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성들

자신들의 사향 냄새에 흥분하고 다수에게 주어지는 손쉬운 힘에 잔뜩 흥분하여 신이 나서 그애를 괴롭혔다.
"엄청 새카매, 엄청 새카매. 네 아버지는 발가벗고 잠을 잔다며. 엄청 새카매, 엄청 새카매. 네 아버지는 발가벗고 잠을 잔다며. 엄청 새카매......"
당사자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두 가지로 즉석에서 모욕적인 노래를지어 불렀다. 그녀의 피부색과 어른의 수면 습관이라는 거의 아무 연관도 없는 두 가지를 대충 엮어서 그들도 검은 피부색을 가졌고 각자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그런 느긋한 습관이 있다고 해봐야 무의미했다.
첫번째 모욕의 공격성은 그들이 자신의 흑인성을 업신여기기 때문에생겨났다. 알게 모르게 일궈진 무지와 정교하게 습득된 자기혐오, 공들여 고안된 절망을 전부 꿀꺽 삼켜서 활활 타오르는 경멸의 횃불을 피워올렸고, 그것은 텅 빈 정신 속에서 수 세대 동안 타오르거나 식어가다가 격분한 입 밖으로 흘러나와 그 순간 앞에 놓인 것은 무엇이든 태워버리는 것이다. 불꽃이 이글거리는 구덩이에 자기들 대신 당장이라도 집어던질 제물을 가운데에 두고 그 아이들은 섬뜩한 춤을 췄다. - P88

어른들은 보도 끝에 선 여자애 셋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둘은 코트를 망토처럼 머리에 걸쳐 코트 깃이 수녀복처럼 눈썹까지 내려왔고, 무릎을 겨우 덮는 갈색 스타킹 위쪽에 연결된 검은색 가터가 다 내보였다. 성난 얼굴은 검은 콜리플라워처럼 온통 일그러져 있었다.
페콜라는 모린이 도망간 방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우리와 좀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날개를 접듯 스스로를 접어넣은 듯했다. 고통받는 그 모습에 난 적의가 솟구쳤다. 그애를 다시 펼쳐 날을 세우게 만들고 싶었다. 구부정한 척추에 막대기를 쑤셔박아서 억지로 곧게 일으켜세우고 침을 뱉듯 자신의 비참함을 거리에 내뱉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애는 속으로 삼킨 뒤 둘둘 말아 눈 속에 담아둘 뿐이었다. - P98

성가대에서 메조소프라노를 담당하는데, 목소리가 맑고 안정적이지만 독창으로 뽑히는 일은 없다. 풀 먹인 하얀 블라우스와 하도 다림질을 해서 자줏빛이도는 푸른 치마를 입고 두번째 줄에 선다.
그들은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학, 정규학교를 다니며 백인의 일을 세련되게 하는 법을 배운다. 백인의 음식을 준비하기 위한 가정 경제 흑인 아이들에게 순종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학, 피곤에 지친 주인의 몸과 마음을 풀어주고 무뎌진 영혼을 즐겁게 해줄 음악. 여기서 그들은 포치 그네와 금낭화 화분이 놓인 부드러운 가정에서 시작된 교육, 곧 올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마저 완수한다. 절약과 인내와 도덕수준과 훌륭한 예절을 공들여 계발한다. 한마디로 펑키한 특성을 없애는법. 끔찍한 열정의 펑키함, 본성의 펑키함, 아주 광범위한 인간적 감정의 펑키함.
어디서든 이 펑키함이 튀어나오기만 하면 싹싹 닦아 없앤다. 딱딱하게 껍질이 생기면 녹여 없애버린다. 똑똑 떨어지거나 꽃을 피우거나어딘가에 달라붙으면, 열심히 찾아내 그것이 죽어 없어질 때까지 싸운다. 이 싸움은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지속된다. 약간 시끄럽다 싶은 웃음소리, 좀 굴렸다 싶은 발음, 약간 지나치다 싶은 손짓 같은 것. 너무 제멋대로 흔들거리지 않도록 엉덩이에 힘을 준다. 립스틱을 바를때면 입술이 너무 두꺼워 보일 수 있으므로 절대 전체를 다 바르지 않는다. 그리고 머리칼 끝이 말려올라갈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 P108

