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의 크레이터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남일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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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의 크레이터

관계의 시작 그리고 힘

정남일 작가의 <세리의 크레이터>와 <옆집에 행크가 산다> 두 편의 작품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관계'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우연과 우연이 만나 필연이 되는 관계의 형성은 온 우주가 돕기에 가능한 것이라고들 한다. 운석이 지구로 오기까지의 모든 우연들, 두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만나는 그 과정들, 한 아이가 태어나기 까지의 우연들은 쉽사리 설명하기 힘든 어떠한 힘이 작용하는 듯 하다.

<옆집에 행크가 산다> 이웃과의 만남 역시 어찌 생각하면 천운과도 같은 우연의 연속이 아닐까. 전입 신청 과정을 도와주는 인연은 옆집 이웃이라는 관계를 통해 도움을 주게 된다. 이 작은 관계의 연결은 난관에 봉착한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힘으로 번진다.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작은 이웃의 관계들까지 잠시나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세리의 크레이터

첫 번째 소설

뭔가 알콩달콩한 연애물 느낌의 소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현실 고등엄빠의 느낌이 묻어났다. 등장인물은 먼저 뱃속에 아이가 덜컥 생겨버린 세리, 친구로는 좋지만 여자친구로는 감당하기 힘들거라는 세리의 전 남친이자 주인공의 친구인 '오'의 말에 싸한 느낌이 감돈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세리의 현 남친인 남자 주인공. 이들의 심정은 어느 상황에 빗댈 수 있을까 세리 뱃속의 아이가 '오'의 아이라는 사실은 세리도 부정하지 않았다.

세리의 엄마도 어린 나이에 덜컥 아이를 갖고 세리를 낳았다고 한다. 운석이 떨어지는 걸 보고 아이를 낳겠다고 다짐했다나. 그래서 세리도 아주 옛날 운석이 떨어졌다는 초계분지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한다. 운석을 볼 수는 없기에 그 흔적이라도 본다면 뭔가 분명해질 거라는 말과 함께 주인공과 세리는 그렇게 초계분지로 떠났다.

활공장에서 바라본 초계분지는 세리의 말처럼 끝내주는 장소인 건 틀림없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음푹 파인 지형은 무려 오만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운석이 떨어진 자리, 그레이터임이 분명해 보였다.

p31

생각이 달라질 거라는 그 말이 처음엔 세리의 생각일 거라 짐작했으나 소설을 읽고 난 후, 현 남친의 생각을 바꾸고 싶었던 세리였음을 짐작한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전 남자친구의 아이를 키우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싶다. 허나 실제 이런 사람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은 소설의 표현력이 생생해서 혹은 그런 사례를 심심치 않게 전해 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바르고 정해진 길을 걸어왔고 걸어가는 나에게 이런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항상 신선하고 흥미롭다. 내가 주인공의 상황이라면 어떨까, 세리의 상황이라면 어떠할까. 쉽사리 답을 입 밖으로 낼 수 없기에 어려우면서도 고민해 볼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답이 정말 쉽다면 답을 선택하고 그냥 끝날테지만 그 답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 주어진다면 고민이 길어질수록 소설의 여운은 길게 간다.


옆집에 행크가 산다

두 번째 소설

옆집에 행크로 의심되는 흑인 남자가 살고 있다. 한 때 유명했던 거대한 체구의 UFC 격투기 선수 행크는 야수라는 별명을 가졌고, 주인공은 그의 팬이었다. 자신이 좋아했던 격투기 스타가 옆집으로 이사왔다는 사실에 흥분된다. 그런데 정말 옆집 흑인이 행크인지 정확하지는 않아 정말 맞는지 확인하고 싶다.

나는 왓슨 씨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면서 어떻게 도울지 생각했다. 문득 행크가 경기 전 세리머니가 떠올랐다. 나는 두 팔을 넓게 벌려 몸을 십자가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 디에 포효할 생각이었다. 내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대머리 남자도 경찰관도 왓슨 씨도 민정도 그리고 그 외 민원실에 있는 모두가 나를 쳐다볼 거였다.

p75

아파트 옆 부지에 임대 아파트 개발 계획에 따른 아파트 주민들의 반발이 있다. 각종 환경 문제를 들먹거리며 아파트 집값이 떨어질까 무서워 임대 아파트가 들어오기를 어떻게든 막으려는 주민 세력이 있다. 집값 방어를 위한 주인공의 아내는 이 일에 적극적이다. 주인공은 엮이지 않으려 아내를 슬슬 피한다.

