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나는 진정한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막 숨을 거둔 사람에게도 생명의 기운은 아직 남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행위이기에 향기보다는그런 퀴퀴한 냄새를 풍기기 마련이다. 그 희미하고 옅은 잔여물은 어쩌면 생전의 무게와 관련된 냄새일지도 모른다. - P135

 나는 여전히 죽음이란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죽음은 어머니가 물건이라는 짐보따리를 내려놓게 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알고 보니 과거에 그 집이 머금은 냄새는 죽음에 가까워졌거나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 풍기는 썩은 내가 아니라, 어머니의 고단한 삶의 무게였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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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안에서 쓸모없는 물건이 차츰 줄어들며 집의 영혼이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은 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주었다. - P98

담배 피우는 습관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가갈 수 없는 여인의 창문을 훔쳐보는 대신 가로등 밑에서 담배 피우는 척이라도 할 수있을 텐데. - P102

나는 그래도 가진 돈이 좀 있어서, 제대로 된 집을 얻어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면서 살아도 되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내면, 내 인생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 P105

하지만 나는 그게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연애하는 사람에겐 귀신이 범접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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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미래를 증오하는 사람일수록 미래를 더더욱 풍부하게 상상하는지도.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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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발적 범죄의 피해자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작고 약하다는 것이었다. 맥고언이 보기에 상대가 자신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어떤 범죄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P107

그 말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은 자신이 해치고 그 삶을 영원히 바꿔버린 사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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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정 정치의 극심한 변덕을 충분히 경험한 노(老)위병들은 언제라도 갑자기 기후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자신들이 또다시 정치적 실수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많은 간부들은 자신들이 완전히 재교육되었고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엄격한 공산주의의 정통성에 부합하지 않는 제안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P402

상부의 압력에 저항하는 온갖 종류의 기술을 수년에 걸쳐 갈고 닦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무관심이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업무에 태만했고 해이했으며 시간을 훔치는 법을 알았다. 규율도 느슨했다. 공장의 시설을 이용해서 자기 옷을 세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담당 관리자가 돌아서자마자 포커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몇몇은 공장 제품을 빼돌려서 가족이나 친구에게 나누어 주거나 암시장에서 다른 물건과 맞바꾸기도 했다. - P403

계획 경제가 추구하는 최상의 가치에 투명성이나 회계라는 요소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 P404

<다자이를 본받자> 운동으로 모든 성에서는 오랜 무역 관계를 대부분 단절한 채 자급자족 경제를 추구했다. 그 결과 단추 같은 단순한 물건을 생산하는 데도 문제가 발생했다. - P405

 마오쩌둥은 아주 특별한 해결책을 제안했다. 그리고 <엘리트주의 의료계를 박살내자>는 그날의 표어가 되었다. 그는 의료 교육이 너무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으며 누구나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반 농민들도 단기 과정만 수료하면 대중에게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주석은 그들을 <맨발의 의사>라고 불렀다.
(중략)
주석의 계획은 위선이었고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정부의 부담을 집단 농장에 전가한 것에 불과했다. 자력갱생이라는 원칙하에 맨발의 의사들은 예방 백신을 제외하고 사실상 국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 대다수가 단순한 응급 처치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 P415

맨발의 의사라는 형태로 표출된 협동 의학은 사실상 정부의 운동이 정점에 달했던 1968년에 아주 잠깐 동안만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그런 다음에는 몇 년도 지나지 않아 농촌의 많은 지역에서 와해되었다.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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