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웃으면서 살아갑니다
단노 도모후미.오쿠노 슈지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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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웃으면서 살아갑니다

아직 젊은 내게 치매가 찾아 온다면...






저자 단노 도모후미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그의 나이 서른 아홉이었다. 상상만으로도 답답하고 울분이 터질 것만 같다.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직접 그런 상황을 겪은 저자는 자신의 상태를 받아 들이고 회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며 일을 하다 지금은 강연을 하고 있다. TV에도 출연해 사람들이 알아보기도 한다. 저자는 현재 치매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의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의 모습을 어떠할까. 치매의 발병에서부터 현재까지 담담하게 써내려간 저자의 이야기가 내 가슴을 뜨겁게 한다.

사람들은 치매라면 중증인 사람을 떠올립니다. 치매에 관한 회의에 가면 대체로 중증인 사람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이야기를 합니다. '환자'라는 말은 그런 이미지를 강조할 뿐입니다. 치매라는 병을 가지고 있지만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을 '환자'라고 부름으로써 '지독한 병에 걸린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환자'라고 부르지 말아요 (p71)

눈이 나빠 안경을 쓰는 사람에게 '환자'라는 말을 쓰지 않고 눈이 망가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머리가 망가진 것이 아니다. 그저 기억력이 안 좋은 것 뿐이다. 사람들의 인식이 참 중요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치매가 심각한 중증 질병이라고만 인식하고 있다. '환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들의 행동 또한 다르다. 우리와 같은 하나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함께해 주길 바라고 있다.

때때로 사장님 얼굴도 잊어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이 사람, 높은 사람인데' 이런 느낌은 드는데 누군지 몰라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저 사람, 누구야?"라고 물으면 "사장님이야"하며 웃습니다. 사장님의 얼굴을 잊다니 원래는 한소리 들어야 정상일 텐데 우리 회사는 웃고 마니까 오히려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기억 못할지도 몰라요 (p97)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잊고,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며, 양치를 두세번하며, 일상의 단어를 잊는다. 점차적으로 실수가 늘고 잊는 것들이 많아 진다. 하지만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상황에 맞게 대처하면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일상이 된다. 사장님 얼굴을 잊는 게 사실 뭐 그리 대수일까. 다시 알려주면 그만이다. 치매의 상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장님과 동료들의 모습이 참 멋있게 느껴진다.

치매라는 사실을 숨기지만 않으면 대부분의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치매를 공개하면 모두 친절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내가 이만큼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은 친절한 사람과 점점 더 많이 접촉해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중에는 무례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틀려도 모두가 웃는 얼굴 (p114)

자신의 목에 카드를 걸고 다닌다. 치매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카드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면 사람들은 적극 도와준다. 카드를 통해 이해를 시키면 도움을 받기 수월하고 금방 해결할 수 있다. 치매를 숨기기 보다 드러내면 좀 더 편해진다고 한다. 아직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따뜻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날 보고 "치매 같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치매 같지 않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치매는 심각하고 우울한 병'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에 대해 웃으며 얘기하는 나 같은 사람은 '치매 환자'가 아닌 것이 됩니다.

편견은 내 안에도 있다 (p208)

치매에 대한 자세에 따라 얼마든지 행복도가 달라질 수 있다. 얼마든지 치매에 대처하며 살아갈 수 있다. 방에 틀어 박혀 남은 삶을 허비하느냐, 밖으로 나와 남은 인생을 즐기느냐는 본인의 선택이 된다. 이 책을 통해 치매에 대한 대처 자세에 대해 한 수 배웠다. 이 책은 처음에 읽기가 사실 꺼려졌다. 나와 치매는 아무 먼 얘기라고 치부했고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저 약간의 호기심때문에 읽게 되었다. 치매에 걸린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할지 작은 호기심이었다. 지금은 이 책을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난 후 치매에 대한 나의 인식이 변화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 또한 달라졌다. 모든 것은 내 마음 먹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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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 - 청년세대의 정치무관심, 그리고 기성세대의 정치과잉
안성민 지음 / 디벨롭어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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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

