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자꾸 내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 당신이 의사라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어차피 삶에 대한 희망이 없던 환자가 사망했고, 그 의료 사고가 드러났을 때 당신의 모든 인생이 무너진다면... 과연 당신은 어떤 선택을 취하게 될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을 때, 나 역시 확답이 쉽지 않았다.
이어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는 얼마나 윤리적인 사람일까? 그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윤리의 경계를 지키며 사는 것은 아닐까? 지켜보는 시선이 없는 곳에서 인간은 좀 더 뻔뻔하고 사악한 속내를 쉽게 표출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런 악마가 혹시 내 안에 살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어두워졌다. - P122

평범한 사람들은 죽음을 외면하며 살아간다. 삶의 끝이 아닌 당장의 내일을 위해 살기도 바쁘니까. 생존의 일상만 남고 죽음의 일상은 지워지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죽음을 그저 관념적인 세계로 느낀다. 하지만 경찰들의 세계는 다르다. 그들은 살아 있는 자의 치안을 담당하고, 죽은 자의 마지막 순간을 확인해주는 이들이다. 그들의 삶에서 죽음은 악취를 풍기고, 체액이 흐르고, 부패되어가는 실재의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경찰은 나의 생이 끝난 뒤, 내가 삶의 세계에서 죽음의 세계로 건너갔다는 생의 마침표를 확인해줄 사람이기도 하다. - P147

이 살인 사건은 선과 악이 얽혀 있다기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사이에 있는 황량함에 있다고 본다. 우리는 종종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껄끄러움, 무지, 몰이해 등의 독버섯이 자라난다. 한 공간에서 살았던 이 남자들 사이에도 그런 독버섯 같은 감정이 얽혀 있는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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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용감한 형사들>의 방송 내용이 내가 취재하거나 『수사연구』 과월호에서 본 사건들이 대부분이라 딱히 흥미롭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가 취재한 사건을 담당한 형사들이 방송에 출연하면 반갑기는 했다. 특히 화면상에서의 그분들 모습이 흥미로웠다. 당연히 내 관전 포인트는 사건 해결 과정이 아닌 형사들의 모습이었다. "오호, 저분이 말재주가 없는 분이 아닌데, 왜 저렇게 버벅거리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시청했던 것 같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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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이 선과 악의 명확한 경계로 나뉜 곳이라는 믿음은 없었다. 인간은 흔들리는 회색빛의 담배 연기와 같다고 생각했다. 늘 쓰고 다니는 사회적 가면 뒤에 그 담배 연기 같은 매캐한 얼굴을 숨기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가면을 보고 서로가 인간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형사들이 강력 사건과 사기 사건에서 만난 범죄자들에게서는 우리가 평소 인간이라고 믿는 가면이 벗겨진 민낯이 순간순간 드러나는 때가 있었다. - P33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사진에서 공포는 느끼지 않는다. 정작 두려운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뜨거운 피를 지닌 인간, 그 뜨거운 피를 참지 못해 탐욕에 이르고 살인까지 저지르며,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겁을 먹는 그 치졸한 인간의 민낯을 살인 사건에서 볼 때다. 형사들과의 인터뷰에서 인간이란 존재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공포와 혐오는 물론 허탈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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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조금씩 나빠지기만 할 때, 더이상 돌이킬 수 없다고 사람들이 말할 때 그들을 버티게 해주었던 미래가 바로 지금이었다. 나아진다는 말이 데리고 온 곳. 이제 와서 보니 나아진 사람들은 극히 일부였다.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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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우정은 상대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상대의 기억을 멋대로 들여다볼 수 없는 사이에서만 싹튼다. 노아와 큰까마귀는 그렇게 합의했고, 진짜 친구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당분간 떨어져 있기로 했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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