긴장해서였든, 서툴러서였든, 페콜라의 손가락이 닿은 팬이 기우뚱하더니 바닥으로 떨어졌고 검붉은 블루베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대부분 페콜라의 다리로 튀었고, 뜨거운 액체에 몹시 데었는지 페콜라가비명을 지르며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 꽉 찬 세탁물 자루를 든 미시즈 브리드러브가 부엌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한달음에 달려가페콜라를 손등으로 후려쳤고, 페콜라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페콜라는 파이 내용물이 흥건한 바닥에서 한쪽 다리를 접은 채 죽 미끄러졌다. 미시즈 브리드러브는 다시 페콜라의 팔을 잡아 일으켜 뺨을 때리면서, 너무 화가 나서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페콜라에게는 직접적으로, 프리다와 나에게는 간접적으로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정신 나간 멍청이…… 내 부엌 바닥을 엉망진창으로...... 봐, 너희가 뭘...... 일에 치여......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그런데 이제・・・・・・ 정신 나간・・・・・・ 내 부엌 바닥, 부엌 바닥・・・・・・ 내 부엌 바닥."
튀어나오는 말마다 김이 오르는 블루베리보다 더 뜨겁고 더 험악해서우리는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분홍색 옷을 입은 여자애가 울기 시작했다. 미시즈 브리드러브가 몸을 돌렸다. "쉬, 아가, 쉬, 이리 와. 오, 이런, 옷 좀 봐. 울지 마요. 폴리가 갈아입혀줄게." 이러면서 개수대에서 깨끗한 수건을 수돗물로 적셨다. 어깨 너머로는 우리에게 썩은 사과조각을 내뱉듯 이렇게 내뱉었다.
"세탁물 집어들고 여기서 당장 나가. 그래야 이 엉망진창을 치우지."
페콜라는 젖은 옷이 가득한 무거운 세탁물 자루를 집어들었고, 우리는 급히 문밖으로 나갔다. 페콜라가 마차에 자루를 실을 때, 울고 있는분홍색과 노란색 여자애를 달래며 조용히 시키는 미시즈 브리드러브 - P137

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애들 누구야, 폴리?"
"아무 걱정 마, 아가."
"파이 다시 만들어줄 거야?"
"그럼, 만들어주지."
"저애들 누구야, 폴리?"
"쉿. 걱정 마." 그렇게 속삭이는 말투에서 꿀이 뚝뚝 떨어져 호수 위로 번져가는 저녁놀에 그 맛을 더해주었다. - P138

약간이라도 거뭇해졌거나 비계를 제대로 떼어내지 않은 소고기는 퇴짜를 놓았다. 자기 가족이 먹을 생선이라면 조금 비린내가 나도 그냥 받았겠지만, 피셔네 집에서 그런 걸 내밀면 생선장수 얼굴에 냅다 집어던질 기세였다. 이 집안에서는 권력과 칭찬과 사치가 그녀의 것이었다. 평생 가져보지 못한 것, 곧 폴리라는 애칭도가지게 되었다. 하루 일과를 끝낸 뒤 부엌에 서서 자신이 해놓은 일을 둘러보는 것이 그녀의 기쁨이었다. 비누가 여남은 개나 있고 베이컨도 짝으로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반짝반짝 닦아놓은 냄비와 프라이팬, 광이 나는 마룻바닥을 한껏 즐겼다. "폴리가 그만두면 절대 안 돼. 저런 사람은 다시는 구하지 못할 테니까. 구석구석 완전히 깔끔해지기 전에는 부엌을 나가는 일이 없다니까. 정말이지 이상적인 하인이야."
이런 말을 들으며, 폴린은 이 질서정연함과 이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세계에 혼자 간직했지. 예전에 가게였던 자기 집이나 자기 아이들에게 도입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아이들을 억지로 점잖음이라는 가치로 몰고 갔고, 그러면서 두려움을 가르쳤다. 어설플지 모른다는 두려움, 아버지처럼 될수 있다는 두려움, 신의 사랑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촐리의 어머니처럼 미쳐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 아들은 두들겨패서 이 집에서 나가버리고 싶다는 요란한 욕망을 심어주고, 딸은 두들겨패서 어른이 되는 것의 두려움, 타인과 삶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줬다. - P158

