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삼성은 아르헨티나부터 베트남까지 6개국에 걸쳐 스마트폰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로써 위험한 의존이 아닌 탄력적인 공급망을 형성했다. 이러한 지리적 다변화는 전략적 통찰을 반영한다. 아무리 효율적이라고 해도 단 하나의 권위주의적 파트너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게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P14

(애플은) 여러 국가에서 생산거점을 실험하다가, 결국 값싸고 유연하며 근면한 노동력을 대규모로 공급하는 중국이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저임금, 환율 통제, 느슨한 노동법 등을 무기로 다국적기업을 유치하려는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한 결과였다. 중국 학자 친후이의 표현에 따르면, 중국의 경쟁력은 "저임금, 저복지, 저인권"에 기반하고 있었다. - P20

<소비자의 날> 사태 이후 애플을 향해 쏟아진 악의적 논평들과 중국에서의 매출 급감은 애플이 중국에 구축한 거대한 생산체계가 오히려 가장 큰 취약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중국이라는 단 하나의 나라에 공급망을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던 것이다. - P21

애플 경영진은 갑작스럽게 ‘중국 정부를 상대로 한 전략은 무엇인가?‘, ‘중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응할 전략은 무엇인가?‘와 같은 기본적인 질문에조차 아무런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 P23

애플은 사실상 자체 생산 없이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완벽히 터득한 셈이었다. - P24

<타임>의 기자 해나 비치Hannah Beech는 <중국을 휩쓴 애플 열풍 The Cultof Apple in China>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에서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짚었다. "애플이 중국에서 이룬 성장의 많은 부분은 의도하지 않은 노력으로도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 P25

이는 전자산업의 세계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의 ‘중국화‘에 관한 이야기다. - P25

 문제는 애플이 중국 노동자를 착취했다는 것이 아니다. 중국 정부가 그리하도록 허용했으며, 이를 통해 그들이 애플을 착취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이 진정한 핵심이다. - P26

중국은 애플의 단기적 필요를 자국의 장기적 이익과 정교하게 맞바꾸는 전략을 펼쳤다. - P26

예를 들어 인구 14억 명 규모의 중국 시장이 미국 전체 산업에 걸쳐 간접적으로 창출하는 일자리는 100만 개에서 260만 개수준인 데 반해, (쿡의 추산에 따르면) 중국 내 약 500만 개의 일자리가 애플 하나에 의지하고 있다. 그중 300만 개는 제조업 일자리이고, 180만 개는 앱 개발 관련 일자리다. 단 하나의 초거대 기업이 중국의 전체 산업이 미국에 미치는 고용 효과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중국에서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완전히 뒤집힌 구조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 P28

아킬레스건은 분명히 존재한다. 애플의 모든 하드웨어 생산이 전적으로 미국의 최대 경쟁국인 중국의 선의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핵심 서사 중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공급망을 구축한 기업이 어떻게 해서 광범위한 생산 활동을 단 한 지역에 집중시키는 초보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 P30

2000년대 초 애플이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이전했을 당시, 미국 정부는 자유무역이 중국의 중산층을 성장시키고 그곳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현실은 달랐다. 경제적 성공은 중국 지도부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했고, 그들은 이제 제조 역량을 무기화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전직 애플 엔지니어의 말처럼, "우리는 한 나라 전체를 훈련했고, 이제 그 나라는 그렇게 배운 것을 우리에게 사용하고" 있다. - P31

2007년부터 2019년까지는 모든 아이폰이 중국에 진출한 대만 기업에서 생산되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중국 정부에 지원받는 기업들이 필요한 기술을 배운 다음, 점차 생산 주도권을 넘겨받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의 어느 전직 수석디자이너는 돌아보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중국의 전략은 대만의 인재를 흡수해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운 뒤 그들을 정리하고, 결국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 P33

