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표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이대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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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표

이대연 작가의 <부표>, <전> 두 단편 소설이 담겨있다.

생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표>는 현실에서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과 자신의 업이 자연스레 연결되어 생생함을 더하고 있다. <전>은 과거 인조 반정의 시대에 대한 역사 소설에 허구를 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역시 생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등장인물들의 처한 상황이 매우 고되며 그 감정들이 잘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부표

첫번째 소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매우 담담하게 그렸다. 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한편으로는 이해가 느껴지는 글이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거금을 보여주겠다는 아버지는 원양어선, 화물선을 타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 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가족에게 일확천금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교통사로로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허망했으며 가족들에게 전해진 보험금 역시 고작 3천만원에 불과했다.

사 톤짜리 거대한 돌덩이 두 개가 쇠사슬 끝에 매달려 허공으로 떠올랐다. 침추까지 인양하면 어려운 고비는 넘긴 셈이었다. 작업반원들이 바빠졌다. 일부는 침추에 갈라지거나 파손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고 일부는 낡은 쇠사슬을 끊고 새 쇠사슬로 교체했다. 새 등부표에 연결된 쇠사슬이었다.

p29

바다의 부표를 교체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거대한 크레인으로 오래된 부표를 끌어 올려 새 부표로 교체를 하는 일이다. 자칫 끔칙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일의 진행 과정이 나름 상세하게 다뤄지고 있는데 내가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업의 자체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셈일 수도 있다.

아버지의 죽음과 부표의 교체 작업이 묘하게 교차한다. 새로운 부표를 다는 작업으로 새 생명을 얻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아버지의 뇌사 판정으로 타인에게 아버지의 장기가 전해지는 과정이 또 다른 새 생명과도 같이 느껴진다.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는 그 과정은 새로운 삶이자 죽음인 것이다. 그 경계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어 더욱 실감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傳)

첫번째 소설

인조반정의 역사적 사실의 기반에 허구를 더해 단편 소설 <전>이 태어났다. '배대유'의 방으로 '무명'이 침입한다. '무명'의 한 손에는 '시방'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시방'의 졸기를 써달라며 찾아왔다. 졸기는 죽은 이의 평가를 더한 일종의 전기이다. 반정의 과정에서 왕을 지키다 죽음을 맞은 시방을 위한 졸기인 것이다.

화로를 내려놓고 방문을 닫는데 무명이 꿈을 꾸는지, 앓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대는 꿈속에서도 싸우는 것이오? 정여립의 제자이면서 이몽학의 친구였던 사람, 강변칠우와 교류하며 허균과 광해를 죽이려 했던 사람, 누구보다 앞장서 왜군과 싸웠던 사람. 그렇게 전란과 민란을 오가며 한 갑자를 살아온 사람. 그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그는 또 무슨 힘으로 남은 생을 살아갈 것인가?

p67

둘의 관계는 죽음과 생의 교차점에서 두 번의 인연이 있었다. 졸기를 쓰는 배대유는 이 죽음에 대해 어떻게 적어야 할지 어렵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필사의 노력과 고뇌 아래 녹록치 않는 당시 상황을 설득력 있게 펼치고 있다.

역사 소설이기에 사용되는 단어들이 나에게 낯선 부분이 종종있었다. 사극 드라마에서는 자막으로 그 뜻을 전하기도 하는데 이 소설에는 그런 부분이 없어 나의 어휘력의 부족함을 살짝 느꼈다. 대략 그 뜻을 이해하나 설명하라면 하기 힘든 단어들이랄까. 살짝의 핑계를 대본다. 그럼에도 무명이란 인물이 뭔가 생생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음이 이 소설이 나에게 특별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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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 오늘의 시인 13인 앤솔러지 시집 - 교유서가 시인선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공광규 외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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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시인 13인 : 앤솔러지 시집

공광규, 권민경, 김상혁, 김안, 김이듬, 김철, 서춘희, 유종인, 이병철, 전영관, 정민식, 한연희, 조성국

시를 읽은지가 언제였더라. 나에게 시는 좀 어렵다. 명료하게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공대생 출신에게 시는 답이 없는 문제로 다가온다. 그래서 좀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저 시라는 문학을 멀리만 하기에 공대생의 범주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시집을 펼친다. 어렵기는 하지만 어렴풋하게 전해지는 시인의 의도에 감탄을 하기도 하고 머리를 갸우뚱 하기도 했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훌륭한 시를 알아보는 식견이 부족해 그럴 것이다.

