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인들은 정말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히가시야마 아키라도 생각났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예전에 읽다가 포기했던 <바츠먼의 변호인>도 다시 읽어 봐야겠다.

진순신은 나오키상을 받았고 작가로서의 명성은 일본에서 쌓이기 시작했지만, 그는 타이완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부친이 타이완인이기 때문이다. 전쟁 전, 그는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당시일본과 타이완은 ‘동일한 하나의 나라‘였다. 전쟁 후 그는 자동적으로 중화민국 국민이 되어 송환되듯 타이완으로 돌아왔다. 그가 타이완에서 체류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특히 2·28사건으로 자극을 받아 얼마 안 돼 다시 떠났다. 그는 중국의 역사를 제재로 삼아 많은 작품을 썼으며, 톈안먼 사건으로 인해 중국에 실망하기 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적을 보유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아버지가 타이완인이고 타이완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지만, 중국의 역사이야기를 대량으로 쓴 일본 국적의 작가인 그는 도대체 일본인일까, 타이완인일까, 아니면 중국인일까?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 것이며, 타인은 또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단순히 국적으로만 보면 그는 일본과 중화민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적이 바로 그의 정체성일까?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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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윗선에서는 뉴스의 계량화된 클릭률을 신경 쓰는 거겠지? 쉐펀은 이 점을 잘 알았다. 게다가 그녀가 추구하는 것도 진실이나 힘 같은 순수한 무엇이 아니었다.(중략) 기자로서 쉐펀이 추구하는 것은 진상도, 정의도 아닌 존엄이었다. 쉽게 모욕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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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학자가 되고 나서 책을 쓰고 싶어진 게 아니다. 책을 쓰고 싶어서 학자가 된 것이다." 마음속으로 본받고 있던 호소야 유이치 선생이 《요미우리신문>에 기고한 칼럼의 한 부분이다. 호소야 선생은 이 칼럼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책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의 우주를 만드는 것이다." - P293

 저자는 일본이 극동 사태 때 미국에 기지를 제공해야 하는 당위성의 근거를 이른바 ‘극동 1905년 체제‘라는 개념에서 찾고 있다. 이 체제는 일본이 청일전쟁 (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에서 승리해 대만과 한반도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넣게 되면서 확립한 안보 체제를 뜻한다. 일본은 이 체제안에서 장기적인 안정을 유지해 왔을지 모르지만, 한국은 이 과정에서 나라가 망하고, 결국 둘로 쪼개지는 큰 아픔을 겪었다. 저자가 당연히 지켜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동 1905년 체제‘란 일본의 국익을 중심에 놓고 한국과 대만을 도구화하는 ‘일본 중심적 개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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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케네디 정권 이후엔 ‘유연반응전략‘이 등장하게 된다. 대량보복전략은 동구가 통상전력을 사용해 침공했을 때에도 대량의 핵을 써 보복하는 것이다. 이에 견줘, 유연반응전략은 ‘에스컬레이션 사다리 (단계적으로 전쟁이 확대되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즉, 상대의 통상전력에는 핵이 아닌 통상전력으로 대항한다. 통상전력끼리의 대응에서 분쟁이 수습된다면 좋겠지만, 대결이 고조된다면 이후엔 비전략핵을 사용한 국지적 핵전쟁의 단계로 옮겨 간다(이외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그리고 사다리를 계속 올라가게 되면 전략핵과 전략핵이 정면 대결하는 상황 즉, 상호확증파괴에 이르게 된다. - P261

대량보복전략을 핵전략으로 채택할 경우엔 적대국과 가까운 지역에 대량보복용 비전략핵을 전방 배치해 두는 게효과적이다. 하지만 유연반응전략을 택할 때엔 핵을 후방으로 물릴 수 있다. 그리고 후방으로 물릴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첫 번째 공격 때는 사용하지 않을 비전략핵을 적대국과 가까운 곳에 전방배치할 경우 생길 취약성에 대한 우려를 중시할지, 아니면 ‘단계적으로 전쟁이 확대되는 사다리‘ 안에 비전략핵을 사용하는 단계를 넣어 둘 때 얻을 효과를 중시할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 P263

미국과 중국이 화해하게 되면 양국이 핵으로 응수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오키나와에 비전략핵을 배치해 둘 필요성 역시 한층 더 낮아지게 된다. 오키나와에서 비전략핵을 철거하는 것은 미국의 공격 목표로부터 중국을 제외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아가 미국이 중국과 화해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최고의 메시지가 될 수 있었다. 국제정치의 세계에선 때에 따라 군사력을 어떻게 배치하는지가 언어 이상의 의사소통 수단이된다. - P265

최근 들어 이런 배경이 모두 변화하고 있다. 통상전력·핵전력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흔들리고 있다. 미중은 격렬한 경쟁 · 대립의 시대로 돌입하고 말았다. 대만과 한국에선 이미 미국의 핵이 철거됐고, 오키나와 핵 밀약이 지금에 와 갖는 의미도 명확하지 않다. - P272

