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노력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노력을 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 아닐까? 이 책의 저자 진대제씨를 보면 그 노력이라는 것도 재능이 있어야 하는 생각에 주눅이 들 정도다. 그는 스스로 '항상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 이상의 대가를 받았다는 겸허함도 빼놓지 않는다.) 그의 인생은 놀라움과 감탄의 연속이다. 40년 동안 안고 살게 된 사타구니 습진을 얻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던 학창시절, 저녁 때 10원짜리 크림빵 하나를 사 먹는 게 소원이던 어려운 시절, IBM에서 최고의 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 하다가 '일본을 삼키겠다.'는 각오를 품고 삼성전자로 옮긴 일, 정통부 장관 시절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처음으로 부처의 예산을 자체 줄인 일, 그의 삶은 명민한 한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과 끈기로 얼마나 큰일을 해낼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이렇게 모범적인 사례만 언급하는 도덕 교과서 같은 책은 아니다. 중국기업이 우리나라의 벤처기업을 인수해서 큰 수익을 얻은 사례를 언급하며 핵심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부분은 독자들을 크게 깨닫게 한다. 삼성전자 재직 시절 부천공장 매각 협상에서 보여준 페어차일드측의 고압적인 태도에 질려서 이후 그들의 만남을 끝까지 거절한 일도 무척 인상적이다. 용서와 화해를 가르치는 건전한 자기계발서적에서는 볼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냉정할 정도로 현실적인 경험이 진솔한 자서전을 읽는 재미중의 하나다. 아쉬운 부분은 장관 취임 당시의 자녀들 이중국적 문제, 재산문제를 언급하며 그때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얼버무리는 부분이다. 교과서를 달달 외울 정도로 치열하게 공부하던 사람이 기자회견 자료를 준비 못해서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했다는 것이 좀 아쉽다.
정교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완벽한 스릴러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스릴의 향연이 펼쳐진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40대의 직장인 찰스는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자신이 타야 할 기차를 놓치고 다음 기차를 타게 됩니다. 그 안에서 그는 숨막히게 아름다운 여인 루신다를 만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급격히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그들은 불륜의 현장에서 강도를 당하고, 이후 찰스의 삶과 가정은 탈선과 추락을 거듭하게 됩니다.
<탈선>의 주인공은 평범하고, 소재는 뻔합니다. 초반의 이야기는 예측 가능하고, 이후 사건이 흘러가는 방향도 그저 그렇습니다. 주인공 찰스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우연히 범죄 사건에 말려들게 되고, 범인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듭니다. 주인공이 실수를 했으니 죗값에 해당하는 고생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하지만 또 주인공이니 범인에게 받은 만큼 되갚아주어야 합니다.
<탈선>은 스릴러의 공식, 아니 소설의 공식에 충실하게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한마디로 소재와 구성 자체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뻔한 작품입니다. <탈선>이라는 너무도 평범하고 민숭민숭한 제목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시겔의 이 작품은 놀랍도록 재미있습니다. '한 번 잡으면 눈을 뗄 수 없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라고 자화자찬하는 소설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탈선>이야말로 진정한 스릴러의 경지에 이른 걸작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예측 가능한 흐름이지만 그 과정이 박진감 넘치고, 짐작 가능한 반전이지만 그 구조에 정교함이 살아있습니다. 그 구성과 흐름이 보기 드물게 탄탄한 <탈선>은 거의 완벽한 스릴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설정이 결국에는 커다란 사건의 단초가 되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던 설정이 나중에 가서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뒤집힙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갈등과 반전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독자의 혼을 빼 놓습니다. 결말에 이르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사건들은 계속 꼬여가고, 잠깐 안도의 숨을 내쉴라치면 또 다시 사건에 휘말립니다. 작가는 마치 롤러코스트를 조종하듯 독자의 심장을 쥐고 흔들어댑니다.
한 관계자는 제임스 시겔을 가리켜 제임스 패터슨의 뒤를 이을 차세대 작가라고 칭찬했지만 이 작품의 재미를 생각할 때 그 말은 오히려 약소한 칭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의 대가들에 비교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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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정교함을 선사하는 초정밀 밀실트릭
고층빌딩 최상층, 이중강화유리로 된 유리창, 적외선 센서와 고성능 감시카메라, 그리고 비밀번호 없이는 올라갈 수 없는 엘리베이터, 이중 삼중의 철문, 복도에서 지키고 있는 세 명의 비서. 옥상으로부터도, 창문으로부터도, 천장이나 배기구로부터도, 계단으로부터도, 또한 복도로부터도 침입할 수 없는 완벽한 밀실.
어느 누구도 출입한 흔적이 없는 이곳에서 사장은 분명히 누군가에게 직접 둔기로 머리를 맞아 살해됩니다. 가히 추리소설 사상 최고의 불가능 밀실 살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리소설 중에는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작품이 있고, 읽고 나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푼 것처럼 뿌듯한 마음이 드는 작품이 있습니다. <유리 망치>는 두 번째 유형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께는 쉽게 시작하기 어렵고, 두 주인공이 엉터리 추리를 계속하며 암중모색하는 과정은 독자를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선 떠오른 용의자는 최첨단 하이테크 머신과 간병 교육을 받은 원숭이. 하지만 곧 트릭은 그렇게 만화적이지 않다는 뉘앙스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초정밀 밀실살인은 그런 식의 유치한 트릭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기대감을 고조시키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역시 의외로 간단한 범죄수법…….
