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균 작가의 '삶'을 읽다. 2010년 한국 수필문학 코너에 낯설지만 친근한 느낌이 드는 <행복한 고구마>와 <돼지불알>이라는 작품을 뒤로한채 1년이 채 못지난 오늘 두 작품이 목성균 작가의 수필집임을 늦게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작가 목성균의 전집<누비처네>를 읽었습니다. 목성균 작가의 글을 보며 깊은 공감과 작품성에 눈을 뗄수 없는 자신을 보며 고등학교 졸업이후로 수필을 멀리했던 지난 시간의 안타까움을 회상해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문학의 흐름도 변합니다. 독자들의 느낌도 변하고 작가들의 글도 변합니다. 하지만 목성균 작가의 글은 더이상 변하지 않습니다. 유작이 되어버린 전집에 실린글에서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필자는 <누비처네>에서 현대 수필 문학을 보았습니다. <누비처네>를 읽으면서 필자가 가지고 있던 수필의 틀이 얼마나 좁았나를 생각합니다. '삶'의 돈독함이 느껴지는 수필 <누비처네>는 57세에 등단한 황혼기의 작가의 글은 서정적이며 아름답습니다. 작가의 글은 어릴적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를 과거에 넣음으로서 따뜻함과 아쉬움을 남깁니다. 삶을 회고하며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햇던 순간 순간들은 수필이라는 특징과 소설과도 같은 인물들의 연결고리가 만들어낸 분위기와 합쳐져 이야기 됩니다. 작가의 추억속에 등장하는 아버지, 어머니, 아내, 증조부, 부대장 내외 등 삶에서 만난 이들은 과거의 인물들이지만 작가의 현재의 삶을 형성하고 이를 회상하는 과정 가운데 돈독함이 드러납니다. '삶'이 그대를 외롭게 할지라도 <누비처네>에는 작가의 삶의 순간들과 작가의 감정이 담겨있습니다. 오래된 누비처네를 통해 작가의 가장 아름다웠던 작가가 꿈꾸던 이상적인 돈독함이 반영된 삶의 순간을 회상하는 신을 읽을때는 작가의 행복이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옹기와 사기'편에 등장하는 조부의 그릇을 깨는 장면과 그릇을 엎는 장면에서는 소싯적 작가의 당혹스러움과 안타까움이, '생명'편에서 아버지의 손과 자신의 손을 겹쳐 보면서 생명의 전달과정을 깨달은 작가의 마지막 글에서는 '생의 의미'를 '휴게소에서'드러나는 고민과 갈등은 독자의 삶과 작가의 삶에서 연결됩니다. 삶이 외롭고 고단할때 위로받고 싶은 글을 만나고 싶어 수필을 읽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잠시 쉬어가고 싶을때 목성균 작가의 글을 찾게 될듯 싶습니다. 비록 고인을 만나볼 순 없지만 <누비처네>에 담겨진 작가의 삶이 작가를 대신하여 삶과 깨달음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친구가 될듯 합니다. 아내는 애를 업고 나는 술병과 고기 둬 근을 들고 걷기 시작했다. 아내 옆에서서 말없이 걸었다. 달빛에 젖어 혼곤하게 잠든 가을 들녘을 가르는 냇물을 따라서 우리도 냇물처럼 이심전심으로 흐르듯 걸어가는데 돌연 아내 등에 업힌 어린것이 펄쩍펄쩍 뛰면서 키득키득 소리를 내고 웃었다. 어린것이 뭐가 그리 기쁠까. 달을 보고 웃는 것일까. 아비를 보고 웃는 것일까. 달빛을 담뿍 받고 방긋방긋 웃는 제 새끼들 업은 여자와의 동행,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그때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알았다. - 누비처네 p.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