애플이 다음 세대의 혁신을 구상하는 일은차치하더라도, 중국 문제는 이 기업이 직면한 가장 큰 리스크이며, 쿡의 리더십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받을지 좌우할 중대한 불확실성이자, 미국 정부가 시급히 대응해야 할 전략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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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전의 상하이는 아시아의 음악적 수도로 여겨질 만큼 재즈 수요가 매우 많았다. 전 세계 출신의 새내기 연주자들뿐 아니라 미국 본고장에서 온 노련한 음악가들이 1949년 직전까지 곳곳에서 대중적인음악을 연주했지만 상하이가 함락되고 불과 몇 주 만에 나이트클럽들이 폐쇄되거나 공장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정부는 재즈를 퇴폐적이고 음란하며 부르주아적이라고 비난하면서 전면 금지했다. - P301

할리우드 영화는 한국 전쟁을 계기로 전국에서 완전히 막을 내렸다. 다른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영화계에서도 봉건주의와 제국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남에 따라 혁명을 지지하는 예술가들의 창의성이 폭발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 P306

불교는 유일하게 느슨한 조직이었고 따라서 손쉬운 표적이 되었다. 사찰이 파괴되었고 승려는 폭행당하거나 살해되었다. 대장경 사본이 불에 태워졌으며 쇠를 얻기 위해서 불상이 녹여졌다. 토지는 몰수되고 불가의 재산은 공중분해되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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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더불어 공산주의식 용어에 따르면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수많은 학생과 교사, 교수, 과학자, 작가 등이 새로운 정권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증명해야 했다. 조국을 위해 봉사하라는 부름에 화답해서 외국에서 돌아온 해외 동포들도 그들과 합류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끝없이 반복되는 세뇌 교육에 참석하여 새로운 정통파적 신념을 배우고 공인된 팸플릿과 신문, 교재 등을 공부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얼마 뒤 자술서를 써야 했으며 <속내를 털어놓음으로써> 과거를 깨끗이 청산해야 했다. 그들은 새로운 중국에 봉사하고자 하는 새로운 국민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재교육하도록 요구받았다. - P276

한쪽에서 진행되는 선전과 다른 한쪽에서 벌어지는 혁명의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괴리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육체적 학대를 목격한 뒤로 마음속에서 불신이 꿈틀거렸지만 애써 외면한 채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계급 투쟁이라는 단어를 계속 되뇌이면서 스스로를 다잡아야 했다. 비판 대회와 조직적인 약탈의 비열한 측면을 외면하기 위해서 마음속에 모두를 위한 풍족한 공산주의의 비전을 떠올려야 했다. 그들은 자신이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 P280

새로운 정권 밑에서 일하기를 원한다면 적극적인 공범이 되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한 선택이 기회주의의 발로이든 아니면 이상주의나 순전한 실용주의의 발로이든 상관이 없었다. 많은 사람이 기꺼이 그 같은 선택을 했다. - P281

우닝쿤은 대학원 동료이자 나중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리충다오에게 왜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중국을 도우려 하지 않는지 물었다. 친구는 무언가 아는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은 세뇌당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 P284

한편 장아이링은 애국심을 자극하려는 새로운 정권의 미사여구를 처음부터 아예 믿지 않은 소수의 몇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재능 있는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했던 그녀는 1952년에 가명을 이용해서 몰래 국경을 넘어 홍콩으로 들어갔다. - P287

당연하지만 우리는 그곳에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침묵할 자유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공산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믿음과 충성심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진술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 P290

 후펑의 글에 따르면 공산당은 <문학의 목을 조이려고 한다. 문학이 현실을 벗어나길 원하며 작가들이 거짓을 말하길 원한다>. - P292

산터우에서는 1953년 5월 거대한 모닥불이 3일에 걸쳐 <봉건주의 과거의 흔적>을 보여 주는 서적 30만 권을 집어삼켰다. 문단 감시를 맡은 당 간부들의 열정이 너무 과해서 그들 손에 닿는 모든 책이, 심지어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책들까지 재생 종이가 되었다. 그들 스스로 인정했듯이 시도 때도 없이 수정된 탓에 블랙리스트 자체가 혼란을 초래했다. 그 결과 베이징에서는 공산당에 의해 국부(國父)로 칭송되던 쑨원의 저서들까지 선반에서 사라졌으며 1954년에는 프랑스인을 위한 베이징 여행 안내서들이 1톤 가까이 파지로 재활용되었다. - P297