삶의 의미는 오롯이 자신의 일에 존재했다. 그녀의 미덕은 그대로였다. 교회도 열심히 나갔고,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흥청거리며 놀지도 않았고, 촐리에 열심히 맞서 자신을 지켰고, 어느 면에서나 촐리보다 우월했다. 아버지를 닮지 말라며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아무리 사소해도 단정치 못한 행실이 눈에 띄면 벌을 주면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에 열두 시간에서 열여섯 시간까지일하면서, 스스로 어머니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한다고 생각했다.
옛날을 떠올리거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해보는 일은 이따금, 이따금 있을 뿐이었고 그런 일도 차츰 드물어졌다. 그것도 예전의 백일몽으로 가득한 실없는 사색이었지, 오래도록 곱씹고 싶은 종류는 아니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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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의 데뷔작

나는 파란 눈을 가진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했고, 그러자 반감이 일었다. 슬픔이 담긴 친구의 목소리가 동정을 바라는 투라서 동정을 꾸며 보이긴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친구가 그런 훼손을 원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서 그애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때까지 난 예쁜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 멋진 사람, 추한 사람을보며 살아왔다. 그리고 ‘아름답다‘라는 단어를 당연히 사용하기도 했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충격적인지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 충격의 강도는 아무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 그것을 소유한 사람조차, 아니 본인이라 특히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맞먹었다.
내가 그때 살펴보았던 그 얼굴만의 문제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날 이른 오후 거리에 깃든 적막, 빛, 그 고백을 듣던 순간의 분위기도 작용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때가 내가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알게된 순간이었다. 나 혼자 상상해왔던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은 그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본인이 실행할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가장 파란 눈]은 그런 문제를 두고 무슨 말이라도 하고자 했던 시도다. 그애는 어째서 자신이 소유한 것을 체험하지 못했는지, 혹은 영원히 체험하지 못할 것인지에 대해서. 또한 그애는 어째서 그렇게 근본적인 변화를 원했는지에 대해서. 그애의 욕망에는 인종적 자기혐오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후 스무 해가 지났지만 그런 것이 어떻게 습득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누가 그런 말을 했을까? 자기 본연의 모습보다 괴물이 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누가 그애에게 심어주었을까? - P9

그애를 보며 모자란다고, 아름다움의 저울에 올려보니 너무 빈약하다고 여긴 이는 누구였을까? 이 소설은 그애를 단죄하는 시선을 쪼아 없앤다.
1960년대에 인종적 아름다움을 회복하자는 운동이 이런 생각을 불러일으켜, 나는 그런 주장의 필요성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남들에게매도당할지언정, 공동체 내에서는 이 아름다움이 왜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못했을까?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 어째서 광범위한 대중적 발화가 요구되었을까? 그 대답은 금방 자명해졌고 지금도 그러하니, 총명한 질문들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 소설을 시작한 1962년과 이것이 한 권의 책을 이루게 된 1965년에는 그렇게 자명하지 않았다. 인종적 아름다움의 주장은 모든 집단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문화적·인종적 약점에 대한 자조적이고 익살스러운 비판에 대한 반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외부 시선에서 유래하는 절대불변의 열등함이라는 가정을 내면화하는 해로운 과정에 대한 반대였다. 따라서 나는 한 인종을 통째로 악마화하는 기괴한 현상이, 아이라는 사회의 가장 연약한 구성원이자 여자라는 가장 취약한 구성원인 인물 속에 어떻게 뿌리박게 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무심한 인종적 멸시로도 초래될 수 있는 인간성의 황폐화를 이야기로 구성하면서 난 전형적이 아니라 독특한 상황을 선택했다. 페콜라의 사례가 지닌 극단성은 평균적인 흑인 가족이나 화자의 가족과 달리 구성원을 무력하게 만드는 무력한 가족에서 기인한다. 페콜라의 삶이 비록 남다르지만 그 취약성의 몇몇 면모는 모든 여자아이 안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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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생산 조건의 물질적 변화와 ... 법률적, 정치적, 종교적 , 예술적, 철학적 (요컨대, 이데올로기적) 형식들을 구분해야 한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형식들을 보고 사람들은 그 충돌을 알게 되고 끝까지 싸운다. 한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로 판단하지 않듯이, 그런 변혁기를 그 의식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의식은 물질적 생활의 모순으로, 사회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충돌로 설명해야 한다.

