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이 선과 악의 명확한 경계로 나뉜 곳이라는 믿음은 없었다. 인간은 흔들리는 회색빛의 담배 연기와 같다고 생각했다. 늘 쓰고 다니는 사회적 가면 뒤에 그 담배 연기 같은 매캐한 얼굴을 숨기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가면을 보고 서로가 인간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형사들이 강력 사건과 사기 사건에서 만난 범죄자들에게서는 우리가 평소 인간이라고 믿는 가면이 벗겨진 민낯이 순간순간 드러나는 때가 있었다. - P33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사진에서 공포는 느끼지 않는다. 정작 두려운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뜨거운 피를 지닌 인간, 그 뜨거운 피를 참지 못해 탐욕에 이르고 살인까지 저지르며,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겁을 먹는 그 치졸한 인간의 민낯을 살인 사건에서 볼 때다. 형사들과의 인터뷰에서 인간이란 존재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공포와 혐오는 물론 허탈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 P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