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쪼가리 자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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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의 단순한 묘사에서 발전하여 인생의 내면적 진리를 발견하려는 신사실주의로 시작한 '이탈로 칼비노'의 글은 '우리의 선조들'을 통하여 우화적이며 동화적 인 가운데서 현실을 바라보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야기 한다. <<반쪼가리 자작>>은 '이탈로 칼비노'의 글의 변화의 기로에서 쓰여진 3부작 시리즈중 하나이다. 이탈로 칼비노는 <<반쪼가리 자작>>속 주인공의 시선으로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가볍게 그렇지만 결코 해답은 쉽게 내놓지 않는 글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조망한다.
<<반쪼가리 자작>>의 추천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쟁'이 낳은 '반쪽'
작품속 등장인물의 핵심은 역시 '메다르도 자작'이다. 전쟁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던 그가 종교전쟁
에 참가했다는 점부터 불안하더니 적의 포병 중대 앞에서 아니다 다를까 대포로부터 직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몸이 두 동강 난다. 현실에서라면 즉사 그 자체이겠지만 '이탈로 칼비노'에게 자작의 포격 사건은 또 다른 이야기 전개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의사들은 죽어가는 자작을 살려내고 무려 반쪽이라는 형태로 살려낸뒤 모두 기뻐한다. 순진하고 어린아이 같던 자작은 피와 살육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인간의 이기 가운데서 '반쪽'이라는 형태로 살아난다.
둘째, '선'과 '악'
되살아난 자작이 돌아왔을때 사람들은 고통에 신음한다. 그는 사악함이라는 명칭이 딱 어울리는 인물이 되어 돌아왔다. 고향 마을에서 자작은 방화, 살인, 사형을 통해 사람들에게 공포를 선사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상황이 될 무렵 '이탈로 칼비노'는 악한 '메드르도 자작'의 나머지 반쪽을 등장 시킨다. '악'과 반대되는 '선'한 '메드르도 자작'의 등장은 이분법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선'과 '악'의 형태 가운데서 어느 한쪽도 택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살아가며 괴로워한다. '메다르도 자작'의 '선''악'의 반쪽의 대면은 우리 자신의 내면의 충돌이며 마주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속 캐릭터들과 집단들 또한 이러한 이분법적인 인간의 모습을 비교하여 보여주며 이들 모두는 불안정한 모습으로 동화같은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은 착한 사람입니까 나쁜 사람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누가 정의의 편이고 누가 악당일까? 선악의 기준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한다면 이 질문들은 대답할 수 없는 내용임을 우리는 알 것이다. 반쪼가리 자작이 결투 후 온전한 모습이 되어 다시 하나가 되어 사람들을 잘 이끌어 나간다는 동화의 해피엔딩을 바라보며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고 이 모습이야 말로 완전함으로 거듭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할 듯 싶다. <<반쪼가리 자작>> 속 등장인물들은 환상 가운데 등장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들이 당하는 고통과 모순적 삶은 우리 인간들의 '인간적인' 부분일 것이다. 분열되어버린 자아를 하나로 맞추려고 노력하며 한쪽만을 택하려는 우리들의 모습을 재미있게 그리고 위트있게 풍자해낸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의 글에서 현대인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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