잘 모르는 시인의 시집을 선뜻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데, 13인 시인의 신작 시들이 한 권에 담겨 있기에 다양한 시를 만나볼 수 있어 좋다. 13인의 시인 중에 한 사람이라도 나와 맞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공이라 할 수 있다.

다 소모된 것과 사라진 것의 차이는 뭘까

이 세상에 여지없는 것들

그것을 찾아 나는 어디를 이리 떠도는 것인지

이 세상에 없는 것 / 김이듬 (p65)

김이듬 작가님의 <이 세상에 없는 것>이 기억에 남았다. 시와 에세이 그 중간 즈음 느낌의 시였는데 짧지만 강력한 여윤이 남았다. 금은방에 오래된 시계의 단종된 배터리를 찾아 방문한 내용을 시에 담았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금은방에서도 답을 구하지 못한다.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몸을 거래하는 유령들의 골목과 단종된 시계 알의 처지는 겹쳐진다.

가라앉은 마음에는 올라오라고 #을

화가 치솟아 누군가를 다치게 할 때는 침착하라고

b 을 붙여주는 감정 조정인인데

조율사 산업기사라는 자격증이 붙었다

조화보다 규격을 믿는 세상이다

피아노 조율사 / 전영관 (p128)

전영관 작가님의 <간병인>, <피아노 조율사>는 재치가 넘치는 시다. 평소 크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직업이 새롭게 다가온다. 또한 그에 그치지 않고 우리 인생사에 빗대어 새로운 해석을 더했다. '의사가 흘린 표정을 가족에게 읽어주는 눈치'라는 표현이라던가, '차별받고 억울하고 울렁거리는 생을 조율할 수 있다면 그에게 부탁하고 싶다' 는 표현들에 특히 공감했다.

생채에 머리를 박아 감정을 파먹고 사는 나는 연민에 노출될 위험이 커서 눈과 귀의 통점들을 스스로 뜯어 내며 민막으로 진화했다.

우리집 개는 물지 않아요.

대신 내가 뭅니다.

개같은 진화 / 조성국 (p171)

조성국 작가의 <개같은 진화>, <하이힐 2>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짧은 표현들 안에서도 작가의 의도와 그 의미가 분명하게 나에게 전해졌다. 짧은 몇 줄의 글을 통해서 그 함축적인 의미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비유적 표현이 정말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또한 하이힐 2는 한 순간의 살인 사건을 풍자적 느낌으로 풀어 표현한 점이 인상깊었다.


시라는 장르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어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며, 혼란스럽기도 하고 통렬한 풍자들이 날카롭게 현상 지적한다. 시인마다 각기 다른 느낌과 표현 방식들이 신선하고 놀라웠다. 각기 가진 개성을 한 껏 잘 품고 있다. 내가 잘 모르는 단어들도 많이 만났다. 새로운 단어의 뜻을 찾아보며 더 깊게 시를 이해했다. 다양한 단어들과 표현들이 가진 특유의 향을 잘 녹여내는 능력에 감탄했다.

살짝 푸념을 섞어 본다. 어느 나라의 언어나 비슷하겠다만은 한글로 적힌 시가 다시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번역이 된다면 그 의미를 고스란히 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단어만이 가진 특유의 맛이 번역을 통해 퇴색될 수 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을 수 있을 법한 좋은 우리 나라의 시들이 많은데 번역이라는 허들이 매우 높아 안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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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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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정은영 작가의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와 <소년과 소년> 두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다.

