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현

2017년 한국경제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킬트, 그리고 퀼트」가 있다. 창작동인 ‘켬‘으로 활동 중이다. - P-1

ㅣ시인의 말


물속에 일렁이는 빛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빛은 만질수 없고 두 손에 가둘 수 없고 그래서 신비롭구나.
만질 수 없는 장면과 마음을 붙드는 게 시라면 다정하게열린 창문, 흐르는 노래였으면 좋겠다. 창밖으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컵 속 얼음이 찰랑거린다. 여름이다.
이 시들을 쓰며 나의 시간은 조금 더 갔다. 이것을 읽으며당신의 시간도 조금 더 가기를. 그래서 머리 위로 떨어지는빛을 함께 볼 수 있기를.

2023년 여름
주민현 - P-1

이 시집의 ‘넓은 테라스‘에는 당신을 위해 비워둔 의자가 하나있습니다. 그 의자는 밤의 물질로 만들어졌고, 그 의자에 앉으면 "세상이 몹시 외롭고 이상한 별처럼" 보이고, "어째서 신은/텅 빈 새장을 이렇게나 많이 걸어두었을까" 세계가 불가사의해지며, 당신은 "당신의 가장 외로운 부분을 향해 다가갈"겁니다. 그 ‘가장자리‘에서 당신은 한 시인과 마주하게 됩니다. "대화에는 반드시 두 사람이 필요하기에. 그 시인은 "여전히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사람", "이제는 작은 것을 말하고싶어요" 속삭이는 사람, ‘지속 가능한 이야기‘를 찾는 "삶의 외로운/구경꾼이자 싸움꾼"입니다. 당신은 의자에 앉아서 시인이 상영하는 ‘오래된 영화‘를 보게 됩니다. 그 영화에는 떠도는 빛이 있고, 그것은 인간, 그것은 기억, 그것은 역사, 그것은한 영혼처럼 보입니다. 그 빛은 자신을 위해 비워진 의자에 앉아 자신의 삶을 지켜보는 자신을 응시합니다. "무언가 돌아본다는 것은 이미 그것이 끝났다는 것"이지만, 다시 "삶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이것이 제가 이 시집을 통해 쓴
‘유령‘ 이야기이고, 저는 당신께 바랍니다. 당신을 위해 비워둔시집 속 의자에 앉아 ‘당신의 이야기‘를 쓰게 되기를. "이세상은 알 수 없는 은유로 가득해"라는 시인의 전언에 "멀리가는 느낌이 좋아" 답하게 되기를. 그 대화를 통해 ‘새로운 종‘으로 시작되기를.

김현 시인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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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와 희철이에게
김중미


"만나서 하는 일이란, 무슨 할 일을 만드는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만나서 서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이야기 나누는 그런 사소한 일에 불과하지만 그저 만난다는사실 그것이 그냥 좋을 뿐이었다."(「청구회 추억)
1988년부터 지금까지 공부방 큰이모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들과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 그저 계속 관계를 만들고 이어 갈 뿐이다. 처음 공부방 문을 연 뒤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지만 공부방은 여전하다. 계속해서 약하고 가난한 이들이 흘러 고이기때문이다.
선생은 한밤중에 찬 마룻바닥에 엎드려 청구회의 추억을 적으며 두려움과 절망을 잊었다고 했다. 선생에게 "청구회 추억은 그 절망의 작은 창문"(「담론』)이었다. 공부방이 38년동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과 쌓은 추억, 그시간의 힘 때문이다. 사형을 앞두었던 선생의 그 절망에 댈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매 순간 두렵고, 버겁고, 지쳐 절망에 빠진 순간들이 있었다. 선생을 절망에서 구원한 청구회추억처럼, 나는 동호, 희철이와의 추억이 있어서 도망가지않고 계속 아이들을 만났다. 상도가 공부방 앞에서 11톤원목 트레일러에 치여 죽었을 때도, 79년생 아이들이 번갈아 구치소를 들락거릴 때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아이들의 장례를 치르고서도 도망가지 않았다. 청구회 아이들이 선생에게 절망의 작은 창문이었던 것처럼 공부방 아이들이 - P93

