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국가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50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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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국가

서양철학의 토대를 만든 핵심 개념의 시작



열심히 정리한 인물 관계도는 정말 쓸모 없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스승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등장인물의 관계를 익히고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 아래와 같이 등장인물 관계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 인물의 관계도는 하등의 쓸모가 없다. 그러니 아래 인물 관계도는 무시하고 넘어가도 좋다. 그냥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제자라는 사실 하나만 알면 충분하다. 그런데 플라톤 국가에서는 플라톤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이며 다른 등장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진리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인물 관계도

<플라톤 국가>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다

하지만 깊이 들어 갈수록 어렵다

플라톤은 약 2400년 전의 철학자다. 지금 이 시대에 동떨어진 고전이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꼭 그렇지는 않았다. 물론 이 책의 모든 내용이 정답이라 말할 수는 없다. 현 시대와 맞지 않는 부분도 존재하고 적용시키기 쉽지 않는 내용도 많다. 하지만 정의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권선징악과도 같은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악한 이들이 승승장구하는 이 세상에 정의가 없다고 단념한다면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의욕이 떨어질까. 세상의 정의는 분명 옳고, 악보다 선이 옳다고 말하는 플라톤의 주장을 우리는 믿고 싶다.

책은 생각보다 쉽게 읽히는 편이다. 하지만 그 내용이 정말 쉽지는 않다. 술술 대화하듯 읽어나가기는 쉽지만 그 내용이 결코 쉽다고 할 수는 없다. 한 단계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결코 쉽지 않은 내용들이다. 하지만 막연하게 생각하기 보다 호기롭게 책을 펼쳐 읽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며,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다.

문답식의 논리 전개 방식이 마치 정해진 길을 따라 여정을 떠나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플라톤(소크라테스)의 논리에 흠뻑 취하는 하나의 장치로 작용하기도 한다. 플라톤이 말하는 국가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국가의 모습을 빗대며 생각해보며 책을 읽어나갔는데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소크라테스 문답법을 맛보기

정의의 정의

혼의 상태가 나쁘면 잘못 통치하고 관리하겠지만, 혼의 상태가 좋으면 훌륭하게 통치하고 관리할 수밖에 없네 (중략) 정의로운 혼과 정의로운 자는 훌륭하게 살겠지만 불의한 자는 형편없이 살게 될걸세 (중략) 그러면 훌륭한 삶을 사는 사람은 축복받고 행복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반대일걸세 (중략) 그러니 정의로운 자는 행복하고 불의한 자는 불행하네 (중략) 그렇다면 트라시마코스, 불의는 결코 정의보다 더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이네.

제1권 (p66)

소크라테스가 트라시마코스와 정의와 불의에 대한 토론을 하는 제1권의 내용이 흥미진진했다.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엇갈리는 두 사람의 열띤 토론이 아슬아슬하면서도 의미있는 방향으로 토론이 진행되는 과정이 재미있다. 물론 일방적이긴 토론이긴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논리에 서서히 매료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뭔가 반박의 여지가 있는 듯 하면서도 소크라테스의 현란한 드리블은 '불의가 정의보다 더 이익이다'라는 주장을 확실하게 박살낸다. 특유의 문답법을 통해 진행되는 이야기가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색다르면서도 그 문답의 과정이 흥미로웠다.

제1권에서 정의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시작하나 싶었으나 정의에 대해 말문을 트는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정의에 대해서는 책 전반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에 대해 익숙해지는 단계로 느껴졌다.

수호자와 철학자

이상적인 국가는 철학자가 통치하는 국가

먼저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어떤 사유재산도 소유해서는 안 되네. 아무나 출입을 할 수 없는 집이나 창고를 가지고 있어도 안 되네. (중략) 그들이 자기 땅과 집과 돈을 소유하게 되면 더 이상 수호자가 아니라 집주인 내지 농부가 되는 것이고, 시민의 동맹군이 아니라 그들을 적대시하는 노예 주인이 되는 것이네. 그러면 그들을 미워하기도 하고 미움을 받기도 하고, 음모를 꾸미기도 하고 당하기도 하면서,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을 훨씬 더 두려워하며 일생을 살게 될 것이네.