시청에 전입 신고를 하려 간 행크와 개발 반대시위 무리와 충돌했다. 한 대머리 아저씨가 일방적으로 행크가 관계자라며 인종 비하 발언을 서슴치 않는다. 양측의 상황과 현재 오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주인공은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어 해결하고자 일에 뛰어든다.

전혀 모르는 관계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수 있으나, 옆집 사람 그리고 자신이 열광했던 사람이기에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한다. 관계가 가지는 힘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다양한 우연 속에 맺어지는 관계가 문제 해결을 쉽게 하는 키가 되기도 한다. 누구와도 관계 맺기를 꺼려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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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박초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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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박초이 작가 두 편의 소설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와 <사소한 사실들>이 한 권에 담겨 있다. 가독성이 좋아 읽기에 수월했고 주인공의 상황에 푹 빠져 순식간에 두 소설을 읽었다.

두 작품을 별도의 소설로 보는 것이 더 좋을 듯 하지만, 한 작가의 소설이기에 굳이 공통점을 찾아 보고 싶었다. 두 소설 모두 주인공이 힘든 현실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점이 닮았다. 어떠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 미래의 삶을 살아가고자 힘을 얻는다. 그 사건은 뭔가 특별한 사건이라기 보다는 마음가짐의 변화라 볼 수 있다. 그 변화의 방향은 매우 긍정적이다.


스물여섯 개의 돌로 담은 미래

첫 번째 소설

첫 소설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는 짧지만 여운이 길게 남았다. 미래는 고양이 이름이다. 현재 키우는 고양이도 아닌 전 남자친구의 고양이다.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를 모티브로 한 것인지 단순히 부르는 호칭만 같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주인공 '나'와 '구'가 등장한다. 전 남자친구 '구'는 '미래'의 장례식에 나를 초대했다. '구'의 현 여친 '지안'도 함께였다. 상황이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다. 이런 관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흥미로웠다.

미래와 함께 있을 때의 너는 행복해 보였어. 본 적 없는 표정이었지. 자신을 저렇듯 솔직하게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구나, 느꼈어. 지안이도 마찬가지였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안심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걸까.

p36

'구'는 열차 기관사라는 직업 특성상 고양이 '미래'를 보살피기 힘들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미래'를 봐줄 것을 부탁하다가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인공이 전 여친, '지안'이 현 여친 둘 다 비슷한 경위로 '구'와 연인이 됐다. 화장을 한 '미래'는 스물여섯 개의 돌이 되었다. '구'는 '미래'를 보고 싶어 CCTV를 설치했고 여친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미래'의 장례식에서 '구'와 대화를 통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듣게 된다. 행복한 보였다고 한다.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기란 사실 어렵다. 누군가가 힌트를 준다면 참 좋을텐데.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에게 '미래'의 장례식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자신이 정말 행복할 수 있는 새로운 '미래'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짧은 소설이지만 나에게 전하는 메세지는 결코 작지 않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안다는 것. 그게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우리에게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소한 사실들

두 번째 소설

사회 초년생의 모습이 여실히 담겨있다.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이런 현실이 추억이 되는 순간이 분명 오겠지만 그 과정이 녹록치 않다. 정말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참담한 현실에 악취나는 식당 창고에서의 탈출은 내 속이 다 후련했다. 청소를 하지 않아 곰팡이가 가득한 화장실이며 좁디 좁은 옥탑방이지만 따스히 몸을 뉘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라는 사실에 그저 행복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저 나는 좋았다. 청소만 하면 해결될 일이니까. 정말 무서운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p51

옥탑방 쉐어하우스에서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3명이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부딪히지 않고 '불 끄면 사라지는 바퀴벌레처럼' 서로 피해 주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아 발생했다. 보증금 천만원을 올려달라는 주인의 요구 때문이었다. 결혼 준비로 몇 달간 월세를 낼 수 없었던 언니의 처지, 당장 돈을 더 낼 수 없는 주인공의 처지, 다른 한 명도 별반 다르지 않다.

주인공은 싱가포르로 여행을 제안한다. 현실적으로 정말 가능한 것인지는 둘째문제다. 그저 현실에서 잠시나마 도피해 떠나는 여행을 다녀온 후라면 뭔가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당장 천만원이 없는데 정말 여행을 갈 수나 있을까. 여행에서 돌아오면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에 더 삶이 힘들지는 않을까. 오히려 이야기 밖에서 바라보는 내가 걱정이 된다.