내게 창문이었다. 그 창으로 보이던 별빛, 어둠을 밀어내고 기어이 말간 얼굴을 내미는 햇빛 덕분에 살았다.
청구회 회원들이 ‘어린이‘여서 선생에게 구원의 시간이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생은 여러 책에서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정대의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 현대문학을 읽던 노인, 생계를 위해 피를 팔면서 헌혈 전에 물을 너무 마신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청년, 집을 그릴 때 주춧돌부터 그리던 목수, 치약 하나도 빌려 쓰지않으려고 위악을 부리던 청년. 선생의 눈과 귀는 청구회의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약자들을 향해 열려 있었다.
신영복 선생은 「강의』에서 맹자의 ‘이양역지‘ 를소개하며 ‘본 것‘과 ‘못 본 것‘의 엄청난 차이에 관해말한다. ‘본 것‘과 ‘못 본 것‘은 생사가 갈리는 차이라고했다. 선생에게 ‘본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 관계를 갖게되는 것이었다. 선생이 만난 청구회의 조대식, 이덕원, 손용대는 천진무구한 어린이가 아니라 전쟁을 겪고도 살아남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상징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어린이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선생은 자신이 특별히 어린이를 좋아한다고 대답하지않았다. 나는 선생의 그 대답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어른들은 흔히 어린이를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존재로 상상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진 편견과 오해로 - P94

어린이들을 대한다. 마냥 순수할 것만 같은 아이가 가시를드러내거나 되바라진 말을 하면 ‘애답지 않다‘고 혀를 찬다. 여섯 살이든, 열 살이든, 여남은 살이든, 어린이들 역시 자신들이 서 있는 공간, 그들이 통과하는 시간으로부터 초월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어린이의 삶에도 그 시대의 문화,
질곡과 정서가 고스란히 새겨진다. 원래 나쁜 아이, 원래 착한 아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선생은 "어떤 개인의 아픔이나 고통을 그 자체로받아들이기보다는 그 개인적인 아픔이나 고통 속에서 그것의 사회성 나아가서는 역사성을 읽어 내야 한다"고했다. 나 역시 아이들이나 이웃의 고통과 슬픔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들 몸에 새겨진 사회성과 역사성을 보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여름방학이 되면 충북 괴산으로 공부방 초중고아이들과 대학생, 이모 삼촌들이 다 같이 여름 캠프를 간다. 30년 가까이 변함없이 우리를 품어 주는 ‘솔뫼농장‘은 시설이 매우 낡았다. 주변에 생수 공장이 생기고, 자연 하천이 사방공사를 하고, 논농사 중심에서 밭농사로 농사 형태가 변하면서 수자원까지 고갈되어 물 쓰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좋은 리조트나 캠프장 대신 ‘솔뫼농장‘으로 가는데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지만, 낡고 추레하고 불편한 그곳이 오히려 우리의 장을 만드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 P95

곳이기 때문이다. 공부방 아이들은 시설 좋은 수영장이나 워터파크가 아닌 개울에서도 지칠 줄 모르고 논다. 깊은곳이나 물살이 센 데가 있어도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 이모 삼촌들이 함께하니 안전하다. 잠은 여자 방, 남자방에서 스무 명, 서른 명이 한꺼번에 자기 때문에, 예민한 아이는 코 고는 소리, 잠꼬대 소리에 잠을 설친다. 그래도 아침이 되면 또 어떤 재미있는 하루가 펼쳐질까 기대에 찬 눈빛을 맞춘다. 누구도 외딴 점으로 떨어져 있지 않다. 서로 연결되어 있고 어디서든 장을 이루어 함께한다.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자면서 힘찬 에너지를 뿜어낸다. 캠프3박 4일 내내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공부방 아이들이 웃는 모습은 어떤 분노와 슬픔이라도 다녹일 만큼 강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폭염 속에서 80인분의 세끼 밥을 하면서도 힘들지 않았다. 아이들의 웃음은 5월 햇살보다 눈부시고, 6월의 숲보다 더 싱그럽고,
9월의 하늘보다 더 푸르다. 그러나 아이들의 그 웃음 뒤에 어른들보다 더 깊은 상처와 상실, 두려움, 분노, 불안이 숨어있다. 아이들의 웃음 뒤에 숨은 무기력과 불안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보지 않으면, 그렇게 웃던 아이들이 드러내는 분노와 무기력까지 이해하고 사랑할 수 없다.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경제적 결핍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다른 결핍을 낳기도 한다. - P96