미래의 모습을 전문적으로 하는 작가인가 보다. 다양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미래 사회의 모습이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SF 장르를 좋아해 마음이 가는 소설들이었다. 그저 미래만 담았다기 보다는 윤리적 문제라던가 사회 이슈가 될 수 있을만한 내용을 함께 다루고 있어 더욱 재미있다. 정말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내용들이 많았고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문제들이어서 더 좋았다.

얼마전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정이>의 내용과 닮아 있는 요소들이 많아 또한 흥미로웠다. SF 미래 사회와 더불어 감정을 소유한 로봇이라는 설정도 닮았고, 복제 인간을 다뤘다는 점에서도 닮아 있다.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첫번째 소설

미래 사회 임산부가 태아를 잉태했다. 그런데 이 임산부는 로봇이다. 태아를 위해 시를 낭송하고 정서적 태교를 위해 성심 성의껏 임산부의 역할에 충실한다. 임산부 로봇 헐스와 태아 행복이는 문제없이 잘 자라는 듯 했다. 하지만 안면장애 판단을 받은 태아는 장애아 출산률 0%를 위해 유산되어야만 했다. 유산되면 임산부 로봇의 기억은 지워진다. 이로인해 로봇은 버그가 생겨난다. 버그는 어렴풋한 기억의 파편으로 떠오른다.

"행복이를 위한 일은 내가 더 잘 알아. 넌 이제 리셋될 거야. 임산부 로봇은 임산부가 아니라 로봇이라는 걸 잊지마."

"저는 행복이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않겠습니다. 행복이를 살릴 겁니다. 함께한 38주도 저장할 겁니다. 그것만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p29

유산 작업을 처리하는 고물상 역시 안면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이 매우 아이러니하게 비춰진다. 장애를 가진 태아를 유산시키는 윤리적 문제와 로봇의 감정이라는 상상을 더해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AI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현 상황에서 언젠가 정말 임산부 로봇이 세상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소년과 소년

두번째 소설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단숨에 읽었다. 그저 미래를 배경으로 한 중2 문제아 김선호와 뇌 전문 의사 아빠와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다. 선호는 위험하게 플라잉카를 타다 사고를 당한다. 뇌 전문 의사인 아빠의 병원에서 선호는 깨어난다. 심하게 다쳤지만 미래 기술로 인해 수술을 받고 완쾌해 집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선호는 가상담배를 찾고 정신을 차릴 여지가 없다. 또한 아이들을 괴롭혀 강제전학을 당할 처지다.

일기장의 첫 장을 잘 못 썼다면? 일기를 새로 쓰고 싶다면?

p51

미래를 배경으로 한 신선한 소재들이 등장해 흥미로운 점도 잠시 선호에게 새로운 자아가 나타난다. 마치 두 개의 자아가 있는 것처럼 다른 자아가 활성화되어 착한 선호가 된다. 하지만 선호의 반항 기질은 바뀔 줄 모른다. 폭주 비행을 하자는 말에 당장 플라잉카를 몬다. 그러다 다시 사고가 나고 아빠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다. 이번엔 저번보다 더 크게 다쳤다. 옆에는 다른 소년이 누워있고 무언가 자신에게 이식된다. 수술이 끝나고 선호는 더이상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마지막 반전의 내용을 적지는 않았다. 그저 반항아의 자아 분열과도 같은 내용이라 생각했는데, 뇌 과학의 발달로 인해 일기장을 새로 쓴다는 광기어린 내용이었다. 미래의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할지 알수 없고 가늠조차 하기 어렵지만 그만큼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음식 맛을 최상으로 끌어 올리기는 무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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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송지현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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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송지현 작가의 <김장>과 <난쟁이 그리고 에어컨 없는 여름에 관하여> 두 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소소한 에피소드들 사이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김장>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보냈던 아름다운 추억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죽음과 삶의 연속성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난쟁이 그리고 에어컨 없는 여름에 관하여>는 청년의 불안감과 불안정한 그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즐거운 파티 속에 있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사람들의 현실의 혼란을 느낀다.