따라서 먼저, 마르크스는 의식이 "물질적 생활의 모순"과 관계없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지 그 반대가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무엇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신념은 그들이 살고 있는 물질적, 사회적 상황의 압력을 받아서 형성된다는 뜻이다. 인간은 어떤 순수이성의 왕국에서 살아가는, 육체 없는 정신이 아니다. 대다수 인간은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신념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결과일 것이고 그들의 일상적 행동에 지침이 될 것이다.

더욱이, 사람들은 원시공산제 사회가 끝난 뒤부터는 계급사회에서 살아 왔다. 이 말은 지배계급이 직접 생산자들을 설득해서 그들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직접 생산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직접 생산자들은 지배계급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전복할 수 없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그냥 체념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질서가 정당하고 바람직한 것이라는 긍정적 신념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직접 생산자들의 신념은 그들이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서 결정적 구실을 한다.

따라서 이데올로기, 즉 세계에 관한 체계적 신념은 오직 그것이 계급투장에서 하는 구실이라는 관점에서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는 지배적 생산관계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지 아니면 약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지 하는 면에서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이데올로기는 피착취자들이 자신의 사회적 처지를 잘못 알게 만들어서 계급사회를 지탱해 준다고 마르크스는 생각했다. 이데올로기는, 계급사회의 사회적 관계들이 인간의 역사에서 일시적이고 독특한 관계가 아니라 필연적이고 결코 폐지될 수 없는 자연적 관계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특정한 계급의 이해관계가 마치 보편적 인간의 이해관계처럼 보이게 된다.

만약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인류 발전의 최고 형태라면 자본가가 이윤을 얻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 자본가는 어느 누구도 착취하지 않는다. 사회적 생산에서 자본가가 하는 구실은 필수적인 것이고 이윤은 그가 기여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이런 식으로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이 사회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갖도록 설득해서 기존의 생산양식을 유지시켜 준다. (18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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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 시작

이를 위해 1980년대 초 이후 출판된 마르크스주의 문헌도 포함해서, 책의 말미에 실린 더 읽을거리를 수정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것은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지적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사상은 나날이 불합리해지고 혼란스러워지는 듯한 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대 세계의 원동력에 대한 깊은통찰이 그 세계를 변화시키는 수단이 아니라면 그런 통찰을 얻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본주의의 위기는 인간과 무관한 경제적 과정만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위기 때문에 부유한 나라들에서 대량 실업이 나타나고 많은 제3세계 나라에서 기아와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다. 그에 따른 끔찍한 고통은 인류를 노골적 야만으로 더욱 빠뜨리는 정치적 반동을 부를 수도 있다. 이미 1990년대에 서유럽에서는 파시즘이 대거 부활했고 발칸 반도에서는 의미 없는 내전이 일어났고 많은 아프리카 나라에서는 군벌들 간의 아귀다툼으로 갈가리 찢기다 못해 사회 전체가 해체되는 일이 벌어졌다. - P21

