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모르는 그리움 나태주 필사시집
나태주 지음, 배정애 캘리그라피, 슬로우어스 삽화 / 북로그컴퍼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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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모르는 그리움

나태주 필사 시집







학창 시절, 시험에 나온다는 이유로 시를 공부하던 나는 의문이 있었다. 시는 읽을 때마다 나의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정답이 있는 국어의 시는 나에게 항상 어려운 존재였다. 시험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지금도 시는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시를 읽을 때마다 학창 시절의 시험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파블로의 개가 된 기분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져주는 시를 만났다. 아무런 걱정없이 그저 내가 중요하다고 다독이는 나태주 시인의 시들을 만났다.



풀꽃 시인으로 유명한 나태주의 시는 나를 웃음짓게 한다. 공감되는 시의 내용들은 마음에 담고 싶었다. 지금까지 필사는 해본 적이 없다. 필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필사 시집을 읽으니 필사를 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나에게 어서 적어달라며 빈 공백을 들이미는 이 시집은 마치 또 하나의 힐링 도구같다. 컬러링 북에 이은 또 하나의 신드롬 '필사 시집'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응원해본다.






나는 네가 웃을 때가 좋다

나는 네가 말을 할 때가 좋다

나는 네가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좋다

뾰로통한 네 얼굴, 무덤덤한 표정

때로는 매정한 말씨

그래도 좋다.

그래도 (p22)

유독 이 시 '그래도'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나의 생각과 같아서다. 아내를 보고 언젠가 내가 가졌던 생각을 글로 옮기고 싶은데 글솜씨가 없기에 이 시처럼 적을 수는 없겠지만, 만약 내가 시인이고 그 감정을 시로 옮겼다면 이렇게 옮겼을 것만 같다. 그 감정과 생각을 적절하게 나 대신 나태주 시인이 시로 표현해주고 있다고 느낀다. 이 사진을 아내에게 보냈다. 여전히 매정하지만 내 마음은 눈치챈 듯 하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풀꽃 3 (p102)

풀꽃 시인답게 '풀꽃 3' 시가 나의 뇌리에 박힌다. 이 짧막한 시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녹일 수 있나 싶다. 고작 세 줄 밖에 안되는 시이거늘, 고작 15글자 밖에 되지 않는 시이거늘, 어찌 이토록 나에게 용기를 북돋는지. 기죽지 말고 살아보라는 이 흔한 말이 꽃을 피워보는 말과 만나고 '참 좋아'라는 말로 끝 맺으며 탄탄한 완성미를 뽐낸다. 초원의 풀꽃이 초라해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이 놀라운 능력의 시는 찬사 받아 마땅하다.





'풀꽃 3'을 노트에 한 번 적어봤다. 책에 적고 싶었으나 책에 펜을 대는 것을 싫어하는 나의 본성이 반대하여 노트에 필사해 봤다. 나의 첫 필사다. 내 글씨로 바라보는 시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직접 내가 글로 적어 그런 것인지 시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자기애가 발현되나 보다. 시로 한 번의 힐링, 그리고 필사로 또 한 번의 힐링이다.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부탁 (p54)

책에서 나태주 시인의 필사도 만나볼 수 있다. 그 중 '부탁' 시가 참 멋지다. 멀리 가지 말라는 부탁을 좀 들어주었으면 한다. 사랑을 걱정하는 마음이 나를 위한 것인지 사랑을 위한 것인지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나를 위한 걱정으로 읽혀진다. 내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 몇 개월 혹은 몇 년 후에 읽는 이 시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웃어도 예쁘고

웃지 않아도 예쁘고

눈을 감아도 예쁘다

오늘은 네가 꽃이다

오늘의 꽃 (p150)

나태주 시인의 시를 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한글의 맛을 한 껏 살린 시는 읽어도 읽어도 지루함이 없고 읽을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웃는 얼굴이 떠오르고 예쁜 꽃이 떠오르고 웃는 예쁜 꽃이 떠오른다. 그리고 웃는 네가 웃지 않는 네가 눈을 감은 네가 떠오른다. 시를 읽고 내 마음의 이미지가 폴라로이드처럼 스쳐 지나간다. 시와 나의 기억이 조화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시는 참 신기하다. 이 짧은 글이 나를 들었나 놨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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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미야가와 사토시 지음, 장민주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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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엄마'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아들의 마음