대만 문제가 남는다. 미국은 미대동맹이 해소된 뒤엔 대만도 자신의 핵우산 안에 들어가는지 분명한 언급을 한 적이 없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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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동맹과 같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선 사회가 감내할 수있는 ‘손해 감수cost tolerance‘ 수준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손해 감수‘는 전쟁이 일어날 때 한 사회가 견뎌 낼 수 있는 손해의 정도를 이르는 말이다. 손해 감수의 정도가 높은 경우, 즉 교전 상대보다 더 큰 손해를 받아들이고 참을 수 있는 각오가 돼 있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쪽보다 더 강한 입장에 설 수 있다. 베트남전쟁 때 미국은 군사력에서는 북베트남을 앞섰지만, 손해 감수를 둘러싼 경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 P212

태평양전쟁 때 최고전쟁지도회의 (총리대신, 외무대신, 육군대신, 해군대신, 참모총장, 군령부장으로 구성)는 종적으로 나뉜 조직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지나지 않았고, 그래서 끝내 전쟁을 끝낸다는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전쟁을 끝낸다는 의사결정은 천황의 성단이라는 극히 곡예적인(비정상적인) 방식에 의해 이뤄졌다. 여기서 쇼와 천황이 수행한 역할의역사적 중요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단을 통해 종전을 결정했다는 것은 [당시 일본이] 천황의 판단 없이는 [국가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일본 정부 내에] 거버넌스(통치 기능)가 결여돼 있었음을 드러내 보여 주는 예가 아닐까 한다. - P215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를 깊게 해 나가는 것 자체가 억지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서라도 미일동맹의 억지력이 깨진 뒤의 문제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혹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식의 ‘일본적 시점‘을 극복해 갈 필요가 있다. - P216

핵억지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누구를 지키는가‘라는 기준에서 볼 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핵보유국이 자국을 지키기 위해 핵으로 상대를 억지하는 경우다. 이를 ‘기본억지‘라고 한다. 그리고 또 핵보유국이 자신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동맹국을 지키기 위해 핵으로 상대를 억지할 수 있다. 이를 ‘확장억지‘라고 한다. 핵억지를 통해 지키는 범위를 자국에서 동맹국으로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보유국을 동맹으로 둔 국가는 동맹국으로부터 확장억지를 제공받을 수 있다면, 직접 핵을 갖지 않는 비핵 정책을 취할 수 있게 된다.
확장억지를 [다른 말로] ‘핵우산‘이라고도 부른다.(중략)
미국이 일본에 확장억지를 제공한다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에 들어가 있다"는 표현을 쓴다. - P221

미일동맹이 핵의 위상을 둘러싼 전략적 논의를 충분히 하지못했던 것은 단순히 게을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이] 애초 그런 논의 자체를 피해 왔기 때문이다. 이를 대신해 논의의 주요 주제가 되어 온 것은, 미국이 일본에 핵을 ‘반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기면서 핵을 들여온 적이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었다. 한 전직 외교관은 2008년 인터뷰에서 "정치의 초점은 핵전략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일본 내 미군기지에 [정말] 핵무기가 없는지‘ [검증하는 데]에만 맞춰져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를 일본과 일본 밖에 선을 그어 일본 국내에 핵이 없으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핵에 대한 일국평화주의‘라고 부를 수 있진 않을까? - P222

존슨 정권이 방위 의무를 재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확장억지를 제공하겠다고 내밀하게 보장한 것은 일본이 중국의 핵무장에 자극받아 핵보유를 향해 나아가지 않도록 제동을 걸기 위해서였다. - P227

미군이 일본에 핵을 반입하는 것은 1960년 1월허터-기시 교환공문에 따른 ‘장비에 있어 중요한 변경‘에 해당된다. 그에 따라 일본 정부와 사전협의를 해야 한다. 미국은 지상 배치 혹은 일본의 육지에 하역하는 형태로는 멋대로 핵을 반입할 수없다.
여기서 논쟁의 초점이 되는 것은 ‘핵을 탑재하고 있는 미 해군함선이 일본에 일시 기항할 때에도 사전협의가 필요한지 여부‘이다. - P233

일본은 사전협의 대상이 되는 핵의 ‘반입‘에 대해 실제 하역이 이뤄지는 경우뿐 아니라, [하역 없는] 일시 기항까지 포함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미국은 실제 핵을 일본에 하역하는 경우만을 ‘반입‘이라고 인식해 왔다. [미국의 기준에 따르면] 일시기항은 ‘반입‘이 아닌 잠시 들른 것‘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핵을 탑재한 미 함선이 여러 차례 일본에 기항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전협의는 이뤄지진 않았다. - P235

1960년 미일안전보장조약을 개정할 때 미일 모두 핵 ‘반입‘의 정의와 관련해 쌍방 간에 해석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알면서도 굳이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시 기항이 사전협의의 대상인지에 대한 미일의 해석 차가 그대로 방치되게 된다. - P236

 문제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핵보유국과 해양을 기반으로 하는 동맹관계를 맺고 있고 확장억지라는 혜택을 향유하면서도,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항구라는 장소에 동맹국의 핵을 실은 함선이 일시 기항하는 것까지 ‘반입‘의 기준 안에 포함시켜 이를 거절하려 해 온 일본인의 태도가 아닐까 한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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