이 책은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기여하고자 쓴 것이다. 이 책이 몇몇 독자의 신념을 바꾸고 그들에게마르크스가 옳았다는 것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틀림없이 그들의 실천도 바뀔 것이다. 마르크스의 과학적 이론을 받아들이면서도그의 혁명적 정치를 거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은 분리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의 요체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했듯이 마르크스주의는 실천 철학이다.
이 책이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을 위한 활동의 필요성을 단 한 명의독자에게라도 확신시킨다면 나는 만족할 것이다. - P30

카를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독일 라인란트 지방의 오래된 성당 도시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유대인이었고 그들의 선조는 랍비였다. 마르크스 가문의 성은 원래 모르데하이였는데 나중에 마르쿠스로 바뀌었다가 다시 마르크스로 바뀌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아버지 하인리히는 1817년에 루터파 개신교로 개종했다. 유대인을 관직에서 배제하는 법령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라인란트는 비록 1815년에 반동적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됐지만 여전히 독일에서 정치적·경제적으로 가장 선진적인 지역이었고 프랑스 혁명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하인리히 마르크스는 성공한 법관이었고 이성의 힘을 깊이 신뢰하는 온건한 자유주의자였다. 그의 손녀인 엘레아노르는 할아버지가
"볼테르와 루소의 글을 줄줄 외는 진정한 18세기 프랑스인"이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와 아버지의 관계는 친밀했다. 마르크스는 죽을때까지 아버지 사진을 지니고 다녔고 그 사진은 마르크스와 함께묻혔다. - P32

여기서 마르크스는 평생의 교훈을 배웠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은 무기력해진다는 것을 말이다. 얼마 후 마르크스는 브루노 바우어와 베를린에 있는 옛 친구들을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새로운 원칙을 교조적으로, 즉 ‘여기에 진리가 있으니 그 앞에 무릎을 꿇어라!‘ 하는 식으로 세계에 제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계 자체의 원칙들에 세계를 위한 새로운 원칙을 발전시킵니다. 우리는 세계에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습니다. ‘너희의 투쟁은 어리석은 짓이니 그만 멈추라. 우리가 너희에게 진정한 투쟁 구호를 주겠다.‘ 우리는 단지 세계가 실제로 무엇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지를, 의식이란 심지어 세계가 원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획득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세계에 보여 줄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가 나중에 노동계급을 대하는 태도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론가의 임무는 노동자들에게 법칙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쟁취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 P39

이제 ‘자유단‘은 극단적 개인주의자들이 돼 있었다. 그들의 태도는막스 슈티르너가 쓴 <자아와 그의 소유>에 요약돼 있는데 개인 자신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슈티르너의 주장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5년 9월부터 1846년 8월까지 쓴 《독일 이데올로기》는 슈티르너를 논파하기 위한 저작이었다. 600페이지가 넘는그 책은 주로 마르크스가 썼는데 단지 슈티르너 비판에 그치지 않았다. 포이어바흐를 다루고 있는 첫 부분에서는 처음으로 역사유물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 책을 출판해줄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 P46

"우리의 주요 목적, 즉 스스로 명료하게 이해하는 것을 달성했으므로 우리는 그 원고를 쥐새끼들이 갉아먹도록 기꺼이 내버려 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를 통해 정치의 이론적기초를 마련했다. 그들은 자본주의 자체가 만들어 내는 물질적 조건에 사회혁명의 가능성이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조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이었다. 당시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썼다. "공산주의란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위한 조건에 관한 원칙들이다." - P47

1857년 1월에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 지금은 5년 전보다 훨씬 더 절망적인 상황이네. 나는 [인생의] 가장 괴로운 쓴맛은 이미 봤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1년쯤 뒤에는 엥겔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흔히 결혼해서 사적 가정생활의 소소한 불행에 스스로 빠지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걸세." 1862년에는 사정이 더 나빠져서 마르크스는 철도 사무원으로 취직하려고 애를 썼지만 워낙 악필이어서 취업에 실패했다. 몇 달 뒤에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날마다 아내는 자식들과 함께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네. 그러면 내가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 이런 상황에서 겪어야 하는 수모와 고통과 불안은 이루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네. 가엾은 우리 애들한테 더욱 미안한 것은 이런 일이 ‘박람회‘ 기간에 일어났다는 점일세. 친구들은 모두 재미있게 노는데, 우리 애들은 혹시 누가 찾아와서 엉망인 꼴을 보면 어쩌나 하고 벌벌 떤다네.

