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셔츠는 때때로 《제국 문학>이라는 새빨간 잡지를 학교에 가지고 와서 소중한 듯 읽는다. 산미치광이에게 물어보니 빨강셔츠가 구사하는 외국인 이름은 모조리 그 잡지에 나온다고 한다. 《제국 문학》이여, 그대의 죄가 중하도다! - P69

생각해 보면 대다수 세상 사람들은 나쁜 짓을 하라고 부추기는 듯하다.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가끔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을 보면 도련님이라는 둥 애송이라는 둥 트집을 잡아 업신여긴다. 그럴 것 같으면 소학교와 중학교에서 윤리 선생이 거짓말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치지 않아야 한다. 아니, 차라리 한 발 더 나아가 학교에서 거짓말하는 법이라든가 남을 믿지 않는 기술이라든가 남을 이용하는 술책을 가르치는 쪽이 세상을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나 좋을 것이다. 빨강셔츠가 호호호호 웃은 까닭은 내 단순함을 비웃은 것이다. 단순함이나 진솔함이 비웃음을 사다니, 세상도 망조가 들었다. - P75

"물론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되네만, 자기 혼자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해도 남이 저지른 나쁜 짓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 역시 봉변을 치를 것이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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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과 벌은 딱 붙어 다닌다. 벌이 있으니까 장난도 마음 놓고 칠 수 있다. 장난만 치고 벌은 받지 않겠다는 저열한 근성이 대체 어떤 나라에서 판친단 말인가. 돈은 빌리되 갚지는 않겠다고 하는 경우는 다 이런 놈들이 졸업해서 저지르는 짓임에 틀림없다. - P53

정직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정직한 자가 이기지 못한다면 도대체 누가 이긴단 말인가. 생각해 보라. 오늘 밤에 이기지 못하면 내일 이길 것이다. 내일 이기지 못하면 모레 이길 것이다. 모레 이기지 못하면 하숙집에서 도시락을 가져와서라도 이길 때까지 여기에 있겠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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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따금 교실에서 실수해도 그때만 언짢을 뿐 삼십 분만 지나면 싹 괜찮아진다. 나는 무슨 일이든 지멸있게 걱정하려고 해도 그렇게 못 하는 인간이다. 교실에서 저지른 실수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교장이나 교감이 실수에 어떻게 반응할지 도통 무관심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나는 그리 배짱 있는 남자는 아니지만, 단념은 아주 잘하는 인간이다. 이 학교가 영 아니라고 생각하면 바로 떠날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너구리도, 빨강셔츠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하물며 교실의 애송이들에게 환심을 사거나 알랑방귀를 뀔 마음은 들지 않았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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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루쇼프는 스탈린이 1930년대에 농업을 망쳤다고 비난했다. 스탈린이 <생전 어디를 간 적도 없고 노동자나 집단 농장에 소속된 농부를 만난 적도 없으며> 오로지 <농촌의 실상을 치장하고 미화한 영화들>에 나오는 어떤 나라를 알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역시 자신의 전용 기차에 편하게 앉아서 보안 요원 말고는 아무도 없는 텅 빈 기차역을 지나다니며 나라를 보아 온 어떤 주석에게 너무나 뼈아픈 지적이었을 터였다. - P422

 해방 이후에 제대한 570만명의 제대군인들도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기껏해야 농촌에 버려진 채 알아서 살아가야 했는데 집산화 과정에서 밥값도 못한다는 이유로 상당수가 부랑자 같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또한 만성 질환으로신음하는 제대 군인들이 50만 명에 달했음에도 정부는 그들의 치료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956년 말에서 1957년 초겨울에 결국 분노가폭발했고 대규모 인원이 도시에 집결해서 지방 당국을 압박했다. - P429

상하이에서 파업을 지켜본 로버트 루는 다음처럼 느꼈다. <억압받던 사람들이 다시 새로운 삶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흥분되었다. 공산당 관리들의 변화된 태도 역시 마찬가지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들뜨게 만들었다. 그들은 무서워하는 동시에 혼란스러워했고 이전의 거만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이제 그들은 사람들을 달래려고 애썼다. 특히 그들이 가장 두려워한 듯 보이는 노동자들을 회유하려고 노력했다.> - P429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고 불만을 털어놓으라던 주석의 부추김은 혁명의 적들이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도록 만들기 위한 교묘한 전략에 불과했던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 P444

때로는 비난의 정치학이 일가족을 산산조각 내기도 했다. 농민을 대변하여 불만을 제기했던 다이황을 고발한 사람은 뜻밖에도 그의 아내였다. 그녀는 남편이 당을 음해하고자 음모를 꾸몄다고 고발하는 내용의 벽보를 게시했다. - P445

