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동맹과 같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선 사회가 감내할 수있는 ‘손해 감수cost tolerance‘ 수준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손해 감수‘는 전쟁이 일어날 때 한 사회가 견뎌 낼 수 있는 손해의 정도를 이르는 말이다. 손해 감수의 정도가 높은 경우, 즉 교전 상대보다 더 큰 손해를 받아들이고 참을 수 있는 각오가 돼 있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쪽보다 더 강한 입장에 설 수 있다. 베트남전쟁 때 미국은 군사력에서는 북베트남을 앞섰지만, 손해 감수를 둘러싼 경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 P212

태평양전쟁 때 최고전쟁지도회의 (총리대신, 외무대신, 육군대신, 해군대신, 참모총장, 군령부장으로 구성)는 종적으로 나뉜 조직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지나지 않았고, 그래서 끝내 전쟁을 끝낸다는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전쟁을 끝낸다는 의사결정은 천황의 성단이라는 극히 곡예적인(비정상적인) 방식에 의해 이뤄졌다. 여기서 쇼와 천황이 수행한 역할의역사적 중요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단을 통해 종전을 결정했다는 것은 [당시 일본이] 천황의 판단 없이는 [국가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일본 정부 내에] 거버넌스(통치 기능)가 결여돼 있었음을 드러내 보여 주는 예가 아닐까 한다. - P215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를 깊게 해 나가는 것 자체가 억지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서라도 미일동맹의 억지력이 깨진 뒤의 문제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혹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식의 ‘일본적 시점‘을 극복해 갈 필요가 있다. - P216

핵억지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누구를 지키는가‘라는 기준에서 볼 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핵보유국이 자국을 지키기 위해 핵으로 상대를 억지하는 경우다. 이를 ‘기본억지‘라고 한다. 그리고 또 핵보유국이 자신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동맹국을 지키기 위해 핵으로 상대를 억지할 수 있다. 이를 ‘확장억지‘라고 한다. 핵억지를 통해 지키는 범위를 자국에서 동맹국으로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보유국을 동맹으로 둔 국가는 동맹국으로부터 확장억지를 제공받을 수 있다면, 직접 핵을 갖지 않는 비핵 정책을 취할 수 있게 된다.
확장억지를 [다른 말로] ‘핵우산‘이라고도 부른다.(중략)
미국이 일본에 확장억지를 제공한다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에 들어가 있다"는 표현을 쓴다. - P221

미일동맹이 핵의 위상을 둘러싼 전략적 논의를 충분히 하지못했던 것은 단순히 게을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이] 애초 그런 논의 자체를 피해 왔기 때문이다. 이를 대신해 논의의 주요 주제가 되어 온 것은, 미국이 일본에 핵을 ‘반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기면서 핵을 들여온 적이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었다. 한 전직 외교관은 2008년 인터뷰에서 "정치의 초점은 핵전략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일본 내 미군기지에 [정말] 핵무기가 없는지‘ [검증하는 데]에만 맞춰져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를 일본과 일본 밖에 선을 그어 일본 국내에 핵이 없으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핵에 대한 일국평화주의‘라고 부를 수 있진 않을까? - P222

존슨 정권이 방위 의무를 재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확장억지를 제공하겠다고 내밀하게 보장한 것은 일본이 중국의 핵무장에 자극받아 핵보유를 향해 나아가지 않도록 제동을 걸기 위해서였다. - P227

미군이 일본에 핵을 반입하는 것은 1960년 1월허터-기시 교환공문에 따른 ‘장비에 있어 중요한 변경‘에 해당된다. 그에 따라 일본 정부와 사전협의를 해야 한다. 미국은 지상 배치 혹은 일본의 육지에 하역하는 형태로는 멋대로 핵을 반입할 수없다.
여기서 논쟁의 초점이 되는 것은 ‘핵을 탑재하고 있는 미 해군함선이 일본에 일시 기항할 때에도 사전협의가 필요한지 여부‘이다. - P233

일본은 사전협의 대상이 되는 핵의 ‘반입‘에 대해 실제 하역이 이뤄지는 경우뿐 아니라, [하역 없는] 일시 기항까지 포함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미국은 실제 핵을 일본에 하역하는 경우만을 ‘반입‘이라고 인식해 왔다. [미국의 기준에 따르면] 일시기항은 ‘반입‘이 아닌 잠시 들른 것‘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핵을 탑재한 미 함선이 여러 차례 일본에 기항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전협의는 이뤄지진 않았다. - P235

1960년 미일안전보장조약을 개정할 때 미일 모두 핵 ‘반입‘의 정의와 관련해 쌍방 간에 해석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알면서도 굳이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시 기항이 사전협의의 대상인지에 대한 미일의 해석 차가 그대로 방치되게 된다. - P236

 문제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핵보유국과 해양을 기반으로 하는 동맹관계를 맺고 있고 확장억지라는 혜택을 향유하면서도,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항구라는 장소에 동맹국의 핵을 실은 함선이 일시 기항하는 것까지 ‘반입‘의 기준 안에 포함시켜 이를 거절하려 해 온 일본인의 태도가 아닐까 한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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