대한민국 청년들이 꼭 읽어야 할 책






기존과는 다르게 책을 모두 읽은 후 저자 정보를 읽었다. 현재 정치계의 큰 영향력 있는 깨어있는 분이 책을 썼으리라 생각했다. 그만큼 청년 정치의 문제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으며 매우 날카롭다. 명확한 분석과 식견이 저자의 깊은 내공을 가늠하게 했다. 그런데 저자 정보를 읽고 살짝 의아했다. 경영학 박사출신의 12년차 직장인이자 84년생의 저자 안성민이다. 박사 학위를 가졌다는 것만 다르며, 나와 나이도 비슷한 한 가정의 아빠로 살아가는 저자가 이런 책을 냈다니 사뭇 대단하게 느껴진다.



청년들이 몸소 체험하고 있는 현 상황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기에 묘한 공감의 희열을 느끼게 된다. 저자의 논리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모르게 웃고 있다. 나만 느끼는 사회 문제가 아닌 청년들 대부분이 느끼는 사회적 현상임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한다. 세대 간의 차이가 대립과 불통이 될 수도 있지만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표현 또한 마음에 들었다.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다양한 시각에서의 접근에 칭찬하고 싶다.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온몸으로 겪으며 성인이 된 청년들은 높은 교육 수준과 다양한 스펙을 자랑하지만, 삶의 질은 예전보다 떨어졌고,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는 여건에 놓였다.

안쓰러운 'IMF 키즈' (p45)

IMF 세대를 겪은 세대의 자녀들 'IMF 키즈'라는 단어는 현 2030을 대표한다. 경제적 불안감, 치열한 교육열의 희생양, 입시 전쟁터의 경쟁, 미국발 금융 위기까지 순탄치 않은 역사의 한복판에서 경쟁이 일상이 된 삶을 살아간다. 성실하면 된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열심히 살았건만 엄청난 좌절감과 만나는 세대다.



서평의 부제로 '대한민국 청년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 적었지만 청년뿐 아니라 기성세대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자발적 아웃사이더 기질로 살아 남아 취업 시장에서 성공한 이들과 기존의 집단주의 세대 그리고 그들 사이에 끼인 세대. 세대의 간극은 시작부터 이미 크다. 나는 끼인 세대인가 개인주의 세대인가. 이것조차 혼란스럽다. 세대마다 추구하는 바와 살아온 세상이 다르다. 온전한 이해는 어렵더라도 청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최소한 이런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1인 가구가 증가하며, 비혼을 선언한다. 저출산으로 인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고자 펴내는 정책들은 별다른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문제의 실상 파악에 초점을 맞춰 근본 문제 해결에 힘을 쏟아야 하건만 모든 정책들은 제자리 걸음이다.

청년들을 둘러싼 여러 사회문제가 계속 수면 위로 올라오고 국가 경쟁력을 좀먹고 있는데도 여전히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청년 정치인은 없다.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의 평균 나이가 55.5세였으니 임기를 마칠 때는 59.5세가 된다. 환갑을 넘겼거나 눈앞에 둔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국회가 운영된다는 이야기다. 환장할 노릇이다.

청년 정치, 언제까지 탁상논의만 할 건가? (p135)

청년들의 정치 참여가 절실하다. 노령화된 정치에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 구호를 외치던 '안철수' 방식이 지속되지 못하여 아쉬울 따름이다. 기존의 정치 방식이 변화가 필요하다. 기성 세대들이 모여 있는 정치가 어찌 청년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 수 있을까. 청년들을 제대로 이해나 하고 있을까. 그들이 살았던 세상과 청년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이렇게 다른데 이해는 커녕 질책과 나무람으로 청년들을 대하는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여론을 주도하는 세대를 40대라고 보는 의견이 많기 때문이다. 40대는 청년층과 기성세대 사이에 낀 중간자라 어떠한 결정을 내리건 간에 자신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세대이다. 그렇기에 그을은 윗세대를 지지하자니 자신의 자식 세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고, 그렇다고 후배 세대를 지지하자니 몇 년 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까봐 두려워 한다.

