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 산책길 들풀의 위로
이재영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산책길 들풀이 전하는 위로





가평에서 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며 책방을 운영하면서 자칭 '글 노동'을 업으로 삼는 프리랜서 작가 이재영의 생활 밀착 들풀 에세이다. 가평의 자연 안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요가 수업을 듣고 들풀의 위로를 받고 이웃의 관심과 김치를 받으며 글을 쓰는 그녀의 삶이 책 안에 뿌리 깊게 담겨 있다.



주변에 매우 흔해서 잡풀로 취급받는 들풀들에 가까이 다가가 그 생명력과 각자가 가진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가평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와 더불어 자신의 삶에서 만난 귀중한 경험들도 담았다. 이해를 돕는 들풀들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어 한껏 재미를 더한다. 평온한 오후 여유를 담은 시간 이 책은 우리에게 풍성하고 풍요로운 마음을 선물할 것이다. 풀꽃 시인 나태주를 이을 들풀 작가 이재영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슬금슬금 작은 연둣빛으로 시작해서는 어느 새 초록 범벅이 되는 흐름. 계절을 넘어서며 아주 작은 것에 눈에 띄지 않게 지속되다가 순식간에 판이 뒤집어지는 걸 목격한다. 우리 집 담을 뒤덮고 있는 담쟁이도 마찬가지였다. 씨를 뿌려놓고 언제쯤 근사한 풍경이 될까 너무 아득해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중략) 초록으로 뒤덮었다. 변화란 이런 것이구나. 그때 알았다. 나도 천천히 바꿔보자. 다시 시작해보자.

p92

꾸준함의 힘은 우리의 생각보다 매우 강력하다. 담벼락의 담쟁이는 매일 매일 꾸준히 자라면서 언젠가는 담을 온통 뒤덮는다. 쉬지 않고 꾸준하다면 누구나 담쟁이처럼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변화를 이끌고 싶다면 매일 꾸준히 그것을 해야한다. 그저 흔한 담쟁이에게도 우리는 배울점이 있다. 저자는 요가를 배우면서 꾸준함의 힘을 몸소 느꼈다. 요가 수업에 빠지고 싶은 욕망을 이겨내고 꾸준히 요가를 배우고 가부좌로 앉는다. 매일 담벼락의 담쟁이처럼 변화의 삶을 살아보자.

나뭇잎이 예쁜 색으로 옷을 갈아 입는 건 풍요로운 치장이 아니라 결핍의 산물이었다. (중략) 엽록소가 덜 생산되면서 초록색에 덮여 있던 노랑색, 주황색, 빨강색, 갈색 같은 색이 드러난다. 그러니까 가을의 화려함은 결핍의 색깔이었다는 말. 살아 남기 위한 안간힘이 붉게 붉게 터져 나왔던 것.

p138

'결핍을 축복이자 행운으로 치환할 수 있는 삶이 바로 성공한 인생이지 않을까' 참 멋진 말이다. 부족함에 채워 넣기 바쁜 우리에게 참 필요한 말이다. 신호등은 몇 개 없지만 자연을 마음껏 느끼는 삶과 부족함 없이 풍족하지만 매일 출퇴근길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삶을 비교했을 때 과연 어느 곳이 성공한 인생일까. 과연 어느 것이 결핍이고, 어느 것이 축복일까. 그리고 결핍이면서 축복인 것일까. 부족함이 결코 부족함이 아닌 아름다움인 것을 내 삶 안에서 깨닫는 날을 기대해 본다.

쇠띄기는 번식력이 강해 아무리 캐내도 그 원뿌리를 제거하지 못하는 걸로 유명하다. (중략) 쇠뜨기를 보면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하다는 말이 딱 맞다. 오래가면, 오래 버티면 강해진다고 쇠띄기가 내 앞에서 말해준다.

p231

들풀이 되는 각자의 조건이 있다. 번식력이 뛰어나거나 생존력이 뛰어나야 한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구석에서도 틈을 만들어 내어 삐죽 살아난다. 길가의 그 흔한 들풀도 살아보겠다며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처량하다는 느낌보다는 대단하다 생각이 든다. 힘든 상황에 나라면 포기했을텐데 들풀들은 그 힘든 상황을 이겨낸다. 들풀처럼 생존력이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 아무리 아무리 괴롭혀도 짓밟아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일어나는 그 들풀의 모습이 참 멋지다. 참 대단하다. 오래 버티는 자가 승리하며 결국은 강한 자다.

