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데바 - 삶 죽음 그리고 꿈에 관한 열 가지 기담
이스안 지음 / 토이필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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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데바

한국 단편 공포 기담집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

'이스안'이라는 저자의 이름과 기담집이기에 으레 일본 공포 기담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 작가이며 한국 공포 기담집이었다. 한국 정서가 담긴 기담집이라 기대감이 한껏 높아졌다. 그리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산뜻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돋보이는 이야기들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카데바>는 다섯번째 이야기로 수록되었고 "연구 및 교육 목적으로 기증된 시체"를 일컫는 말로 의미를 모르면 무슨 단어인가 궁금하지만 단어를 이해한다면 그 단어만으로도 오싹한 느낌이 감돈다.

이야기를 하나씩 읽다보면 친구들과 함께 여행지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듯한 느낌이랄까. 밤새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다 밤을 꼴딱 새버릴 이야기들이다. 책에 수록된 여섯 번째 이야기 '별장괴담회'가 딱 그렇다. 저자의 실제 경험을 이야기로 옮겨 놓은 이야기로 오싹한 경험이 담겨 있다. 10편이 짧아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저자의 다른 책 <기요틴>에 관심이 생긴다.

우리는 간혹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든 순간을 경험한다. '꿈'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기반으로 10개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매력을 갖추고 있다. 저자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예측 불가한 이야기의 반전들은 오싹함을 배가시켰다. 10개 이야기 모두 재미있었는데 그 중 특히 아래 3가지 이야기는 기립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그래, 그래. 알았다. 아무튼 누굴 닮아서 방구석에 뭘 자꾸 처박아 두는지 참..."

"아, 몰라! 치우면 도잖아. 빨리 가."

물러가는 아빠의 뒷모습에 대고 한껏 짜증 섞인 말을 던졌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서랍에 무언가를 쌓아두지 않기로, 이런 찝찝하고 더러운 버릇을 얼른 고쳐버리기로 마음먹었다.

1. 버릇 (p28)

구석에 숨겨두는 버릇, 뭔가 찝찝하고 기분 나쁜 냄새가 흘러 나오는 분위기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이 분위기와 구석에 숨겨두는 버릇은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엄마는 바람이 나 가정을 떠나버렸고, 어느 덧 커버린 중학생 딸은 엄마의 부재를 여실히 느끼며 살아간다. 어느 날 딸은 꿈에서 엄마를 만난다. 연락 한 번 없던 엄마에게 원망을 퍼 부었고, 엄마는 자신이 구석에 숨겨둔 무언가를 언질한다. 이 버릇은 과연 누구에게 온 것인지를 생각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마지막 결말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으나 그럼에도 등줄기로 흐르는 오싹함은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후배와 함께 캠퍼스 풍경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우던 것도 꿈이었을까.

"이제는 어디부터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됐어요. 여기까지가 엊그제 있었던, 아니 엊그제 꿨던 꿈이고요."

3. 악몽 그리고 악몽 (p91)

세번째 이야기 '악몽 그리고 악몽' 역시 반전을 담고 있는 이야기였다. 매일 계속되는 악몽을 꾸는 남자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약을 꾸준히 복용하지만 진전이 없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일 고통스러운 악몽으로 일상 생활이 힘들 지경인데 약을 먹지 않자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다. 이상한 상황에 정신과 의사를 추궁하지만 무언가 숨기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게 약을 먹지 않았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뭔가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가 섬뜩했고 꿈보다 그 현실이 더욱 가혹했음이 공포로 다가왔다.

"우리 집에서 나와 맞막 밤을 함께 보내주면, 그러면 나는 너에게 질척거리지 않고 깨끗이 보내줄 수 있다"고 이번에도 그렇게 말했죠...그랬더니 남친이 알겠다고 하더라구요... 당분간은 회사 일 때문에 바쁠 예정이라 다음주 일요일에 저희 집에 오기로 약속했어요... 그리고 일주일동안 자기도 다시 생각해 보겠다네요..."