정치 혐오에 기름 붓는 '세대 갈등' (p176)

정치를 외면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어느 세대들 보다 40대의 입장은 참 어렵다. 기성 세대인 5,60대와 청년 세대인 2,30대의 차이는크나 큰 거리감이 존재한다. 어떻게 그 간극을 줄일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 어떠한 정책을 추친할 때 반드시 어느 한 쪽이 피해를 본다. 그렇기에 참 어렵다. 어느 세대에도 끼지 못하는 40대의 입장은 참 난감하다. 정치를 혐오하기 까지 하는 청년들에게 정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2015년 조사에서는 '부와 가난의 대물림'에 대해 거의 모든 계층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응답했으나 특히 30대는 94.2%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해 모든 연령 중 부정적 인식이 가장 강했다.

'계층이동 사다리'는 사라지고 있다 (p210)

열심히 노력하면 상위 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 대한민국이다. '계층 사다리'가 눈 앞에서 사라졌다. 미래의 주역인 30대는 이 커다란 벽 앞에서 뒤집을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실감하고 있다. 부의 양극화가 이토록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은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과연 어디일까. 열심히 노력하면 될 것이라 믿었고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건물주 아들은 건물 하나 받아서 취업도 하지 않고 놀고 먹는 것을 보면 자괴감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청년들이 정치를 하려면 열정이나 패기와 같은 애매한 단어가 아니라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을 내세워 기성 정치인들과 차별화해야 한다. (중략) 기성 정치인들에게 "해보셨어요?"라고 당당하게 질문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해야 승산이 있다.

'열정과 패기'만으로는 절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p248)

기성 정치인과 정면 충돌하는 청년 정치인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경력직만 대우 받는 정치판에서 청년 정치인의 현 세대 경험이란 칼이 필요하다. 직접 정치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윤창호법의 일화는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음주 운전자 가중 처벌을 위해 윤창호의 친구들이 발벗고 나선 결과로 이례적으로 3개월만에 법이 통과되었다. 부당하고 잘못된 법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실질적 결과로 가져올 수 있다.



법안을 만들어 달라는 적극적 요청이 아니더라도 청년들은 최소한 투표를 해야 한다. 아주 최소한의 노력이 바로 투표다. 정치에 대한 혐오는 간극만 더 키울 뿐이다. 더 많은 관심이 긍정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의견 피력도 좋다. 비전통적 정치 참여가 점차적으로 확대되는 방향은 매우 긍정적이다. 기억하자. 촛불이 잘못된 대한민국을 뒤집은 것처럼 대한민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분명 우리에게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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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업 - 하 - 반룡, 용이 될 남자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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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업 (하)

왕현과 함께한 대서사시가 남기는 여운





(상)권에 이어 (하)권에서 왕현의 굳세고 당찬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사건 사고들을 거치면서 점차적으로 성장해가는 그녀의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왕현의 모습도 멋있고 배울점이 많지만 그보다 소기가 참 멋진 인물이라 생각한다. 후궁을 들이던 다른 권력가들과는 달리 왕현 이외의 여자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으며 오로지 왕현만을 바라보는 소기의 모습이 진정한 사랑을 느낀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과연 그들의 패업의 꿈을 이루는 길이 가능했을까 싶다.



나는 소기의 뒤에 선 채 높게 솟은 성루 위에서 멀어져가는 자담을 내려다봤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은색 투구와 백색 갑옷은 방패와 갑옷으로 떨어져 내린 자국눈처럼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 물결과 같은 군대에 매몰돼 점점 멀어지다가 결국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p70

왕현의 하나의 약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자담이었다. 소기는 자담에게 질투를 느꼈다. 이에 토벌의 경험이 없는 자담을 남부토벌 출정시켜버린다. 왕현은 자담의 출정을 반대하며 소기에게 자담을 보호해 줄것을 간청하지만 소기는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소기는 보란듯이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다.