이목을 끄는 제목이지만 선뜻 손길이 다가서지 않는다.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유골을 먹는다'는 표현은 그 속뜻을 알기 전까지 그저 살짝 미뤄두고 싶은 책이었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골'이라는 충격적 단어에 빠져 있다. 하지만 제목에서 중요한 부분은 그 앞 부분인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다. 책 제목을 심플하게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는 커녕 책을 펼쳐보기도 전에 그저 흔한 책이겠거니 하며 역사 속에 묻힐 것이 분명하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의 심정과 엄마와 함께한 에피소드들을 담은 '만화 에세이'다. 이 내용을 기반으로 영화화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저자와 어머니의 일화들은 한국의 정서와 매우 닮아 이질감이 없다. 엄마와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읽어나갈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이리저리 흔들린다. 엄마가 만들어준 카레보다 맛있는 음식이 없다는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우리 엄마가 만든 닭볶음탕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유골을 먹고 싶다'는 마음이 내 안의 가장 강렬한 감정이었다고 느꼈고, 제목으로는 이 이상의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너무 슬퍼서 견딜 수 없었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이토록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사랑을 나도 누군가를 향해 품는 것이 가능했구나'라는, 그런 용기도 생겨나는 제목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작가의 말 (p175)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은 저자의 충동은 엄마를 떠나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만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상식적인 방식으로나마 상대를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된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방식일지라도 영영 떠나버리는 엄마를 어떤 방식으로든 보내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은 깊이 공감된다. 엄마의 유골이 내 몸에 들어온다면 평생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랄까. 그 누가 엄마의 죽음을 쉽사리 받아 들일 수 있겠는가.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들이 큰 공감을 이끌어 낸다. 죽음을 준비하며 사진첩을 정리하는 엄마에게 버럭 분노를 표출하는 아들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엄마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다. 병실에서 힘들게 잠들며 힘들어 하는 엄마의 옆에서 아들은 이어폰을 끼고 영화를 보고 있다. 그 순간 아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코를 골며 잠이 든 엄마 옆에서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죽음 앞에 무기력한 모습이 매우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곳곳에 남은 엄마의 흔적들을 발견할 때마다

엄마가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p40

엄마가 떠난 후에도 세상에 남은 엄마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엄마의 물건에 적힌 엄마의 글자, 엄마와 함께 가던 마트, 엄마가 좋아하던 딸기... 그 흔적들은 매우 강렬해서 지울 수가 없다. 엄마가 남긴 흔적들에 대한 나의 감정이 언제쯤 무뎌지고 적응이 될까 싶다. 저자의 상황에 내가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눈 앞이 캄캄하다. 그저 상상만으로도 이러한데 다들 어떻게 이 상황을 이겨내고 있을까. 세상의 어떤 상실감이 이보다 힘들까.





충분히 받아들였다고 생각한 엄마의 죽음이 다음 날 커다란 상실감으로 바뀌고

그 순간부터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의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p100

저자에게는 그래도 엄마를 떠나 보낼 마음의 준비가 가능했다. 암이 치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에 엄마도 아들도 가족들도 엄마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의 죽음을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엄마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그 상실감은 이 상황을 겪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려울만큼 커다란 것이다. 감히 상상되지 않는 크기다.







어쩐지 저 멀리 시골에서 엄마가 아직 건강하게 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p142

저자의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건강하신 엄마의 모습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떻게서든 올 엄마의 죽음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준비가 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애써 외면하고 멀리하고 싶은 죽음이다. 실감나지 않을 것 같다. 엄마는 평생 건강하게 나와 함께 하실 것만 같다.



책을 읽으면서 최대한 감정적으로 몰입하지 않으려 애쓰며 읽었다. 방심하는 순간 눈물샘이 터질 수 있으니 주의하며 읽어야 한다. 지금은 그저 건강하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오늘 저녁에는 부모님께 안부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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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이 방콕 - 여행을 즐기는 가장 빠른 방법, 2019 최신개정판 인조이 세계여행 6
강석균 지음 / 넥서스BOOKS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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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이 방콕

2년만에 다시 찾는 방콕, 이번 여행의 준비는 '인조이 방콕'과 함께!