내가 주인공의 처지라면 어떠했을까.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열심히 일해도 쉽사리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좌절감을 맛보며 살아갈 것이다. 나 역시 사회 초년생 시절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힘든 시절이 있었기에 이야기가 공감되었다. 그리고 주인공을 응원하게 된다. 훌쩍 떠나 좀 쉬고 오라고 작은 돈이라도 쥐어주고 싶다. 여행길에서 맛있는 음식 먹으라면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회 초년생들이 사실 이 책을 읽을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든다. 그들은 삶이 힘들어 책 읽는 여유조차 사치일테니. 나처럼 그저 과거의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하는 이들이나 이 책을 읽으며 '그래 그땐 그랬지'라며 반쪽짜리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을 듯 싶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임을 어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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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인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유재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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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인

영과 역이 만나 미지의 영역을 이루었다

"서로 연결고리가 없는 미완의 영역의 집합체가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다."

유재영 작가의 소설 <도메인>을 읽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봤다. 이런 식의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느낀 감정에 정답이 있지는 않을 터이니 마냥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양한 이야기들의 집합의 미묘한 연결성은 마치 우연히 친한 친구를 만나는 듯한 묘한 반가움이 있었다.

주차된 차량도, 텐트도 없었다. 설기와 임자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다. 지혜는 컨테이너 맞은편 억새 군락지를 향해 걸었다. 물비린내가 났고 이편에서 보이는 건 억새뿐이었다.

영 (P50)

<영>과 <역>, 두 개의 챕터로 구분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나의 단어만으로는 그 뜻을 예측하기가 힘들다. <영>은 숫자 0 일수도 있고, 영혼의 영을 의미할 수도 있다. <역>이란 단어 역시 거꾸로 혹은 스테이션 등의 다양한 뜻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래서 뭔가 챕터의 제목만으로는 예측이 힘들었다.

하지만 <역>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인 '영역'이라는 유튜버의 등장으로 그 연결고리를 짐작한다. 인터넷 용어로 익숙한 <도메인>은 영역이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한다.

이런 연결고리를 하나씩 찾는 재미가 있는 게임같은 단편소설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 연결고리를 모두 연결할 수 없다. 작가의 의도다. 각 이야기는 미완의 상태다. 그 미완의 이야기들은 어느 한 매개로 조금씩 연결이 되어 있다. 매우 강한 연결이라 볼 수는 없고 약한 연결이기에 소설을 읽는 매순간 뭔가 불안감이 엄습한다.

영화나 소설에서 만나는 다양한 클리셰를 적절하게 사용해 긴장감이 유지된다. 묘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만으로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지고 그 궁금함에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모든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연결짓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 영역은 뭔가 불편한 수도 있다. 사라 윈체스터의 성, 크리에이티브 캐슬에서 종적을 감추는 느낌처럼 이 소설의 막도 종적을 감춘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가 서로의 변형된 사본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생명체는 서로 모방하고 모사하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온 셈이죠. 창작의 영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역 (P55)

<영>은 두 커플의 캠핑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체의 잔해, 뭔가 께림칙한 캠핑장 관리인, 어둑한 곳에서 나누는 무서운 이야기, 그리고 차량 안 자살의 현장, 야영장에서 주운 다이아 몬드들... 자살의 현장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는데 캠핑장 주인은 자신에게 먼저 말하지 않았다면 화를 낸다. 기묘한 분위기를 끌고 가면서 소설은 우리에게 정답을 쉽사리 알려주지 않는다. 뭔가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쉽사리 확신할 수 없다.

<역>은 주인공은 소설 창작 온라인 강의를 수강한다. 선배의 유튜버 채널의 말을 받아 적는 숙제를 하는 과정에서 '크리에이티브 캐슬: 사라 윈체스터 성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이야기를 접한다. 그 바로 전에 '반딧불이 캠핑장과 저수지의 시체들' 이란 언급을 통해 <영>과 작은 연결고리를 넣었다. 선배 '영역'은 주인공이 말했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인양 말한다.

뭔가 후속편이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명확하게 마무리 지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를 더 궁금하게 했다. 유재영 작가의 후속 작품들에 <도메인>의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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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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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단순하고 소박한 삶, 작지만 확실한 행복



에피쿠로스는 14세에 처음 철학을 접했고, 32살에 자신의 이름을 딴 학교를 세우고 자신의 철학을 전파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600년 정도 지속되며 나름 큰 영향력을 가졌다. 하지만 스토아학파와 기독교에 의해 에피쿠로스학파는 점차 쇠퇴했다. 에피쿠로스는 700권이 넘는 책을 썼다고 하나 지금까지 온전한 것이 거의 없고 이 책에 담긴 서신들이 전부다. 에피쿠로스의 재산이 많았나보다.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나본데 자신의 재산을 분배하는 방법을 글로 적을 정도면 그 부가 상당했음을 짐작한다.