제3권 (p174)

수호자와 통치자의 구분이 모호했다. 책을 읽고 내가 이해한 바로는 수호자는 넓은 의미로 통치자와 방위자(군인이나 경찰)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제6권에서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철학자는 지혜를 추구하는 자이기에, 지혜와 지식을 갖춘 철학자들이 통치하는 국가가 이상적이라 말한다.

수호자는 사유재산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부분이 참 재미있다. 현재의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따르는 의견이지만 엄중한 잣대로 바라본다면 매우 맞는 말이다. 수호자가 사유재산을 지키는데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국가를 수호하는데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되면 참 재미있지 않을까. 물론 반말이 거세 적용자체가 불가하겠지만.


필요 덕목 : 지혜, 용기, 절제, 정의

훌륭한 국가의 필요 덕목

사실 정의는 외적으로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라기보다 내적으로 혼의 세 부분이 조화를 이루어 절제 있고 조화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네. 혼의 각 부분이 자기 일이 아닌 것은 못하게 하고 서로 간섭하지 않게 하며 자기 것을 잘 안배하여 질서정연하게 스스로 통치하는 것이지 (중략)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정의롭고 아름다운 행위라 부르고, 그런 행위를 주관하는 지식을 지혜라고 부르지.

제4권 (p219)

제4권에서 정의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훌륭한 국가에 필요한 덕목인 지혜, 용기, 절제, 정의에 대해 언급하며 이 덕목이 조화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의로운 행위는 건강한 것, 건강한 것은 사람을 건강하게 하고, 정의로운 행위는 정의를 낳고, 미덕은 혼의 건강함이고 아름다움이며 좋은 상태다. 훌륭한 습관은 미덕으로 이끈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정의를 행하고 훌륭함을 추구하며 정의로운 것이 더 이익이 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좋음의 이데아

동굴의 비유

인식할 수 있는 영역에서 친신만고 끝에 최정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 좋음의 이데아[원형]이라고 생각하네. 일단 보고 나면 이것이 모든 올바름과 훌륭함의 원천임을 알게 될걸세. 이 원형은 시각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빛과 빛의 주인을 낳고, 지성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스스로 주인이 되어 진리와 지성을 제공하기 때문에, 장차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지혜롭게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원형을 보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네.

제7권 (p338)

동굴의 비유를 들어 좋음의 이데아를 설명하는 내용은 그 차제만으로 깊게 다루어져야하는 주제다. 동굴의 죄수는 진짜가 아닌 가짜 세상에서 살아간다. 동굴의 죄수를 보통 사람에 비유하고 있다. 진짜 세계는 동굴 밖에 있다. 즉 좋음의 이데아다. 처음에는 눈이 부셔 눈을 뜰 수조차 없는 대상이다.

"지성을 통해 수의 본성을 알 때까지 수학을 익히게 하는 것이 좋겠네(p353)" 혼이 진리와 본질 쪽으로 방향 전환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수학이라 말한다. 군대 운용을 위한 기하학, 농사와 항해 및 전술을 위한 천문학, 본질을 설명할 수 있는 추리 능력을 기르기 위한 변증학을 통해 동굴 안의 죄수들을 동굴 밖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지혜의 탐구

가장 진정한 즐거움을 얻는 방법

이익을 탐하는 부분이나 이기기 좋아하는 부분에는 많은 욕구가 있는데, 이 부분이 지식과 논리적 추론과 협력하여 즐거움을 추구하며 지혜가 지시하는 즐거움만 추구한다면, 진리를 따르고 있으니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장 진정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말일세. 그리고 각 부분에 가장 훌륭한 것이 각 부분에 가장 고유한 것이라면, 그 또한 고유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말일세.

제9권 (p466)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가장 진정한 즐거움을 얻는 자임을 논하고 있다. 돈을 버는 데서 즐거움을 찾난 사람,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중 단연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가장 진정한 즐거움을 얻는 자일 수 밖에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쯤되면 그의 말에 반기를 들기가 쉽지 않을텐데 나는 그냥 셋 다 추구하는 사람이면 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가져오는 힘을 본 입장에서 지혜를 탐구하는 일이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배경을 고민해 본다. 사실 플라톤은 부유한 집에서 살았기에 돈이 궁한 삶을 살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지혜가 최고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지혜가 가져오는 즐거움을 부정하기는 힘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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