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이해하는 사이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주원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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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이해하는 사이

코믹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장르의 웰메이드 단편 소설

김주원 작가의 <십분 이해하는 사이>와 <우주맨의 우주맨에 의한 우주맨을 위한 자기소개서> 가 한 권에 담겨 있다. 정말 오랜만에 완성도 있는 단편을 만난 느낌이다. 짧지만 결코 모자람없는 구성과 내용이었다. 두 편의 소설은 서로 정말 다른 이야기지만 옥상이라는 공간에서 발생한 한 사건에 의해 빛을 발한다.

코믹이 가미된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장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내용을 모두 읽고 한 동안 멍해 있었다. 감탄과 함께 그래, 단편은 이렇게 써야하는 거지!


십분 이해하는 사이

첫번째 소설

옥상에서 고등학생 두 명이 실랑이를 한다. 처음엔 뭔가 싶었다. 둘이 뭔가 의견이 맞지 않는 듯 한데. 그러다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데 한 명이 뛰어내리려나보다. 그걸 다른 한 사람이 막으려 회유하는 모습이다. 그런 실랑이를 벌이는 대화에 약간의 개그를 넣어가면서 지루할 틈 조차 주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회유에 성공하고 둘은 내려온다.

그래, 나는 지금 네 마음이 어떤지 몰라. 하지만 나는 이런 것도 이해라고 생각해. 바로 옆에 앉아서 너의 마음이 어떨지 헤아려보는 거 말이야.

p24

간단한 줄거리만 들었을 때는 그냥 단순한 내용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반전의 내용을 접하게 되면 상황이 급변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이 짧은 단편을 한 번 더 읽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파급력있는 반전이다. 다시 읽다보니 와, 정말 대단하다. 처음 읽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다시 읽으니 다른 소설로 다가온다. 주고 받는 대화 속에 숨겨진 단어들을 발견하면서 소름이 돋는다.

'단편이 이렇게 써야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짧아서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읽고 싶은 그의 소설이다. 얼른 다음 소설을 읽고 싶어 다음 소설로 넘어갔다.


우주맨의 우주맨에 의한 우주맨을 위한 자기소개서

두번째 소설

이 소설도 옥상이 나온다. 전혀 다른 소재이지만 옥상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은 비슷하게 구성했다. 약간의 무기와 같은 이 장치가 참 마음에 든다. 이 옥상에서의 일로 꼬마는 우주맨이 된다. 옥상에서 만난 형이 준 선물로 지구에서 매우 특별한 존재가 된다.

집에서 뒹굴거리는 청년 실업은 아니고, 잠시 휴업 중인 김세종. 누나 김서희씨 빌라에 빌붙어 살면서 은행 청원 경찰 지원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려 한다. 이를 초등학생 조카 김한솔 군이 도와주고 있다. 김서희씨는 욕받이로 김세종을 집에 데려와 각종 욕을 퍼붇는다. 이를 애정표현으로 여기는 김세종은 똘똘한 김한솔 군과 함께 미래를 도모한다.

꼬마야. 우주맨에게 중요한 건 바로 포지다. 이렇게 멋지게 가슴에 딱 갖다대는 거야. 그런데 사실은 이거 안 해도 돼. 그냥 폼이야. 넌 그냥 두 눈을 감고 '전화기 나와라' 마음속으로 외치기만 해도 된다고. 그리고 네가 마음속으로 말해도 상대방은 너의 말을 다 듣는다.

p70

조카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조카의 행방을 뒤쫓는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조카의 행방을 찾아내고 경찰에 신고한다. 우주맨의 기술을 활용해 무사히 조카를 구한다. 그리고 조카를 위해 우주맨을 포기하면서 까지 마지막 우주맨의 기술을 사용해 조카를 보호하게 된다.

미스터리 소설답게 우주맨의 능력을 얻는 과정부터 우주맨에서 일반인이 되는 과정까지 범상치 않은 내용이다. 하지만 정말 있을 법하게 잘 버무린 내용이 정말 재미있었다. 작가는 코미디와 미스터리, 스릴러를 적절하게 섞어 맛있는 비빔밥으로 만들었다. 나는 이 비빔밥을 맛있게 즐겼다. 강력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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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이은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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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김이은의 2편의 소설 <산책>과 <경유지에서>가 담겨있다. 짧은 소설이지만 매우 짜임새있고 공감되는 내용으로 여운이 남았다. 소설이라고 하기엔 뭔가 실제 인물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생생하게 인물을 잘 표현했다는 의미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내용이다. <산책>에서는 도심지의 삶과 도시 외곽 신도시의 삶, 비슷하지만 다른 두 삶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그 고민의 방식과 생각이 매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경유지에서>는 한 곳에 오래 머물렀다고 얘기하는 이화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아온 에릭의 모습을 통해 사람 간의 관계와 삶의 모습을 들여다 본다.