질경이는 밟히면서 번식한다. (중략) 사람의 발이나, 자동차나 자전거 바퀴가 밟고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씨앗이 그 밑에 붙어 여기저기 퍼져나간다. 밟혀야 사는 풀이다. (중략) 삶이 질경이 같기를 바란다. 밟히고 밟혀도 조금씩 나아가는 삶. 인간으로 존엄함의 경계를 지키며 나아지는 삶. 기꺼이 토끼와 말의 먹이가 되어주는 그 키 작은 풀처럼 작고 소중한 관계라도 놓치지 않고 내어주는 삶.

p242

질경이의 생존 방식이 흥미롭다. 누군가에게 밟혀야 사는 존재라니. 자신을 선뜻 내어주며 밟히면서도 조금씩 나아가는 질경이의 모습에 경외감이 샘솟는다. 나는 점차적으로 나아지는 삶을 살아가는 가를 생각해본다. 그저 반복되는 일상의 굴레 안에서 회사로 집으로 그리고 다시 회사로 간다. 그 안에서 그저 굴러가고만 있다. 누군가 나를 밟아줘야만 나도 성장하는 존재일까. 그렇다고 밟히면 질경이처럼 나아가지 못할 것만 같다. 질경이의 삶의 방식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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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메이트북스 클래식 1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현우.이현준 편역 / 메이트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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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현대판으로 재해석&재탄생한 "뉴 명상록"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기존의 <명상록>과는 다르다. 로마의 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그 <명상록>이 맞기는 하다. 허나 기존의 책과 비교를 해보면 목차와 구성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 이유는 '이현우', '이현준' 편역을 통해 기존의 산만하게 흩어져 있어 일목 요연하지 않은 내용을 77개의 칼럼으로 추려내여 재정리했다. 현대식으로 표현들을 정리하고 다듬어 재해석, 재탄생 되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쉽게 잘 익힐 수 있도록, 아우렐리우스의 사상과 스토아철학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즉, 새롭게 태어난 현대식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책을 발간하기 위해 쓴 내용이 아니었다. "To Himself(자신에게)"라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좋은 말들을 하나씩 모아둔 노트였는데 이를 후대의 사람이 <명상록>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낸 것이라 한다. 책 출판을 유념해 쓴 내용이 아니다 보니 중복되거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경향이 있다. 기존의 투박한 형태의 <명상록>도 좋지만 정교하게 다듬어져 더욱 빛나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색다른 맛으로 다가온다.



스토아 철학을 먼저 이해하고 책을 읽으면 더욱 좋다. 만물은 운명적으로 예정되어 있다고 보아 '운명론' 혹은 '숙명론'이라고도 부른다. 인간은 우주에 퍼진 하나의 물질적 존재로 본다. 자연이란 만물을 유지,성장시키는 힘이다. 그래서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이 요구된다. 신이란 '전체에 퍼져 있는 실제적인 형태의 이성'으로 자연 전체를 곧 신으로 본다.

에픽테토스가 말하기를, "당신이 자녀와 입맞춤을 하는 순간에도 마음속으로 '어쩌면 너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라"라고 했다. 사람들이 너무 불길한 말씀이라고 투덜거리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전혀 불길한 말이 아니다. 단지 자연의 한 행위를 묘사했을 뿐이다. 이것이 불길하다면 잘 익은 옥수수를 수확한다는 것도 불길한 일이 아니겠는가!"

p37

죽음에 대한 아우렐리우스의 견해를 전하는 대목들이 감명깊었다. 죽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누구나 죽으며, 순환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죽음은 우리 몸을 이루는 물질이 광활한 우주에서 한 자연 요소로 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내일이 인생의 특별 보너스가 된다. 신기루와 같은 명성에 목메이지 말며 다른 이가 사후에 나를 평가하는 것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죽음에 대해 깊이 고찰하고 마주보는 일은 드물다. 나중의 일로 치부하고 멀리하려 한다. 죽음이 누구에게나 다가오며 운명적으로 나에게 오는 것이라 여기는 태도가 정신 건강에 좋다.