9. 연애상담 (p306)

아홉번째 이야기 '연애상담'을 읽고 "와, 대박"을 연발했다. 미니엔젤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여자가 자신의 연애상담 글을 게시판에 올린다. 그 글들만 나오는 형태의 독특한 전개의 이야기다. 그냥 평범한 연애상담을 다루고 있는 듯했으나 마지막의 반전은 상상을 초월했다. 일본 작가 야도노 카호루의 <기묘한 러브레터>와 약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연애상담'과 같은 이야기는 장편으로 만들어도 좋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아이디어가 참신했고 절묘하게 숨겨진 복선들에 감탄했다. 한 마디로 참 재미있고 오싹한 반전에 감탄했다.


이스안 작가의 작품들을 찾아보니 1인 출판사 토이필북스를 운영하며 92년생의 어린 나이임에도 상당히 많은 책들을 발간했다. <카데바>를 읽으면서 일본 특유의 감성도 살짝 묻어난다고 생각했는데, 작가는 일본학을 전공했고, 작가의 책들을 보니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하다. 한국적인 정서와 일본의 느낌이 어우러져 이스안 작가만의 독특한 이야기들이 인상깊었다. 기담집 특유는 음산함과 미스테리한 분위기가 책 저변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글만으로 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감탄스럽다. 이 책도 훌륭하지만 앞으로의 이스안 작가 책들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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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 필요 없는 영어 - 원어민처럼 영어 말하기를 배운다
A.J. 호그 지음, 손경훈 옮김 / 아마존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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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 필요 없는 영어

Effortless English

얼핏 제목만 보면 아무런 노력이 없어도 영어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작이 아니라 결과이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말은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으로 영어 공부를 하면 결론적으로 영어를 술술 할 수 있는 결과에 도달할 것이라는 의미다. 영어를 말하는 그 순간 노력하지 않아도 영어가 술술 나오는 경지에 이르도록 돕겠다는 의미다.

전 세계의 영어 교육 시스템에 실랄한 비판으로 책은 시작된다. 전세계의 영어 교육은 학생들이 정말 영어를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영어 교육이 아닌 그저 가르치는 입장에서 편한 영어 교육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나 역시 매우 동의하는 부분으로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영어가 필수적인 회사에 근무하면서 생존 영어를 구사하는 나로서는 영어 실력 향상에 항상 목말라 있다. 이 책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만 같다. 중고등학교 때 이런 영어 공부 방법을 알았더라면 영어에 조금은 자유롭지 않았을까. 지금 늦긴 했지만 향상 시킬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지금은 영어 초급을 벗어난 실력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의 향상이 있기 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A.J.호그가 제안하는 방법들에 100% 공감한다. 그리고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내가 당신에게 기억하길 바라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문법 규칙을 공부하지 마라. 만약 당신이 문법 규칙에 집중하면, 그것은 당신의 말하기를 해칠 수밖에 없다. 당신은 더욱 늦게 말하게 되고 더욱 늦게 이해하게 된다. 단호하게 말하면 문법은 영어를 말하는 것을 방해한다.

p124

두 번째 법칙, 문법 공부는 영어 말하기를 죽인다. 문법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에게 참 어려운 일이다. 문법이 틀릴까 조마조마 하기에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우리 한국인들이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 어쩌면 문법이다. 조금 틀려도 괜찮다. 잘 듣고 뜻이 통하는 말하기를 하기만 하면 된다. 문법을 신경쓰느라 정작 중요한 뜻을 놓치게 된다. 다섯 번째 법칙에서 제안하는 방식인 시점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법 공부는 이제 그만, 우리가 지금 집중해야 할 부분은 바로 영어 듣기다.