정통추리소설에 가까운 1부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고, 범인의 드라마틱한 사연과 범행 과정이 펼쳐지는 2부도 재미있습니다. 독자에 따라서는 두 주인공이 기계적으로 추리만 되풀이하는 1부보다는 하드보일드풍의 2부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면 불가능 범죄와 너무도 간단한 트릭에 한 번 놀라고, 회한과 원한으로 가득 찬 범인의 삶에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그래서 'XX이란 유리로 만든 흉기처럼 쉽게 바스러지기도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제목은 추리소설 사상 가장 절묘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레이스 커튼은 쳐져 있었지만 가운데가 조금 열려 있었다. 방 안은 어둑했다. 수도고속 쪽으로 난 북쪽 측면은 유리창에 낀 때가 심했다. 샴푸를 세제가 든 물통에 적셔 유리에 거품을 발랐다. 통증을 참으면서 천천히 거품을 쓸어모으는데, 갑자기 오른손에서 스퀴지가 미끄러져 떨어졌다. 커튼 틈새로 믿지 못할 광경이 시야에 뛰어 들어온 것이다. 깜짝 놀라 얼굴을 창문 가까이 가져가니 방 저 안쪽, 문에서 바로 가까운 위치에 엎어진 채 쓰러져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꼼짝도 하지 않았고, 숨을 쉬는 낌새도 없었다. 살아 있는 걸까? 창 밖에서는 판단할 수 없었다. 좀 망설이다가 주먹으로 유리를 두드려 보았다. 둔탁한 소리가 났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잠깐 주저하다가 인터폰에 손을 뻗었다. "어이, 거기 있나?" 긴박한 장면인데도 농담이나 하는 고참처럼 태평스레 부르는 소리다 싶었다. "네?" 한참 만에 후배가 응답했다. "큰일났어. 얼른 경비실에 연락해 줘." "무슨 일인데요?" "사람이 쓰러져 있어. 최상층 북서쪽 방." "쓰러져 있다고요?" "일일이 대꾸하지 말고 빨랑 달려가!" 창닦이 청년이 소리치자 후배는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발소리가 울렸다. 인터폰을 그대로 두고 달려간 모양이었다. 창닦이 청년은 다시 한 번 움직이지 않는 모습에 눈길을 주고, 오싹 소름이 돋을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어느 모로 보나 시체가 틀림없었다. (46쪽)
인생을 포기하기는 쉽겠지만, 죽은 뒤 그것을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지금이 최악의 시기일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기회는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무슨 짓을 하든 견뎌내야만 한다. (362쪽)
초능력의 사회학: 그들은 무엇을 고민하는가? 사람들과의 접점을 찾아가는 초능력자 이야기
<이유>, <인생을 훔친 여자>처럼 사회비판적인 성격이 강한 걸작들을 써왔던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초능력에 관한 여러 작품을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용은 잠들다>는 초능력을 소재로 한 그녀의 소설들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써내는 작품마다 일본의 추리 관련 상을 섭렵하는 작가답게 <용은 잠들다>는 1992년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받았고, 1992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4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리 독특한 소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작품에는 두 명의 초능력 소년이 나옵니다. 하지만 비슷한 소재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그들은 자신들의 화려한 능력을 마음껏 펼쳐 보이지 못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다고 해서 일이 쉽사리 풀리는 것도 아닙니다. 외계인이나 미치광이 과학자로부터 지구와 인류를 수호하기 위한 거창한 싸움을 하는 것도 아니고, 현란하다 못해 눈부신 능력으로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지도 못합니다.
대신 그들은 주체할 수 없는 자신들의 능력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사회와의 접점을 찾지 못해 방황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엄청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고작(?) 유괴사건 하나 해결하기 위해 악전고투를 벌여야 합니다. 지구를, 인류를 구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초능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일이 쉽게 풀리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능력 때문에 남들보다 더 깊은 인간적 고뇌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부동산 거품이나 신용불량 문제가 아닌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고발적인 성격이 잘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은 옮긴이의 말처럼 서스펜스 소설인 동시에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연애소설이기도 한 셈입니다.
현실과 비현실, 합리와 불합리는 아주 잘 어우러진 형태로 공존한다. 영원히 교차할 일이 없는 철길과도 같다. 우리는 그 양쪽에 바퀴를 얹고 달리고 있다. 그래서 철저하게 현실적이어야 할 정치가가 무당에게 점을 보거나, 현실을 초월해야 할 종교가가 세금을 안 내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인텔리전트 빌딩을 지으면서도 심각한 얼굴로 고사를 지낸다. 합리의 레일 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면 냉혈한이 되고, 불합리의 레일로 기울어지면 광신도가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어느 지점에선가 탈선하게 되어 있다. (72쪽)
다음 번에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위해. 분명히 그럴 것이다-. 낙관적인 희망에 불과한 것이라 해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리고 그가 다시 한 번 이 세상에 올 수 있다면 좀 더 편한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그가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음 번에는 그가 남을 돕는 입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행복해질 수 있는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각자 몸 안에 용을 한 마리씩 키우고 있다. 어마어마한 힘을 숨긴, 불가사의한 모습의 잠자는 용을. 그리고 한 번 그 용이 깨어나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일밖에 없다. 부디, 부디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무서운 재앙이 내리는 일이 없기를-. 내 안에 있는 용이 부디 나를 지켜주기를-. 오로지 그것만을. (480쪽)
'연애소설'은 너무 뻔한 얘기를 풀어 놓는다. 가까운 사람들을 전부 죽음으로 몰아넣는 운명을 갖고 있는 청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너무 식상한 줄거리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미안했는지 그럴듯한 아포리즘으로 끝을 맺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별 볼일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영원의 환'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을 대신한 복수도 결국 자기 자신만을 위한 카타르시스에 불과하다는 냉소적인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만약 내일 죽는다면 뭘 할거냐?"라는 물음에 대한 기막힌 대답들을 들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다."는 식의 뻔한 대답 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