사람들은 때로 시골이나 바닷가, 혹은 깊은 산중에 묻혀 살기를 바란다. 당신 역시 이런 꿈을 꿀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상은 부질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언제든지 원하기만 하면기 자신의 내면 세계로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자신의 영혼 속보다 더 조용하고 평온한 은신처는 없다. (중략) 필요할 때마다 명상을 통해 즉시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p64

휴가철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다. 치열한 현실은 잠시 잊고 즐기고 여유를 만끽하는 자체가 힐링이 된다. 열심히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휴가는 삶의 활력소가 되며 꼭 필요하다. 그런데 평상시 언제나 내가 원할 때마다 휴가를 떠날 수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마음의 평온한 은신처로 떠나는 휴가다. 언제나 내가 원할 때마다 나의 내면 세계로의 피신은 언제나 누릴 수 있는 휴가와도 같다. 최근 명상의 시간을 가져 본 기억이 있나 싶다. 하루에 한 번 잠깐이나마 명상을 통해 평온한 은신처에 들러보자.

당신이 지금 가지지 못한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당신이 가진 축복들을 헤아려보라. 당신이 그것들을 가지지 못했을 때 당신이 얼마나 간절히 그것들을 갈망했는가를 생각하면서 감사히 여겨라.

p91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지만 가지지 못했을 때 간절히 갈망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 가진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을 잊고 살고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가진 것들은 결코 쉽게 얻은 것들이 아니다. 직장, 아내와 아이, 각종 물건들조차도 수없이 노력하고 공부하고 엄선해서 얻게된 귀중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현재에 만족하기 보다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 더 갖고자 한다. 인간의 소유욕은 끝이 없다.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 착한 사람인가에 대해 논쟁하는 데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라. 당신에게 선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를 스스로 시험해보라. 선한 삶이란 우주로부터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에 만족하면서 바른 행동과 자비로운 길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p131

그저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만으로 족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소박하고 선한 삶을 산다면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선을 행하면서 보상을 바라지 말자. 그저 베풀면서 사는 삶을 살자. 또한 아우렐리우스는 공익을 위해 사회를 위해 봉사를 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삼아야 할 삶의 목표가 동료들과 사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얼마나 사회에 봉사하며 살았는가를 공익을 위해 살았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만 살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정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았는가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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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허밍버드 클래식 M 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윤도중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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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랑의 상처가 이 책으로 위안이 되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매우 유명하며, 나의 최우선 필독 리스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늦었지만 이제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의 탄생 이후로 '베르테르 효과', '베르테르 신드롬'의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현재에도 많은 이들이 읽으며 꾸준히 사랑 받는 고전이다.



초반의 20페이지 정도는 읽기가 매우 힘겨웠다. 젊은 베르테르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보이는데 두서가 없고 무슨 말을 하고자 함인지 파악하기 어려웠고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물론 하나하나 글귀들이 좋은 말들이 많지만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라 알고 읽기 시작하는데 좀처럼 그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은 등장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랄까. 정확히 29페이지 부터 본격적으로 베르테르의 그녀 '로테'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쉼없이 책장이 넘겨졌다. 가독성이 좋아 놀라웠고 공감하며 읽어 또 놀라웠다. 사랑으로 수차례 아팠던 과거의 나를 위로하듯 이 책이 젊었던 나의 과거를 위로했다.



짝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가득하다. 혈기 왕성하던 그 어린 시절 짝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하다 못해 흘러 넘친다. 젊다는 것은 에너지가 넘치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여 더할 나위없이 좋지만 한 편으로는 어리숙하고 경험과 식견이 부족하며 한 없이 자신의 굴레에 빠져들며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아쉬운 단점이 있는 시절이다.

