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전기 -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땅의 역사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유달승 옮김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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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전기(서울: 시공사, 2012)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땅의 역사

 

  동경35°13′ 북위31°47′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수식어는 다양합니다. 그곳은 하나의 신이 사는 집이며 두 민족의 수도이자 세 종교의 사원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예루살렘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단순히 지구 반대편 먼 나라의 수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지역, 종교의 중심지로 이해하고 있다면 <예루살렘 전기>는 독자가 될 여러분의 인식과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데 많은 도움을 줄것입니다. 즉 우리는 예루살렘의 역사를 통해 세계의 중심과 국제사회에 대한 식견을 제공받을 것입니다.

<신을 만나기 위한 그들의 기다림은 끊임없는 소유욕과 함께 타락으로 물들었다.>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1965년생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습니다. 어릴 시절부터 필연적으로 가지게 된 예루살렘에 대한 관심을 오랜 세월을 걸쳐 연구한 방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예루살렘 이야기를 쓰면서 저자는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여 역사가의 특정한 사관에 구애받지 않는 예루살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전기>는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정치, 문화, 종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큰 비중을 차지한 세력과 지도자 혹은 정복자를 연대순으로 나열하면서 각각의 시대에 특정한 키워드를 제목으로 부여하고 있습니다.

  1부 유대교: 하늘과 땅, 예루살렘과 성전, 지성소와 선택받은 백성들의 이야기 그들은 예루살렘 이미지의 시작이자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대교를 중심으로 예루살렘의 탄생과 종교의 기원을 본다.

  2부 이교: 예루살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제국 로마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는 새로운 정신적 가치가 태동하고 그리스도교의 두각이 돋보인다.

 3부 그리스도교: 수많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면서 예루살렘은 더이상 유대교만의 성지가 아니게 되었다. 정통그리스도교의 의식과 문화는 새로운 예루살렘의 지배코드가 된다. 개종을 둘러싼 박해와 갈등은 분쟁의 씨앗이 된다.

 4부 이슬람: 시대가 그를 원했고 그가 등장했다. 신의 사자 혹은 사도로 불린 정복왕의 탄생과 쿠란의 쓰여짐은 세대를 넘어 오늘까지 예루살렘을 세 종교의 장소로 만들었다.

 5부 십자군: 동서양의 과격한 만남, 회복과 수호를 대의로 내세운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의 충돌은 문화의 교류 뿐만이 아니라 종교의 교류이며 예루살렘이 동서양의 정신적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6부 맘루크조: 피폐해져버린 예루살렘은 군사적 요충지도 아니고 문화적 중심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이었던 맘루크조는 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는가?

 7부 오토만 제국: 예루살렘 재건의 사명을 가진 자들이 새로운 수호자가 되어 예루살렘을 회복시킨다. 힘의 논리에 의해 색을 달리 하는 예루살렘의 현장은 피와 복수 그리고 소유욕에는 끝이 없다고 말한다.

 8부 제국: '예루살렘 신드롬'을 앓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나아간다. 정통성을 부여받기 위해 때로는 환상을 좇아 모여드는 정복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9부 시온주의: 축복과 저주의 그날 시온주의는 종말의 때를 위한 마지막을 준비한다. 모두를 적으로 삼을 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기다린다. 종말의 날은 새로운 시작이며 재건된 그곳은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는 새로운 제사가 이뤄질 것이다.

 

   신학생으로서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본 <예루살렘 전기>는 역사의 묘사에 대한 중립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하였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중립의 입장이 언제나 중요한 사실을 모두 기술하거나 들여다 볼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염두하여 보아야 한다는 것을 단서로 책의 유익함을 논하고 싶습니다.

  하나의 예로 그리스도교의 중심에선 예수에 관한 저자의 진술은 역사성에 기초한 인간 예수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그의 병고침과 죽은자를 되살리는 행위 그리고 수난과 죽음을 언급하면서 복음서를 인용하거나 요세푸스의 진술을 가져오지만 그를 인간 그이상의 존재는 아니다라는 견해를 유지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중심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어떻게 분리되는지를 간과하는 오류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무함마드에 대한 정복자로서의 이미지 해석에도 비슷하게 적용되기도 합니다.

  역사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각자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상대가 모두 만족할 만한 기사의 내용만을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보다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역사를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요한 펙트에 손상이 간 이해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립적 기준을 가진 상태에서 예루살렘을 초기부터 현대에 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자료의 집합이라는 점과 세계의 모습과 예루살렘의 모습을 비교하여 오늘날 예루살렘을 둘러싼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의 차이를 독자마다 판단할 수 있는 식견을 제공해준다는 점입니다.

  정치, 사회, 문화는 과학과 경제의 시대로 넘어선 오늘날에도 종교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종교의 시대로부터 시작되고 탄생된 인류의 문화의 발전사에 새겨진 또 다른 코드가 아닐까요? 예루살렘 전기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그 또 다른 코드의 해석의 관점을 제시해주는 유용한 책이기에 국제사회의 흐름 및 분쟁과 종교의 기원과 인문학을 위한 도서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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