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백건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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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백건우 작가의 <검은 고양이>는 유명한 소설 '에드거 엘러 포'의 '검은 고양이'와 동명 소설이다. 참고로 내용은 전혀 관련이 없다. 소설 안에서 작가도 의식했는지 에드거 엘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언급한 부분도 있다.

두 편의 소설 <검은 고양이>와 <쥐의 미로>가 담겨 있다. 고양이와 쥐가 상반되듯 두 이야기는 닮은 듯 전혀 다른 느낌을 풍긴다. 우아하면서도 고풍스럽게 진행되는 <검은 고양이>의 이야기 흐름이 인상깊었다. 또한 쥐에 쫓기듯 긴박하면서도 조이는 듯한 압박감을 지닌 <쥐의 미로>는 소설이 펼친 영상미와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검은 고양이

첫번째 소설

그림 속의 고양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습은 조금씩 달라 보였다. 그림 속의 고양이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언제나 조금씩 달라보였다. 기분이 좋아서 방을 들어설 때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애완용 고양이로 앉아 있었고,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서 방에 들어설 때면 섬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p19

주인공이 우연히 구입한 검은 고양이 액자는 뭔가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물건이었다. 고양이 액자를 구입한 이후로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린다는 이웃들의 말에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액자의 뒷면엔 1941년이 그리고 액자 안쪽에서는 한 주소를 발견한다. 뭔가 궁금증이 샘솟는다. 전라도 광주에 호남서원이 이 고양이 그림과 무슨 관련이 있을지 그 꼬리를 밟아본다.

朝鮮光州府本町1丁目 湖南書院 電話350番

(조선광주부본정1정목 호남서원 전화350번)

주인공은 시간을 내어 전라도 광주를 찾는다. 헌책방에 들러 호남서원에 대해 묻는다. 1945년 광복 이전의 1941년의 독서회와 검은 고양이 액자의 관련성은 알 수 있고, 공산주의자 조직으로 들어갔던 그 한 사람의 행방과 연결된다.

해방 이전 희생된 이들의 이야기는 안타깝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희생임에 분명하다. 그들의 이야기가 좀 더 세세하고 생생하게 후대와 세상에 알려져 길이 기억되어야 할 것은 명백하다.

추리의 형태로 하나씩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나름 흥미로웠다. 검은 고양이 액자에 정말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면 조금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또한 뭔가 좀 더 많은 실마리 혹은 구체적 이야기를 얻을 수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좀 더 구체화된 확장된 장편 소설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살짝 해 본다.


쥐의 미로

두번째 소설

소설이 참 오묘하고도 섬뜩했다. 악몽, 불면증이 시달리는 한 집안의 가장의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지며 자못 불편한 결론에 이르고 있다. 설정이 매우 독특하고도 흥미로웠다. 쥐로 의심되는 소리에 시달린다. 사각사각 소리다. 고층 아파트에 쥐가 있을리 만무하지만 쥐의 존재가 느껴진다.

CCTV속의 사람의 표정을 관찰하고 표정을 기록하는 일을 10년간 해왔다. 어느 미래의 한 시점 혹은 현재 누군가에게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미묘한 사람의 표정까지 AI가 인식하지 못하기에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약간의 설득력을 갖춘 설정이다. 아무튼 나쁘지 않은 보수에 누군가를 감시하고 관찰하는 일을 하는데 자신이 누군가를 감시하듯 자신도 누군가의 감시와 관찰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감시하는 CCTV 속 사람들도 자신이 감시받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심지어 화장실의 모습도 보여진다.

손끝이 쥐의 몸에 닿자 소름이 송곳처럼 돋았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하지만 나는 웃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공포의 웃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제 잠시 후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나는 손으로 쥐를 움켜쥔 다음, 서서히 입으로 가져갔다. 쥐는 저항하지 않았고, 입에서 목구멍까지 한 번에 통과했다.

p66

자신이 감시 일을 하는 와중에 남자와 만나는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세상은 무너진다. 꿈 속의 정체를 알 수 없던 쥐의 존재가 자신의 눈 앞에 쏟아져 나온다. 화면 속에서도 상사의 손에서도 심지어 자신의 아내가 자신에게 싸준 도시락 안에서도 쥐가 튀어 나온다. 그 쥐를 삼키고 자신은 자신의 눈을 포기한다.

짧지만 강렬한 소설이 가진 화면이 매우 선명하게 다가온다. 괜히 몸이 근질거리는 듯하다.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할 수 있겠으나 소설이 가진 느낌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주인공의 모습에 나를 투영해 소설을 읽다보니 쳇바퀴 도는 듯 일 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과도 닮아 있어 괜히 측은하고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신 착란으로 스스로 매몰되는 주인공이 무너지는 마지막 순간은 미로의 막다른 곳에 다다른 쥐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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