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관>>은 러시아의 어느 소도시에 암행 감찰관의 방문이 온다는 소식 가운데 생겨난 사건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희극이다. 작품 속 주인공인 '홀레스따꼬프'는 하급관료이지만 중앙의 암행감찰관으로 착각한 사람들을 속이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과 주인공이 떠난뒤 남겨진 이들의 깨달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는 해학이 담겨져 있다. 관료사회와 그 면면을 파헤치고 조롱한 '니꼴라이 고골'은 작품 속에서 속물적 인간들의 자화상을 훌륭이 그려냈지만 <<검찰관>>으로 인하여 6년간 고향을 등져야 하기도 하였다. 웃음을 통한 현실의 고통 바라보기로 인하여 풍자의 진수를 보여준 <<검찰관>>은 매력적인 하급 관리 주인공 '홀레스따코프'는 작가가 독자와 관객들에게 선보인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러시아의 관료제도와 보수적인 체제 안에서 <<검찰관>>과 같은 풍자극이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작가가 탄생시킨 '홀레스따꼬프'는 20대의 젊은이로서 입만 열면 과장과 허풍을 말하고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허풍쟁이, 거짓말쟁이 등으로 여기며 멸시하거나 거리를 두게 되지만 작품 속 주인공은 마치 '속임수'로도 알려진 '머큐리'처럼 사람들을 속이지만 독자와 관객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캐릭터이다. 이는 작품 속 주인공이 속이는 대상들에 대한 관객과 독자들의 반발심리에 기인한다. 즉 악이되 더 큰 악을 비하하기에 먼저의 악은 비난을 덜 받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홀레스따꼬프'는 변화무쌍하다. 여기서 변화무쌍하다는 것은 그 자신이 제 3의 인물을 연기할때 자신이 원하는 대상으로 완벽한 연기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가 허풍을 떨고 과장되게 이야기 하며 사람들을 속일때 그의 말을 믿고 그에 반응하게 된다. 결국 상대가 알지만 그는 속일 수 있다는 경지에 오른 인물이 바로 '홀레스따꼬프'라고 말할 수 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대체로 자신들의 직위를 마음껏 누리는 관료들이라는 점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점에서 그들이 속아 넘어가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작품에 대한 해석은 일차적으로 관료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라고 말할 수 있다. 지방의 소도시를 지휘하는 이들에게 닥친 암행 감찰관은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상위권력이자 그들의 위치를 위협할 수 있는 이의 등장이다. 항상 남의 위에 서있던 그들은 자신보다 높은 권력을 마주쳤을때 허둥대고 당황해 한다. 거들먹거리는 이들의 당황스러움은 겉으로는 더큰 권력이지만 결국엔 그들 보다 낮은 인물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니 이 또한 독자와 관객들에게 재미있고 통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 관점에서 이 작품을 보자면 이 작품은 사회적인 퇴폐를 가리킬 수 있다. 우리는 웃음 가운데서 현실의 고통과 슬픔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믿고 따르던 이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면면에서 우리는 그들의 통치아래서 살아가는 슬픔을 바라보게 되고 사회 속 또 다른 사회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관점이던 해석이던 우리는 '홀레스따꼬프'의 다양한 인물 변화만큼이나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해석이야말로 독자와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즐거움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풍자 가운데 드러나는 날카로운 공격의 발톱을 숨기고 관객들에게 발가벗겨 세운 <<검찰관>>이 단순히 사회를 조롱하고 비판하기만 한다면 작품의 매력은 반감될지도 모른다. <<검찰관>>의 도덕과 사회에 대한 풍자는 기실 사람들에게 다양한 상황을 보여주고 담론을 이야기 한 뒤 바꿔나가는 역할로서 독자와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극의 마지막 부분처럼 무언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또한 생각하며 이야기 할 수 있게 된다. 막이 내리는 순간 또 다른 막이 오르는 희극 <<검찰관>>은 작가 '니꼴라이 고골'이 던지는 거짓말 처럼 사라지는 불량 솜사탕의 달콤함 처럼 순수함을 가장한 나쁜 먹거리로 유혹하는 달콤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