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 GP라는 폐쇄된 공간, 상명하복의 세계만이 존재하는 군대라는 조직. 밀실 스릴러의 요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배경에서 의문의 집단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한 무리의 병력이 파견된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정통 스릴러의 공식을 무난하게 따라간다. 심장을 조이는 듯한 공포가 계속되고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헐리우드식 반전도 나름 적절했으며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너무 평범하게 줄거리가 진행되고, 밀리터리 스릴러만의 독특한 여운을 기대했던 관객에게는 너무 모범적인 엔딩이 기다린다. 영화 전문가가 아닌 관객의 눈으로 보기에도 조금만 더 잘 만들었다면 더욱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대사는 어색한 욕설이거나 아니면 작위적인 문장들이 대부분이고, 계속 보고 있으면 어느 부분부터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편집을 좀 더 잘 했거나 아니면 과거 부분을 흑백으로 처리했더라면 좀 나았을는지도 모르겠다. ‘GP506’ 또한 무난한 한국형 밀리터리 공포물이다. 하지만 공수창 감독의 전작 ‘알 포인트’를 보고 느꼈던 충만했던 만족감을 이 작품에서 느끼기엔 약간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제이슨 본과 제임스 본드 그리고 람보 같은 인간병기가 은퇴를 하면 어떻게 될까? 유명 연예인의 보디가드를 소일거리삼아 하고, 국가를 위해서 봉사하느라 소홀했던 가족들과의 관계를 고민하면서 노심초사하고 있을까? 그리고 겁도 없이 전직 첩보원들의 딸을 납치한 범죄 집단에게는 어떤 가혹한 형벌이 내려질까? '테이큰'은 은퇴한 첩보원의 차가운 액션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너무 말랑말랑했던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비하면 딸을 되찾기 위한 아버지의 처절한 부정이 훨씬 진하게 느껴진다.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비는 악당에게 한조각의 자비도 허락하지 않고, 딸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친구의 가족까지 가차 없이 쏴버린다. 브라이언처럼 망설임 없는 총질을 일삼는 주인공은 '리쎌웨폰'이나 '다이하드'같은 액션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 같다. 마틴 릭스나 존 맥클레인보다 훨씬 소박하고 진지하지만 액션의 잔혹함이나 화끈함은 더욱 강도 높다. 사실 주인공의 능력은 수퍼맨에 가깝고 어떠한 난관도 너무 쉽게 빠져나오는 이런 작품은 스티븐 시걸의 영화에나 어울릴지도 모른다. 고의든 그렇지 않던 간에 브라이언 앞에서 적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기 때문에 오히려 악당들이 불쌍해 보일 지경이다. 다른 장면과 설정들도 좀 엉성하긴 마찬가지다. 나라를 위해서 몸과 시간을 바치던 아버지는 은퇴한 뒤에 잔소리꾼이 되고, 그렇게도 전남편을 못마땅해 하며 딸의 자유를 존중하던 엄마는 딸이 납치되자마자 전남편에게 딸을 찾아오라며 울부짖는다. 그리고 주인공의 딸은 열일곱이라는 나이가 적은 것인지 정신 못 차리고 초등학생처럼 굴기만 한다. 하지만 리암 니슨의 중후한 연기가 가볍고 엉성한 액션영화에 그나마 깊이를 더했다고 생각한다. 노쇠했지만 아직 왕년의 실력이 죽지는 않는 은퇴한 첩보원의 진중한 액션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역시 '다크 나이트'나 '스파이더맨3'같은 초걸작히어로물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보다. 이안 감독이 연출했던 '헐크'는 너무 우아하게 만들어진 나머지 브라이언 싱어의 실패작 '수퍼맨 리턴즈'를 보는 것 같았다. 지나치게 브루스의 내면에 집착한데다가 액션 또한 심심하기 그지없었다. 전편의 부족했던 스펙터클을 보완이라도 할 작정인 듯 '인크레더블 헐크'는 브루스가 도피해있던 브라질의 빈민가 골목 추격전부터 또 하나의 헐크, 어보미네이션과의 화끈한 도심 육탄전까지 물량공세로 밀어붙이는 액션 장면들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액션에만 집중한 나머지 오히려 전편에 비해 너무 앙상한 줄거리와 뻔한 전개방식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1편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추격전이 계속될 뿐이다. 그래서인지 전편의 에릭 바나와 제니퍼 코넬리보다는 훨씬 더 두 주인공 역할에 어울렸던 에드워드 노튼과 리즈 테일러의 연기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미 '트랜스포머'나 '스파이더맨3'같은 궁극의 스펙터클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이 보기에는 다소 시대착오적이고 좀 무식한 액션장면들이 이어진다. 주인공 헐크와 그보다 거대한 어보미네이션의 액션은 힘겨루기의 연속일 뿐 최신 액션영화에서 볼 수 있는 속도감이나 세련됨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편의 헐크는 살찐 슈렉같았다는 비판을 들었는데, 이번 편의 헐크도 비슷해 보일 뿐 딱히 인간에 가깝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도 타이틀의 서플에는 비교적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이 있다. 얼음절벽이 무너지는 또 다른 오프닝과 멜로와 코미디의 성격이 강한 삭제 장면들은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어보미네이션과 헐크의 캐릭터 탄생에 관한 내용은 뭐, DVD 타이틀이라면 으레 수록되어 있는 부록일 것이다.
알래스카의 외딴 마을. 30일 동안 계속되는 밤. 고립된 그곳을 습격하는 뱀파이어들. 좀비호러물의 공식에 충실한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는 무더운 여름에 즐길만한 청량감 넘치는 작품이다. 마을 주민들을 공격하는 뱀파이어들의 액션이 좀 조잡하기는 하지만, 시원하게 쏟아져 나와서 후련하게 쓸어버린다. 간혹 뒤에서 튀어나와 관객을 놀래키기도 한다.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와 화려한 액션이 마지막에 가서 좀 당황스럽게 변질되기는 하지만 부담 없이 즐기기에는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그런데 영화 초반에 등장해서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 몇 마디 지껄이다가 퇴장해버린 청년은 그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원작에 비하면 광신도에 관한 이야기의 비중이 매우 커졌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괴물과의 사투를 벌이다가도 광신도들과 맞서야 한다. 마치 감독이 종교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인 분위기는 밋밋하기 그지없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왜 그리도 말이 많은지... 안개 속의 괴물에 대해서 서로 논쟁을 하고, 신의 분노에 관해서 끝없는 말다툼을 벌인다. 그래서인지 싸구려 CG티가 풀풀 나는 괴물이 나와서 사투를 벌이는 장면도 반갑기 그지없다. 관객을 좀 더 깜짝 놀래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암담하다 못해 처절한 엔딩이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처럼 끝나지 않을까 했던 결말이 큰 충격을 준다. 해피엔딩에 비극적인 결말을 포개놓으니 지독한 비극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