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2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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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행복에 대한 탐구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니코마코스가 무슨 말이지?' 싶었고 사실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저자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실에 구미가 당겼고, '행복'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 당장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니코마코스라는 단어를 처음 듣는 내 자신의 무지를 자책했고 배움의 자세를 겸비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니코마코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들 이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에 대한 논설을 니코마코스가 책으로 정리했다. 행복이라는 전체적 주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도덕적 미덕과 중용에서부터 지적 미덕, 자제력, 사랑, 즐거움과 행복 등에 대해 논설을 펼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성의 관조적 활동'인 '철학 하는 삶'에 대해 최고의 행복이라 말한다.

"정치학은 인간에게 가장 좋음을 추구하는 학문이다(p20)" 라는 말이 솔깃하다. 나라의 법을 제정하고 살아가는 방향을 결정짓는 정치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되어 있음을 이제는 누구나 안다. 그런데 이런 정치학의 최종 목적은 결국 '가장 좋음'을 추구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최근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민의 투표로 결정되었다. 아무쪼록 국민들의 삶이 '가장 좋음'에 조금은 더 가까워 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젊은이는 감정에 휘둘리기 쉬워 정치에 결격 사유가 된다는 부분에는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원론적으로는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젊은 정치인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음에 온전히 동의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행복하느냐 아니냐를 판단하려면 (중략) 한평생을 보아야 한다(p45)"는 부분도 개인적으로는 새로웠다. 노년에 불행하면 행복하다고 말하기 힘들다는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노년이 불행하다 할지라도 한 평생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다면 나름 행복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나의 의문을 대변하듯 다음 장에서 이어서 같은 의문을 던진다. "완전한 미덕을 좇아 행하고 외적인 좋음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면, 우리가 그런 사람을 단지 어느 기간이 아니라 일생에 걸쳐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p49)"라고 말한다.

"지나침과 모자람은 악덕에 속하고, 중용은 미덕에 속한다.(p75)"라는 내용에 한 가지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어렵다.' 라는 말처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지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는 그 중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중간의 상태 평범한 삶은 중용과 매우 닮아 있다. 용기있는 삶, 즐거움을 절제하고, 돈을 주고 받을 때는 후하며 통이 커야 한다. 우리는 이미 어린 시절 도덕시간에 도덕적인 사람에 대해 배웠고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도덕적 미덕을 갖춘 사람이 되는 길, 중용의 삶을 사는 일은 어쩌면 쉽지 않은 길인지도 모르겠다.

"정의는 법을 지키는 것과 공평한 것이고, 불의는 법을 어기는 것과 공평하지 않은 것이다.(p173)"라는 표현에서처럼 이 책에서는 손해와 이득 사이의 중간인 '공평함'을 정의의 한 기준으로 보고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처럼 정의는 둘 사이의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오는 수많은 질문이 있다. 그만큼 어려운 주제임에는 분명하다. 한 가지 기억할 부분은 '정의'의 기본적인 기조는 공평함에 있고 법을 어기지 않는 노력을 해야함에 있다.

"좋은 사람들 간의 사랑이 최고의 사랑이다. (중략) 사랑하는 것이 감정이라면, 사랑은 성품인 듯하다. (중략)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이성적 선택에 따른 것이고, 이성적 선택은 성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p312)" 사랑의 종류는 다양하며 하나의 종류로 말하기 어렵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에서부터 이성간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이나 호의 혹은 동성애도 있다. 서로 좋은 것을 나누고 즐거움을 주고 받는 다면 가장 이상적인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 "동등성이 많이 없어져도 사랑은 지속하지만, 신과 인간의 차이처럼 그 격차가 많이 벌어졌을 때는 사랑은 이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p317)" 이 말에 동의는 하지만 '신과 인간의 차이'가 인간들 사이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이해가 쉽도록 쓴 표현일 수도 있겠다. 사랑에 대한 내용은 마치 에세이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괜시레 몽글몽글해진다.

"행복한 삶은 미덕에 따른 삶으로 생각된다. 그런 삶은 놀이를 즐기는 삶이 아니라, 열심히 애쓰고 노력하는 삶이다.(p399)" 다른 내용은 다 잊어도 이 하나는 꼭 기억해 두고 싶다. 열심히 애쓰고 노력하는 삶이 바로 행복한 삶이라는 표현이다. 과연 나는 열심히 애쓰고 노력하며 살고 있는가를 생각한다. 놀이를 즐기는 것이 행복인양 착각하며 살고있지는 않나 생각해본다. "인간은 지성을 따른 삶을 살아갈 때 좋고 가장 즐거울 수밖에 없고, 그런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다(p365)" 이 말은 매우 철학적이며 선뜻 이해가 어렵다.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지성의 삶, 여유가 있는 삶, 자신의 고유한 미덕에 따라 행하는 활동 등이 행복과 연관된다.

행복이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완전한 것 중 하나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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