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호밀밭의 파수꾼

한 소년의 방황, 성장 그리고 착한 본성





J.D.샐린저가 3주에 걸쳐 쓴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20세기 최고의 소설'이라 불리며 각종 추천도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재미있고 감명깊게 읽었다는 지인의 추천으로 관심을 갖게 된 <호밀밭의 파수꾼>을 드디어 읽었다. 그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현대 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는 이 책은 오클라호마 주에서 고등학교 교재로 사용했으나 학부모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딛혔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어보니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학당한 주인공의 세상을 향한 외침과 방황을 다루고 있으며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와 비속어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민감한 감수성과 결벽증을 가진 홀든은 이번이 네 번째 퇴학이다. 훌륭한 학교라 여겨지는 펜시 고등학교에서 자신의 관심사가 아닌 과목들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교장과의 대화, 기숙사 룸메이트와의 갈등 등을 통해 어딘가 제멋대로이며 불만 투성인 홀든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 내면의 불만과 갈등이 나에겐 낯설지가 않다. 그저 세상에 순응하며 살아왔던 나 역시도 가졌던 세상에 대한 불만과 마주하는 거짓과 잘못들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가진 그 무엇과 일맥상통한다.



퇴학을 당해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고도 짧은 여정이 책 한 권에 녹아 있다. 세상에 쉽사리 순응할 수 없었던 이 젊은 홀든의 방황의 길목에서 우리도 역시 그처럼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 진정으로 올바른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홀든이 겪은 일화들이 점차적으로 홀든에게 동화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물론 홀든의 행동들 모두가 올바르다 보기는 힘들다. 담배를 거듭 피우며 클럽에서 바에서 술을 마시려 하고 여자들에게 기웃거리는 그의 모습, 벨 보이를 통해 부른 창녀 등 며칠 안에 돈을 물쓰듯 하는 그의 모습을 본다. 그런데 이런 그의 모습에 안쓰럽고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스며 올라 온다. 심지어 홀든은 이 모든 현실에서 벗어나 떠나고자 마음 먹는다.



동생 피비가 멀리서 짐을 끌고 오는 장면과 피비를 대하는 홀든의 모습은 이 책의 클라이막스다. 소설의 변곡점이자 절정이자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지점이다. 결국은 동생을 지키고자 하는 홀든의 착한 본성, 호밀밭의 파수꾼스러운 본성이 발현된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가 억수로 오는 와중에 사냥모자를 쓰고 앉아 비를 흠뻑 맞는 홀든, 파란 외투를 입고 회전목라를 타는 피비의 모습, 그 장면은 나의 뇌리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

우리의 장래에 대해 여러 가지 충고를 하더군. 정말 따분했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는 뜻은 아냐. 사실 나쁜 인간은 아닐테니까. 하지만 반드시 나쁜 사람만이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야. 착한 사람도 우울하게 할 수 있지.

p250

'우울하다', '우울하게 한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고 나쁜 사람도 많다. 그러나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사람은 나쁜 사람만이 아니라 착한 사람도 나를 우울하게 할 수 있다. 이 표현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무언가를 주고 받으며 생활한다. 때로는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부러움,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우리의 무심한 충고가 상대의 우울함을 일깨울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몇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p256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단어가 유일하게 나오는 대목이다. 책을 읽는 내내 책의 제목으로 선정된 호밀밭의 파수꾼의 의미가 매우 궁금했고 기억해 두고 싶었다. 홀든의 방황의 이유는 사실 착한 본성에 있다. 겉으로는 비속어를 달고 살고 퇴학을 당한 문제아지만 가족을 사랑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으로 가득찬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름이 없다.



그런 그의 착한 본성은 이 대목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자신이 했던 방황을 어린 아이들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사실 홀든에게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선생님들은 홀든을 따스하게 맞아주고 좋은 말들을 많이 해준다. 홀든이 어긋나지 않고 바른 길로 나아가길 하는 바람에서다.



이 책을 한 번 일은 나로서는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다하기는 힘든 느낌이었다. 술에 취한듯 피곤에 취한듯 휘청대며 쉼없이 지나가는 여정 안에서 홀든의 예민한 감수성이 나 역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홀든의 내적 성장과 아픔의 과정을 다시금 차분히 밟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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