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달려라, 아비>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한남자의 반바지 차림, 다리털 송송 드러내며 어디론가 달려 가는 듯한 분위기의 표지. 밤인가 보다. 저 멀리 초승달이 보인다. 지구본인듯한… 어쩜 작가의 말처럼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아비의 모습을 그려놓은 듯하다.

“내겐 아버지가 없다. 하지만 여기 없다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계속 뛰고 계신다. 나는 분홍색 야광 반바지 차림의 아버지가 지금 막 후꾸오까를 지나고, 보루네오섬을 거쳐,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는 아버지가 지금 막 스핑크스의 … 아버지는 뛴다. 물론 아무도 박수쳐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달려라, 아비>에서 지극히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을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리고, 열심히 뛸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재치있게 표현하고 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기다려주지 않을 뿐더라 그런 아버지에게 박수쳐주지 않는다. 그리고, 도망간 아비에 대한 원망도 그리움도 없다. 단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끊임없이 세계를 향해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꺼졌다. 켜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성실하게 했다. 그것이 가끔은 어떤 기적을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카이 콩콩>에서 집 앞 가로등의 삶을 표현한 글은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밖에 없는 길거리의 가로등일지라도 그대로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글이다.
작가의 세밀한 관찰력과 폭넓은 표현력을 느끼기에 충분한 글이다. 그래서 어쩜 내가 김애란 작가의 글을 읽으며 공감을 하게 되고 평범한 일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닌지…

“그녀는 언제나 누군가를 배려하고 있지만 자신이 배려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을 안다.” “그녀는 결정하거나 선택하는 일만큼 거절하는 일도 능숙하지 못하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에서는 불면증에 걸린 여자의 일상에서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결국 잠들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각에 빠져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생활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누구나 남의 시선과 행동에 신경 쓰며 살게 되고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질 모습을 생각하며 행동하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 배려하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남을 배려하는 듯한 행동을 하지만 결국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를 배려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자주 상상한다. 나는 나에게서 당신만큼 멀리 떨어져 있으니 내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나를 상상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상상하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모습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상상을 빌려오는 사람이다.”
<영원한 화자>에서는 그에게 가는 길 열차 안에서 만나게 된 고등학교 동창생과의 대화 중 자신의 목적지를 잠시 잃어버린 화자. 자신의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 고등학교 동창생의 이야기들… 자신의 기억과 다른 기억들에 대한 혼란. 자신의 기억속에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꺼내기 위한 화자의 노력이 오롯이 담겨 있는 표현에서 나의 기억 속에 있는 이 기억들이 어쩌면 나의 상상에 의해 또는 타인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기억들이 아닌지... 어쩜 우리의 기억은 타인의 상상에서 빌려오는 상상의 기억들일지도 모른다.

“내 꿈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보통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남보다 두배는 더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몰랐지만 말이다.”
<사랑의 인사>에서 자신을 버린 아버지가 실종되었다고 말하는 주인공. 그는 보통사람이 되기 위해 남들보다 두배 더 노력해야 된다는 것에서 자신이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다. 어느날 자신이 일하는 수족관을 관람 온 아버지를 보고 자신을 알리려 하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 하지는 이곳의 등장하는 주인공 또한 원망하지 않는다. 김애란 작가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서로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들의 삶을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나갈 때 꼭 문을 잠그고 나갑시다. 신발 도둑맞은 사람이 있습니다.”
“밤 열시 넘어서는 세탁기를 돌리지 맙시다.”
포스티잇에 쓰여진 누군가의 항변. <노크하지 않는 집>에 살고 있는 다섯 여자들의 무언의 의사표현이다.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들에게는 각자의 삶의 패턴이 있다. 누군가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방해 받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 노크하지 않는 집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독신 남녀가 겪게 되는 삶의 한 표상을 나타내고 있는 건 아닌지…

<달려라, 아비>의 작품들 하나하나가 우리 주변에 쉽게 지나치고 잊혀지기 쉬운 소재를 바탕으로 깊이있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일까 쉽게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고,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결코 쉽지 않은 그러나 쉬운 듯한 표현들도 한번 지나쳐 읽어나갈 수 있는 글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그녀의 글이 결코 얇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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