산책

첫번째 소설

윤경과 여경은 자매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무언가 부정적 언행을 입에 달고 사는 서울 사람인 윤경과 경기도 외곽의 신도시에 살며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여경이다.

윤경은 서울 하늘 아래 오래된 아파트에 리모델링해 들어가 살고 있다. 작은 평수지만 자가라는 사실에 나름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이자를 값아야 하는 처지이며 아이의 엄마로 뭔가 여유가 없는 날이 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경은 경기도 외곽의 신도시의 여유를 느끼며 살아간다. 쾌적한 새 아파트의 환경에서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킨다. 자연의 맛이 한껏 느껴지는 환경에서 쾌적하며 나름 삶에 만족하는 모습이다.

여경도 처음에 놀랐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그랬다. 처음엔 어색해서 어쩔 줄 몰랐다. 지음은 여경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인사를 건넨다. 서울에 살 때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 중 하나였다.

p29

이 둘은 서로 살아가는 모습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윤경은 신도시의 너른 공원이 공간 낭비로 여겨지고 여경은 팍팍하고 좁은 아파트에서 사는 서울 살이가 당장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미룬 모습처럼 여겨진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쉽사리 대답하기는 힘들다.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갈 뿐이다. 어느 삶이 더 낫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저 우리는 그 때의 상황에 맞게 하나의 삶을 선택해 살아갈 뿐이다. 나의 삶은 어떠한 모습인지 되돌아 보게 된다.

경유지에서

두번째 소설

이화와 에릭에 이야기다. 영어 학원에 간 이화는 영어 초급반 수업을 듣게 된다. 그곳에서 에릭을 만났다. 무슨 용기에서인지 에릭에게 연락처를 건네고 둘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이런 저런 에릭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에릭은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에릭은 이화의 집에서 지내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점차 깊어지는 듯 오묘해진다. 에릭은 집에 머물면서 이화의 보살핌을 받게 되고, 이화는 에릭을 돌보는 형태가 되어 갔다. 에릭이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인지 그저 떠날 때가 온 것인지 훌쩍 작별을 고한다.

이화는 애초에 뜨내기 갔았던 에릭의 첫인상을 새삼 상기했다. 언젠가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갈 사람. 이화는 역시나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흡족해했다.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제 집에서 더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63

이화는 에릭은 선택했다는 표현에서 이 모든 것이 의도적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에릭이 떠날 사람인 줄 알고 선택했다는 말이다. 그 정확한 이유와 감정에 대해서 백프로 공감하기는 어려웠으나 뭔가 이화가 지내온 삶이 궁금해졌다. 엄마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들이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아 더욱 궁금했다.

이화의 집이 에릭의 경유지인지 에릭이 이화의 경유지인지 중의적 느낌으로 다가왔다. 추측컨테 자신의 엄마의 삶을 잠시나마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엄마는 이화 자신을 돌보다 훌쩍 떠나버렸고 뭐든 괜찮다 말하시는 엄마의 삶을 잠시나마 살아보고 싶지 않았을까.

엄마는 이 삶을 잠시 경유해 가시면서 이화를 보살폈다. 이화도 엄마처럼 잠시 경유해 갈 사람이 필요해 에릭은 선택했을 것이다. 사실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잠시 경유하는 경유지에 불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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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백건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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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백건우 작가의 <검은 고양이>는 유명한 소설 '에드거 엘러 포'의 '검은 고양이'와 동명 소설이다. 참고로 내용은 전혀 관련이 없다. 소설 안에서 작가도 의식했는지 에드거 엘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언급한 부분도 있다.

두 편의 소설 <검은 고양이>와 <쥐의 미로>가 담겨 있다. 고양이와 쥐가 상반되듯 두 이야기는 닮은 듯 전혀 다른 느낌을 풍긴다. 우아하면서도 고풍스럽게 진행되는 <검은 고양이>의 이야기 흐름이 인상깊었다. 또한 쥐에 쫓기듯 긴박하면서도 조이는 듯한 압박감을 지닌 <쥐의 미로>는 소설이 펼친 영상미와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검은 고양이

첫번째 소설

그림 속의 고양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습은 조금씩 달라 보였다. 그림 속의 고양이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언제나 조금씩 달라보였다. 기분이 좋아서 방을 들어설 때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애완용 고양이로 앉아 있었고,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서 방에 들어설 때면 섬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p19

주인공이 우연히 구입한 검은 고양이 액자는 뭔가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물건이었다. 고양이 액자를 구입한 이후로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린다는 이웃들의 말에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액자의 뒷면엔 1941년이 그리고 액자 안쪽에서는 한 주소를 발견한다. 뭔가 궁금증이 샘솟는다. 전라도 광주에 호남서원이 이 고양이 그림과 무슨 관련이 있을지 그 꼬리를 밟아본다.