방콕 여행을 준비하며...

아내와 함께 2년 전 방콕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태국의 수도로 저렴한 물가와 다양한 볼거리, 맛있는 음식, 편리한 교통 등 매우 만족스러운 여행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 여행을 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부모님도 만족스러운 여행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여행 준비 과정에서 꼭 책을 준비하는 편입니다. 요즘 블로그나 카페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으나 그래도 책을 통해 정갈하게 정리된 정보를 얻는 편을 선호합니다. 여행 책과 블로그를 통해 서로 상호 보완된 정보를 얻어 내실있는 여행 준비가 될 수 있습니다.



여행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여행을 하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이 발동합니다. 여행은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게 '인조이 방콕'을 펼쳤습니다.









목차는 여행 전체를 그려보는 작은 지도

목차를 통해 여행 전체를 그려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4박 5일의 여행을 준비하면서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어떤 활동을 할지, 공연을 볼지 등을 선택하는 기준을 표지에서 간략하게 그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추천코스부터 지역에 따른 자세한 정보, 방콕의 근교 정보부터 깨알 팁들까지 목차를 통해 각 페이지로 넘나듭니다.



개인적으로 미리 만나는 방콕 챕터의 방콕의 볼거리 BEST 12, 방콕의 먹거리 BEST 16, 방콕의 야경 명소 BEST 8 정보가 가장 유익했습니다. 방콕 여행의 축소판이라고나 할까. 부모님께 이 챕터를 보여 드리면서 방콕 여행의 간략한 소개를 겸할 수 있었습니다.







왕궁 / 왓 포 / 왓 아룬

방콕의 랜드마크는 바로 왕궁이죠. 저번 여행에서는 왓 포 사원의 와상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다시 한번 누워있는 거대한 불상을 보러 갈 생각입니다. 저번 여행에서는 왓 아룬 사원이 공사 중이라 방문하지 못해 매우 아쉬웠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왓 아룬 사원을 꼭 방문해 볼 생각입니다. 왓 아룬 사원뿐 아니라 다양한 사원들도 있네요. 여유가 있다면 모두 방문하고 싶네요.






짜뚜짝 주말 시장

방콕의 또 하나 중요한 볼거리는 바로 시장입니다. 특히 밤에 보는 시장이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저번 여행에서는 방문하지 못했어요. 방콕의 볼거리가 워낙 많다보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곳을 방문하지 못한 실수를 범하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짜뚜짝 주말 시장을 방문해 볼 생각입니다. 기념품도 사고 맛난 음식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카오산 로드, 두씻, 차이나 타운, 씰롬 등 지역별 정보도 가득하며 여행 준비에 앞서 알아두면 좋을 정보들도 가득 담겨 있습니다. 책 내용을 모두 옮겨 놓을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여행 준비에 앞서 책을 마련해 여행의 기분을 만끽하길 추천합니다. 모두 여행 준비 잘 하시고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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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목격
최유수 지음 / 허밍버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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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목격

차곡차곡 모아 담은 '사랑'의 문장들




가장 추상적이면서 온전히 이해하는 듯 하면서도 과연 내가 잘 알고 있는지 항상 의심이 솟아나는 그 단어, '사랑'. 사랑이 보인다면 말하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편할텐데, 그래서 더욱 궁금하고 우리를 설레게 하는 사랑. 저자 최유수는 사랑이 자신의 종교라고 말한다. 그만큼 사랑을 추종하고 사랑을 믿는다. 자신이 목격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



문득 사랑하고 싶어지는 날, 옛 사랑이 생각나는 날,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날, 사랑에 대해 흠뻑 취하고 싶은 날... 저자 최유수와 함께 사랑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이다.

믿음은 존재를 증거한다. 신을 믿는 사람이 신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을 믿는 사람은 사랑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고로 나는 사랑을 말하기 위해 사랑의 존재를 믿는다. 증명하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체감하기 위해 믿는다.

