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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구 소련연방 체제가운데서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나 추방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체제의 이면 속에 가려진 어두운면을 실제의 경험에서 담담하게 기술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경험 가운데서 쓰여졌다는 말처럼 사실감이 넘치며 '삶'과 '죽음', '약자'와 '강자', '이념'과 '사상'의 비교와 대립등이 생동감있게 나타난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작가자신이기도 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수용소 수감일 중 하루를 이야기 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기에 그 하루가 가지는 특별함은 특별한 날보다 더 생동감있게 다가오며 수용소의 하루 가운데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인간의 권리' 그리고 '악행에 대한 고발'의 소재이기도 하다.
화려하고 웅장하며 강한 권력일 수록 그 뒷면에는 소외받고 학대받는 고통과 고난 속 인간들이 존재한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고발하는 수용소의 하루 또한 한때 세계를 양분한 이념과 사상의 주체인 이들에 대하여 '고발'하고 있다. 비록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자신은 이 작품으로 인하여 정치적 논란에 휩싸여 국외망명을 하게 되었지만 작품 속 '고발'과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작품성만으로도 노벨 문학상에 올라갈 수 있는 문학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읽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애' 가운데서 등장하는 '삶'
'이반 데니소비치'가 겪는 수용소의 하루를 읽으면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정치적인 색을 떠나 '인간애적' 부분이다. 강제노동수용소라는 곳은 정치적인 이유로 배제된 이들이 모여든 곳이다. 그곳에는 다양한 이유로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하지만 이 책이 문학작품으로서 고발의 의미만을 강조할 경우 작품은 체제비판과 이념대립의 도구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 작품속 중요한 또 다른 부분은 '고발'외에도 가혹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약자들의 삶이다. 이들 약자들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슈호프'의 등장은 분명 정치적 고발 요소보다는 '약자'에 대한 '동정'과 '사랑'을 불러 일으키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둘째, '화려함' 속에 숨겨진 이면에 대한 '고발'
유토피아, 모두가 잘 사는 세상, 평등사회 실천, 행복 추구권 등 오늘날 사회를 살아가며 자주 듣는 구호들이다. 모든 이들이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과거 수십 수백 년전에도 이미 등장한 이야기이다. 종교가 시작되기 이전 부터 이러한 달콤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계급이 실현된 시점부터 이미 이러한 달콤한 용어들은 다수를 지배하는 이들의 효과적인 선전 수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효과적이며 달콤한 유혹으로부터 헤어나오질 못하며 자신과 가족 이웃의 행복에 도취되어 왜곡된 현실을 받아들이며 부당한 것에 눈을 감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 이면에는 우리가 차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한숨 그리고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다수의 행복과 권력에 위배된다는 즉 체제에 반한다는 미명아래 가해지는 제재를 통하여 이뤄진다. 수용소의 하루에 등장하는 이들 또한 이러한 '인간 사회'의 또다른 이면이며 또 다른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 우리가 알면서도 외면한 그곳을 고발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외면하고 눈감고 있는 이들에 대한 그리고 알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경종이다. 비록 작품이 지칭하는 체제속 국가는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지만 우리의 주변에는 또 다른 수용소들이 형태와 모양만 달리하여 사람들을
배제하고 있을 것이다. 작품 속 키워드로 '고발'을 지칭하는 것은 '고발'을 통하여 현실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과 역할에 감명 받았기에 글을 써본다.
작품속에 등장하는 수용소의 하루는 사실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하루이다. 그 핍박과 고난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의 대립과 갈등은 고단한 노동처럼 힘들고 지친 하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나타난 글귀처럼 거의 행복한 하루라고 말할 수 있는 하루였다. 수용소의 하루하루는 항상 반복되며 큰 사건 사고 없이 반복되는 삶이다.
이 삶 속에서 작은 것에 만족하며 희망을 가진 '슈호프'가 풀려난 것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분명 '삶'은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며 '보다 좋은 삶'이란 희망을 가지고 감사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