반우파 투쟁의 임의적인 성격은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다. 마오쩌둥은 우경 세력의 숫자에 할당량을 부과했고 전국의 모든 조직은 주어진 할당량을 채워야 했다. 우경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너무 막연했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는 사람은 잠재적으로 누구나 우경 세력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 P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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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상 마오 정권은 자유와 평등, 평화, 정의, 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였음에도) 같은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닌 가치들을 지지했다. 모든 사람에게 직업과 집은 물론이고 굶주림과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했다. - P395

마오 정권은 무척 다양한 청중을 상대로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길에 대해 최면을 거는 데 뛰어났다. 그들은 자본주의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경제적 평등을 제안했다. 권위적인 정부에 분노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자유를 속삭였다. <그들은 민족주의자들 앞에서는 애국심을,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들 앞에서는 헌신을, 억압받는 사람들 앞에서는 복수심을 과시한다.> 요약하자면 공산주의는 모든 사람의 비위를 다 맞추려 들었다. - P396

마오쩌둥은 강렬하고 선동적인 문구를 내놓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고 <하늘의 절반은 여성들이 받치고 있다>라거나 <혁명은 만찬회가 아니다>, <제국주의는 종이 호랑이다> 같은 구호들이 중국의 각 가정에 스며들었다. 그의 좌우명인 <인민에게 봉사하라>라는 문구는 붉은색 바탕에 현란한 흰색 글씨로 인쇄되어 포스터와 플래카드 형태로 사방에 나붙었다. - P398

 현장의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가 수많은 추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주된 원인은 그들에게 자신이 역사적 대전환기를 살고 있으며 자신보다 훨씬 크고 훌륭한 무언가를 위해 또는 이제까지 일어났던 어떤 일보다 더 크고 훌륭한 무언가를 위해 기여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신기록을 달성한 노동자나 적군의 총탄을 몸으로 막아 낸 군인 등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이 영웅이 되도록 부추겨졌다. 선전 기관은 본보기로 제시된 수많은 영웅적인 노동자와 농부, 군인등을 끊임없이 미화했다. - P399

전국적으로 주석의 방문은 물론이고 외국인 기자나 정치가, 고위 지도자, 학생 단체의 방문이 있을 때마다 무수히 많은 쇼가 행해졌다. 수많은 불교 사찰이 파괴되면서 소수의 불교 사찰에만 막대한 돈이 투자되었고 그 안에서는 어용 승려들이 신중국의 종교적 르네상스를 설파했다.(중략) 사방에서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고 열정적이었으며 입이 닳도록 당을 칭송했다. 하지만 정작 그 실체는 선전 속 모습과 전혀 달랐다. - P401

중국은 하나의 극장이었다. 심지어 무대 밖에서도 사람들은 강제로 미소를 지어야 했다. 농부들은 곡식을 더 많이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조차 팡파르를 울리며 열정적으로 웃어야 했다.(중략) 아시아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미소는 언제나 기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곤혹스러움을 표현하거나 고통이나 분노를 감출 때도 미소를 지었다. 무엇보다 괜히 꾸물거렸다가 비난을 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 P401

 베이징의 중심부에서는 톈안먼 광장에 있던 수많은 고대 구조물들이 해마다 열리는 행진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철거되었다. 옛 성곽은 교통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대부분 해체되었다. - P402

중앙 정부에서 모든 것을 계획하는 제국에 계획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결과적으로 외국인 손님에게 경외심을 심어 주고 환심을 얻기 위해계획된 겉치레 프로젝트의 일부 중심 항목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근대적인 사회주의 국가의 반짝이는 겉모습 뒤에 부실 공사로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세상이 존재했던 것이다. - P404

해방 이후로 어떠한 개선이 뒤따랐던 간에 보건 분야는 이내 후퇴하기 시작했다. 인쇄물 형태로 발간된 보고서와 신문 기사들이 보건 분야에서 장족의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했지만 기록 보관소에 조용히 쟁여져 있던 훨씬 비판적인 조사 보고서들은 만성적인 영양 결핍과 부실한 건강 상태를 폭로했다. 이런 상황은 집산화가 농민들을 농노로 전락시킨 농촌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P409

공산 정권은 이전 정권과 자신들을 비교하는 데 열정적이었고 그래서 통계학자를 선발하여 일제 침략이 시작되기 이전이자 국민당의 절정기이던 193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세부적이고 물가 상승률이 반영된 연구 결과를 내놓도록 지시했다. 결과는 대부분이 공개되지 않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해당 연구를 통해 다수의 사례에서 20년 전의 생활이 훨씬 나았음이 밝혀진 것이다. - P411

중국은 구호와 할당량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캠페인으로 운영되는 국가였다. 질병을 통제하기 위해 예컨대 분뇨 처리 방식을 개선하는 등의 다각적인 측면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집산화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 P415

표현과 신앙의 자유, 집회와 단체 결사의 자유, 이동의 자유 등 가장 기본적인 자유가 점차 제한되면서 대다수 보통 사람들이 갈수록 무방비 상태가 되었으며 그들과 정부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할 만한 존재가 거의 전무했다. -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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