朝鮮光州府本町1丁目 湖南書院 電話350番

(조선광주부본정1정목 호남서원 전화350번)

주인공은 시간을 내어 전라도 광주를 찾는다. 헌책방에 들러 호남서원에 대해 묻는다. 1945년 광복 이전의 1941년의 독서회와 검은 고양이 액자의 관련성은 알 수 있고, 공산주의자 조직으로 들어갔던 그 한 사람의 행방과 연결된다.

해방 이전 희생된 이들의 이야기는 안타깝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희생임에 분명하다. 그들의 이야기가 좀 더 세세하고 생생하게 후대와 세상에 알려져 길이 기억되어야 할 것은 명백하다.

추리의 형태로 하나씩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나름 흥미로웠다. 검은 고양이 액자에 정말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면 조금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또한 뭔가 좀 더 많은 실마리 혹은 구체적 이야기를 얻을 수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좀 더 구체화된 확장된 장편 소설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살짝 해 본다.


쥐의 미로

두번째 소설

소설이 참 오묘하고도 섬뜩했다. 악몽, 불면증이 시달리는 한 집안의 가장의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지며 자못 불편한 결론에 이르고 있다. 설정이 매우 독특하고도 흥미로웠다. 쥐로 의심되는 소리에 시달린다. 사각사각 소리다. 고층 아파트에 쥐가 있을리 만무하지만 쥐의 존재가 느껴진다.

CCTV속의 사람의 표정을 관찰하고 표정을 기록하는 일을 10년간 해왔다. 어느 미래의 한 시점 혹은 현재 누군가에게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미묘한 사람의 표정까지 AI가 인식하지 못하기에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약간의 설득력을 갖춘 설정이다. 아무튼 나쁘지 않은 보수에 누군가를 감시하고 관찰하는 일을 하는데 자신이 누군가를 감시하듯 자신도 누군가의 감시와 관찰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감시하는 CCTV 속 사람들도 자신이 감시받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심지어 화장실의 모습도 보여진다.

손끝이 쥐의 몸에 닿자 소름이 송곳처럼 돋았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하지만 나는 웃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공포의 웃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제 잠시 후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나는 손으로 쥐를 움켜쥔 다음, 서서히 입으로 가져갔다. 쥐는 저항하지 않았고, 입에서 목구멍까지 한 번에 통과했다.

p66

자신이 감시 일을 하는 와중에 남자와 만나는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세상은 무너진다. 꿈 속의 정체를 알 수 없던 쥐의 존재가 자신의 눈 앞에 쏟아져 나온다. 화면 속에서도 상사의 손에서도 심지어 자신의 아내가 자신에게 싸준 도시락 안에서도 쥐가 튀어 나온다. 그 쥐를 삼키고 자신은 자신의 눈을 포기한다.

짧지만 강렬한 소설이 가진 화면이 매우 선명하게 다가온다. 괜히 몸이 근질거리는 듯하다.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할 수 있겠으나 소설이 가진 느낌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주인공의 모습에 나를 투영해 소설을 읽다보니 쳇바퀴 도는 듯 일 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과도 닮아 있어 괜히 측은하고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신 착란으로 스스로 매몰되는 주인공이 무너지는 마지막 순간은 미로의 막다른 곳에 다다른 쥐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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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의 크레이터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남일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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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의 크레이터

관계의 시작 그리고 힘

정남일 작가의 <세리의 크레이터>와 <옆집에 행크가 산다> 두 편의 작품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관계'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우연과 우연이 만나 필연이 되는 관계의 형성은 온 우주가 돕기에 가능한 것이라고들 한다. 운석이 지구로 오기까지의 모든 우연들, 두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만나는 그 과정들, 한 아이가 태어나기 까지의 우연들은 쉽사리 설명하기 힘든 어떠한 힘이 작용하는 듯 하다.