당을 위해 일하던 작가들이 내놓은 소수의 작품이 인정을 받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최소 수준의 작품 활동에 그쳤다. 공산주의자들 편에 선 라오서, 딩링, 마오둔 같은 좌파 작가들은 더 이상 해방 전에 그들에게 명성을 가져다주었던 저항 문학을 내놓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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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히 말하자면, 설사 사회에 나와서 ‘제힘으로 먹고살기‘를 하더라도 맹인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아니라는 말이다. 맹인에게는 조직이 없었다. 무슨 조합도 없었다. 보험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계약서도 없었다. 한마디로 맹인은 진정으로 유효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결혼을 한다 해도 맹인을 아내로 맞아 장가를 가든지 맹인 남편으로 맞아 시집을 갈 뿐이다. 이런 것은 다만 양의 누적일 뿐 질적 변화라고 할 수 없다. - P431

맹인들의 삶은 사이버 세계의 삶과 닮은 데가 있다. 두 눈 멀쩡한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 클릭만 하면 맹인들의 세계는 구체화된다. 두 눈 멀쩡한 사람들이 전원을 끄는 순간 맹인은 자연스레 사이버 세계로 사라진다. 맹인들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의 삶은 삶이면서도 삶이 아니다. - P431

모난 정이 돌 맞는다고, 중국인들은 집단 안에서 눈에 띄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맹인들 사이에서 보다더 두드러졌다. 맹인들에게는 거의 황금률이나 다름없었다. 왜 하필 내가? 중국 사람에게는 또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요행 심리였다. 이 특징도 맹인들 사이에서는 더 심했다. 또다른 황금률이었다. 어떤 횡액이 닥쳐온다 해도 나하고는 관계가 없을 거야. 설마 그럴 리가. 왜 하필 나겠어? - P433

맹인들은 너무도 쉽게 남의 은혜를 입었다. 맹인들은 평생 수많은 사람들이 베푸는 은혜를 입으며 산다. 두 눈이 머는 순간부터 다급히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맹인들의 눈에는 빛이 없었다. 그러나 눈물은 적지 않았다. - P434

말을 삼키는 것이야말로 맹인들이 지닌 최고의 천부적 재능이다. 사장이 되려면 많은 말을 삼킬 수 있어야 한다. 직원이 되더라도 많은 말들을 삼킬 수 있어야 한다. - P436

아무도 입을 열어 묻지 않았다. 물어서 돌아오는 대답은 좋은 소식이 아니라고, 그들은 굳게 믿었다. 맹인들은 어떤 순간에도 묻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전해주는 것이어야 비로소 좋은 소식이다. 다른 사람이 전해주는 소식은 언제나 그들에게 의외의 기쁨을 안겨준다. - P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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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일이었다. 맹인들, ‘제힘으로 먹고살기‘가 목표인 집단의 사람들은 ‘사장 되기‘에 두 눈이 멀쩡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악착같은 야심을 품었다. 사실 ‘사장‘이라는 신분에 눈독을 들이지 않는 맹인은 거의 없었다. 한가할 때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맹인들이 같은 속내를 품고 있었다. ‘돈이 좀 모이면 고향으로 돌아가 가게를 내야지‘ 하는. ‘가게를 낸다‘고 하면 단순한 사업 목표처럼 들리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사장‘이 되고 싶다는 두근대는 마음이 있었다. - P380

‘원망‘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원망이 ‘쌓인다‘는 것이 두려운 일이다. 쌓인 원망은 날개와도 같았다. 날개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다. 펼쳐지는 것. 어두컴컴한 방향을 향해 비상하는 것이다. - P386

 난징 사람들은 ‘돈을 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돈을 버는 것은 무척 고생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돈을 번다고 하지 않고 ‘돈 고생을 한다‘라고 말했다. - P396

호탕한 여자들의 연애나 결혼에 대한 태도는 이토록 단순했다. 건성이고 무관심했다. 하지만 또 이상한 일은, 그녀들이 아무리 건성으로, 무관심하게 해치우더라도, 그런 여자들의 결혼은 또 굉장히 완벽한 것이 되곤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고심하고 이리저리 어렵게 따지고 결혼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살았다. 그 이유를 누가 알겠는가? 불가사의할 뿐이다. - 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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