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 예수
칼릴 지브란 지음 / 프리윌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독교에 대해서 안다고 말하지만 얼마나 정확하게 아는지를 살펴본다면 오해와 왜곡에 의해서 이해되는 경우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기독교인을 비롯하여 일반 기독교 신자들과 지도자들 조차도 심지어는 교회공동체내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이해는 서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양한 해석과 이해가 함께 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더욱 풍성히 더해주며 논란 가운데서 발전을 이뤄나가는 힘이 되어줍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최근의 한국교회 기독교인들을 바라볼때 그들의 이해가 지나치게 사변화되거나 경직된 느낌이 듭니다. 특별히 신의 아들, 인류의 메시아, 다시오실 심판의 주에 대한 강조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강조하는 가운데 지나친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나친 선입견이 때로는 사회의 반발을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는 하나의 측면만을 향해 눈을 돌리고 그 가르침을 신앙의 기초로 삼는 과오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오들이 우리 안에서 반성되어지고 균형잡힌 온전한 이해로 돌아선다면 복음의 메시지는 어떻게 바뀌게 될가요?

예수를 혐오하는 사람 케사레아의 예프타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에 대해 진절머리가 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모든 호칭은 물론이고 그가 태어난 고장 이름만 들어도 화가 납니다." 나는 이제 예수의 예자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죽어버린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다는 그가 부활하고 승천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것인가에 대한 말을 하는 이들에게 믿음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믿지 않는 자들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결국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과정의 연속은 반복되어지는 것이겠지요. 오라토리아 작품 '예프타'의 짜증섞인 불만과 불신의 말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반복되는 말입니다. 
  복음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향한 짜증 섞인 그들의 반응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의 원인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으며 그들의 분노가 향하는 대상은 누구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림자 같은 존재에 불과한 그를 대단한 구세주로, 예언자로 만들어가는 이들에 대한 조소와 힐난을 보며 그는 누구를 조롱하고 힐난 하는지를 책을 통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누구도 그를 인간으로부터 떼어내서는 안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동시에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 땅에 오셨지만 동시에 요셉의 아들로서 목수일을 하고 마리아의 아들로서 어머니와 형제를 부양한 사람이기도 하였습니다. 신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인간이기도 하였던 그의 삶은 공생애 기간동안 사역 가운데 가르쳐 지는 많은 가르침의 인과관계를 생각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 그의 인성을 부정하고 신성만을 강조한다면 이는 대단한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그가 먹고 마시고 살아온 30년의 삶은 송두리째 신비만이 남아있는 허구의 삶이 될 가능성 조차도 제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역사적인 인물 즉 살아있는 인물이자 생생한 실존의 인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부정하는데 기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저자 칼릴 지브란의 상상력과 믿음의 진수가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진술되어지는 예수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만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으로서의 면이 없어져버린 가운데 우리의 신앙의 지표는 어디를 향하여 있는지를 재점검해야 할 타이밍은 지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아들이자 목수였던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하나님과 아들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그를 인간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 '신의 아들 예수'로만 기억하고 진술하고 있는 것을 반복합니다. 그 결과가 바로 '예프타'와 같은 이들의 힐난과 조소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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