공부방이 있는 지역에는 정신적, 신체적 장애가 있거나 이주 배경을 가진 주민이 많다. 재개발로 지역 공동체가 무너지기 전에는 가난한 이웃들끼리 서로 도우며 살았다. 먹을 것을 나누고, 불편한 몸을 대신해 주며 살았다. 가난한 동네의 골목은 생명의 연결망이었다. 그 연결망을 따라 사람이 모이고, 이야기가 모여 ‘우리‘가 되었다. 골목에는 외딴 점이 없었다. 모두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었고 여러 개의 ‘장‘을이루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선과 장은 구제금융과 재개발의 파고를 겪으며 끊어지고 사라졌다. 팬데믹 이후에는 사람들이 각자 외딴 점으로 살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저마다 각자도생밖에 길이 없다고 믿는다. 어른들이 각자도생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학교에서, 동네에서, 집에서 외딴 점이 된다. 정부는 아이들이 외딴 점이 되지않게끔 학교 안에 돌봄교실, 늘봄학교를 만들며 생색은내지만, 그곳에서는 점과 점이 만나 선을 이루기 힘들다. 아이들을 그저 돌봄을 받는 대상으로 볼 뿐 주체로 여기지않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은 여러 책에서 연대는 위에서 소수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모여이루는 낮은 연대가 진짜라고 했다. 나는 이 시대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존재가 어린이 청소년이라고 생각한다.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거나 장애가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 P97

더 낮은 자리에 있다. 우리 사회는 어린이와 청소년과 연대하지 않으려 할 뿐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연대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서로 연결이 간절하다. 약하고 가난한 이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희망을 만들어갈 수 없다.

「청구회 추억을 다시 읽으며 만남과 연결에 대해, 그 이후에 대해 상상할 수 있었다. 「청구회 추억」을 통해 나를 지금 여기로 이끈 만남을 추억하며, 내가 서 있는 길을 자각하고 다음 걸음을 생각한다. 「청구회 추억」 덕분에 추억 여행을 하며 다음 여행을 준비할 수 있었다. 선생에게 구원의 시간을 선물한 ‘청구회‘ 주인공들은 2026년 현재에도 여전히 선생과같은 어른이 필요하다.
「청구회 추억」 말미에 있는 선생의 문장으로 추억 여행을 마치려고 한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추억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만나는 곳은 언제나 현재의 길목이기 때문이며, 과 - P98

거의 현재에 대한 위력은 현재가 재구성하는 과거의 의미에 의하여 제한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추억은 옛 친구의 변한 얼굴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추억의 생환이란 사실을 나중에 깨닫기도 한다.
생각하면 명멸하는 추억의 미로 속에서 영위되는 우리의 삶 역시 이윽고 또 하나의 추억으로 묻혀 간다. 그러나 우리는 추억에 연연해하지 말아야 한다. 추억은 화석 같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단히 성장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
언제나 새로운 만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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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보내는 편지
김미옥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난 것은 1988년 감옥으로부터의사색이었습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성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게충격이었습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에서는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이 문장에서 나는 눈을 가늘게 떴습니다. 단칸방에서 보낸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요. 당신의 모든책을 좋아하지만, 그중 제 손길이 가장 많이 닿은 것은『더불어숲입니다. 논리가 정연한 글은 배움을 주지만 감동을 안기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뇌는 지식의 십분의 일정도만 언어화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진정한 지식은 직관과 공감의 거대한 바다에서 일어선다는 말을 나는신뢰합니다.
당신은 논리를 앞세워 누구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했을 뿐입니다. 알고있었으나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그 모든 것, 어쩌면 학습된 무기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경쟁, 약육강식, 각자도생으로 덧칠된 우리가 만든 세계에 대하여 그리고 인간성에 대하여 당신은 우리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 P15

