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물고기 묘보설림 4
왕웨이롄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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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제야 진정한 말은 한 사람이 세상을 향해 내뱉는 소리가 아니라 두 사람 이상이 주고받는, 마치 규칙이 느슨한 보드게임 같은 상호 호응임을 인식했다. - P113

타지를 떠돈 지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우리 집을 똑바로 살펴보았는데 노인의 얼굴과 무척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본 적도 없는 친할아버지처럼 인자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줄곧 나를 너그러이 받아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구쟁이였던 내 소년 시절을, 고삐 풀린 망아지였던 내 청년 시절을, 그리고 나라는 인간의 모든 결함까지 다 너그러이 받아주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래줄 것 같았다. 나는 불현듯 이곳이 나의 뿌리임을 깨달았다. - P121

아마도 노쇠는 죽음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본질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지만 인종 간의 차이는 무화시키는 것 같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갖가지 구분은 결국 우습고 궁색하기 마련이다. - P141

글쓰기는 뭐와 같은 줄 아니? 꼭 숫돌과도 같아서 그 바위의 모서리를 갈아 더 날카롭게 할수록 나는 피가 나고 정말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지. - P153

 중국어와 히브리어는 가장 심오하고 오래된 언어라고들 하지. 그렇다면 분명 가장 많은 고난을 기록해온 언어일 거야. - P154

네가 정말로 언어를 이해하게 되면 언어에도 바닥이 있고 거기에 역사의 기억이 침전되어 있음을 알게 될 거야. - P156

"이 물건의 기억은 내 기억보다 더 오래가겠지. 기억은 유일한, 최후의 대답이야."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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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웨이롄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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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본 곳도 적지는 않지만 나는 책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편이 더 좋다. 책 속의 세계는 어떤 신비감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행지에 있으면 나는 이미 어떠한 신비도 체험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3D 영화를 보고 있다고 느끼곤 한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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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웨이롄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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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기를 먹는 척 고개를 숙여 그녀의 아름다움을 피했다. 아마도 화가만이 예술이라는 핑계로 그런 아름다움을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 P26

"예술가의 창조물이 다 자기 마음속의 꿈이라고는 해도 그 꿈은 당신이 샤오딩한테 준 거예요." - P26

이곳에서는 폭음하지 않는 남자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폭음에 초대되면 거절은 허용되지 않았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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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복잡한 감정의 얽힘 속에서 살인 사건은 일어난다. 서로를 바라보던 따스하고 보드라운 감정이 서로의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변해버리는 것이다. 혹은 망상과 오해와 편향된 생각이 독버섯으로 자라나 살인에 이르기도 한다. 돈이 사람보다 귀한 사람들 중 일부는 돈 때문에 살인자가 되기도 한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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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자꾸 내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 당신이 의사라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어차피 삶에 대한 희망이 없던 환자가 사망했고, 그 의료 사고가 드러났을 때 당신의 모든 인생이 무너진다면... 과연 당신은 어떤 선택을 취하게 될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을 때, 나 역시 확답이 쉽지 않았다.
이어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는 얼마나 윤리적인 사람일까? 그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윤리의 경계를 지키며 사는 것은 아닐까? 지켜보는 시선이 없는 곳에서 인간은 좀 더 뻔뻔하고 사악한 속내를 쉽게 표출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런 악마가 혹시 내 안에 살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어두워졌다. - P122

평범한 사람들은 죽음을 외면하며 살아간다. 삶의 끝이 아닌 당장의 내일을 위해 살기도 바쁘니까. 생존의 일상만 남고 죽음의 일상은 지워지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죽음을 그저 관념적인 세계로 느낀다. 하지만 경찰들의 세계는 다르다. 그들은 살아 있는 자의 치안을 담당하고, 죽은 자의 마지막 순간을 확인해주는 이들이다. 그들의 삶에서 죽음은 악취를 풍기고, 체액이 흐르고, 부패되어가는 실재의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경찰은 나의 생이 끝난 뒤, 내가 삶의 세계에서 죽음의 세계로 건너갔다는 생의 마침표를 확인해줄 사람이기도 하다. - P147

이 살인 사건은 선과 악이 얽혀 있다기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사이에 있는 황량함에 있다고 본다. 우리는 종종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껄끄러움, 무지, 몰이해 등의 독버섯이 자라난다. 한 공간에서 살았던 이 남자들 사이에도 그런 독버섯 같은 감정이 얽혀 있는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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