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라셀라스>>의 원 제목은<<아비시니아의 왕자 라셀라스 이야기>>이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작품에 등장하는 동방의 작은 나라 아비시나의 '라셀라스'왕자가 겪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질문 그리고 대답들을 통해서 얻게된 해답을 철학적 사고로서 옮겨 놓은 내용이다. 저자인 새뮤얼 존슨은 18세기 유행한 계몽주의(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사고개념)을 통하여 인간의 삶의 의미와 본질을 성찰하는 가운데서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이러한 본질과 의미에 대한 성찰의 질문은 비록 작품이 18세기 무렵 쓰여졌더라도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즉 18세기의 독자와 21세기를 살아가는 독자 모두에게 '새뮤얼 존슨'은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라셀라스'왕자를 통해 질문을 성찰하며 이야기 한다. 주인공 '라셀라스'왕자는 오늘날 에티오피아의 옛 이름인 아비시니아의 왕자로 소개되는 인물이다. 대왕의 넷째 아드린 그는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아가며 뭇 사람들이 바라보기에 축복과 은혜가운데 살아가는 왕자였다. 작가는 '라셀라스'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를 묘사하는 과정 가운데서 독자가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과 동시에 그러한 행복의 골짜기를 살아가며 불만족스러워하는 '라셀라스'왕자를 소개한다. 무엇이든지 흡족한 왕자의 주변 상황은 결코 왕자의 불만을 없앨수가 없었다. 왕자가 가진 불만은 '부족함이 없다는데 기인'한다. 그렇기에 그의 불만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공감하기 어려운 가운데 놓여져 있는듯 싶다. 하지만 작가는 '유토피아'로 보여지는 골짜기로부터 '라셀라스'를 현실 세계로 이끌어 내고 현실과 마주보는 동기로서 행복의 골짜기에 살고 있는 '라셀라스'왕자의 불만을 이야기 한다. '라셀라스'왕자의 현실로 이야기 되는 세상체험은 왕자의 고민인 '진정한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을 위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여정이다. 이러한 여정은 인간의 순수한 욕망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행복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는 점 그리고 모두가 공감할 법한 삶을 뒤로한 채 참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라셀라스'의 여정은 출발과 동시에 이미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있는 우리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을 살펴봄으로서 '라셀라스'왕자가 어떻게 될지 결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행복을 지키기 위해 행복의 '파랑새'를 쫓는 이들과 달리 왕자는 '행복이 없는 불만'가운데서 행복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결말은 어떠할까? 책을 읽는 가운데서 느끼는 것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행복에 대한 해답의 다양한 형태의 답변과 사유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게 되는 것은 '행복'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한 순간이나마 부질없음을 알게 해주는 메시지를 담고있다는 느끼게 된다. 인생의 허무함과 무상함을 이야기 할수도 있겠지만 '라셀라스'는 허무주의나 냉소적인 내용은 아니다. 작품속 '라셀라스'왕자는 순진하며 체험을 통해 얻어진 내용들을 사색하며 받아들인다. 그의 여정의 끝은 시작의 목적을 부합시키지 못하는 듯 보일지 몰라도 왕자 자신은 삶에 대한 충실함을 배우고 만족함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왕자의 삶은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망의 굴레, 덫의 삶에 빠져들어 삶을 불만족스럽게 하며 포기하는 이들과는 반대되는 실천의 삶을 제시한다. 독자는 '라셀라스'왕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게 된다. 그 안에서 '행복'을 배운다. 삶의 이치와 상식등을 통한 '라셀라스'왕자의 깨달음은 독자에게 주는 작가의 깨달음의 선물이다. 메마른 삶을 살아가며 잡하지 않는 행복을 위해 욕망의 채찍질을 가하는 독자들에게 작가가 주는 선물은 메마른 땅을 적시는 한줄기 우로와도 같은 시간을 선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