아닌 ‘당신과 나‘로 연결되는 서간체의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요. 당신의 글엔 문학과 음악이 있었습니다.
강제로 유배지의 정주민이 되어야 했던 당신과 유목민으로 성장한 나와의 만남은 『더불어숲이었습니다.
당신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당장 당신의 답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당신의 답장을 읽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나는 당신에게 늦은 편지를 씁니다. - P16

당신의 글은 내게 서간문의 힘을 생각하게 
합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유행했던 대중소설은 새뮤얼리처드슨의 파멜라나 장 자크 루소의 『신 엘로이즈등이었습니다. 약자가 강자에게 굴종하는 불평등한 관계가 당연시되던 시대에 서간체의 감성 소설이 대중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했습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에 감정 이입이되면서 자신과 동일시하는 현상이 일어났지요. 사람들은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하며 평소 자연스럽게 생각하던 가치관에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문학은 대중에게 균형감과 공감 능력을 향상하는 교육의 장이었습니다. 내가 당신의 글을 사상이 아닌 문학으로 읽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비극은 배타성이고, 특정 계층의 유대감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폭력‘일 것입니다. 힘없고 가난한 사회적 약자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당신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과 연대에 대하여, 그리고 나무와 숲에 대하여 몰입했습니다. - P17

먼저 당신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어릴 때 나의 꿈은 정주민이었어요. 한곳에 정착해서 뿌리내리고 싶었습니다. 객지를 떠돌다 잠시 머무는 동네에서 원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만나면 우리 식구들은 주눅이 들었지요. 가난도 부처럼 눈에 띄어 불평등과 차별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 생의 목표는
‘평범‘이었습니다. 나의 ‘평범‘은 사람들 속에 묻혀 누구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지요. 나의 성장 환경을 탓하는 건 아닙니다. 당신에게 이 편지를 쓰는 까닭을 말하고 싶기때문입니다.
제도권 교육을 받기 힘들었던 내게 유일한 친구는 책과 음악이었습니다. 외딴섬처럼 홀로 떠돌던 습관은 ㅡ어디에도 심리적으로 소속되지 않는 자발적 고립을 불렀습니다. 오랜 고립이 정주를 부정하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 읽고 쓰고 듣고 떠나는 생활에 익숙했습니다. 소외는 조직속에 있으면서도 조직의 구성원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조직은 개인의 합 그 이상이란 말도 경멸했습니다. 제게 집단은 ‘평균으로의 회귀‘였고 하향 평준화의 의미이기도했습니다. 내 생존 방식이 개인주의에서 기인한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더불어숲」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개인의 능률과 효율을 우선시하며 공감과 연대마저 조직이나 집단의 논리로 가두는 우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 P18

어떤 이들은 제게 묻습니다. 왜 늘 길 위에 있느냐고. 그럴때면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가 아닌 저기가 내가 있을 곳 같다고, 그러니 언제든떠날 수 있어야 한다고.
아, 당신을 모를 때였습니다.


오래전 강연장 뒷줄에 서서 당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나는 끝내 당신에게 가까이 가지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신은 내게 말과 글과 삶이 일치하는 유일한 이였습니다. 존경하되 가까이하지않는다는 경이원지敬而遠之 당신은 내게 백석의 시에 보다 가까운 이였습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하신 분으로 느껴졌습니다. 나는 언제나 늦습니다. 마치 늪에 빠진 아이가 자기 머리를 잡아당겨 스스로 자신을 구출하듯 혼자 결정하는 삶에 익숙한 사람은 좋아하는 이에게도 쉽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제도권 밖의 사람은 뭐든 타인보다 더 큰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답장이 이렇게 늦습니다. - P19

1997년 1월 1일부터 당신은 『중앙일보』 칼럼에 세계여행기를 싣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첫 글은 스페인의우엘바 항구에서 보낸 엽서였습니다. 1492년 콜럼버스는산타마리아호를 타고 이곳에서 신대륙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 출항은 식민주의의 원년이었습니다. 오늘의신자유주의로 진화한 서구의 자본주의는 식민지에서빼앗은 부로 이룩되었습니다. 당신은 예감했던 걸까요? 우리나라가 국가 부도 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구제금융을 신청했던 날이 1997년 11월 21일이었습니다. 달러와 함께 강제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불평등과 양극화의 그늘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인간보다자본이 우선시되는 세상에서 당신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콜럼버스는 아직도 살아 있다."
자본의 극대화와 이윤 추구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그가 우리에게 왔습니다. - P20

