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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인데 어두운 방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평점 :
[리뷰] 한낮인데 어두운 방(에쿠니 가오리: 소담, 2013)
설레임과 고민 그리고 시원함
"미야코씨는 알지 못하는 일이지만 이 집이 설 당시, 근처 사람들은 '군함도 아니고 저게 뭐야'라고들 수군거렸습니다. 뭐, 야유인 셈이죠. 그런 집의 대체 어디에 나무며 꽃을 심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미야코씨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역경에 처하면 없던 힘이 솟는 타입입니다." p14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김성 화법으로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를 겸비한 일본의 여류문학작가로 유명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국내에도 많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답니다.
비록 윤리적으로 옳치 않은 관계를 묘사하거나 때로는 어긋난 사랑을 묘사하는 일로 거부감을 갖게된 이들도 있지만서도 '성숙함'으로 대표되는 성장과 관련된 '삶의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볼때 그녀의 소설은 항상 흥미롭습니다.
<한낮인데 어두운 방>의 중심인물은 히로시-미야코-존스 입니다. 작가는 이들 세사람의 관계를 줄곧 3인칭 시점에서 설명하는데 복잡하게 얽혀있다기 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관계변화를 묘사한답니다.
각각의 인물들의 성향과 작품의 줄거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할때 주인공 미야코는 '새장 속 새', 히로시는 '새장', 그리고 존스는 '새장의 문을 여는 이방인'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줄거리를 짧게 요약하자면 평범한 생활의 질서를 중시하고 전업주부로서의 삶에 충실한 미야코가 존스를 만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딛다 결국 세장 밖으로 날아가는 이야기랍니다.
"신선한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우산을 폅니다. 우산을 멀찍히 비껴들고 얼굴을 들어 내리는 비를 맞아봅니다. 기분 좋다. 여전히 분노로 몸이 떨리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지만 미야코씨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바깥은 기분이 좋아." p151
자기중심적이고 마초적인 성향의 남편의 등장은 물론이거니와 그런 남자를 뒤로한채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자의 등장은 에쿠니 가오리 소설의 대표적인 패턴이지만서도 '2010년 중앙공론 문예상'을 수상한 경력이 말해주듯 이 작품은 작품성과 색다른 느낌이 묻어나는 매력을 탐독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것 봐, 역시 난 세상 밖으로 나와버렸어." p180
피할 수 없는 결말로 치닫는 이야기 속에서 결국 불편한 내용을 담고 있는 불온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책의 매력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난 뒤 '미야코'의 감정의 변화와 표출을 되짚어 보니 아마도 주인공 미야코를 통한 '일탈'과 '해방감'의 카타르시스가 이 작품을 탐독하게 만드는게 아닐까라는 결론을 내려봅니다.
"이제 나는, 진짜 말 그대로 불륜녀가 되고 말았어, 그렇다면 제대로 된 불륜녀가 되자." p227
질서를 거스르는 행동을 비판하는 것은 그러한 행동이 가져올 혼란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필자는 자아찾기가 꼭 '일탈'로부터 시작된다고 보지 않기에 이러한 불온소설에 대한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처음 부터 끝까지 읽는 것은 질서에 대한 거부와 무력감 그리고 일탈을 꿈꾸는 마음이 필자에게도 있기 때문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이 가져다 주는 카타르시스를 많은 사람들이 내심 바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질서에 예속되는 것이 본능이라면 '질서를 넘어선 자유'를 바라는 것 또한 우리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미야코 씨는 존스 씨 눈에 더 이상 작은 새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p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