처음에 사람들은 자담을 전장으로 등 떠민 소기를 두고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그를 없애려는 것이라고, 전장에서 죽게 만들어 후환거리를 없애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소기의 포부와 수단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p124

훌륭하게 임무 수행한 자담이 황제에 오르는 길에 크나큰 도움을 주는 소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내의 오랜 벗이라 할 수 있는 자담, 그럼에도 한 때 서로 마음에 두었던 사이임을 알기에 질투가 나고 시기의 마음이 있을터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진정으로 소기는 아내를 사랑하였다. 그렇기에 자담에게는 이 길이 힘든 길이지만 이겨내리라 믿으며 자담의 길을 닦아 주었다.

아버지는 어디 계신지도 모르고, 어머니는 속세를 떠나셨고, 자담은 결국 남이 되어버렸다... 이제 오라버니를 빼고 나면 내가 사랑하는 지극히 가까운 사람은 소기뿐이었다. 오직 그만이 내 곁에 남아 서로 의지하며 이 길고 험난한 일생을 걸어갈 것이다.

p135

세상이 홀로 떨어진 듯한 이 여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의지할 곳이라고는 남편인 소기 하나뿐인 그녀의 외로움은 어떠했을까. 다른 어느 것보다 의지할 수 있는 소기 하나를 가진 것만으로도 천하를 얻은 것만큼의 값어치를 하지만 가족에 비할 수 있을까 싶다. 아무리 남편이 잘 해준다 한들 친정의 편안함보다 더 좋을까 싶기도 하다.



왕현의 오랜 벗이자 피붙이인 오라버니가 있다. 오라버니의 치수의 재능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그가 공을 세우도록 왕현은 도왔다. 왕현의 입장에서 오라버니를 믿고 돕고 싶은 마음은 인정하나 오라버니가 이를 잘 해냈기에 물론 가능한 일이었다.



왕현의 무서운 면모를 종종 볼 수 있다. 보듬을 때는 주변을 정리해 따뜻하게 품고 보살피지만 자신의 신념을 깨거나 대의를 거스르는 자는 거침없이 정리했다. 서로 의심하고 감시하며 믿기 힘들며 눈치보는 궁의 삶에서 위기를 이겨내며 왕현은 점차적으로 성장해간다.

내 아기, 소소와 철아야. 너희도 지금 꿈을 꾸고 있겠지? 하지만 편안히 잘 자고 있니? 벌써 여러 날 너희를 보지 못했구나. 순간 눈앞이 흐려지고 시려왔다. 생사가 달린 큰 화를 겪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시신을 밟고 마침내 온 가족이 만나게 되었다. 이 정벌과 살육도 끝에 다다랐다.

p454

500페이지가 넘는 책 두 권을 합치면 1000페이지가 넘는다. 파란만장한 왕현의 대서사를 함께했다. 이런 작품을 이뤄낸 작가가 매우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다. 대하드라마를 본 느낌이랄까. 오랜기간 여운이 남을 듯 하다.



그녀와 함께 기쁘고 즐거웠고 행복했고 때로는 긴장하고 가슴 졸이는 시간도 보냈다. 그저 아무런 고민없이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던 고위 계층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고달프고 피튀기는 전쟁터와 다름 없었다. 언제나 당차고 당돌한 이 여인도 고달프고 망망대해를 건너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대업을 이루기 위해 소기를 안위하고 주변을 지키는 왕현의 모습은 부족함이 없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과거의 벗을 위해 소기를 위해 이타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의 모습에서 배울 점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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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도, 인생은 어른으로 끝나지 않아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손힘찬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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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도, 인생은 어른으로 끝나지 않아

무심하게 건네는 프로도의 위로




어떻게도 이렇게 작가와 캐릭터를 잘 매칭시켰는지 출판사 기획자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카톡개로 익히 알려진 믹스견 프로도는 덜렁대고 허점이 넘치며 평범한 모습이 더 정이간다. 작가 손힘찬은 프로도와 매우 닮았다. 부모님이 서로 다른 국적이기에 차별 받았던 그는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넘어와 살았다. 손힘찬, 오가타 마리토라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진 작가다.



