장벽(p143)" 우리는 삶의 길을 나아간다. 잠시 휴식을 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을 만난다. 바로 죽음이라는 장벽이다. 이 장벽을 만나게 되면 넘을 수도 돌아갈 수도 없다. 참 막막할 것 같다.

공감력이 가장 큰 무기인 저자는 환자의 고통에 크게 공감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오랜 경험과 힘든 시간을 지내오면서 그 강한 공감력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거기 있어 주는 것. 이것 하나만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 환자의 고통을 목도하면서 나까지 고통을 느낀다면 분명 마비되고 만다. 우리는 그 고통에 즉, 그 장벽에서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좋다.

"당신 자신이 어디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 할지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찾도록 도울 수 있겠는가? (p149)" 뭔가 가슴의 울림이 생겨나는 말이다. 지금껏 나는 내 안의 평화를 찾았을까. 나는 과연 행복하고 평화을 느끼는 사람일까.

"우리 모두 그럴 자격이 있다. 아파서 죽어갈 때조차도 자신이 소중하고 중요하며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낄 자격 말이다. (p150)"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고 싶은 것은 죽기 전일까 아니면 지금 당장일까. 우리는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다.

자신으로 살 수 있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고 충만함이다. 반대로 사랑받기 위해 다른 삶이 되어야만 한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필시 후회가 뒤따른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가장한 모습이 진정한 내가 될 수는 없으니까. 그건 매우 위험한 길이다.

후회 (p185)

어쩌면 이 책에서 죽음이라는 단어의 매개체를 통해 진정으로 하고 싶고 묻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이라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과연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진정한 나의 삶을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결단코 후회를 남긴다.

"병원이 있는 환자들이 모두 외로울 거라는 속단은 피해야 한다.(p188)" 이 말도 참 인상적이다. 환자 스스로 충실한 삶을 살았다면 결코 병원에서의 삶이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사람이라면 병원에서의 시간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평생 많은 이들을 도우며 살았지만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는 홀로 남은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남을 도운 단 한 가지 목적은 안전함을 느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들은 진실한 관계를 쌓지 못했다.( p194)" 진실한 관계를 쌓지 못한 사람이란 말이 '쿵'하는 울림이 되어 나아게 돌아오는 느낌이다. 나에게 충실한 삶이란 바로 타인과의 진실한 관계에서 온다.

삶을 잘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상 속에서 다음의 다섯 가지를 지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표현하기, 친구들과 함께하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스스로 선택하기, 일하는 동안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의미를 지니는 일 하기. 그러면 어떤 후회도 남지 않을 것이다.

행복을 위한 조건 (p221)

평생 기억해 두고 싶은 말이다. 어떤 후회도 남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 위 다섯 가지를 꼭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다섯 가지를 잘 지키며 살아가고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참 힘들다. 다섯 가지 중 한 가지라도 잘 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겨난다. 후회없는 삶을 나는 정말 살아가는 것일까. 나는 감정을 잘 표현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에게 정말 진정으로 좋은 친구가 있는 걸까. 내 스스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살아가는 걸까.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일가. 내 삶 전체에서 의미를 지니는 일이 무엇일까.

어렵다. 사람을 잘 사는 일이 이렇게도 어려운 거였나 싶다. 이제라고 알아서 다행이라 할 수도 있겠다. 후회없는 삶. 정말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자가 전하는 다섯 가지를 지키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정말 후회없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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