스페인에서 보낸 당신의 두 번째 편지는 매일 12시면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그레고리오 성가로 시작됩니다. 잠시 내 어린 날 시골 초등학교 하굣길에 있던 수녀원을기억했어요. 나는 벚나무 담 위에 앉아 낯선 음악에 귀를기울이곤 했습니다. 성가는 내가 접했던 세상의 음악과달랐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음악으로 또 다른 세상에대한 희망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스페인 내전은 내게인간이 만들어 낸 온갖 이념의 잡화상 같았어요. 『누구를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헤밍웨이도 그 전쟁에 참여했었지요.
존 던의 시에서 가져온 제목이었습니다. 성당의 조종弔鐘소리는 죽은 자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그 시를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를 위한 기도인지묻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용서이며, 그 용서로 역사는진보하는 것이라고요. 핵심은 반복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시행착오는 늘 같은 지점에서 반복되지요. 틀리는 문제를계속 틀리는 자에게 필요한 건 실수의 원인을 근본적으로파악하고 해결하는 ‘메타인지‘일 겁니다. 알면서도 틀리는 건자만심과 어리석은 욕망이 우리 눈을 가리기 때문일 테지요.
세계의 많은 젊은이가 이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했어요. - P21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은 옳았습니다. "역사적 실체는 말할 필요도 없고, 지리적 실체이자 문화적 실체이기도한 동양 서양이라고 하는 장소, 지역적·지리적 구분은 모두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인종과 종교, 국적이 달라도 인간은 공존해야 합니다. 파괴는 무력으로만 자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언어 제국주의‘에 정복당한것만 같습니다. 인문 계열에 있던 중문과나 독문과, 불문과등의 많은 학과가 경제성과 실용성이란 미명으로 대학에서 폐지되었습니다. 중국 문학에 깊은 조예를 가진 어떤 교수는 학과가 폐쇄되자 교양 실용 언어를 강의하게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영어는 내게 언어 식민주의로 느껴집니다. - P25

당신은 누군가 장벽에 쓴 "사상은 하늘을 나는 새들의비행처럼 자유로운 것이다"라는 문장을 적었습니다. 나는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생각했습니다. 그작품의 원제목은 ‘베를린의 하늘‘이었습니다. 감독과 함께영화 각본을 쓴 페터 한트케는 노벨상 수상자입니다. 영화의오프닝은 그의 시 「아이가 아이였을 때를 배우 브루노간츠가 낭송합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팔을 휘저으며 걸었다"로 시작해서 시냇물이 강이 되기를, 웅덩이가 바다가 되기를 소원했던 - P30

아이는 습관과 관념에 갇히는 어른으로 자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구절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나일까?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만 나일 뿐인데 그것이 나일 수 있을까?"입니다. 모든 것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며,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시가 저는 참 좋았습니다. 지금도 흥얼흥얼 노래처럼 읊조립니다.
내친김에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쓰다 말고 카리 브렘네스의〈A Lover in Berlin>을 듣습니다. 지금 4월의 하늘은 푸르르고 햇살은 눈이 부십니다. 나는 일어나 베란다 창에 기대어 커피를 마시며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But this falling made me fly, left me soaring for thesky.
그렇습니다. 때로 추락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게만듭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난다면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만큼떨어져 같이 음악을 듣고 싶습니다.
어떤 곡이든 상관없습니다. - P31

