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만든 지도는 당시의 사회상과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좋은 자료다. 조선 초기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조선 후기에 만든 대동여지도가 대표적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것보다 약 100년 앞선 1402년, 조선에서도 세계지도를제작했다. 지도의 이름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查蘆理歷代國都之圖,
줄여서 ‘강리도‘라고 부른다. 가로 164센티미터 세로 148센티미터의 대형 채색 지도로, 동아시아권에서 만든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로 알려져 있다. ‘혼일‘은 섞어서 하나로 만들었다는 의미이고, ‘강리‘는 영토, ‘역대국도‘는 중국의 역대 수도를 말한다. 지도는 중국을중심으로 동쪽과 남쪽에 각각 조선과 일본을 두고 있으며, 인도·아라비아·아프리카·유럽까지 담고 있다. - P16

오늘날 실측지도와 비교하면 정확성에 한계가 있지만 강리도가 지닌 의의는 남다르다. 콜럼버스가 항해할 당시 유럽인이 사용하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단만표현되어 있는 반면, 강리도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비교적 온전하게 나타낸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나일강과 그 발원지인 빅토리아 호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등대까지 정확하게 표현하고, 아프리카 35곳, 유럽 100여 곳의 지명도 등장하는 명실상부한 세계지도인 것이다.
강리도의 제작 배경은 1392년 조선을 개국한 세력이 내비친자신감에서 찾을 수 있다. 지도를 제작한 권근은 지도 발문에서이렇게 말한다. "지도를 보고 지역의 멀고 가까움을 아는 것은 천하를 다스림에 보탬이 되는 법이다."觀圖籍而知地域之遐邇,亦爲治之一勛 지도는 새롭게 개국한 조선이 통치할 천하를 담은 것이었다.
여기에 고려 후기 원나라를 통해 전해진 지리 정보도 한몫했다. - P17

유럽까지 세력을 넓힌 원나라를 통해 유럽, 아프리카, 아라비아를 아우르는 지리 정보가 고려 후기부터 천천히 전해져 지도에 반영되었다.
강리도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동여지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인 1861년에 제작된 지도로 오늘날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목판으로 만들어 판화처럼 수십 장의 지도를 제작할 수 있으며, 여러 기호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성곽 도시는 두 개 - P17

의원으로 표시하고, 성곽이 없는 도시는 한 개의 원으로 표시하며, 수로 이용이 가능한 하천은 두 줄, 불가능하면 한 줄로 구별했다. 게다가 일정한 간격으로 점을 찍어 거리 정보까지 담고 있다.
대동여지도가 제작된 조선 후기는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시장을 돌아다니는 상인들의 지도 수요가 폭발하던 때였다. 상인들이 지도를 휴대하기 편하도록 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게 만든 것은 대동여지도의 중요한 특징이다. 세로로 22개 층으로 나뉜 대동여지도는 각 층이 책 크기로 접히는데, 모든 지도를 펼치면 세로 길이가 6.6미터로 교실 길이와 비슷하다.
대동여지도 편찬을 주도한 김정호에 대해서 잘못 알려진 정보가 많다. 김정호가 혼자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지도를 그렸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직접 곳곳을 방문하여 그리는 지도를실측도라 하는데, 아무리 철인이라도 조선 팔도를 혼자 답사하는건 불가능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지리 정보 파악의 중요성을 실감한 조선 조정이 지방 관아에 지도 제작을 지시하고, 김정호가 이전의 작업을 이어받아 집대성한 결과물이 바로대동여지도다. 대동여지도처럼 기존 지도와 자료를 엮어 만든 지도를 편찬도라고 한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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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서 외롭지 않아?"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내가 외롭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나는 외롭다. 하지만 혼자 살아서 외로운 건 아니다. 나는 타인과 함께 살아도 더 깊이 외로울 수 있다는 걸 안다. 괴로움이 더해진 외로움은 비참하기까지하다는 것도. 적어도 지금 나의 외로움에는 비참함이 없다.
요즘 나의 외로움은 그럭저럭 견딜 만한 익숙한 한기寒氣 같다. 겨울에 창문을 열어 틈틈이 환기해야 하는 것처럼, 적당한외로움은 정신을 깨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외로움이 찾아오면 나는 그 감정이 들어오도록 가만히 문을 연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손님은 손님이다. 그럴 때면 나는 담요를 두르•거나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처럼 외로움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외로움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혼자 ‘여서‘ 외로운 것은 아니지만 혼자 ‘여도‘ 외로울 수 있다. 함께 ‘여서‘ 외로운 건 아니지만 함께 ‘여도‘ 외로울 수 있듯이. - P156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된 혼자 살기에는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혼자 산다는 건 내가 나와 친해지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누군가와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처럼, 오로지 혼자 있을 때만 발견할 수 있는 내 모습 또한 존재했다. 그럴 때면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그게 옳고 그리고 나쁘고 좋고를 떠나서 그저 ‘그렇구나‘라고. 모든 감정은 결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걸,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은 지나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가끔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떠올리곤 한다. 그곳에는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나의 아이‘가 있다. 나는 그애를 보며 상실감을 느끼면서도 지금의 삶을 그 삶과 바꾸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이라는 한기가 깃들 때, 타인과 나눌 수없는 감정으로 마음이 힘들 때도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려고 한다. 현재의 내 삶은 과거의 수많은 내가 아파하고 애쓰고 힘을 내어 살아왔기에 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 P157