믿음 (p12)

사랑을 믿어야 비로소 사랑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사랑을 누군가에게 증명하려는 목적이 아닌 내 스스로 사랑을 느끼고 체감하고자 믿는다고 한다. 나는 다양한 이유로 신을 믿지 않는다. 허나 저자처럼 사랑은 믿는다. 사랑은 내가 직접 느꼈고 존재한다고 믿기에 나도 모르게 믿는 존재가 되었다. 나의 종교도 사랑이 아닌가란 생각이 스며 올라온다.

사랑한다는 말은,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말해지기보다 문득 사랑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즉흥적으로 말해지는 것이다. 스스로 말을 꺼낸다는 느낌이라기보다 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랑에 의해 저절로 말해지는 느낌에 가깝다.

voice of love (p58)

사랑한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온다는 표현이 매우 공감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나도 모르게 하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나오는 그 말.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며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문득 재채기처럼 나온다면 정말 사랑하고 있는게 아닐까.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우리를 서로 사랑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르기 때문에 사랑은 성립한다. 사랑하는 내내 다름을 깨닫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매 순간 내가 그 사람과 무엇이 다른지를 깨닫는 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 (p112)

서로 다르기에 사랑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서로 다르기에 시작한 사랑이지만 때로는 서로 비슷한 면들로 인해 놀라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랑이 더욱 커져나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 서로 다른 점으로 인해 실망하고 우리는 서로 안 맞는다며 서로를 질타한다. 다르기에 사랑했으나 그 다름이 서로를 질타하는 존재로 변모하는 현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

사랑을 하고 있거나 혹은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깊게 공감할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토록 사랑에 대해 깊고 다양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싶다. 사랑을 종교로 삼고 살아가는 저자에게 사랑은 평생의 연구 대상이다. 어느 하나 같은 사랑 없고 모두가 제 각기의 모양을 가진 사랑이라지만 사랑이라는 주제로 하는 이야기는 하나로 연결된다.



한없이 감성적이고 싶어지는 날, 사랑에 대해 실컷 이야기를 펼치고 싶은 날, 사랑이 하고 싶은 날, 사랑에 푹 빠져보고 싶은 날... 최유수의 사랑 에세이 <사랑의 목격>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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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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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1

Golden Hour 1



"피흘리는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한 남자의 처절한 몸부림"





중증외상 분야 외과 전문의 이국종 교수. <골든아워>를 통해 세상에 대한민국 외상외과의 현주소를 알린 사람이다. 그저 사람을 살릴 기회를 늘리기 위해, 선진 의료 시스템 구축을 위해 각종 난관에 맞서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것,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골든아워 60분이 확보되지 않으면 환자의 생사는 장담할 수 없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막대한 돈이 들어가지만 환자가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환자를 치료하면 할수록 병원은 적자를 피할 수 없는 이상한 현실. 돈을 벌어야 하는 사립 아주대학병원이 그저 대의를 위해 조건없이 환자를 살리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외상외과는 병원에서 관리가 힘든 과가 되어 버렸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도 욕을 먹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외상외과의 중심에 이국종 교수가 있다.

외상외과를 하면 할수록 선진국과 한국의 간극을 절감했다. 한국에서 선진국 수준의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려면 선진국 모델을 근간으로 삼아 그대로 가져와야 했다. (중략) 나는 현실에서 극심하게 부딪치면서도 좀처럼 그 생각을 바꿀 수 없었다.

p53

병원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둘째로 치더라도 일단 환자가 병원에 빠른 시간 안에 이송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과 런던의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직접 보고 경험한 이국종 교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한국에도 적용하고 싶다. 비용에 앞서 환자를 살리는 일이 우선시 되는 선진국의 시스템을 왜 우리는 적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한 시스템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일개의 교수, 병원이 아닌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돈은 한정적이다. 사회적으로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 구축은 어느 정도의 우선순위를 가질까. 교통 사고 예방을 위한 조명 설치, 생활고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 등 대한민국에 정부의 보호와 돈이 필요한 문제들이 참 많다. 각종 문제에 대해 사람들마다 이해 관계가 매우 다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막대한 예산이 요구되는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 구축은 넘어야 할 과정이 산더미다.