당신은 템스강과 타워브리지, 아름다운 성과 
유적, 표준 시간을 독점한 그리니치 천문대를 둘러보며 막대한 금융자본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조선 시대 사랑채에서 유유히 소일하며 장부를 넘기고 있는 양반을 연상했습니다. 나는 템스 강둑에 앉은 버지니아 울프를 생각했어요. 20세기 런던의 대학 도서관은 남성 동반자 없는 여성이 혼자 출입할수 없었습니다. 그때 울프는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여자가 읽고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탄식했습니다. 세상은 달라졌지만, 21세기인 지금도 유효합니다. 내가
‘여성‘이란 사실이 갑자기 다가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는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급격합니다. 사람들은 그 원인으로 젊은 층의 비혼주의를 지목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수많은 울프가 결혼으로 경력 단절과 경제적 위기를 겪습니다. 가부장적 문화와 성 역할은 여전하고 책임감과 경제적, 심리적 부담은 부모 세대와 다를 바없습니다. 그들이 택한 비혼은 그들의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구조적인 해결 없이 관습과 문화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또다른 폭력이라고 생각됩니다. - P34

나는 당신이 보낸 46통의 편지에 다 답장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당신보다 더 많은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긴 여행을 떠난 지 십 년이 됩니다. 한시도 당신이 떠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면 당신과 내가 떠나고 돌아온 곳에 관하여 얘기할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당신은 겨울에 떠났지만, 당신이 있는 그곳에도 봄이 왔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의 오래된 아파트 화단은 벚꽃과 목련이 한창입니다.
늘 그랬듯 나는 당신이 있는 그곳으로 여행하게 될 겁니다.
그때 <엘 콘도르 파사>를 함께 부를까요?
"길(street)이 되느니 숲(forest)이 되고 싶다."
이 부분은 제가 부르겠습니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나의 선생님.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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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김명인


나이가 들면 외로워진다고들 한다. 당연한 말 아닌가 싶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생애의 끝부분에 가까워진다는 것이고 그것은 죽음으로 향하는 티켓을 끊어 놓고 순번을 기다리는일이다. 자기보다 앞 순번의 선배들은 하나둘씩 돌아오지 못하는 기차에 이미 올라탔거나 올라타기 직전이고, 더러는 동년배의 친구들이 새치기하듯 그 편도 행로에 먼저 오르기도 한다. 그들은 각자 자기 한 몸만 지니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일구어 왔던 자기 몫의 세계 한덩어리씩을 안고 떠난다.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의 세계에 어떤 방식으로든가깝게 연루되어 있던 남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이 퇴장한다는 것은 동시에 자기가 관계 맺었던 세계의 한 부분이 동시에 퇴장하는 것이 된다. 그 떠남이 점점 더 잦아지고 순번이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남은 사람들의세계는 축소되고 공허해진다. 그러니 외롭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그렇게 한 시대가.
한 세대가 저물어 간다.
역사는 다음 세대의 몫이다.
다음 세대가 이 퇴장하는 세대로부터 무엇을 취사선택하든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여전히 인정투쟁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이 퇴장하는 세대에게서는 더 이상 새로운 무엇은 나올 - P-1

수가 없다. 자기가 생애를 두고 무슨 일을 했고 무슨 말을 했는지를 제대로 복기하고 정리할 수만 있어도 그 인생은 축복받은 인생이다. 여기서 무엇을 더 바란다면 그것을 노욕이라고, 더 많이 바란다면 노추라고 부른다. 자신의 세계가 축소되어 가는 것을,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몫이 점점사라져 가는 것을, 외로워지는 것을! 그저 온순하게 감수해야하고,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들 방법이 없다. 그저 자기시대에 자기에게 주어진 몫의 과제를, 자기가 할 수 있는만큼만 수행하고 떠난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족한 것이다.
그런데 가끔 자기 세대의 울타리를 넘어, 혹은 자기 세대로부터 이탈하여 어떤 잉여를 남기고 그것을 다음세대로까지 넘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특별히 위대하거나 우월한 존재들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은 특이한 존재들이다. 어떤 특별한 계기를 통해서 동세대가 공유하는 주류적 인식과 행동 체계와는 결이 다른 인식 체계나 삶의 방식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때로는 시대와 불화하여 독특한 작품을 남겨서 천재라고 불리거나, 남들보다 앞서가는 인식과 행동을 감행했다는 이유로 선구자라고 불리거나, 혹은 그저 별종이거나 광인이거나 비주류, 부적응자로 기억되거나, 아니면 일찍이 잊히거나 한다. 자기 세대 공통의 인식 - P-1

