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 오늘의 시인 13인 앤솔러지 시집 - 교유서가 시인선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공광규 외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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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시인 13인 : 앤솔러지 시집

공광규, 권민경, 김상혁, 김안, 김이듬, 김철, 서춘희, 유종인, 이병철, 전영관, 정민식, 한연희, 조성국

시를 읽은지가 언제였더라. 나에게 시는 좀 어렵다. 명료하게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공대생 출신에게 시는 답이 없는 문제로 다가온다. 그래서 좀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저 시라는 문학을 멀리만 하기에 공대생의 범주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시집을 펼친다. 어렵기는 하지만 어렴풋하게 전해지는 시인의 의도에 감탄을 하기도 하고 머리를 갸우뚱 하기도 했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훌륭한 시를 알아보는 식견이 부족해 그럴 것이다.

잘 모르는 시인의 시집을 선뜻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데, 13인 시인의 신작 시들이 한 권에 담겨 있기에 다양한 시를 만나볼 수 있어 좋다. 13인의 시인 중에 한 사람이라도 나와 맞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공이라 할 수 있다.

다 소모된 것과 사라진 것의 차이는 뭘까

이 세상에 여지없는 것들

그것을 찾아 나는 어디를 이리 떠도는 것인지

이 세상에 없는 것 / 김이듬 (p65)

김이듬 작가님의 <이 세상에 없는 것>이 기억에 남았다. 시와 에세이 그 중간 즈음 느낌의 시였는데 짧지만 강력한 여윤이 남았다. 금은방에 오래된 시계의 단종된 배터리를 찾아 방문한 내용을 시에 담았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금은방에서도 답을 구하지 못한다.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몸을 거래하는 유령들의 골목과 단종된 시계 알의 처지는 겹쳐진다.

가라앉은 마음에는 올라오라고 #을

화가 치솟아 누군가를 다치게 할 때는 침착하라고

b 을 붙여주는 감정 조정인인데

조율사 산업기사라는 자격증이 붙었다

조화보다 규격을 믿는 세상이다

피아노 조율사 / 전영관 (p128)

전영관 작가님의 <간병인>, <피아노 조율사>는 재치가 넘치는 시다. 평소 크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직업이 새롭게 다가온다. 또한 그에 그치지 않고 우리 인생사에 빗대어 새로운 해석을 더했다. '의사가 흘린 표정을 가족에게 읽어주는 눈치'라는 표현이라던가, '차별받고 억울하고 울렁거리는 생을 조율할 수 있다면 그에게 부탁하고 싶다' 는 표현들에 특히 공감했다.

생채에 머리를 박아 감정을 파먹고 사는 나는 연민에 노출될 위험이 커서 눈과 귀의 통점들을 스스로 뜯어 내며 민막으로 진화했다.

우리집 개는 물지 않아요.

대신 내가 뭅니다.

개같은 진화 / 조성국 (p171)

조성국 작가의 <개같은 진화>, <하이힐 2>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짧은 표현들 안에서도 작가의 의도와 그 의미가 분명하게 나에게 전해졌다. 짧은 몇 줄의 글을 통해서 그 함축적인 의미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비유적 표현이 정말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또한 하이힐 2는 한 순간의 살인 사건을 풍자적 느낌으로 풀어 표현한 점이 인상깊었다.


시라는 장르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어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며, 혼란스럽기도 하고 통렬한 풍자들이 날카롭게 현상 지적한다. 시인마다 각기 다른 느낌과 표현 방식들이 신선하고 놀라웠다. 각기 가진 개성을 한 껏 잘 품고 있다. 내가 잘 모르는 단어들도 많이 만났다. 새로운 단어의 뜻을 찾아보며 더 깊게 시를 이해했다. 다양한 단어들과 표현들이 가진 특유의 향을 잘 녹여내는 능력에 감탄했다.

살짝 푸념을 섞어 본다. 어느 나라의 언어나 비슷하겠다만은 한글로 적힌 시가 다시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번역이 된다면 그 의미를 고스란히 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단어만이 가진 특유의 맛이 번역을 통해 퇴색될 수 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을 수 있을 법한 좋은 우리 나라의 시들이 많은데 번역이라는 허들이 매우 높아 안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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