그 지극히 사랑스러운 여인을 알게 된 경위를 차근차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나는 즐겁고 행복한 나머지 객관적으로 서술할 형편이 아니다. 천사를 알게 되었다! 풋, 이건 누구나 자기 여자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안 그래? 그런데 그녀가 얼마나 완벽한지, 또 어째서 완벽한지 설명은 하지 못하겠다. 그녀가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는 말로써 충분하다.

p29

베르테르가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은 '로테'이다. 베르테르는 첫눈에 로테에게 사랑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그녀는 친구 알베르트의 약혼녀다. 친구를 배반하고 적극적으로 로테에게 구애할 수도 없으며 그저 그녀를 자주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속으로 연모하는 것 이상으로 할 수 있는게 없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보고 단념하기도 하고 노력해보건만 그녀를 향한 마음은 식을 줄을 모른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의 마음에 정말 고통스럽다.

그분은 너무 예민한 내 감정을 나무랐다. 그리고 활동이나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나 철저한 업무 수행 등에 대한 내 엉뚱한 아이디어를 젊은이다운 훌륭한 패기로서 존중하고, 그것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고 조금 완화해서 제대로 기능하고 효과를 한껏 발휘할 수 있는 분야로 이끌어 가려 한다고 했다. 나 역시 일주일 만에 기력을 회복했고 마음의 안정도 찾았다. 영혼의 안정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고 자기 자신한테 느끼는 즐거움이다. 친애하는 친구여, 다만 이 보석이 아름답고 값진 만큼 쉽게 깨질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겠나!

p119

다른 누구보다 예민한 감정, 감성을 지녔던 베르테르는 사랑에 대해서도 녹록치 않았지만 계급 차이에서 오는 차별 및 자신의 일과 관련해서도 쉬이 풀리지 않았다. 귀족 출신의 여인B과 어울리고 파티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또한 베르테르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자신의 상관인 공사의 불합리한 행동들로 인해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한다. 베르테르는 공사를 고지식한 멍청이, 수다쟁이 노처녀로 표현한다. 베르테르가 존경하며 멘토와도 같은 올바른 조언가인 C백작이 있었다. 허나 C백작도 들끓는 베르테르의 젊은 감정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베르테르는 사직서를 제출한다.

친애하는 빌헬름, 옛날에 불행한 사람을 가리켜 악령에 시달린다고들 말했는데 내가 지금 그런 불행한 사람들이 틀림없이 처했을 법한 바로 그 상황에 처해 있다. 때때로 나를 사로잡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불안도 아니고 욕망도 아니다. 내 가슴을 갈가리 찢어 버릴 것 같고 목구멍을 조이는, 알지 못하는 내적 광란이다! 아, 괴롭다!

p181

표현들이 다소 오글거린다거나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사랑에 깊이 빠진 경험이 없기에 그럴 것이다. 아니면 그 사랑이 너무도 순탄해서 일 수도 있겠다.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그때는 왜 그랬을까'라며 이불킥을 날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당시의 감정들은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굳건한 세계이며 깨트릴 수 없는 옹골진 성과도 같다. 베르테르의 마음이 담긴 글을 읽으면 그의 내적 괴로움이 절절히 느껴진다.


결심했습니다, 로테. 저는 죽으려고 합니다. 제가 그대를 마지막으로 보게 될 날 아침에 감정을 낭만적으로 과장하지 않ㄱ고 차분하게 그 사실을 씁니다. 내 가장 소중한 여인이여, 그대가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차가운 무덤이 불안하고 불행한 이 사람의 뻣뻣하게 굳은 주검을 덮고 있을 겁니다. 이자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있어 그대와 말을 주고받는 것보다 더 큰 달콤함은 모릅니다.

p192

젊은 베르테르가 처한 운명은 가슴 아프다. 책의 서두에 이 책으로 젊은 베르테르와 같은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위로가 되길 바란다는 내용으로 책이 시작되는데, 실제 독일에서는 베르테르의 행동을 따라 스스로 세상을 떠난 젊은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베르테르 효과, 베르테르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이유다.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괴테는 가슴 아픈 짝사랑의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책을 썼으며,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지 못해 자살한 이의 사건을 접목시켰다고 한다. 책의 제목처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책 안에서 시대를 넘어 지금의 나에게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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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체인 아르테 오리지널 12
에이드리언 매킨티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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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체인

딸을 살리기 위해 납치범이 되어야 하는 엄마





가독성이 매우 좋아 놀랐다. 하루 한두시간씩 삼일이 걸렸으니 대여섯시간만에 소설을 완독했다. 그닥 빠른 속도는 아니라지만 나에겐 매우 이례적인 속도다. 독특한 스토리와 흡인력, 가독성과 스릴 넘치는 구성이 나를 홀렸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미국 최고의 추리소설상 '에드거상' 및 여러 상을 수상했으며 10편의 범죄 소설을 쓴 작가 '에이드리언 매킨티'의 소설이다.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화가 확정된 소설이다.