김장

첫번째 소설

뭔가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동시에 점점 그 정이 사라져감을 느낀다. 함께 김장을 하고, 이웃과 김치를 나눈다. 김치를 받은 이웃은 그냥 보내지 않고 손에 무언가를 쥐어준다. 이런 모습은 더이상 도시의 삶에서 보기 힘들다. 예전보다 수위가 낮아진 냇가의 물도 점점 말라간다. 점차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정이 비유적으로 표현된게 아닌가 싶다.

할머니가 올해는 팔이며 허리가 아파 혼자 김장을 할 수 없다고 했다며 엄마가 덧붙였다.

"외가를 통틀어 회사고 가게고 아무데도 안 가는 사람은 너네뿐이다." 별수 없이 동생과 내가 가겠다고 했다.

p17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잉여 인력이라는 이유로 김장 노동 현장에 발탁된다. 짧은 소설 안에 이런 저런 에피소드가 결합되어 있는데, 할머니는 몇 차례나 죽음을 마주한다. 캔 뚜껑을 모으다가 캔 무덤 속에서 시체를 발견했다. 동네 다리에서 우연히 이웃의 손자의 목메단 시체를 봤다. 할머니는 이상하리만큼 차분하고 동요가 없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토록 쉽사리 무너질 수 있으나 그마저도 초월한 할머니의 모습이 초연하다.

옆 집 가게와 실랑이를 벌이던 엄마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가게의 주차 문제로 쉽사리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듯 싶어 보였는데, 손주의 귀여운 모습을 칭찬한 이 후로 관계가 스르르 풀렸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갈등 안에서 직접적인 칭찬이 아닌 손주를 칭찬했는데도, 관계는 극적인 우호를 맺는다. 참 사람사는 모습이 재미있고 정이 모든 것을 감싸주지 않나 생각해 본다.


난쟁이 그리고 에어컨 없는 여름에 관하여

두번째 소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떠오르는 제목이다. 소설 안에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에이컨이 설치되지 않은 집에 살며 집 외벽의 에어컨 구멍으로 작은 사람의 형태가 보인다. "...엔 날개가 없다. ...은 추락"이라는 목소리의 울림도 들려왔다. 불안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일까. 마치 그 난쟁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안하게 껴있는 자신의 모습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가늠해 본다.

우리는 버선을 신고 맘껏 미끄러졌다.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에서 어떤 음악이 나오든 계속해서 미끄러졌다. 나는 미끄러지면서 문장을 만들었다. 슬픔엔 날개가 없다. 인간은 추락. 아니 더 큰 단어로. 감정엔 날개가 없다. 생명은 추락. 다시 작은 단어로. 가위엔 날개가 없다 가윗날은 추락.

작은 슬픔들이 모여서 나를 만들고 있다. 작은 슬픔이 모인 것이 나다. 나는 작은 슬픔이다.

p63

제이라는 인물은 소아암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래서 머리가 듬성듬성하다. 캐나다 교포 2세다. 파티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버선을 모으는 게 취미란다. 별난 취미도 다 있다 싶다. 버선을 타고 미끄러지는 매력에 빠졌다나.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미끄러져봐"라는 그녀의 말에 묘한 위로를 받는다.

g라는 인물은 남편과 이혼하고 고양이를 유기했다. 홀로 아이를 키운다. 술에 취해 아이에게 죽으라고 소리를 지르는 엄마다.

돌아갈 곳이 없다. 제이는 자신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고, g는 아이의 엄마로 돌아간다. 불안하고 어디하나 발 붙이기 힘든 느낌의 현실이 느껴진다. 사진기에 파티에서 사람들을 담는다. 그들과의 대화와 만남을 통해 불안한 그들의 삶을 목도한다. 청년의 어지러운 삶, 불안하고 불면증이 솟아나는 현실을 보여주는 듯 하다. 신나는 파티의 현장에 서 있지만 어디 발 붙이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그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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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이해하는 사이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주원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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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이해하는 사이

코믹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장르의 웰메이드 단편 소설

김주원 작가의 <십분 이해하는 사이>와 <우주맨의 우주맨에 의한 우주맨을 위한 자기소개서> 가 한 권에 담겨 있다. 정말 오랜만에 완성도 있는 단편을 만난 느낌이다. 짧지만 결코 모자람없는 구성과 내용이었다. 두 편의 소설은 서로 정말 다른 이야기지만 옥상이라는 공간에서 발생한 한 사건에 의해 빛을 발한다.