<옆집에 행크가 산다> 이웃과의 만남 역시 어찌 생각하면 천운과도 같은 우연의 연속이 아닐까. 전입 신청 과정을 도와주는 인연은 옆집 이웃이라는 관계를 통해 도움을 주게 된다. 이 작은 관계의 연결은 난관에 봉착한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힘으로 번진다.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작은 이웃의 관계들까지 잠시나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세리의 크레이터

첫 번째 소설

뭔가 알콩달콩한 연애물 느낌의 소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현실 고등엄빠의 느낌이 묻어났다. 등장인물은 먼저 뱃속에 아이가 덜컥 생겨버린 세리, 친구로는 좋지만 여자친구로는 감당하기 힘들거라는 세리의 전 남친이자 주인공의 친구인 '오'의 말에 싸한 느낌이 감돈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세리의 현 남친인 남자 주인공. 이들의 심정은 어느 상황에 빗댈 수 있을까 세리 뱃속의 아이가 '오'의 아이라는 사실은 세리도 부정하지 않았다.

세리의 엄마도 어린 나이에 덜컥 아이를 갖고 세리를 낳았다고 한다. 운석이 떨어지는 걸 보고 아이를 낳겠다고 다짐했다나. 그래서 세리도 아주 옛날 운석이 떨어졌다는 초계분지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한다. 운석을 볼 수는 없기에 그 흔적이라도 본다면 뭔가 분명해질 거라는 말과 함께 주인공과 세리는 그렇게 초계분지로 떠났다.

활공장에서 바라본 초계분지는 세리의 말처럼 끝내주는 장소인 건 틀림없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음푹 파인 지형은 무려 오만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운석이 떨어진 자리, 그레이터임이 분명해 보였다.

p31

생각이 달라질 거라는 그 말이 처음엔 세리의 생각일 거라 짐작했으나 소설을 읽고 난 후, 현 남친의 생각을 바꾸고 싶었던 세리였음을 짐작한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전 남자친구의 아이를 키우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싶다. 허나 실제 이런 사람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은 소설의 표현력이 생생해서 혹은 그런 사례를 심심치 않게 전해 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바르고 정해진 길을 걸어왔고 걸어가는 나에게 이런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항상 신선하고 흥미롭다. 내가 주인공의 상황이라면 어떨까, 세리의 상황이라면 어떠할까. 쉽사리 답을 입 밖으로 낼 수 없기에 어려우면서도 고민해 볼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답이 정말 쉽다면 답을 선택하고 그냥 끝날테지만 그 답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 주어진다면 고민이 길어질수록 소설의 여운은 길게 간다.


옆집에 행크가 산다

두 번째 소설

옆집에 행크로 의심되는 흑인 남자가 살고 있다. 한 때 유명했던 거대한 체구의 UFC 격투기 선수 행크는 야수라는 별명을 가졌고, 주인공은 그의 팬이었다. 자신이 좋아했던 격투기 스타가 옆집으로 이사왔다는 사실에 흥분된다. 그런데 정말 옆집 흑인이 행크인지 정확하지는 않아 정말 맞는지 확인하고 싶다.

나는 왓슨 씨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면서 어떻게 도울지 생각했다. 문득 행크가 경기 전 세리머니가 떠올랐다. 나는 두 팔을 넓게 벌려 몸을 십자가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 디에 포효할 생각이었다. 내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대머리 남자도 경찰관도 왓슨 씨도 민정도 그리고 그 외 민원실에 있는 모두가 나를 쳐다볼 거였다.

p75

아파트 옆 부지에 임대 아파트 개발 계획에 따른 아파트 주민들의 반발이 있다. 각종 환경 문제를 들먹거리며 아파트 집값이 떨어질까 무서워 임대 아파트가 들어오기를 어떻게든 막으려는 주민 세력이 있다. 집값 방어를 위한 주인공의 아내는 이 일에 적극적이다. 주인공은 엮이지 않으려 아내를 슬슬 피한다.

시청에 전입 신고를 하려 간 행크와 개발 반대시위 무리와 충돌했다. 한 대머리 아저씨가 일방적으로 행크가 관계자라며 인종 비하 발언을 서슴치 않는다. 양측의 상황과 현재 오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주인공은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어 해결하고자 일에 뛰어든다.

전혀 모르는 관계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수 있으나, 옆집 사람 그리고 자신이 열광했던 사람이기에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한다. 관계가 가지는 힘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다양한 우연 속에 맺어지는 관계가 문제 해결을 쉽게 하는 키가 되기도 한다. 누구와도 관계 맺기를 꺼려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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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박초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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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박초이 작가 두 편의 소설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와 <사소한 사실들>이 한 권에 담겨 있다. 가독성이 좋아 읽기에 수월했고 주인공의 상황에 푹 빠져 순식간에 두 소설을 읽었다.

