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없는 삶 속에서 답을 찾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인인 지은이 이덕무(1741-1793)는 박학으로 유명한 학자입니다. 어릴적부터 죽기까지 읽은 책이 무려 2만권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올 정도로 다독을 즐긴 이덕무이기에 규장각 검서관(서적의 교정 및 선사등의 업무를 보좌하는 직책)이라는 직책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됩니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과 문(文)의 깨달음에서 삶의 기쁨을 발견한 조선의 대표적인 문인 이덕무. 사람들이 '책에 미친 바보'라고 말할때에도 진심으로 웃으며 마주 대하는 자세를 보여준 '이덕무의 삶'에서 정답없는 삶 속에서 삶의 정도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2004년 초판 이후 2011년 개정판 1쇄가 나온 '책에미친바보' 현대적 감각이 느껴진다.> 우리는 읽는 다는 것에는 어떠한 의미를 두고 있을까요?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p.51) 이덕무가 말하는 책을 읽는 이유입니다. 무릇 책을 벗삼아 노니는 선비는 고지식하고 친구가 없을듯 싶으나 북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들인 홍대용, 박지원, 유득공과 같은 당대의 인물들과 깊은 교류를 맺으며 왕으로부터 인정받고 청렴함을 통해 동료들의 깊은 신뢰를 쌓은 인물이니 읽은 내용을 삶에 적용시켜서 살아가는 것에 마치 표리일체를 옮겨놓은듯한 인상을 줍니다.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한 스펙을 위해서 책을 읽고 쓰지도 못할 내용으로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주먹구구식으로 낭비하는 이들에게 이덕무의 깨달음의 깊이와 삶의 자세는 '안빈낙도'란 저런 삶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덕무의 삶과 깨달음이 우리의 삶의 정답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삶 속에서 얻어진 깨달음은 오늘날 가진것이 부족하다 말하며 억지로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세상에 놓여진 수많은 진리 가운데 진리라 말할 수 있는 것들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깨달음의 깊이가 더해질 수록 우리는 원칙의 가치를 생각하고 삶의 중심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가치있다고 여긴 것들이 깨달음이 더해질수록 가치없는 것으로 변화할수도 있으며 가치없다고 생각한 것이 소중한 것이었음을 깨달게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수많은 진리가운데 진정한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몇 안되리라고 생각됩니다. 이덕무의 글이 시대를 넘어서 우리곁에서 전하는 메시지 또한 사람들에 의해서 소중한것이라고 받아들여질수도 있고 가치없는 글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대의 선비들이 그를 존중하고 그와 벗하기를 즐거이했던 이유는 이덕무의 삶 그 자체를 동경하고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책에 미친 바보>를 통해서 조선 후기 문인의 삶 가운데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선비란 입신양명의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진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고매하고 도도한 삶의 자세를 말하며 세속적인 것을 멀리하고 정신적 가치만을 우선시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정답인지를 찾기 앞서 먼저 시대가 흐르면서 전해져 오는 소중한 것들을 찾기를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덕무의 삶에는 기쁨과 소중함을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그가 남긴 글들을 선별하여 모아놓은 산문선집을 통해 느림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책읽기의 즐거움과 그 가운데서 발견되는 진리로의 걸음을 떼며 책을 읽는 모든 독자분들과 함께 수많은 진리 가운데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