그리스 철학의 한 획을 긋는 에피쿠로스의 철학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가 말하는 쾌락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 책을 읽는다. 에피쿠로스는 서양의 '노자'로 불린다. 참고로 '노자'는 '무위자연'을 주장하는 도가 사상 창시자로 대표 저서는 '도덕경'이다.

쾌락을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쾌락은 가장 으뜸가는 선이자 선천적으로 주어진 선으로 인식하고, 모든 선택과 회피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p112

쾌락의 의미를 오롯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한 번 읽고 두 번 읽어도 좀처럼 내 것으로 확 스며들지 않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박문재님의 해제를 읽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또 한 번 읽어보면서 조금씩 에피쿠로스의 쾌락에 대해 이해를 넓혀갔다.

쾌락이 우리의 목표이자 목적이라고 말할 때, (중략) 방탕한 자들이 추구하는 쾌락이나 어떤 것을 즐길 때 생기는 쾌락을 의미하지 않고, 몸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괴로움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쾌락의 삶을 만드는 것을 끊임없이 술 마시고 흥청거리는 것도 아니고, 동성애나 이성애를 통해 애욕을 즐기는 것도 아니며, 사치스러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생선 요리 같은 것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오직 맑은 정신으로 이성적으로 추론하여 모든 선택과 회피를 위한 근거들을 찾아내고, 마음에 가장 큰 소동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잘못된 생각들을 몰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p114

책의 제목이 <에피쿠로스의 쾌락>이니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쾌락'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의 정의를 알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쾌락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때문에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그 당시 시대에도 같은 이유로 오해와 비방이 있었다. "에피쿠로스는 인생의 유일한 목적은 '쾌락'이라고 천명하고, 모든 고통과 괴로움의 부재를 최대치의 쾌락으로 보았으므로(p194)" 라고 옮긴이 박문재님의 해제에서도 쾌락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내가 이해한 바로 '쾌락'은 '마음이 평온한 상태'가 아닐까 생각한다. 몸이 건강하고 평온한 상태인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어지럽다면 쾌락의 상태라 하기 힘들다.

사려 깊고 아름다우며 정의로운 삶 없이는 쾌락의 삶도 없고, 쾌락의 삶 없이는 사려 깊고 아름다우며 정의로운 삶도 없다. 예컨대 아름답고 정의로운 삶이지만 사려 깊지 않다면,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없는 삶은 쾌락의 삶이 아니다.

p124

아름다움은 모든 미덕을 갖춘 삶, 정의로움은 본성과 일치하는 삶이다. 쾌락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한 후에 어렵지 않은 철학이라 여겼으나, 내용이 조금씩 추가되면서 역시나 쾌락의 삶을 위해서는 결코 쉽지 않음을 느끼는 대목이다. 모든 미덕을 갖춘 아름다움과 본성과 일치하는 정의로움이 필수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또한 본성의 선을 강조하고 있는데 '성선설'에 가까운게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최고선은 세계의 작동 원리와 욕망, 쾌락, 고통의 한계에 대한 참된 지식을 통한 '아타락시아'(마음이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평정한 상태)와 '아포니아'(몸 고통의 부재)라는 소박하고 지속 가능한 쾌락을 누리기 위해 야심과 경쟁으로 마음의 평정을 해칠 수 있는 공적인 삶을 멀리하고, 모든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났을 때 얻어지는 최고의 쾌락을 인생의 유일한 본성적인 목적으로 삼아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으므로 우리가 보통 말하는 '쾌락'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p194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란 단어가 우리를 이끈다. 미니멀리즘, 마음챙김이란 말이 유행처럼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처럼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우리에게 '아락타시아'와 '아포니아'가 쾌락이라 말한다. 욕망으로 들끓는 우리의 삶에 다시 무소유의 마음을 강조하는 에피쿠로스의 철학에 마음이 간다. 새해에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새해가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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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여자들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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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여자들


스릴러의 여왕 메리 쿠비카의 웰 메이드 스릴러 소설






스릴러의 여왕 메리 쿠비카의 소설이다. 그녀의 <디 아더 미세스>를 2021년 8월에 읽고 매우 신선한 충격에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는데, 이번 <사라진 여자들>도 역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정말 예상치 못한 결말과 나름의 해피엔딩에 감탄과 함께 나의 연말을 장식했다.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한다고 한다. 내가 제작자라면 분명 욕심을 낼만한 미스터리 스릴러다.

