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정교함을 선사하는 초정밀 밀실트릭

고층빌딩 최상층, 이중강화유리로 된 유리창, 적외선 센서와 고성능 감시카메라, 그리고 비밀번호 없이는 올라갈 수 없는 엘리베이터, 이중 삼중의 철문, 복도에서 지키고 있는 세 명의 비서. 옥상으로부터도, 창문으로부터도, 천장이나 배기구로부터도, 계단으로부터도, 또한 복도로부터도 침입할 수 없는 완벽한 밀실.

어느 누구도 출입한 흔적이 없는 이곳에서 사장은 분명히 누군가에게 직접 둔기로 머리를 맞아 살해됩니다. 가히 추리소설 사상 최고의 불가능 밀실 살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리소설 중에는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작품이 있고, 읽고 나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푼 것처럼 뿌듯한 마음이 드는 작품이 있습니다. <유리 망치>는 두 번째 유형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께는 쉽게 시작하기 어렵고, 두 주인공이 엉터리 추리를 계속하며 암중모색하는 과정은 독자를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선 떠오른 용의자는 최첨단 하이테크 머신과 간병 교육을 받은 원숭이. 하지만 곧 트릭은 그렇게 만화적이지 않다는 뉘앙스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초정밀 밀실살인은 그런 식의 유치한 트릭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기대감을 고조시키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역시 의외로 간단한 범죄수법…….


정통추리소설에 가까운 1부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고, 범인의 드라마틱한 사연과 범행 과정이 펼쳐지는 2부도 재미있습니다. 독자에 따라서는 두 주인공이 기계적으로 추리만 되풀이하는 1부보다는 하드보일드풍의 2부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면 불가능 범죄와 너무도 간단한 트릭에 한 번 놀라고, 회한과 원한으로 가득 찬 범인의 삶에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그래서 'XX이란 유리로 만든 흉기처럼 쉽게 바스러지기도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제목은 추리소설 사상 가장 절묘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책 리뷰를 써주신 '사요나라'님은
책과 영화 사진을 좋아합니다. 엉겁결에 찍은 개벽이 사진이 어쩌다가 네티즌의 관심을 끈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또 다른 개벽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sayonara

지금이 최악의 시기일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기회는 올 것이다 - 책 속 밑줄 긋기

레이스 커튼은 쳐져 있었지만 가운데가 조금 열려 있었다. 방 안은 어둑했다.
수도고속 쪽으로 난 북쪽 측면은 유리창에 낀 때가 심했다. 샴푸를 세제가 든 물통에 적셔 유리에 거품을 발랐다.
통증을 참으면서 천천히 거품을 쓸어모으는데, 갑자기 오른손에서 스퀴지가 미끄러져 떨어졌다.
커튼 틈새로 믿지 못할 광경이 시야에 뛰어 들어온 것이다.
깜짝 놀라 얼굴을 창문 가까이 가져가니 방 저 안쪽, 문에서 바로 가까운 위치에 엎어진 채 쓰러져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꼼짝도 하지 않았고, 숨을 쉬는 낌새도 없었다.
살아 있는 걸까?
창 밖에서는 판단할 수 없었다. 좀 망설이다가 주먹으로 유리를 두드려 보았다. 둔탁한 소리가 났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잠깐 주저하다가 인터폰에 손을 뻗었다.
"어이, 거기 있나?"
긴박한 장면인데도 농담이나 하는 고참처럼 태평스레 부르는 소리다 싶었다.
"네?"
한참 만에 후배가 응답했다.
"큰일났어. 얼른 경비실에 연락해 줘."
"무슨 일인데요?"
"사람이 쓰러져 있어. 최상층 북서쪽 방."
"쓰러져 있다고요?"
"일일이 대꾸하지 말고 빨랑 달려가!"
창닦이 청년이 소리치자 후배는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발소리가 울렸다. 인터폰을 그대로 두고 달려간 모양이었다.
창닦이 청년은 다시 한 번 움직이지 않는 모습에 눈길을 주고, 오싹 소름이 돋을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어느 모로 보나 시체가 틀림없었다. (46쪽)

인생을 포기하기는 쉽겠지만, 죽은 뒤 그것을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지금이 최악의 시기일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기회는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무슨 짓을 하든 견뎌내야만 한다. (362쪽)


 

완벽한 작품구성과 탄탄한 소재 수집으로 유명한 추리 작가, 기시 유스케(貴志祐介)

 
 
기시 유스케
1959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교토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1996년 제3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 장편부 가작에 선정되어, 수장작이 '十三番目の人格―ISOLA'(열세 번째의 인격-ISOLA)라는 제목으로 가도카와 호러(角川ホラー)문고에서 간행됐으며 1997년 <검은 집>으로 제4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역량을 검증받았다. <푸른 불꽃>, <クリムゾンの迷宮>(크림존의 미궁) 등 작품을 선보여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호러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1998년 6월에 출간한 <천사의 속삭임>은 일본 '올해의 미스터리 50'에서 5위에 올랐으며, 2005년에는 <유리 망치>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영화 <검은 집> 방한 인터뷰(씨네서울) 보기 통합검색 결과 더 보기
 
 

 

기시 유스케의 원작 소설과 영화를 함께 비교 감상해 보세요

검은 집

검은 집
검은 집

검은 집
(2007)
푸른 불꽃

푸른 불꽃
푸른 불꽃

푸른 불꽃
(靑の炎, 2003)
ISOLA 十三番目の人格

ISOLA
十三番目の人格
(일본어)
ISOLA 다중인격소녀

ISOLA
다중인격소녀
(ISOLA 多重人格
少女, 2000)

 

평범한 사람들의 초정밀 범죄 구성과 해결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 추천 리뷰


네티즌 리뷰 더 보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사요나라'님이 권한,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모르그가의 살인

모르그가의 살인
노란방의 비밀

노란방의 비밀
황제의 코담뱃갑

황제의 코담뱃갑
13계단

13계단
세 개의 관

세 개의 관
십각관의 비밀

십각관의 비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