두 작품을 별도의 소설로 보는 것이 더 좋을 듯 하지만, 한 작가의 소설이기에 굳이 공통점을 찾아 보고 싶었다. 두 소설 모두 주인공이 힘든 현실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점이 닮았다. 어떠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 미래의 삶을 살아가고자 힘을 얻는다. 그 사건은 뭔가 특별한 사건이라기 보다는 마음가짐의 변화라 볼 수 있다. 그 변화의 방향은 매우 긍정적이다.


스물여섯 개의 돌로 담은 미래

첫 번째 소설

첫 소설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는 짧지만 여운이 길게 남았다. 미래는 고양이 이름이다. 현재 키우는 고양이도 아닌 전 남자친구의 고양이다.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를 모티브로 한 것인지 단순히 부르는 호칭만 같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주인공 '나'와 '구'가 등장한다. 전 남자친구 '구'는 '미래'의 장례식에 나를 초대했다. '구'의 현 여친 '지안'도 함께였다. 상황이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다. 이런 관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흥미로웠다.

미래와 함께 있을 때의 너는 행복해 보였어. 본 적 없는 표정이었지. 자신을 저렇듯 솔직하게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구나, 느꼈어. 지안이도 마찬가지였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안심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걸까.

p36

'구'는 열차 기관사라는 직업 특성상 고양이 '미래'를 보살피기 힘들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미래'를 봐줄 것을 부탁하다가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인공이 전 여친, '지안'이 현 여친 둘 다 비슷한 경위로 '구'와 연인이 됐다. 화장을 한 '미래'는 스물여섯 개의 돌이 되었다. '구'는 '미래'를 보고 싶어 CCTV를 설치했고 여친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미래'의 장례식에서 '구'와 대화를 통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듣게 된다. 행복한 보였다고 한다.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기란 사실 어렵다. 누군가가 힌트를 준다면 참 좋을텐데.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에게 '미래'의 장례식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자신이 정말 행복할 수 있는 새로운 '미래'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짧은 소설이지만 나에게 전하는 메세지는 결코 작지 않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안다는 것. 그게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우리에게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소한 사실들

두 번째 소설

사회 초년생의 모습이 여실히 담겨있다.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이런 현실이 추억이 되는 순간이 분명 오겠지만 그 과정이 녹록치 않다. 정말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참담한 현실에 악취나는 식당 창고에서의 탈출은 내 속이 다 후련했다. 청소를 하지 않아 곰팡이가 가득한 화장실이며 좁디 좁은 옥탑방이지만 따스히 몸을 뉘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라는 사실에 그저 행복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저 나는 좋았다. 청소만 하면 해결될 일이니까. 정말 무서운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p51

옥탑방 쉐어하우스에서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3명이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부딪히지 않고 '불 끄면 사라지는 바퀴벌레처럼' 서로 피해 주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아 발생했다. 보증금 천만원을 올려달라는 주인의 요구 때문이었다. 결혼 준비로 몇 달간 월세를 낼 수 없었던 언니의 처지, 당장 돈을 더 낼 수 없는 주인공의 처지, 다른 한 명도 별반 다르지 않다.

주인공은 싱가포르로 여행을 제안한다. 현실적으로 정말 가능한 것인지는 둘째문제다. 그저 현실에서 잠시나마 도피해 떠나는 여행을 다녀온 후라면 뭔가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당장 천만원이 없는데 정말 여행을 갈 수나 있을까. 여행에서 돌아오면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에 더 삶이 힘들지는 않을까. 오히려 이야기 밖에서 바라보는 내가 걱정이 된다.

내가 주인공의 처지라면 어떠했을까.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열심히 일해도 쉽사리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좌절감을 맛보며 살아갈 것이다. 나 역시 사회 초년생 시절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힘든 시절이 있었기에 이야기가 공감되었다. 그리고 주인공을 응원하게 된다. 훌쩍 떠나 좀 쉬고 오라고 작은 돈이라도 쥐어주고 싶다. 여행길에서 맛있는 음식 먹으라면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회 초년생들이 사실 이 책을 읽을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든다. 그들은 삶이 힘들어 책 읽는 여유조차 사치일테니. 나처럼 그저 과거의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하는 이들이나 이 책을 읽으며 '그래 그땐 그랬지'라며 반쪽짜리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을 듯 싶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임을 어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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