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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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부분을 읽은 후 읽으면 좋을 듯하다. <체스 이야기>를 단순한 체스 대결자들의 심리전으로만, <낯선 여인의 편지>를 한 남자를 향한 한 여자의 뒤늦은 짝사랑의 고백으로만 읽기에는 소설이 담고 있는 시대적 배경과 의미가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심리를 집요하게 실사처럼 그려내고 있어서, 잠시도 B박사의 이야기와 여인의 편지에서 눈을 떼기란 어려웠다. 소설의 흡인력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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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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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태평양 한 가운데 어린 소년이 있다. 16살 파이. 타고 있던 배는 침몰하고 작은 구명보트에 생명을 의지하고 있다. 그 배에는 파이이외에 얼룩말, 오랑우탄, 점박이 하이에나... 그리고 뱅골 호랑이가 있다. 굶주린 하이에나는 얼룩말, 오랑우탄을 차례로 집어 삼킨다. 파이는 그것을 고스란히 다 지켜봐야했다. 그리고 얼마 후, 보트 안에 몸을 숨기고 있던 호랑이는 그 하이에나를 먹어치우고 보트 위로 그 존재를 드러낸다.
 
깊이도 넓이도 알 수 없는 바다 위, 소년을 위협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도 가족을 잃은 슬픔도 아닌, 살고자 하는 본능이었다. 그 본능은 거대한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소년 앞에 서 있다. 거부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호랑이, 리차드 파커!  그 호랑이는 남아있는 모든 것을 모조리 집어 삼킨 후에도, 계속되는 갈증과 배고픔으로 으르렁댄다. 하지만 소년에게 이 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다. "호랑이보다 태평양이 더 두려웠다."(140)  파이는 더 두려운 존재와 싸우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호랑이를 필요로 하게 된다. 생존의 본능은 깊이 숨겨져 있어 그 모습을 짐작만 할 뿐... 하지만 존재를 위협받은 본능의 광기는 살아남기 위해 못할 것이 없다. 머지않아 소년은 현실을 받아들인다. 형체도 없는 희망을 기다리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눈 속에 선명하게 박혀있는 현실에 집중한다.

 

"모든 생물은 광기가 있어서, 때론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방식으로 행동한다. 이런 미치광이 기질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것이 적응의 원천이기도 하니까. 그런 기질이 없으면 어떤 종도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59)


"지나가는 배에 구조되리라는 희망을 너무 많이 갖는 것도 그만둬야 했다. 외부의 도움에 의존할 수 없었다. 생존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내 경험상 조난자가 저지르는 최악의 실수는 기대가 너무 크고 행동은 너무 적은 것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데서 생존은 시작된다. 게으른 희망을 품는 것은 저만치에 있는 삶을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다."(212)

 

소년은 처음에 호랑이의 존재를 없애버리려 한다. 하지만 그 호랑이를 의지하고, 길들이고, 그리고 사랑하게 된다. 둘은 하나의 운명이 된다. 파이는 리차드 파커와 닮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리차드 파커가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된다.  

 

"나를 진정시킨 것은 바로 리처드 파커였다.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가 바로 그 대목이다. 무서워 죽을 지경으로 만든 바로 그 장본인이 내게 평온함과 목적의식과 심지어 온전함까지 안겨주다니."(205)


"리처드 파커를 길들여야 했다. 그 필요성을 깨닫은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것은 그의 문제나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와 나의 문제였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도 비유적으로도 같은 배에 타고 있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터였다... 시간이 흐르면 동물의 끈질김은 사람의 연약함보다 오래 버티게 마련이니까."(207)


"정말로 사랑해. 사랑한다, 리처드 파커. 지금 네가 없다면 난 어째야 좋을지 모를 거야.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 못 견뎠을 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을 거야. 포기하지 마, 리처드 파커. 포기하면 안돼. 내가 육지에 데려다줄게. 약속할게. 약속한다구!(292)


"내가 동물처럼 먹어댄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 아팠던 날, 내가 얼마나 밑바닥까지 추락했는지 분명히 알았다. 시끄럽게, 정신없이, 늑대처럼 먹어대는 내 모습은 리처드 파커가 먹는 모습과 똑같았다."(279)

 

나는 미친 게 아니었다. 내게 말하는 것은 바로 리처드 파커였다!... 나는 호랑이와 말을 나눌 수 있다는데 흥분했다.(305-307)
"궁금하다, 사람 죽인 적 있어?
"둘"

"아니, 남자하나, 여자 하나."
"그럴 줄 았았어. 동물성은 후천적으로 발달한다고 하더라구. 그래 사람을 왜 죽였어?"
"욕구 때문에."
"그들을 안 죽였으면 내가 죽었을 거야.".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어. 그때 사정이 그랬어."
"본능이야. 그런 걸 본능이라고 하지. 하지만 대답해봐. 지금은 후회없어?"