2012년 멕시코 시티에서 피해자 교환 납치 실제 사건을 모티브하여 탄생한 소설 <더 체인>은 실제 일어날 법하여 매우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자신의 자녀가 납치 되었다면 아이를 구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부모의 마음을 이용하여 돈을 갈취하고 악날한 방식으로 체인을 유지하는 악마도 혀를 내두를 체인의 덫에 레이철이 걸려들었다.



액정에는 알 수 없는 발신자라고 뜬다. 레이철은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두 가지를 기억해라." 음성 변조를 한 듯한 목소리가 말한다. "첫째, 네가 처음도 아니고 분명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둘째, 명심해라, 이건 돈 때문이 아니라 체인 때문이라는 걸."

p19

딸 카일리가 납치되었다. 엄마인 레이철은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딸이 납치 되었으니 비트코인을 지불하고 다른 아이를 납치하라는 조건이다.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딸의 목숨을 보장 받을 수 없다. 그런데 딸 뿐만이 아니라 나에게 전화를 건 사람의 아들도 죽는다고 한다. 바로 체인이다. 내가 다른 아이를 납치해 그녀가 한 동일한 행동을 해야 한다. 그저 딸을 살리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내 딸이 납치를 당했고 내 딸을 되찾기 위해선 내가 귀여운 남자아이를 거리에서 납치한 다음 그 아이하고 그 아이하고 그 아이 가족을 진심으로 협박해야 해. 그 아이를 죽이겠다고 말할 때 진심인 것처럼 들려야 해. 안 그러면 앞으로 다시는 카일리를 못 볼 테니까.

p158

딸을 살리기 위해 납치할 아이를 물색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과정이 단숨에 진행되었다. 목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단 5일의 행적은 치밀하고도 단호했으며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딸을 살리기 위해 납치를 자행해야 하는 레이철, 이런 레이철을 돕는 전남편의 형이자 카일리의 삼촌인 피트, 그리고 이들을 응원할 수 밖에 없는 나의 마음. 어느 하나 정상적이지 않는 이 소설이 결국 어떻게 끝맺게 될지는 모두 한 마음일 것이다.

그러는 너 자신은 어때, 레이철? 납치범에 아동 학대범에, 무능한 엄마. 이게 다 너잖아. 속으론 너도 알고 있어, 어밀리아가 죽도록 그냥 내버려뒀을 거란 사실을. 그럴 의도가 분명 있었고, 그거야말로 도덕 철학, 법, 인생에서 중요한 거잖아. (중략) 처음엔 암, 그다음엔 이혼이었지. 그러더니 딸이 납치됐고 넌 괴물이 됐어.

p229

레이철의 심리적 갈등과 단호한 행동들이 인상적이다. 자신과 딸의 안위를 위해 타인의 불행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하는 '체인'의 악날함이 치를 떨게 했다. 내가 실제 저런 상황 안에 들어간다면 나 역시 레이철처럼 행동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레이철을 옥죄어 오는 주변의 압막이 상당했고 매우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이 조촐한 가족 모임이 처음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흥미로워지려 한다. 올리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동생한테 문자를 보낸다. 진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 잠깐 시간 나면 와서 나랑 얘기 좀 할래?

p423

이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레이철의 체인 안에서의 순응과 안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부는 이 체인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레이철의 모습을 담았다. 이 극적 전환점은 새로운 재미를 가져다 주었다. 또한 2부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탈 때는 무섭고 식은땀이 나지만 타고나면 또 타고 싶어지는 재미있는 놀이기구와 같다.

