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엘리 위젤 지음, 김하락 옮김 / 예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 나이트 (엘리에젤: 예담, 2007)

'홀로코스트'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

 

  바벨론 포로 유수 이후 유대인들에게 최악의 수난기록으로 이름난 홀로코스트20세기 최악의 대량학살이며 600만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종교, 정치, 인종차별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된 사건입니다. 20세기 최대의 학살로 손꼽히는 사건인 만큼 이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 소설, 다큐멘터리 등이 많이 있습니다.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이나 , 아트 슈피겔의 만화 <> 그리고 자전적 수기로 <안네의 일기>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영화 <피아니스트><쉰들러 리스트>등은 대표적인 홀로코스트 장르에 속한 작품들입니다.

  이들 작품 가운데서 엘리 에젤의 자전적 수기인 <나이트>는 저자가 15살에 직접 경험했던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저자는 1년간 포로생활을 경험했으며 4군데의 수용소를 이동하였고 그 가운데서 가족이었던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누이들을 잃었습니다.(13녀의 가족가운데 저자는 3남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홀로코스트의 증인으로서 증언하는 마음으로 집필했다고 말합니다. 작가의 말이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의 굳은 결의처럼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 과오와 선택의 순간을 기억하고 보존하고 있는 역사를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자들의 무게감을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트>(엘리에젤: 예담, 2007)는 내용은 짧지만 그 어떠한 두꺼운 책들보다 무겁고 불길한 내용을 가진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절망’, ‘두려움’, ‘공포’, ‘광기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잉태하고 있는 죽음<나이트> 전반에 걸쳐서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불길함과 무거움의 원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필자를 괴롭게 하고 아프게 만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영적인 어두움입니다.

 

  ‘엘리 에젤은 이 작품을 15살 소년의 시점으로 이야기 합니다. 소년은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낮에는 탈무드를 읽고 밤에는 유대교의 회당에서 무너진 성전을 향해 울먹이는 모이셰를 영적 스승으로 모신 소년에게 있어 영적인 세계는 현실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도의 의미를 배우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노력하는 소년에게 있어 신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함께 하는 분이십니다. 소년은 자신의 영혼 깊숙 한 곳에 자리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기 위해 날마다 노력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하나님과 찾아가는 여정에 빠져 있던 소년에게 있어 홀로코스트는 분명 충격적인 사건일 것입니다. 특별히 그것이 전해들은 이야기가 아닌 현장에서 경험되어지는 사건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가축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면서 인간의 모든 권리가 박탈되고 학대와 폭력의 현장에서 경험되어지는 모든 사건들은 소년의 신앙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고도 차고 넘치다고 생각됩니다. 공의를 사랑하시고 언제나 은혜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이 경험해야할 사건으로 홀로코스트가 선택되어진 것은 분명 15살 소년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비참함을 경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년이 가지게 된 하나의 질문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공감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모든 것에는 질문이 숨어있고 질문에는 하나님의 뜻과 의중이 있다는 이들이 말하는 고난의 여정과 보상은 현재의 고통과 슬픔 속에서 모두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필자 또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를 질문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나이트>를 읽은 후 필자는 오랜만에 욥기서와 시편을 읽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훔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허영과 오만으로 점철된 나의 삶을 반성하고 나의 죄를 심판하실 그 순간을 필자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생각합니다. 이 두려움은 근거 없는 두려움이 아닙니다. 필자가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유대인 민족에게 경험되어졌던 홀로코스트가 내게 경험되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 나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고 안정된 가정을 소유하고 있으며 회개의 삶을 살았다고 믿지만 동시에 나 자신의 죄가 날마다 더해지는 가운데 회개를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고난과 슬픔이 다시 내게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듭니다. 나는 분명 두려움을 모르고 살았지만 죄에서 비롯된 심판과 징벌로 인한 두려움은 나의 마음을 어둡게 만듭니다. 빛이 없는 밤은 모든 것을 가리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하나님을 가리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밤이 두렵습니다.

 

  15살 소년의 눈으로 보는 홀로코스트이야기는 오늘의 나와 과거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간도 공간도 민족도 다르지만 홀로코스트는 분명 우리 모두에게 전해져야할 이야기이고 우리의 역사 가운데 영향력을 행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존재하심을 각자에게 묻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소년의 영적 스승이자 시게트의 유대인들에게 위기를 경고하였던 모이셰의 말로 질문의 답을 피력해봅니다.

 

모든 질문에는 답이 감추어져 있으며 사람은 묻고 싶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대답은 우리 영혼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우리가 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p. 31-32)

 

답을 찾기 위한 질문을 날마다 하고 있나요? 필자는 모이셰와 같은 질문할 수 있는 능력과 힘그리고 답을 깨달을 수 있는 영적인 각성의 기회를 간구합니다. 심판에 대해 늦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필자로 하여금 더욱 절박한 간구를 더하게 합니다. 나의 주님 응답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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