코믹이 가미된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장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내용을 모두 읽고 한 동안 멍해 있었다. 감탄과 함께 그래, 단편은 이렇게 써야하는 거지!


십분 이해하는 사이

첫번째 소설

옥상에서 고등학생 두 명이 실랑이를 한다. 처음엔 뭔가 싶었다. 둘이 뭔가 의견이 맞지 않는 듯 한데. 그러다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데 한 명이 뛰어내리려나보다. 그걸 다른 한 사람이 막으려 회유하는 모습이다. 그런 실랑이를 벌이는 대화에 약간의 개그를 넣어가면서 지루할 틈 조차 주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회유에 성공하고 둘은 내려온다.

그래, 나는 지금 네 마음이 어떤지 몰라. 하지만 나는 이런 것도 이해라고 생각해. 바로 옆에 앉아서 너의 마음이 어떨지 헤아려보는 거 말이야.

p24

간단한 줄거리만 들었을 때는 그냥 단순한 내용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반전의 내용을 접하게 되면 상황이 급변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이 짧은 단편을 한 번 더 읽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파급력있는 반전이다. 다시 읽다보니 와, 정말 대단하다. 처음 읽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다시 읽으니 다른 소설로 다가온다. 주고 받는 대화 속에 숨겨진 단어들을 발견하면서 소름이 돋는다.

'단편이 이렇게 써야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짧아서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읽고 싶은 그의 소설이다. 얼른 다음 소설을 읽고 싶어 다음 소설로 넘어갔다.


우주맨의 우주맨에 의한 우주맨을 위한 자기소개서

두번째 소설

이 소설도 옥상이 나온다. 전혀 다른 소재이지만 옥상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은 비슷하게 구성했다. 약간의 무기와 같은 이 장치가 참 마음에 든다. 이 옥상에서의 일로 꼬마는 우주맨이 된다. 옥상에서 만난 형이 준 선물로 지구에서 매우 특별한 존재가 된다.

집에서 뒹굴거리는 청년 실업은 아니고, 잠시 휴업 중인 김세종. 누나 김서희씨 빌라에 빌붙어 살면서 은행 청원 경찰 지원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려 한다. 이를 초등학생 조카 김한솔 군이 도와주고 있다. 김서희씨는 욕받이로 김세종을 집에 데려와 각종 욕을 퍼붇는다. 이를 애정표현으로 여기는 김세종은 똘똘한 김한솔 군과 함께 미래를 도모한다.

꼬마야. 우주맨에게 중요한 건 바로 포지다. 이렇게 멋지게 가슴에 딱 갖다대는 거야. 그런데 사실은 이거 안 해도 돼. 그냥 폼이야. 넌 그냥 두 눈을 감고 '전화기 나와라' 마음속으로 외치기만 해도 된다고. 그리고 네가 마음속으로 말해도 상대방은 너의 말을 다 듣는다.

p70

조카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조카의 행방을 뒤쫓는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조카의 행방을 찾아내고 경찰에 신고한다. 우주맨의 기술을 활용해 무사히 조카를 구한다. 그리고 조카를 위해 우주맨을 포기하면서 까지 마지막 우주맨의 기술을 사용해 조카를 보호하게 된다.

미스터리 소설답게 우주맨의 능력을 얻는 과정부터 우주맨에서 일반인이 되는 과정까지 범상치 않은 내용이다. 하지만 정말 있을 법하게 잘 버무린 내용이 정말 재미있었다. 작가는 코미디와 미스터리, 스릴러를 적절하게 섞어 맛있는 비빔밥으로 만들었다. 나는 이 비빔밥을 맛있게 즐겼다. 강력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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