레이철이 틀렸다. 체인은 뿌리 깊은 존재다. 그건 신화다. 노인 대 젊은이, 육군 대 해군, 카타르시스 대 카오스, 전쟁의 신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그 둘 중 하나만을 살려둘 것이다. 그것도 순전히 자기 재미를 위해.

p472

그냥 이 책 <더 체인>은 한 마디로 스릴있고 재미있다. 또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선과 악, 도덕의 잣대로 체인 속 그들을 과연 평가할 수 있는가란 의문을 던진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떠오른다. 그 누가 과연 레이철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무더운 여름 시원한 에어콘 바람 쐬며 휴가를 즐기며 읽기에 좋은 웰메이드 소설로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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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합본 특별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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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하루키 월드의 시작을 여는 소설, 그 환상의 여행








1985년 무라카미 하루키가 서른여섯에 완성한 이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하루키 월드의 시작을 여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묘하게 나와 맞닿아 있다. 내가 태어난 해 1985년에 이 소설이 탄생했으며, 하루키가 서른 여섯에 이 소설을 완성했는데 지금 이 소설을 읽는 나의 나이가 서른 여섯이다. 대학 시절 이 책(당시 문학사상사 출판의 책)을 지인에게 추천 받아 지금까지 책장에 모셔두고 읽지 않다가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민음사의 판본으로 읽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애틋함이 담긴 책이다.



가독성이 매우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두꺼운 책인 이유도 한 몫 했지만 구절 하나 하나를 허투루 넘길 수 없는 하루키 문장의 매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그 무언가를 느끼면서 책을 읽어나가는게 행복하고 흥미로우면서도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하루키의 그 무언가가 소설을 읽는 내내 내 안에 어른거렸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이 두 세계가 번갈아 나오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련되며 도시적인 모습이 담긴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서정적이며 정적인 시골적인 느낌의 '세계의 끝'은 서로 다르지만 평행적 관계로 흘러간다. 이 두 세계가 나중에 어떻게 연결될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의 장르는 SF장르에만 국한하기 어려우며 몽환적이고 시적이며 모험, 스릴러적 요소 및 멜로의 요소도 담겨 있다. 마치 종합 선물세트와 같다. 보통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는 소설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데 하루키의 이 소설은 오히려 풍부하게 다가온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두개골이 따스해지면서 빛나기 시작할 거예요. 당신은 그 빛을 손끝으로 조용히 더듬어 가면 돼요. 그러면 오래된 꿈을 읽을 수 있을 거예요.

p113

세계의 끝에서 두개골에서 꿈 읽기를 하는 주인공. 꿈 읽기를 통해 이해하는 바가 없지만 하루 대여섯개의 두개골에서 꿈을 읽는게 해야할 일이다. 그림자는 이 세계에 들어올 때 문지기에 의해 잘려나갔고, 그림자는 이 마을에 들어올 수 없어 별도의 공간에서 문지기의 관리를 받고 있다. 대부분의 기억은 그림자가 가지고 있고 둘의 만남은 문지기의 허락 하에만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과연 세계의 끝은 어떤 곳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은 내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는 듯 여겨졌다. 그 어이없는 엘리베이터와 벽장 속에 있는 거대한 구멍과 야미쿠로와 소리 뽑기, 모든 게 이상했다. 게다가 돌아오는 길에 받은 선물은 동물의 두개골이다.

p135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주인공은 '계산사'다. 일을 의뢰받아 박사에게 가고 있다. 숨겨진 알수없는 공간으로 가고 있다. 박사의 손녀인 오동통한 소녀의 안내를 받아 박사를 만나고 돌아온 순간부터 상황은 조금씩 이상해져 간다. 알수없는 세력에게서 위협을 받고 상처를 입게 되며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무언가 해야한다. 지하세계는 야미쿠로라는 공포의 존재로, 지상에는 거대한 계산사 '조직'과 기호사까지 혼란스럽다. 박사와 손녀딸의 도움이 절실하다. 혼란스러운 상황의 중심에 선 주인공은 실체를 위해 다시 박사에게로 접근한다. 지하 세계에 구축된 박사의 연구소로 향하는 첫부분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또한 조직의 공격으로 부터 피신한 박사가 숨어든 곳으로 손녀딸과 함께 향하는 그 길이 두려움과 설레는 모험으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나도 당신이 괴로워한다는 건 잘 알아. 하지만 말이야. 그건 다들 통과하는 일이라고. 그러니까 당신도 참아야지. 잘 참아 넘기면 그다음에는 구원이 올 거야. 그렇게 되면 고뇌도, 괴로움도 다 없어질 거야. 모두 사라져. 순간적인 기분 따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그림자는 이제 잊어. 여기는 세계의 끝이야. 여기서 세계는 끝나고, 더는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아. 그러니까 당신도 이제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p200

