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무라카미 하루키가 서른여섯에 완성한 이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하루키 월드의 시작을 여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묘하게 나와 맞닿아 있다. 내가 태어난 해 1985년에 이 소설이 탄생했으며, 하루키가 서른 여섯에 이 소설을 완성했는데 지금 이 소설을 읽는 나의 나이가 서른 여섯이다. 대학 시절 이 책(당시 문학사상사 출판의 책)을 지인에게 추천 받아 지금까지 책장에 모셔두고 읽지 않다가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민음사의 판본으로 읽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애틋함이 담긴 책이다.
가독성이 매우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두꺼운 책인 이유도 한 몫 했지만 구절 하나 하나를 허투루 넘길 수 없는 하루키 문장의 매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그 무언가를 느끼면서 책을 읽어나가는게 행복하고 흥미로우면서도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하루키의 그 무언가가 소설을 읽는 내내 내 안에 어른거렸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이 두 세계가 번갈아 나오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련되며 도시적인 모습이 담긴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서정적이며 정적인 시골적인 느낌의 '세계의 끝'은 서로 다르지만 평행적 관계로 흘러간다. 이 두 세계가 나중에 어떻게 연결될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의 장르는 SF장르에만 국한하기 어려우며 몽환적이고 시적이며 모험, 스릴러적 요소 및 멜로의 요소도 담겨 있다. 마치 종합 선물세트와 같다. 보통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는 소설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데 하루키의 이 소설은 오히려 풍부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