사람들이 타인의 외모에 대해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았으면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분위기를 풀어야 할 때면 내 외모를 비하하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가벼운 유머 소재로 나를낮춰 말하는 습관이 오래되어서였을까. 내 외모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앞서 의식하고는 그 사람이 느낄 법한 내 약점을 미리 말해서 불안을 해소하는 방식이었을까.
누군가 자기 외모에 대해서 신랄하게 이야기할 때 나는 덩달아 내 외모를 검열하곤 했다. 내가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유머랍시고 내 외모를 웃음거리로 만들었을 때 사실상 나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자의식을 자극했던 것이다.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는 행동이 무례한 일이듯이 자기 외모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나는 내 얼굴이나 몸을 낮추고 평가하는 말을 더는 입에 올리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사소한 부분이더라도, 아무리 가까운사람에게라도 더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기로 말이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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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강아지는 자꾸만 뒤를 돌아 주인을 확인한다는 것도, 어떤 어린아이는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자신이 느끼는기쁨을 감추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5월의 봄비가 내리고 있다. 이 비가 그치면 늦봄은 하루하루 그 온도를 높여갈 것이다. 여름이 오고곧 가을이, 그리고 겨울이 오겠지. 지금의 나는 그것 말고는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다. 나는 손으로 종이에 이렇게 적는다.
어떤 변화가 오든 가슴을 열고 맞이하기를. 조바심내며 지금의 소중함을 내팽개치지 않기를. 작은 순간들을 음미하는 법을 배우기를 천천히, 더 천천히...... - P133

우리는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고 아플 때 기꺼이 돌봄을 주고받으며 삶과 죽음이 존엄할 수 있는 평등, 평화, 협동의 건강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건강할 수 없고 이웃이 함께 건강할 때 우리 역시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건강하고 존엄하게살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스스로 돕는 힘, 이웃을 도우려는 마음, 경쟁 사회에서도 협동과호혜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변화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돌보고 서로 돌보는사회, 의료복지가 전문적이고도 인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는가능합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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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 상대가 경계를 넘도록 허용해놓고서 나는 절망했다. 왜 미안해하지 않아? 어떻게 이렇게 뻔뻔해? 어떻게 이렇게 나를 존중하지 않을 수 있어? 그 절망감은 내 마음을 부식시켰지만 나는 그 감정마저도 억압하여 드러내지 않으려고애썼다. 경계 설정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모든 관계가 결국에는 같은 방식으로 어그러질까봐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가 힘들어졌다. 예전부터 어렴풋이 느끼던 문제였지만 가까웠던 사람과의 관계가 그런 식으로 깨진 후에야 나는 내 패턴을 대면하게 됐다. 경계를 흐리고 상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나, 경계를 침해당하고 분노하는 나, 그 분노를 다시금 마음 깊숙이 억압하는 나.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나는 나의 억압된 분노가 스스로를 아프게 했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싫은 소리 한번하지 못해서,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져서 네가 너에게 한 짓을 봐봐...... 결국 네 몸이 너에게 말한 거야. 척하면서 사는거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이타적인 척 좀 그만하라고. 네가 얼마나 훼손되고 화나고 절망했는지 인정하라고. - P122