당신은 쉬운 영어를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당신에게 쉬워야 한다. 그것은 말하고 있는 것의 95% 이상을 당신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디오를 멈추지도 않고 사전도 필요 없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것은 아주 쉬워야 한다. (중략) 나의 모든 과정이 오디오에 기반하고 있는 이유이다. '노력이 필요 없는 영어'는 대부분의 학습이 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듣기 시스템이다.

p135 / 137

지금 나에게 정말 중요하며, 호그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영어 듣기다. 영어 듣기가 정말 중요하다. 듣기를 통해 영어를 배워야 한다. 쓰기와 읽기는 미뤄두자. 유튜브, 팟캐스트의 영어 듣기 자료를 찾아 듣기를 통해 영어 실력을 향상 시킬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활용할 수 있다. 반복을 통해 한 장면을 듣고 또 들으면서 내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듣기와 반복 이 두 단어만 기억해도 좋다.

당신은 단지 더 많은 반복이 필요하다. 듣기를 통해 가장 흔한 단어들, 동사들, 구절들에 집중하고 그다음에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한다. 그렇게 할 때 소리의 '정확함에 대한 느낌'을 갖게 되고 영어를 더 자연스럽고 자동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중략) 지루함을 없애는 최고의 방법은 당신에게 가장 재미있는 자료를 선택하는 것이다.

p148

영어 공부의 최대 적은 바로 지루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반복에는 지루함이 뒤따른다. 반복하는 과정이 고통스럽다. 하지만 마치 운동과 같이 영어 근육을 기르기 위해 반복은 필수적이다. 고통과 인내가 없는 영어 공부는 무의미하다. 재미있는 자료를 찾아 듣는 방법이 좋다. 유튜브 자료가 무궁무진하기에 관심있는 영어 영상을 찾아 보는 것이 좋다. 대신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들을 수 있는 수준까지 반복 또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A.J.호그가 제안하는 노력이 필요 없는 영어 7가지 언어 법칙은 꼭 기억해 두고 싶다.

1. 단어가 아니라 구절로 배워라.

2. 문법 공부는 영어 말하기를 죽인다.

3. 당신의 눈이 아니라 귀로 배워라.

4. 반복은 말하기를 숙달하는 핵심이다.

5. 문법은 직관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배워라.

6. 실제 영어를 배우고 교과서는 버려라.

7. 흥미로운 이야기로 영어를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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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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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

'광기'서린 파멸과 비극의 서사

1996~1997년의 나이지리아가 책 안에 펼쳐져 있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1996년의 나이지리아에서 내가 9살의 벤저민이 되어 형제들과 함께 숨쉬고 생활한 느낌이다. 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벤저민에게 이입되었다. 책 안의 벤저민이 내가 됐다. 그 생활 안에서 가슴이 쓰렸고 슬펐고 탄식이 흘러 나왔다. 어린 벤저민의 시각에서 일련의 사건과 과정들이 담담하게 그려졌다. 어린 아이의 시각이지만 산뜻하고 발랄한 느낌보다는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가 소설을 지배한다.

'어부들'이란 단어는 매우 상징적이다. 아쿠레 마을의 주민들에게 버려진 오미알라강은 1995년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통행금지령을 내리지고 강은 경멸의 대상까지 됐다. 형제들은 어른들 몰래 이 강으로 고기를 낚으러 간다. 이 형제들은 스스로를 '어부들'이라 칭한다. 책을 모두 읽고 난 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매우 소름돋았다. "우리가, 우리 어부들이 너를 잡았으니 너는 도망칠 수 없어!" (p27) 무심히 지나갔던 이 노래 가사가 이 책 내용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시적 문장과 표현들, 박진감 넘치는 서사, 기독교와 미신, 정치적 이슈들까지 이 모든 것이 이 한 권에 잘 버무려져 있다. 어느 하나 이질감없이 완벽한 하나의 소설로 표현되었다. 작가의 감각에 감탄할 정도다. 완벽하게 완성된 소설 속의 세계는 마치 가상의 게임 공간에서 체험을 한 듯한 느낌의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나도 한 아들을 둔 아버지가 된 지금은 더욱 자주 그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우리 인생과 세상이 바뀌어버린 것은 강으로 이런 여행을 떠나던 어느 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시간이 중요해진 것은 바로 이곳, 우리가 어부가 된 그 강에서였다.