그의 글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일상의 쳇바퀴 안에서 평범한 시간을 보내며 살지만 꿈을 잃지 않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며 긍정의 메세지를 전한다. 의기소침하고 편견이 가득한 세상에서 당당하고 멋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용기와 힘을 얻는다.

난 날 '슈퍼노멀'이라 부르고 싶어. 매일 내 일상을 멋지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누구나 '슈퍼노멀'의 자격을 갖고 있어 (p17)

'슈퍼노멀'이란 단어가 정말 멋지다. 평범한 스스로의 삶을 바라볼 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조금은 특별해지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랄까. 일상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노멀의 삶은 대단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평범한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이 평범이란 단어가 가진 뜻이 참 다양함을 느끼기도 한다. '슈퍼노멀'의 단어처럼 우리는 정말 대단히 평범한 삶을 잘 살아내고 있다. 그저 아프지 않고 크게 부족하지 않으며 남들처럼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현재는 어쩌면 기적일지도.

꿈은 거창한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고 있는지, 그 길로 가고 있는지 확인해주는 이정표 같다고. 내가 원하는 꿈이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더라도 지금 그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지 엿보는 순간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반짝하고 빛날 거야.

꿈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p32)

꿈에 대한 작가의 정의를 기억하고 싶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우리에게 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막상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것만 같다. 그저 열심히 사는 것, 집을 사는 것, 여행을 다니는 것. 이런 것들이 꿈이 될 수 없기에 혼란스럽다. 나의 이정표를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아직 이루지 못한 나의 꿈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본다.

나름 잘 지낸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날 험담하고 다녔다는 걸 알게 됐어. 자신을 보는 내 표정이 이상하다는 오해 때문이었지. (중략) 그 친구의 험담은 순간적으로 내뱉은, 시간 때우기용 얘깃거리였다는 것을. (중략) 악의 어린 관심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마이웨이가 필요하겠다는. 내 마음의 중심까지 잃어버릴 수 없잖아.

차라리 마이웨이가 필요한 순간 (p64)

누군가 나를 험담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참 다양한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이 있고 참 힘든 마음이었다. 그런 과정을 지나 마이웨이를 가는 내 자신이 되었다. 내 스스로가 남을 험담하고 다니지 않았는지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남의 험담을 내뱉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직 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오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 들거든.

이번 생은 아직 망하지 않았어 (p162)

이번 생은 틀렸다고 이미 망한 것 같다고 자포자기의 심정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상상력은 우리의 마음을 다 잡아 주는 좋은 도구가 되는 것 같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가. 미래에 내가 이룬 나의 모습을 생각해보는 즐거운 상상은 지금 당장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준다. 얼핏 로또 당첨의 불가능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

카톡개가 전하는 심심한 위로의 글들을 만났다. 저자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무거운 마음이었는데 퇴근 길에서 사람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그렇게 저자는 스스로 자책하며 깨우친다. 인생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쩌면 퇴근길 버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같을지 모른다. 그저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비교하고 부러워 하기도하며 때로는 위안을 받곤 한다. 우연히 만난 이 책을 통해 잠시나마 위안을 받는다. 평범한 나의 삶은 '슈퍼노멀'의 삶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준 작가의 말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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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간선언 - 증오하는 인간, 개정판
주원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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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간선언

- 증오하는 인간 -



"인간다워지고 싶은 반인간의 처절한 몸부림"




2012년에 동일 제목으로 기출간되었던 <반인간선언>은 리커버로 재출간되었다. 또한 최근 방영된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의 원작 소설이다. 인간이기 위해 인간이길 거부한 '반인간선언'이라는 제목이 심상치 않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흡인력으로 소설이 읽힌다. 살인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소설의 끝으로 사정없이 달려간다. 그리고 소설의 끝에 이르러서야 무기력해진 주인공과 마주한다.