"불확실성보다는 죄책감이 더 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진단을 받고 나는 내가 병에 걸린 이유를 생각해봤다. 몇 달간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먼저 떠올랐다. 이어서 몇 년 전에 받은 충격도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분노를 참고 억눌러야만 미래의 내가 안전할 수 있으리라판단했고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 건강한 선택이었을까. 소화할 수 없는 감정을 억지로 삼키는 건 스스로에게 너무강압적이고 잔인한 일 아니었나.
내 생활 습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는 고민이 있으면 잠으로 도피하는 경향이 있어서 길게 자곤 했다. 음주도 안 좋은영향을 줬을 거라고 생각했다. 삼 년 전에 완전히 단주하긴 했지만 술을 습관적으로 마시던 시간이 길었다. 나는 이어서 생각했다. ‘술을 끊어서 다행이다. 아직도 마시고 있었다면 떳떳하지 못했을 거야.‘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내게 물었다. ‘뭐가 떳떳하지 못했을 거란 거야? 너는 네가 죄를 지어서 병에걸렸다고 생각해?‘
‘아마도.‘ 그렇게 대답하고 나는 가만히 응시했다. 내가 잘못 살아서,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해서, 죄를 지어서 이런 결과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아서 프랭크의 말대로 그런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것이 ‘불확실성‘ 속에 빠지는 것보다는 더 편안하 - P124

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병의 이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깝다. 그저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미래의 불확실성을 양팔 벌려 맞아들이는 일과 같았다. 나는 두려웠다. 암이전신 질환이며, 몸의 다른 곳에서 다시 발병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갑상선암에 걸렸다고 해서 다른암에 더 잘 걸리는 것은 아니다‘라는 연구 결과를 읽으면서도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200언제쯤 삶은 결코 통제할 수 없으며 삶의 사건들은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제쯤 모든 규칙을 깨고 펼쳐지는 삶의 불규칙성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연약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제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 모든 일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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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말처럼 상처를 잘 극복하여 성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타격을 받더라도 잘 맞서 싸우고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같은 말이 옳다고 여길 수 있다면. 내가 경험한 고통은 나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강하게 하지도 않았다. 어떤 상처는 내 마음의 구조를 비틀어 내가 원하지 않은 모양으로 바꿔놓았고, 사람을덜 믿게 만들었다. 마음의 힘을 고갈시켜서 나를, 타인을 사랑하는 힘을 앗아가기도 했다.
"너는 참 강한 사람이야."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할일을 처리해나가는 내 모습을 보며 친구들은 그렇게 말했다. 죽기 살기로 맞서 싸웠던 시간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 시간을 대부분내 힘으로 지나온 것도 맞다. 그런 면에서 내가 강하다는 말은합당한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애쓰고 힘을 들였던 것이 내게 좋기만 한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못 견디겠는 건 견디지 말고, 그냥 주저앉고 싶으면 주저앉아도 됐을 텐데. 참아야 - P92

할 일과 참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지 않고 그저 참으며 그로인한 분노를 안으로만 삼켜대면서 나를 병들게 하지 않아도됐을 텐데.
하지만 그게 그때의 내 최선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마냥 경직된 채 훼손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 시간을 거치며 치유된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나는 이제 내 삶을 밑도 끝도 없는 숙제 무더기나 천벌처럼 느끼지 않는다. 가끔은 그래도 살아서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침내 내 목소리로 말할 수있게 되었기 때문일까. 마침내 내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까. 심지어 누군가는 내 목소리를 들어주고 있다. 이 삶에서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 이 축복 안에서 내 삶은 더이상 벌이나 짐이 아니다. - P93

겨울의 끝자락에서 이 글을 쓴다. 막바지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안다. 계절의 변화는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음을,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라는진실을 몸으로 느끼게 한다. 긴 겨울이었지만 이 겨울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아침에 눈을 뜨면 매일 새로 주어지는 하루를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 어려서는 이 생각을 하면 마음이 곧장 허무로 기울곤 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시절도 언젠가는 지나가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 유한한 찰나가 지금 내 손안에 주어져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려 한다. 이찰나를 보다 가볍고 자유롭게, 작은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고싶다. 겨울은 거듭하여 다시 다가올 테지만 영원하지 않으며나는 아무리 차가운 바람이더라도 그것에 몸을 싣고 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니까.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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