중증외상은 국민이 사망하는 3대 사망 원인 중 하나로, 전체 사망의 10퍼센트에 육박합니다. 특히 40대 이전의 젊은 층에서는 가장 큰 사망 원인입니다. 노동자, 농민과 같은 블루칼라 계급이 집중적으로 타격을 입습니다. 병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수익은커녕 적자의 온상이라 기피합니다.

p122

몸을 쓰고 위험하며 힘들어 기피하는 일들은 블루칼라 계급으로 분류된다. 대한민국에서 부상 위험이 높은 일들은 상대적으로 사회 계층이 낮은 사람들이 몸담고 있다. 그러한 계층에 있는 사람들은 풍족하지 못하며 많은 이들이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들이다. 각종 사고에 취약한 근무 환경도 문제지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치료를 받기 위한 적절한 시스템이 한국에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병원까지의 이동도 문제며, 환자 발생시 외상 외과가 아닌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도 문제다. 불필요한 각종 검사를 받고 결국 외상외과로 이송되지만 골든아워가 한참 지나 환자의 생명이 위태롭다. 총체적 난국이다. 허나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변화가 없는 현실이 가장 참담하다.

사지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터져나간 환자에게 시간은 생명이다. 사고 직후 한 시간 이내에 환자는 전문 의료진과 장비가 있는 병원으로 와야 한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골든아워(golden hour)'다. 그러나 금쪽같은 시간은 지켜지지 않았다. (중략) 앰뷸런스로 2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가 헬리콥터로는 20분 안쪽이면 충분하며 이송 중 응급 처치까지도 가능하다.

p148

이국종 교수가 헬리콥터를 주장하는 이유다. 헬리콥터의 이착륙 장소에 대한 협의부터 비용 문제, 헬리콥터 소음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수히 많지만 사람 살리는게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나의 가족이 사고로 인해 죽어가는데 그 비용, 소음이 대수일까. 나와 우리 가족에게 사고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남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응급 환자 후송을 위한 헬리콥터 소음에 민원이 끊이지 않은 현실은 평생 풀어낼 수 없는 실타래같다.



경기도지사 김문수와 박연수는 석해균 선장의 일과 이 사고를 염두해 두었다. 그들은 연간 사고 발생 빈도와 환자 수, 환자가 살고 죽는 비율로 점검했고, 내가 보낸 자료들을 검토했다. 거듭된 논의 끝에 경기도는 도 내에서 중증 외상 환자가 발생하면 환자 이송에 소방방재청 소속 헬리콥터를 이용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 사업은 석 선장의 이름을 붙여 '석해균 프로젝트'라 명명되었다.

p272

소방 헬리콥터를 활용한 중증 외상 환자 이송의 결실인 '석해균 프로젝트'는 매우 감격스러웠다.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생각에 그저 책을 읽는 내 자신까지 기쁜 마음이었다. 이렇게 사람 살리는 대의를 이어가는 해피앤딩으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헬리콥터가 뜨기만 하면, 그저 시작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외상외과의 신속한 처치로 사람들이 살아나는 결과로 또한 시간이 흐르면 정착이 되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석해균 프로젝트는 다양한 이유로 넉 달만에 중단되었다.


*****

이국종 교수의 글로 접하는 대한민국 외상외과의 현주소는 생각보다 더욱 참담했다. 문제 해결에 앞서 많은 이들의 문제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 이해를 돕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무엇인가를 고민해 봤을 때 미디어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국종 교수의 기사나 다큐를 종종 매체에서 볼 수 있다. 좀 더 정확하게 현실을 전달하기 위한 <골든아워>는 그 노력 중 하나이다.



책을 읽은 후 해당 분야에 대한 나의 이해도가 조금 향상 되었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이국종 교수의 마음도 이해가 되지만 수많은 걸림돌 역시 이해가 된다. 병원의 처지도 이해가 되며 정치인들의 모습도 이해가 된다. 사람을 살리는 것, 그것 하나만 볼 수 없는 현실적 문제들이 서서히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언젠가는 이국종 교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바람대로 선진화된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이 대한민국에 자리잡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피흘리는 쓰러진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이국종 교수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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