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저승에서 살아남기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이수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기발한 상상력이 우리를 유쾌하게 만든다.
아르토 파실린나는 <기발한 자살여행>으로 국내에 폭 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북유럽 작가입니다. 아르토 파실린나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wit'가 살아있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거운 주제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며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는 독자의 의표를 찌르고 유쾌함을 선사합니다.
사후세계를 현실세계와 동일선상에 놓고 서로 다른 차원에서 서로 불간섭하는 세계관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독자로서 그리고 필자로서 <저승에서 살아남기>와 특별한 세계를 발견해봅니다.
불편함 그게 어때서
<저승에서 살아남기>는 여성의 다리에 관심이 많은 남성이 우연이 길에서 만난 여성을 좇다가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죽으면서 시작됩니다. 살아 있는 주인공의 등장은 초반 2페이지 이후로는 죽어버린 주인공의 영혼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는 주인공 남성의 죽음을 고통도 슬픔을 생략하거나 약화시켜 설명한다는 점입니다. 죽은자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 주인공은 자신의 죽음을 짜증스럽게 생각하는 정도이고 아내는 그의 죽음을 잠깐 형식적으로 슬퍼할뿐 별 반응이 없습니다. 사후세계에서 만난 이들은 말할 것도 없으며 현실세계의 사람들도 단순한 죽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작가는 현실과 사후세계를 육체와 영혼의 세계. 즉 현실 세계에서 산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서로를 간섭하지 못하는 이중차원의 공간으로 설정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 정신력이 약하거나 지능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의 영혼부터 차례대로 분해된다고 말합니다.
<저승에서 살아남기>의 세계에는 수많은 성인들이 제자들과 함께 거닐고 교황, 정치인, 군인, 일반인에 동물들의 영혼까지 등장해서 길거리를 배회합니다. 작품에서 신은 따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은 추종자들을 피해 목성의 어느별 구석에서 숨어 지내시는 소문이 들리고 하나님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그마나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보다는 역사적인 인물로 등장합니다.) 이정도 상황 설정이면 막장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불편하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의 상황은 모두 'wit'가 살아있는 작품의 특징으로 보면 됩니다.
작가는 불편함을 고의적으로 유발시켜 불편함을 신경쓰지 못하도록 막장 설정이 계속 더합니다. 불편해 하지 말길 바랍니다. 이 작품은 종교의 사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작가가 설정한 사후세계를 통해 현실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들을 논하고 있다는 점을 포커스를 맞추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이승에서는 못찾았지만 저승에서 찾았습니다.
<저승에서 살아남기>에서 주인공과 중심인물들은 영혼들입니다. 모두 죽은 자들이죠. 작가가 설정한 사후세계에는 영혼이 분해되어 사라지는 것이 진정한 최후입니다. 즉 죽음이란 이승에서 영혼이 빠져나온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주인공 엘자의 주인공을 향한 힐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생'의 의미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죽음을 짜증내는 주인공의 모습과 자기중심적인 성격들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죽음을 뛰어넘는 가치의 발견을 찾기 위한 힌트는 영혼의 상태에서 만난 엘자를 볼때 느낀 얼굴이 붉은색을 띄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붉은색이란 생기를 의미한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인공 남성이 느낀 감성은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서 계속 비교되면서 마지막 예수님의 등장과 설교를 뒤로한채 함께 떠나는 장면에서 정점을 이룹니다.
현실 세계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
<저승에서 살아남기>의 주인공 남성은 삶과 죽음이후중 어느것을 더 좋아했을까요? 주인공이 죽었을때 약간의 혼란을 겪을뿐 상황 자체를 불평하지만 나름대로 빠르게 적응합니다. 결혼도 하고 직장도 가지고 있지만 그에게 있어서 삶의 소중함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주인공 남성은 사후에 겪는 패널티보다 새롭게 얻어지는 능력들 예컨대 생각하는 대로 어디로든지 이동할 수 있거나 벽을 통과하는 능력 배고픔과 고통을 겪지 않는 점과 지적 활동과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행동을 누리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현실보다 사후세계를 즐깁니다.
하지만 진정 주인공이 겪게되는 참다운 행복은 사후에 만난 엘자입니다. 모든 사람이 고대하던 예수님의 설교를 뒤로한채 그녀의 손을 잡아 끌면서 나가는 모습은 그의 새로운 삶의 시작을 여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아무감정없이 함께 살던 아내에게서 찾지 못했던 감정을 만일 현실에서도 찾았다면 그 또한 죽음을 슬퍼했을 것입니다.
<저승에서 살아남기>는 저승에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설정이 흥미롭게 펼쳐지면서 동시에 우리가 현실세게에서 잃어버리거나 소홀하게 다룬 것들에 가치를 재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저승도 이승도 별 다를게 없지만 저승이 특별하고 소중한 세계가 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우리의 이승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