마르크스 가족이 이 시절을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엥겔스의 희생과 끊임없는 지원 덕분이었다. 1850년 11월 엥겔스는 맨체스터로 돌아가서 가족회사 에르멘·엥겔스에서 하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 P58

마르크스는 이제 인터내셔널 일을 관두고 자유롭게 됐으니 <자본론> 2권과 3권을 완성해야 했다. 분명히 마르크스가 게으르지는않았다. 그는 <자본론> 1권의 프랑스어 번역을 꼼꼼히 감수했고 독일어 초판의 원고를 수정해서 1873년에 2판을 펴냈으며 3권에 나오는 지대 분석을 위해 러시아의 농업 문제를 자세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자본론> 1권의 러시아어 초판은 1872년에 출판됐다. 검열관들은 "그 책을 읽을 사람들이 적을 것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휠씬 더 적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검열에서 통과시켰다. 그러나 <자본론>은 러시아의 급진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엥겔스는 마르크스가 1870년 이후 "농업경제학, 미국과 특히 러시아 농업의 실상, 화폐시장과 금융, 마지막으로 지질학과 생리학 같은 자연과학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또 이 시기의 수많은 발췌 노트에서는 독자적 수학 연구도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론> 2권과 3권의 원고를 손보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비참한 부르주아의 시기가 남긴 피해는 컸다. 마르크스는 항상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1874~1876년에는 해마다 카를로비바리를 찾는 등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데이비드 매클랠런[마르크스 전기 작가]이 썼듯이 "그는 이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다. 한마디로, 그의 공적 활동이 끝난 것이다." - P75

1881년은 전환점이었다. 롱게 가족이 파리로 이사했다. 마르크스는 손주 셋을 매우 그리워했다. 이때쯤 예니 마르크스가 불치병인간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마르크스 자신도 기관지염을 앓고있었다. 엘레아노르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당시는 끔찍한 때였다. 사랑하는 어머니는 큰 거실에 누워 있었고 무어[가족들이 붙인 마르크스의 별명 - 지은이]는 작은 뒷방에 있었다. 서로 그토록 익숙하고 친밀했던 두 분이 같은 방에 함께 있지도 못했다. 아버지가 기력을 회복해서 어머니 방으로 건너간 그날 아침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두 사람은 다시 젊어졌다. 병으로 피폐해진 늙은이와 늙어 - P79

죽어가는 노파가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인생의 출발점에 서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1881년 12월 2일 예니 마르크스가 죽었다. 엥겔스는 엘레아노르에게 "무어도 곧 죽는다"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한동안 알제리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파리의 롱게 가족을 방문해서 "아이들의 소란에서, 즉 ‘거시 세계보다 더 재미있는 이 ‘미시 세계에서 위안을 찾았다. 그런 다음 라우라와 함께 스위스의 브베로 갔다. 그 뒤 영국으로 돌아와 와이트섬에서 감기에 걸렸을 때 큰딸 예니가 38살의 나이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1883년 3월 14일 메이틀랜드로드를 방문한 엥겔스는 "가족들이 울고 있는" 것을 봤다. "최후가 가까운 듯했다." 엥겔스와 헬레네 데무트가 2층으로 올라갔을 때 마르크스는 잠든듯 조용히 죽어 있었다. 엥겔스는 프리드리히 조르게에게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인류는 머리 하나만큼 키가 줄었습니다. 그것도 우리 시대에 가장 뛰어난 머리 하나만큼."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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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읽을 책들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쓸데없는 영상을 찍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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