p24

지금은 성인이 된 벤저민의 시각으로 그려지는 소설은 매우 생생하다. 과거를 돌아보며 어느 잘못된 순간, 바꾸고 싶은 한 순간을 꼽으라 하면 어디일까. 벤저민은 성인이 되어 과거를 돌아봤을 때 어부가 된 그 강으로 여행을 떠난 순간을 떠올렸다. 책을 모두 읽고 나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냥 그 강이 싫어질 듯 하다.

아구 부부와 이켄나, 보자, 오벰베, 벤저민, 데이비드, 은켐까지 모두 중요한 인물들이다. 마지막 벤저민에게 벌어진 사건까지 도달하기 위해 형제들과 부모의 처한 상황들이 물 흐르듯 연결되어 있다. 이 물줄기의 끝은 넓은 바다다. 시체가 떠 다니던 멀리하고 싶은 오미알라강의 물줄기들은 모두 결국 바다가 포용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마치 바다와 같았다. 부모와 형제들에게 매 사건은 상처투성이지만 결국 마지막에 도달해서는 모두를 포용하고 있다.

"아불루는 '이케나, 너는...'" 오벰베는 말을 멈추었다. 둘의 얼굴을, 그다음에는 땅을 바라보는 오벰베의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오벰베는 땅으로 시선을 돌린 채로 말을 이었다. "아불루는, 이켄나, 너는 어부의 손에 죽을 것이라, 라고 말했어."

p116

아불루의 예언은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처음에는 그 미친 아불루의 말에 왜 그리도 사람들이 동요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아불루에 대한 그간의 이야기들을 들으니 예언이 필히 일어날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간 아불루의 예언대로 모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미신이나 예언을 믿지 않는 나지만 이미 아불루의 예언에 깊이 동화되었고 언제 사건이 터질지 모를 불안감이 감돌았다. 형제들 역시 그 예언을 애써 부정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아불루의 예언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벤저민의 가족에 불안감은 날로 증폭되었고 불행의 씨앗 역시 점차 커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느 순간 벌어져서는 안될 사건이 이내 발생하고야 만다. 너무 안타까운 사건이라 그저 소설을 읽는 내 가슴이 쓰리고 아렸다. 형제의 시각에서 부모의 시각에서 벌어진 사건을 두루 생각하고 내 일처럼 고민했다. 가족의 분노는 이런 예언을 한 아불루에게로 향한다. 나 역시 그러하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가 특히 나에게는 유독 특별하게 다가왔다.

한때 그랬듯, 우리는 어부들처럼 저녁에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갈고리가 달린 낚싯대를 낡은 래퍼에 숨기고 있었다. 지평선의 모습은 내 안에 강한 기시감을 일으켰다. 지평선 표면에는 연지가 발라져 있었고, 태양이 붉은 구체처럼 걸려 있었다. 아불루의 트럭을 향해 가는 동안, 나는 거리의 나무 전신주가 쓰러지는 바람에 걸려 있는 전등이 산산조각 나고, 전구를 등에 달아놓았던 전선이 풀려 형광 심지가 꺾인 채 낮게 늘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p314