 

이야기의 결론은 살아남은 피신 몰리토 파텔이 침춤호 침몰의 원인을 알기위해 찾아온 사람들과의 인터뷰로 끝이 난다.  이 소설은 수수께끼같다. 답을 찾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소설이란 그런 게 아니던가. 현실을 취해서 변화시키는 것. 비틀어 그 정수를 끄집어내는 것(7)" 내겐 완벽한 소설이었다.

 

"두 가지 이야기가 맞아 떨어져"
"그러니까 대만 선원은 얼룩말이고, 자기 어머니는 오랑우탄이고, 요리사는... 하이에나... 그렇다면 이 사람이 호랑이군요.!"
"맞아. 호랑이가 하이에나를 죽였지_ 또 프랑스인 장님도. 그가 요리사를 죽인 것처럼."(387)

...

"나는 두 분께, 그사이 227일 동안 일어난 일을 두 가지로 이야기해드렸어요."(393-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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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속도 - 사유하는 건축학자, 여행과 인생을 생각하다
리칭즈 글.사진, 강은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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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각 시기마다 삶의 속도를 달리하고, 그 속도에 따라 바라보는 대상, 의미 그리고 경험이 달라진다. 우리가 여행할 때 상황에 따라 속도가 다른 탈 것을 선택하듯이, 삶의 여정에 있어서도 주어진 상황에 맞춰 다른 속도를 낸다. 이 책은 인생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삶의 속도를 이야기한다. ˝여행의 속도는 여행자가 본인의 생명에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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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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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공통전염병으로 재앙의 불구덩이가 되어버린 화양, 그곳엔 인간의 이성은 다 타버리고 오롯이 인간의 죄악성이 드러나 있다. 28일의 시간은 그러한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 소설을 통해서 작가는 '희망'을 이야기하려고 했다고 했다. 작가는 그 희망을 재형이 자신의 개를 죽인 기준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고, 자신을 어려움에 빠트렸던 윤주와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는 과정을 통해서 보여주려는 듯하다. 재앙에 맞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희생과 사랑이라고...그것이 희망이라고...

 

"풍랑은 풍랑에 맡겨두고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거다(193)"라는 수진 아버지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작가의 말'에 덧붙인 우리는 "서로 빚을 지고 갚으며 살아가는 존재다(495)"라는 말에 공감한다. 살면서 이러한 상호작용이 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세상은 혼자가 아닌 함께 사는 곳이니까...

 

같은 시공간의 이야기를 여러 화자의 입장에서 전하는 구성은 소설을 더욱 촘촘하고 흥미롭게 만든다. 정유정 작가를 만나는 첫번째 작품이었는데 집중력있게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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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에 관하여 - 숭고하고 위대한 문학작품에 대한 단상들
샤를 단치 지음, 임명주 옮김 / 미디어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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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걸작과의 만남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인가'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걸작'의 현재성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생명력을 가지는 '걸작'의 위대함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샤를 단치가 말하는 걸작은 현실 위에 존재하는 영원한 현재이며, 항상 새롭고, 그리고 늙지 않고 언제나 젊다.

 

"걸작은 현실과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걸작은 그들의 장소, 시간, 그리고 우리에게서 나온다. 인간에게는 비범한 능력이 있다고 걸작은 말한다(33) 걸작은 불멸의 존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의 조각이다. 현재이므로 영원히 죽지 않는다... 살아보면 알 수 있다... 걸작은 영원한 현재다(45-46) 또한 걸작은 항상 새롭다. 특정 유행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유행을 창조한다(66) 유행. 새로움. 여기에 젊음을 추가하고 싶다. 유행, 새로움, 젊음은 어린 나를 흥분시켰고 성인인 나를 여전히 흥분시킨다. 걸작은 600살이 되어도 언제나 젊다(67) 600년 전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오늘 아침 내게 일어난 일 같다(68) 걸작은 걸작을 읽는 사람을 젊게 하고, 잠시이지만 불멸성을 경험하게 한다. 걸작은 시간을 뛰어넘는다(68)"


