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의 크레이터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남일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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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의 크레이터

관계의 시작 그리고 힘

정남일 작가의 <세리의 크레이터>와 <옆집에 행크가 산다> 두 편의 작품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관계'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우연과 우연이 만나 필연이 되는 관계의 형성은 온 우주가 돕기에 가능한 것이라고들 한다. 운석이 지구로 오기까지의 모든 우연들, 두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만나는 그 과정들, 한 아이가 태어나기 까지의 우연들은 쉽사리 설명하기 힘든 어떠한 힘이 작용하는 듯 하다.

<옆집에 행크가 산다> 이웃과의 만남 역시 어찌 생각하면 천운과도 같은 우연의 연속이 아닐까. 전입 신청 과정을 도와주는 인연은 옆집 이웃이라는 관계를 통해 도움을 주게 된다. 이 작은 관계의 연결은 난관에 봉착한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힘으로 번진다.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작은 이웃의 관계들까지 잠시나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세리의 크레이터

첫 번째 소설

뭔가 알콩달콩한 연애물 느낌의 소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현실 고등엄빠의 느낌이 묻어났다. 등장인물은 먼저 뱃속에 아이가 덜컥 생겨버린 세리, 친구로는 좋지만 여자친구로는 감당하기 힘들거라는 세리의 전 남친이자 주인공의 친구인 '오'의 말에 싸한 느낌이 감돈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세리의 현 남친인 남자 주인공. 이들의 심정은 어느 상황에 빗댈 수 있을까 세리 뱃속의 아이가 '오'의 아이라는 사실은 세리도 부정하지 않았다.

세리의 엄마도 어린 나이에 덜컥 아이를 갖고 세리를 낳았다고 한다. 운석이 떨어지는 걸 보고 아이를 낳겠다고 다짐했다나. 그래서 세리도 아주 옛날 운석이 떨어졌다는 초계분지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한다. 운석을 볼 수는 없기에 그 흔적이라도 본다면 뭔가 분명해질 거라는 말과 함께 주인공과 세리는 그렇게 초계분지로 떠났다.

활공장에서 바라본 초계분지는 세리의 말처럼 끝내주는 장소인 건 틀림없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음푹 파인 지형은 무려 오만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운석이 떨어진 자리, 그레이터임이 분명해 보였다.

p31

생각이 달라질 거라는 그 말이 처음엔 세리의 생각일 거라 짐작했으나 소설을 읽고 난 후, 현 남친의 생각을 바꾸고 싶었던 세리였음을 짐작한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전 남자친구의 아이를 키우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싶다. 허나 실제 이런 사람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은 소설의 표현력이 생생해서 혹은 그런 사례를 심심치 않게 전해 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바르고 정해진 길을 걸어왔고 걸어가는 나에게 이런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항상 신선하고 흥미롭다. 내가 주인공의 상황이라면 어떨까, 세리의 상황이라면 어떠할까. 쉽사리 답을 입 밖으로 낼 수 없기에 어려우면서도 고민해 볼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답이 정말 쉽다면 답을 선택하고 그냥 끝날테지만 그 답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 주어진다면 고민이 길어질수록 소설의 여운은 길게 간다.


옆집에 행크가 산다

두 번째 소설

옆집에 행크로 의심되는 흑인 남자가 살고 있다. 한 때 유명했던 거대한 체구의 UFC 격투기 선수 행크는 야수라는 별명을 가졌고, 주인공은 그의 팬이었다. 자신이 좋아했던 격투기 스타가 옆집으로 이사왔다는 사실에 흥분된다. 그런데 정말 옆집 흑인이 행크인지 정확하지는 않아 정말 맞는지 확인하고 싶다.

나는 왓슨 씨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면서 어떻게 도울지 생각했다. 문득 행크가 경기 전 세리머니가 떠올랐다. 나는 두 팔을 넓게 벌려 몸을 십자가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 디에 포효할 생각이었다. 내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대머리 남자도 경찰관도 왓슨 씨도 민정도 그리고 그 외 민원실에 있는 모두가 나를 쳐다볼 거였다.

p75

아파트 옆 부지에 임대 아파트 개발 계획에 따른 아파트 주민들의 반발이 있다. 각종 환경 문제를 들먹거리며 아파트 집값이 떨어질까 무서워 임대 아파트가 들어오기를 어떻게든 막으려는 주민 세력이 있다. 집값 방어를 위한 주인공의 아내는 이 일에 적극적이다. 주인공은 엮이지 않으려 아내를 슬슬 피한다.

시청에 전입 신고를 하려 간 행크와 개발 반대시위 무리와 충돌했다. 한 대머리 아저씨가 일방적으로 행크가 관계자라며 인종 비하 발언을 서슴치 않는다. 양측의 상황과 현재 오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주인공은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어 해결하고자 일에 뛰어든다.

전혀 모르는 관계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수 있으나, 옆집 사람 그리고 자신이 열광했던 사람이기에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한다. 관계가 가지는 힘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다양한 우연 속에 맺어지는 관계가 문제 해결을 쉽게 하는 키가 되기도 한다. 누구와도 관계 맺기를 꺼려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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