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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평점 :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봤다. 전쟁을 영웅적인 주인공을 내세워 비장미로 미화하지 않고 참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에 감동을 받아서 책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영화로 접한 작품 대신 다른 소설을 읽어보자는 마음이 들어, 같은 작가인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선택 했다. 솔직히 제목이 멋있어 보여서 선택한 것도 없지 않았다.
사실 나는 전쟁문학을 별로 안 읽어 봤고 굳이 찾아서 읽을 마음도 별로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과연 이 책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걱정도 있었는데 첫 문장을 읽고 나서 바로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했다.
“러시아에서의 죽음은 아프리카에서의 죽음과는 다른 냄새를 풍겼다. (7쪽)” 이어서 아프리카의 건조한 사막에서 바짝 말라 결국엔 해골이 되는 시체들과는 다르게 러시아에서는 날이 풀리자 오래전부터 꽁꽁 언 채 겹겹이 쌓인 시체들이 흐물흐물 축축하게 녹아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묘사가 이어진다.
러시아 전선에서 녹아내리는 시체들의 묘사가 참으로 상세해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끔직한데 이렇게 시체를 보는 상황은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라는 듯 덤덤한 문체로 묘사된다는 점이 더욱 서늘하게 다가왔다. 작가가 1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으로 참전해서 전쟁이 어떠한지 몸소 경험해 봤기 때문에 이러한 묘사들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전쟁 상황을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 집중하고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소설은 독일의 패색이 짙어 가던 2차 세계 대전 말기의 러시아 전선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에른스트 그래버는 열렬한 나치 신봉자도 아니고 사회주의자도 아닌 그저 전쟁에 지쳐있는 징집된 젊은 병사들 중 한명으로 묘사된다. 러시아 전선에서 계속해서 후퇴하고 있는데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란 기대도 없고 러시아의 폭격에서 그저 살아남는 것만이 지금은 중요하다. 명령에 따라 러시아 게릴라라고 잡아온 사람들을 사살하는 임무도 수행한다. 총구를 겨눌 때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수행한다.
2년 동안 한 번도 휴가를 가지 못했는데 이번에 3주간의 휴가를 받게 되었다. 드디어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집에서 쉴 수 있겠구나 싶었으나 막상 고향으로 돌아가자 살던 집은 연합군의 폭격을 맞아 부서지고 마을 전체가 폐허가 되어 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부모님의 소식을 찾던 중 어릴 때 같은 학교에 다녔던 엘리자베스를 만나게 된다.
전쟁터나 여기 고향이나 폭격을 맞고 죽은 사람들을 보는 건 똑같았다. 어디서도 일상적인 평범한 시간을 마음 놓고 보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버는 엘리자베스와 사랑에 빠진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언제 폭격을 맞아 죽을 지도 알 수 없고 나치 당원의 모함으로 까딱하면 집단 수용소에 갇힐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래버와 엘리자베스는 사랑을 한다.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지만 휴가를 받아 고향에 가면 일상적인 생활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있었던 그래버, 폭격으로 그나마 살던 집까지 무너진 상황에서 새 모자를 사면서 일상성을 회복하려던 엘리자베스. 이 둘이 사랑에 빠지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비인간적인 전쟁을 견디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인간적인 감정을 붙들려고 노력하던 두 사람이기에 말이다. 그것이 비록 잠깐의 안도일지라도 그 잠깐 동안의 일상의 시간은 아름답고 달콤했다. 이 둘이 사랑을 할 때는 전파 방해를 위해 하늘에서 뿌린 은박지 줄들이 나무에 걸려 있는 모습도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보인다. 폐허가 된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폐허 너머 파괴되지 않은 자연을 바라보자며 희망을 이야기 하던 연인의 모습은 또 어찌나 아름답던지.
엘리자베스와 사랑에 빠진 후 그래버는 전쟁의 무용함에 점점 더 다가간다.
친구 집에서 만난 게슈타포를 죽이기 위해 뒤를 쫓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실행하지는 못하고, 유대인을 숨겨주고 있는 옛 선생님을 찾아가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는 사실 뒤에 숨을 수 있는지를 묻기도 한다. 물론 선생님에게 묻고 있지만 자신이 이 전쟁과 공범관계에 있다는 양심의 소리에 응하기 위한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질문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내가 인간이었음을 확인하고 나서 다시 일선으로 돌아간 그래버는 예전 명령에 따라 행동하던 그 병사가 아니었다. 러시아 게릴라를 사살해야 하는 상황에 다시 놓이게 되자 그래버는 처음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그래버는 명령에 따르는 공범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로 인간적인 선택을 한다. 이 소설 처음의 그래버와 마지막의 그래버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는데 이렇게 그래버를 변화시킨 데에는 바로 사랑이 있었다. 사랑은 인간을 인간으로 있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가 인간적인 선택을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이 전쟁의 구조에서는 결국 누구도 살아남지 못 한다. 개인의 각성이 전쟁에서 생존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니까.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결말은 씁쓸하지만 당연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전쟁 중에 피어나는 사랑 이야기의 최고봉은 바로 이 소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내가 전쟁 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그만큼 이 소설이 주제도 문장도 완벽했다는 말이다. 작가 레마르크의 다른 작품들도 계속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