그렇다면 우리는 걸작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걸작은 우리에게 용기와 즐거움을 선물한다. 이러한 용기는 우리를 위험에서 구해줄뿐 아니라, 우리가 협소함과 편협합으로부터벗어나 더 넓은 광대한 존재가 되게 한다.  또한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깨닫게 하며, 무엇보다 인생을 사랑하게 만들어 우리가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한다. 다음의 6가지 항목은 샤를 단치의 걸작에 대한 생각을 요약한 것으로서, 우리가 걸작을 통해서 얻을 수 있게 되는 것들이다.

 

1. 걸작은 우리가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어떤 책을 혼자 좋아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책 속에서 뭔가를 발견한 것이다. 어떤 위대한 걸작도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못했는데 그 책이 나에게 뭔가를 준 것이다. 한 사람에게라도 자신을 내보였다면 그 책은 걸작의 칭호를 받아 마땅하다. 그렇다. '나만의 걸작'을 가지는 것은 아름답다...나는 사샤 기트리의 영화<<꿈을 꿉시다>>(1936)의 전화 장면을 마흔번도 넘게 봤다. 그리고 마흔 번의 즐거움을 얻었다(마흔 번 열광하고 감동받고 사랑에 빠졌다)(124)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디즈니 만화영화의 최고봉은 <아리스토캣>이라고 생각한다. 따뜻하고 재미있는 이 걸작은 내가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다...그리고 내가 꿈꾸는 인생도 더치스가 알려주었다. 걸작은 우리 인생의 흐릿함에 윤곽을 그려준다(126)"

 

2. 걸작은 인간을 광대한 존재로 만든다.
"걸작은 지금까지 가본 적이 없는 땅을 향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도약한다(69) 걸작은 새로운 영토의 정복자이고 우리 영토를 넓혀준다. 협소한 곳에서 벗어나게 하고, 덜 편협하게 하고, 덜 경직되게 하고, 덜 메마르게 하고, 덜 무미건조하게 한다. 책을 읽는 사람은 광대하다(193)"

 

3. 걸작은 우리를 구제해준다.
"내가 어렸을 때,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며 나를 구해준 것도 걸작이었다. 나의 왕국이었다. 힘든 일상을 조금이라도 조절할 수 있다면 어쩌면 살 말한 세상인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194) 노인들에게 걸작을 읽게 해야한다. 걸작이 우리의 청춘을 구해준 것처럼 나이든 우리를 불안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221)"

 

4. 걸작은 인생을 사랑하게 한다. 어두운 걸작조차 그렇다(195)

 

5. 걸작은 용기를 준다.
"작가는 책으로 우리에게 에너지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나는 걸작을 읽고 나면 이란의 독재정권과 우고 차베스의 연합전선도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긴다(196)"

 

6. 걸작은 인간을 걸작으로 살게 한다.
"걸작은 독자들로부터 아름다움을 끌어낸다. 바로 사랑이다(197) 우리는 걸작을 읽으면서 다양한 형태의 삶을 경험한다. 나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경험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209) 걸작을 쓰거나 읽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걸작으로 사는 것이다. 걸작으로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걸작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들도 혜택을 본다(224)"

 

작가는 걸작의 이러한 능력들이 우리를 변화시켜 우리 스스로를 걸작이 되게 한다고 말한다. 걸작에 대한 지나친 과장이고 포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걸작은 충분히 그런 일들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또한 우리가 변화될 수 있는가 없는가는 걸작의 유일한 기준이라고 말한다. "반박할 수 없는 유일한 걸작의 기준은 우리를 걸작으로 변신시키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걸작이 우리 곁을 지나가면 우리는 더는 같은 사람일 수 없다. 보통의 작품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지만 걸작은 우리를 지배하고 변신시킨다. 양식없는 사람이나 건달을 빼고 프루스트를 읽고 변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201-202)"

 

걸작은 우리의 인생을 걸작으로 변화시킨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들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한 간접경험에 대해서 강조한다. 나침판없이 살아가는 인생에서 우리가 걸작을 만나서 알게 되는 경험들은, 우리에게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샤를 단치의 <<걸작에 관하여>>는 인생을 바꿀 걸작을 찾아가는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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