이 세계의 끝은 뭔가 이상하다. 과거의 기억을 잃고 주어진 일을 하는데 고뇌와 괴로움이 없고 모두가 평온하다. 주인공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도서관의 그녀에게 마음이 있으나 정작 그녀의 마음은 진짜 마음이 아니다. 진정한 그녀의 마음이 없기에 그녀에게 다가선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심히 고민이 된다. 후반부에 세계의 끝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는 부분은 나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매우 인상적으로 봤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이 생각났다. 무의식의 세계와 현실의 연결이라는 부분에서 이 소설과 상당히 닮아 있다.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어요." 통통한 여자가 말했다. "사랑이 없으면, 그런 세계는 창밖을 지나가는 바람과 똑같아요.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잖아요. 아무리 많은 여자를 돈으로 사도, 어쩌다 만난 아무리 많은 여자와 자도, 그런 건 진짜가 아니에요. 아무도 당신의 몸을 꼭 껴안아 주지 않아요."

p422

사랑에 대한 이 멘트를 기억해 두고 싶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주인공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가진 생각일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이 소설에서 '마음'이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박사의 통통한 손녀딸이 자꾸 주인공을 유혹하지만 주인공의 마음은 도서관의 그녀에게 가있고 세상의 마지막 날에도 도서관의 그녀와 함께 하길 선택한다. 하루키 소설을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사랑에 인색한 듯 하면서도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항상 유념하고 있는 듯 하다.

우선 마음의 문제야. 너는 이 마을에 싸움도 증오도 욕망도 없다고 했어. 그건 아주 좋은 일이지. 나도 기운만 있으면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야. 그러나 싸움과 증오나 욕망이 없다는 건, 즉, 그 반대도 없다는 뜻이야. 기쁨과 축복과 애정 같은 거 말이야. 절망이 있고 환멸이 있고 슬픔이 있어야 기쁨도 생겨날 수 있는 거라고. 절망이 없는 축복 따위는 어디에도 없어. 그게 내가 말하는 자연스러움이라는 거야.

p651

무언가 완벽해 보이는 이 '세상의 끝'은 공교롭게도 '마음'이 없다. 사람들에게 마음이 없기에 평온하고 잔잔하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계의 끝의 관계는 박사의 설명을 통해 어느 정도 소설 안에서 드러난다. 어쩌면 세계의 끝은 완벽한 유토피아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걱정과 고민이 없는 세상을 누구나 바라지 않는가. 하지만 유토피아적 모습은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세계인가라는 의문점을 가져온다. 싸움과 증오, 욕망이 없어 좋지만 기쁨과 축복도 없다는 사실에 뭔가 이 모습에 의구심이 샘솟는다. 정말 이것을 우리가 원하는 건가. 주인공이 그토록 원했던 평행세계인 세계의 끝이 정말로 그가 원했던 세계인 것일까.

"그렇게 멋진 세계인지 어떤지는 나도 몰라." 그림자가 말했다. "그러나 그곳은 적어도 우리가 살아야 할 세계야.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일도 있고 너는 그곳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거기에서 죽어. 네가 죽으면 나도 사라져.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야."

p762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주인공은 스스로의 선택은 아니었으며 그 마지막을 기다리는 모습이 지속적인 여운을 남긴다. 그 끝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았기에 더욱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세계의 끝'의 주인공 역시 그림자를 보내고 머무는 것으로 선택하는데 사실 이 마지막 부분이 나에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미 포기한 주인공의 마음이 세계의 끝의 주인공에게 전해진 것일까. 책을 모두 읽었는데도 아직도 마음에 의문이 쌓여있다. 세계의 끝에 남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하루키가 남긴 여운이 한동안 지속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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