다른 어느 부분보다도 나는 이 구절에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아불루를 사냥하러 나가는 오벰베와 벤저민의 모습이 비장하고도 처절했다. 다양한 마음이 공존했다. 마음 한 켠에 이 어부들이 무사했으면 하는 마음, 아불루에 대한 내 자신도 모를 증오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아불루가 대체 무슨 잘못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러운 미치광이라지만 절대 악이라고 하기엔 사실 뚜렸한 악행을 저지른 부분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어부들을 응원하게 된다. 형제들, 이 어부들과 함께한 이 시간 이미 나는 한 어부가 되었다. 그저 제발 무사하기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불루와의 실랑이와 어부들의 사냥, 군인들과의 조우, 그 이후의 일들 등은 순식간에 흘러 갔다. 한국의 법과 나이지리아의 법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2021년 현재 한국은 소년법 폐지 및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벤저민과 함께 했던 1996년 나이지리아 여행은 매우 인상깊었다. <어부들>이 세운 놀라운 기록들이 매우 합당하게 여겨진다. 이미 치고지에 오비오마 작가의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를 읽고 인상에 크게 남았었다. 데뷔작인 <어부들> 역시 엄청난 소설임을 직접 확인했다. 세계 5대 문학상 수상, 부커상 파이널리스트, 31개국 출간 계약, 뉴욕타임즈, 옵저버 등 올해 최고의 책 선정 등 굵직 굵직한 기록들이 어쩌면 매우 당연한 결과다. 이 방구석에서 이 책 <어부들>을 읽고 작가 치고지에 오비오마에게 기립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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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 -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선 사상가 10인의 대답
미하엘 하우스켈러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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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아가는여정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묻는다. 인간은 태어난 이래 지금까지 삶과 죽음에 의문을 가졌다. 오랜 시간 수많은 철학자 및 사상가들이 고뇌하고 연구하고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부투해 왔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쉽사리 답을 낼 수 없었던 주제다. 누군가 나에게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삶과 죽음에 대해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쉽사리 답을 낼 수 없는 동일선상의 물음이다.

저자 미하엘 하우스켈러의 <왜 살아야 하는가>의 원제는 <The meaning of Life and Death> 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10인의 사상가를 통해 알아가는 이 여정이 우리에게 어스름한 힌트를 던져준다. '삶과 죽음은 바로 이거야' 라는 명확한 답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철학이다. 그렇기에 철학이 어렵고도 재미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5명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쇠렌 키르케고르, 프리드리히 니체, 윌리엄 제임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와 3명의 소설가 (허먼 멜빌, 마르셀 프루스트, 알베르 카뮈), 2명의 소설가 및 사상가(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레프 톨스토이) 를 만날 수 있다.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라 무언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10명의 사상가로 부터 깊고도 심오한 삶과 죽음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펼친다. 그 중 유독 내 마음을 뒤 흔드는 세 명의 사상가들에 대한 내용을 아래에 살짝만 적어봤다.

우리의 삶이 무의미해 보이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벌어지는 일에는 어떤 종합적인 계획이나 합리적인 구상도 반영돼 있거나 실현돼 있지 않다. 그 대신 세게의 중심에는 맹목적이고 강력하지만 전적으로 우둔하고 목적도 없는 분투가 이루어지고 있다. 계속해서 존재하는 것 외에는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르는 채 하염없이 바라기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세계에는 이런 사실만이 반영돼 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p43)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인간이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통과 고난은 삶 곳곳에 만연하고 삶의 본질이라는 사상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가장 핵심이다. 고통은 언제나 올 수 있는 것이기에 미리 준비하고 감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할 수 있는 세계 중 최악의 세계'라는 부제목이 쇼펜하우어가 매우 부정적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 오히려 우리의 삶을 희망차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삶이 왜 이리 무의미한 것 같지?" 라는 의문에 원래 삶이 무의미 하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삶을 더 바람직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다. 즉, 행복하지 않음이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계가 원래 이렇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 고통이 그리 고통스럽지 않게 된다. 쇼펜하우어 철학을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마찬기지로 나는 죽음이라는 용이 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려고 여지없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이해한 채 삶이라는 나무에 매달려 있다. ... 물론 나에게는 끔찍한 진실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들어주는 꿀 두 방울이 있다. 바로 가족을 향한 사랑과, 내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글쓰기를 향한 사랑이다. 하지만 이조차 더 이상 달콤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레프 톨스토이 (p194)