정치와 기업의 유착의 무서움과 자신들의 영역 침범에 대항해 비윤리적인 행태를 자행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혼란스럽다. 지금까지 만났던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소설 말미에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현실을 담았다는 점이 아닐까. 불합리, 불의에 대항하여 크레인에 올라선 이의 심정은 어떠할까.

서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온전히 보존된 한 구의 사체가 아니었다. 잘린 손, 그 하나였다. 손은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끄러웠다. 흡사 밀랍으로 빚어진 느낌이었다. 부검대 위에 놓인 잘린 손을 보며 서희의 머릿속은 아득해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제대로 실감되지 않았다.

p15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젊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서희와 연쇄 살인 사건의 뒤를 쫓는 강력 2팀의 민서, 이 두 시각으로 사건은 진행된다. 광장에서 발견된 사체의 손은 서희의 전남편 정상훈의 것으로 추청된다. 사체의 손에 끼워진 반지는 CS 기업에서 특별히 기여한 사람에게만 수여되는 반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건의 속으로 들어왔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상훈이 남겼다는, 어쩌면 의도적으로 자필 서명을 남겨 자신이 쓴 글임을 확인받으려고 한 의지가 다분한, 그 글을 서희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새롭게 올라온 유다의 숙명이라는 종교적 고해의 글과 상훈이 남긴 글이 기묘한 리듬의 유사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p80

상훈의 흔적을 따라 하나씩 파헤치는 과정에서 상훈의 오피스텔을 찾은 서희. 그리고 우연히 그의 블로그에서 글을 발견하고 무언가 숨겨진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정상훈이 남긴 유서에 씌인 글과의 유사성에 궁금증이 더해만 간다. 정상훈은 왜 유서를 남겼고 이런 흔적을 남겼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시원스럽게 드러나지 않는 전말에 얼마나 대단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감이 점점 올라갔다. 이 모든 것들이 사건을 능동적으로 접근해 나가도록 돕는 장치였다는 점에 놀라웠고 매우 흥미로웠다.

두 손이 묶인 채 매달려 있는 사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상태였다. 오른 손목이 잘려 나갔으며, 오른 발목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장과 장기들이 정교한 솜씨로 파헤쳐진 채였는데, (중략) 무엇보다 서희를 경악하게 만든 건 사체의 목이었다.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잘려 나간 것이다.

p155

매우 끔찍한 장면을 마주한다. 손, 발, 장기, 머리가 잘려나간 사체가 욕조 위에 매달려 있다. 전남편 상훈의 사체를 직접 확인하며 놀라움과 좌절감을 느낀다. 그가 살아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녀의 희망이 산산히 무너지는 순간이다. 상훈을 이렇게 만든이는 과연 누구일지,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인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전혀 없다. 그 순간 그녀의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범인일까? 이 참혹한 공간으로 서희를 끌고 온 자는 과연 어떤 이유에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잘려 나간 한 사람의 신체, 그 몸의 주인이 지금 민서에게 사건의 진실을 목도할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 강요를 받아들인 당사자로 하여금 아무것도, 최소한의 다른 여지도 모색하지 못하게 만드는 강요. 그것은 처절했다.

p218

서희와 민서는 이 모든 것들이 CS 그룹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아차린다. 처음부터 혼재된 단서들이 하나로 모아지면서 마지막 종착지에 다가감을 느낀다. 그 과정에 이들을 방해하는 세력의 움직임이 있다. 상훈의 비밀스러운 실험, 의문의 죽음들, 검찰의 유착 등 드러나는 과거와 검은 손의 움직임이 팽팽히 맞선다. 이들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마지막의 결론에 나는 멍했다. 매우 무기력해졌다. 반인간선언의 대표 주자인 상훈의 선택과 높다란 크레인에 오르는 한 여인 서희의 모습에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울부짓는 그들의 모습에 증오감을 느낀다. 그저 흔한 소설과 다르게 대비되는 마지막 결말은 책을 모두 읽고난 후 우리의 뇌리 속에 깊숙하게 불편함을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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