<사라진 여자들> 도입부부터 압도적이다. 첫 60페이지 정도를 단숨에 휙휙 넘겼다. 프롤로그에서는 한 여자의 불륜을 암시하는 내용과 1부는 딜라일라의 시선에서 납치된 현장에서 탈출하는 내용을 다룬다. 소설의 시작부터 독자를 빨아들이고 소설이 준비한 세상에 한 발을 들이게 된다. 2부부터는 본격적으로 사건의 진실에 점차 다가서는 여정이 펼쳐지고 범인을 유추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부의 내용이 진행되면서 다양한 스릴러의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사건의 진실을 모르고 누가 범인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세 여자의 실종에 모두가 두려운 상황이며 모두가 범인으로 의심이 된다. 그러다 비가 억수로 오는 가운데 갑자기 집에 정전이 되는데 앞집은 전기가 들어오는 상황이랄지, 석연치 않은 산부인과 의사의 권위적인 진찰, 어두운 거리에서 누군가 뒤를 쫓는 듯한 느낌 등의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께림칙한 여자의 공포심을 잘 녹여내고 있다.

등장인물 모두를 의심하게 된다. 아래와 같이 등장인물과 관계도를 그려가며 가장 의심이 되는 사람을 추려보지만 쉽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과 갑작스런 사건이 발단이 되어 11년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둔 살인, 납치, 자살의 진실은 수면 위로 서서히 드러난다. (아래 정보들은 책을 반절 정도 읽었을 때 정리된 내용이다.)







"이름이 뭐예요? 말해줄 수 있나요?" 내가 답하지 않자 여자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원치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요."

내 이름을 묻는 이유는 뭘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말해주었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학한 사람 같아 보이니까. 남의 아이들을 납치해 지하실에 가둘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딜라일라." 목소리가 떨렸다. (중략)

여자의 눈이 점점 커지고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p57

11년 전 사건이 발생한다. 세 명의 여자들이 실종되었다. 그 당시의 3월과 5월 매러디스와 케이트의 관점에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또 하나의 관점인 매러디스의 아들 레오의 관점은 현재의 시점이다. 이렇게 세 명의 시각에서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모든 이야기가 서로 촘촘하게 연관되어 있다.

매러디스는 출산 도우미와 요가 강사일을 하며 딸 딜라일라와 아들 레오를 키우는 엄마다. 옆집에는 케이트와 비아가 함께 사는데 레즈비언 커플로 아이들을 가끔 돌봐주는 친한 이웃이다. 셸비는 임산부로 매러디스가 출산 도우미로 도움을 주고 있다.

11년 전 셸비는 주검으로 발견되고 매러디스는 자살했다. 그 당시 실종된 딜라일라는 11년이 지난 지금 살아 돌아왔다. 11년이라는 세월 지하실에서 감금되어 생활한 딜라일라는 트라우마에 힘든 시간을 보냈고, 다시 돌아온 지금도 원래의 생활로 적응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다. 11년 전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고, 왜 이런 끔찍한 일에 휘말리게 되었을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매러디스는 왜 자살을 했을지

의문 투성이다.





상처에는 시간이 약이라고 한다.

조시와 딜라일라, 레오가 그 증거였다.

내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지만, 언젠가 그때가 내게도 올거라 믿고 있다.

p464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옮긴이의 말에서도 언급되었는데, 바로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주인공을 따라가는 여느 소설과는 다르게 모든 등장인물들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세 사람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의심이 가는 사람이 시시각각 달라지고 그 관점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남에 따라 독자의 입장에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심정이었다. 조이고 푸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맛이 한 가득이다.


또 하나의 특징을 꼽는다면 바로 해피엔딩이다. 이 특징은 다른 소설들과도 비슷한 부분이긴 하지만 다양한 반전을 숨겨 놓고 있음에도 결국 해피엔딩으로 이끌어가는 부분도 작가의 능력이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당위성을 놓쳐선 안되는데 살짝 애매한 부분이 있기 때문인데 소설을 완주한 분들은 이 포인트를 분명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냉정하게 내가 범인의 입장이라면 철저하게 모든 가능성을 차단시킬테니 말이다. (스포를 피하기 위해 이 정도만 적겠다ㅎ)




스릴러의 여왕 <메리 쿠비카>

메리 쿠비카의 소설 중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은 현재 총 세 권이다. (2021년 12월 기준)

- 해피북스투유 출판 <디 아더 미세스>(2021.07)

- 해피북스투유 출판 <사라진 여자들>(2022.10)

- 레디셋고 출판 <굿 걸>(20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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