삶은 뛰어난 사기꾼으로 온갖 유혹을 통해 죽음이라는 진실을 숨기려고 애쓰고 있다고 톨스토이는 <고백록>에 표현했다. 레프 톨스토이 편에서는 동부유럽 우화 '죽음이라는 용'을 통해 삶과 죽음을 빗댄 표현들이 매우 공감된다. 나의 삶에서 달콤한 꿀 두 방울은 무엇일지를 생각해 본다. 톨스토이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향한 사랑이 나에게도 역시 꿀 한 방울이 되겠으나 나머지 한 방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또한 중요한 것은 이 생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아느냐 모르느냐는 매우 큰 차이를 가져 온다고 생각한다. 한 편으로는 우리의 삶이 이 꿀을 찾아 떠도는 여정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저 나뭇가지에서 버티다보면 용이라는 죽음이 기다릴 뿐이다. 이 삶은 달콤한 꿀을 맛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과정이다. 생각만으로도 힘들고 고달프다. 이런 저런 참 많은 생각이 들게하는 우화다.

신의 죽음은 인간이 스스로를 재창조할 기회를, 더 고등한 형태의 인간으로 소생할 기회를 주었다. 신의 죽음은 곧 우리 인류의 부활이다. (중략) 확실성을 갈망하지 않는, 안전망이 필요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 돼야 한다. 오히려 자신이 누리는 자유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에 기뻐하면서 가능성만을 즐기는 영혼이 돼야 한다. 삶이 무엇을 내놓더라도, 심지어 심연의 끝자락에 있더라도 춤을 출 줄 아는 자유롭고 쾌활한 영혼이 돼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p236)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다. 니체가 참 많은 명언을 남겼듯 이 책에도 상당히 많은 니체의 명언을 만날 수 있다. "죽음은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전쟁의 결과물이다. 죽음은 피할 수 없으며 피해서도 안된다. 장수는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니체의 가장 특이하고 난해하다고 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인데 언젠가는 도전해보고 싶은 책이다. "죽음은 삶의 조건이라는 점에서 좋은 것이다. 죽음 없이는 성장도 없다. 삶은 자기초월적이다."라는 말로 니체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인간의 삶을 인정해야 한다는 자세다.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나갈 용기를 내기만 한다면 죽음 조차도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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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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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위로를 건네다

저자 정영욱님의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는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당신에게 건네는 치유와 위로의 에세이다.

전혀 일면식도 없던 누군가가 삶에 지쳐 울고 있는 나를 포근하게 안아 준다면 어떨까. 나의 마음은 스스로 녹아 내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나에게 그저 따스한 품을 내 주었을 뿐인데, 그저 나를 안아 주었을 뿐인데 그 넓은 포용이 나에게 힘이 되고 치유가 된다.

이 책은 정말 따스하다. 품이 참 포근하다.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받고 싶은 날, 이 책은 나에게 내가 원하는 그 조언을 건넨다.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그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그 따스함이 한 글자, 한 문장마다 듬뿍 듬뿍 담겨 있다. 팔벌려 자신에게 안기라 한다. 그 품에 안겨 느껴보자. 그 포근한 위로를.

삶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늘 후회와 아쉬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걸 기억하자. 나만 유독 후회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님을. 나의 선택에 대해 자꾸만 미심쩍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가깝다.

인생의 슬럼프가 왔을 때 기억해야 할 것 (p24)

'인생의 슬럼프'가 나에겐 언제였을까. 대학에 입학했을 때, 군대에 갔을 때, 취업 준비할 때, 신입 사원 시절... 더 많았을 수 있겠으나 문득 나의 선택을 후회했던 시간들을 되돌아 본다.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두근거리는 마음보다 힘들다는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새로운 것에 누구나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선택으로 인해 다른 길로 가지 못하는 그 자체에 대해 미심쩍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다른 길로 갔다 하더라도 후회하고 미심쩍었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라는 말에 공감 된다.

아름답다, 소중하다, 귀중하다. 세상의 좋은 단어를 모두 빗대어도 모자랄 만큼의 당신이다.

당신의 존재 (p66)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흔하고도 그저 범용적인 좋은 말이라 생각했다. 이 짤막한 말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었다. 그런데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번 읽으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아름답다'. '소중하다'. '귀중하다'. 아내와 아이들, 부모님, 가족들, 내 주변의 한 사람씩 모두를 떠올리고 생각해 봤다. 그 어느 누구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름답고, 소중하고, 귀중할까. 의심보다는 확신이 든다. 그들 역시 내가 소중한 가족이다. 내 자신을 바라보는 나의 눈만이 유독 냉정하게 바라보는 듯 하다. 조금은 관대하게 좋은 단어들을 나와 겹쳐 보면 어떨까 싶다. 물론 너무 과한 나르시시즘은 주의하자. 적당한 자기애는 자존감을 높이고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우리는 여러 면에서 미완이어도 된다. 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완성으로 가고 있다. 무언가 해내지 않아도 된다. 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에게 됨됨이가 있다.

나는 되고 있는 중이다. (p130)

사람에게 완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것일까. 과연 사람이 완성될 수 있을까. 어떤 것이 과연 완성이라 말할 수 있을까. 사람과 완성이라는 단어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어울리기 힘든 관계인지도 모른다. 완성으로 다가가는게 과연 필요한 것일까. 그냥 언제나 사람은 미완일 수 밖에 없다고 인정하는게 더 마음이 편해지는 듯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완성이라는 단어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 완성이라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잘 모르면서도 끊임없이 나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에는 어쩌면 희망이 담겨 있다. 이 희망때문에라도 완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관계는 식물과 같아서 관심을 주면 자라고 관심을 주지 않으면 시든다. 관계는 정직한 편이다. 저 스스로 자라는 것 없고, 저 스스로 시드는 것 없다. (중략) 관심을 많이 줬는데도 자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뿌리까지 썩은 관계이고, 조금 주었는데도 무럭무럭 자라 준다면 나의 조그만 마음도 몇 배로 흡수해 주는, 놓치지 말아야 할 관계인 것이다.

관계는 식물과 같아서 (p148)

서른이 넘어 마흔에 가깝게 다가가는 나이이다 보니 관계가 식물과 같다라는 표현이 참 와닿는다. 어렸을 때는 관계가 참 어렵고 고달펐는데 이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된 듯하다. 어린 시절에는 싫은 관계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그나마 내 마음대로 조절이 되는 듯 하다. 억지로 관계를 만들기 보다 자연스럽게 관계가 이어지다보니 스트레스도 덜 받고,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내가 가진 것을 더 주고자 함에 따라 그 관계가 오히려 건강해진 느낌이다. 건강한 관계에 물을 주는 것에 더 신경 쓸 시간이다.

사랑하는 사람아. 미련한 마음과 미련한 마음이 만나 미련한 만남을 할지라도 우리 서로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서로에게 이미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그것만으로 서로에게 좋은 사람일 수 있는 이유가 충분히 되었지 않을까.

미련한 마음과 미련한 마음이 만나는 것 (p224)

미련한 사람이 되고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없이 미련한 사람이고 싶다. 나는 원래가 계산적인 사람이다. 분석과 등호에 익숙한 사람이기에 사소한 것 하나라도 계산에 들어 맞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사랑 앞에서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런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고 싶다. 그저 한없이 베푸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한없이 미련해 지더라도 상대는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미련해지고 싶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고 함께 하고 싶은 만큼 미련해지면 그만큼 좋은 사람이 된다. 내가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며 그 사람도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 사랑은 한없이 미련해지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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