체계나 삶의 방식에 충실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생의 후반에 가서야 느끼는 외로움을 그들은 생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경험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외로움은 그가 남긴 불화이거나 부적응이거나 초월의 흔적들이 다음 세대에서 재평가받는방식으로 보상되는 경우가 많다.
신영복(1941~2016) 선생이 타계한 지 올해로 십 년이되었다. 그의 1주기에 간행된 대담집 「손잡고 더불어라는책에 서문을 썼던 나는 어쩌다 보니 지금 그의 10주기를 기리는 일종의 회고 문집에 다시 또 서문을 쓰고 있다. 그 책의 서문에서 나는 그를 조심스럽게 ‘사상가‘의 반열에 올려놓았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때는 그의 ‘사상‘의 양상은 언급했으되 그 ‘사상‘이 어떤 생의 맥락에서 기원했는지, 또 그것을 어떤 사상사적 맥락에두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신영복 선생이야말로 동세대의 공통된 경험및 인식 체계와 일정한 분리를 겪음으로써 독자적인 인식체계에 도달했고, 그것이 세대를 건너 살아남아 다음 세대의공통적 인식 체계와 연결된 흔치 않은 특수한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말하자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앞서서 살아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후반생인 나의 경우 지금 60대 후반이므로 돌아오지 못하는 행로를 향한 편도 티켓을 이제 막 받아 - P-1

놓은 셈이다. 기대 수명이 많이 길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생물학적 수명이 그렇다는 것이지 사회적 수명으로는 이제 퇴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 나이로는 생산노동 행정에서도 지식노동의 장에서도 결코 중심에 위치할 수가 없다. 애를 써서 목소리를 낸다고한들 좋게 말해 봐야 ‘어른, 혹은 원로의 견해‘이고 나쁘게 말하면 ‘한물간 꼰대의 잔소리‘로서 어느 경우든 그 영향력은 보잘것없는 것이다. 한 20년 위쪽의 선배급들은 이미 태반 이상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고 한 10년 위쪽의 선배들도 조금씩 길을 떠나거나 이제는 노년의 무게에 눌려 거의 대부분 칩거에 들어서고 있다. 대략 해방 언저리에서 전후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나 해방과 전쟁, 분단, 군사독재, 경제개발, 민주화를 한 생애에 겪었던 세대들이 이제 역사의뒤안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세대들의 인식 체계는 대체로 민족주의, 국가주의, 진보주의, 성장주의, 가부장주의 등이 뒤엉켜 있는근대주의적 인식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좌파적 경향이든 자본주의 체제를 신봉하는 우파적 경향이든 그것이 진보와 성장, 국가와 민족 등을 중심 가치로 두고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리고 그 모든 가치들은 주체와 타자를 구분하고 주체에 의한 타자의 배제를 그 동력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인식론적으로 일가족이다. - P-1

그 세대의 머릿속은 온통 민족해방이라든가 통일된 근대적 민족국가 건설이라든가 분단 체제 극복이라든가선진국으로의 도약이라든가 민주화라든가 하는 근대적 목적의식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의 가슴속은 그러한 목적의 성취를 위한 멸사봉공이라든가 희생과 헌신이라든가경쟁의식이라든가 치열한 투쟁이라든가 하는 숨 막히는정동들이 용솟음치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1941년생으로 4.19혁명 주체의 한 사람이었던 신영복선생도 출발은 똑같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1968년, 아직 20대 청년 장교의 신분으로 혁명적 조직 운동에 가입하여 군사독재 정권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기에 이르렀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로부터 20년 동안 감옥이라는 장소에서 바깥세상과 분리되어 있게 되면서 동세대와 다른경험 세계와 인식 세계를 가지게 되었다. 바깥의 동세대가 유신 체제를 통과하고 광주항쟁을 경험하고 신군부체제의 억압 속에서 민주화운동을 계속하고 한편으로는고도 경제성장의 수혜를 입으며 인생을 만끽하고 있는동안, 그는 감옥 안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수인들과 뒤엉켜 살며 동양고전을 읽었고 서예를 연마했으며 바깥을 향해서는 검열과 자기통제에 의해 한없이 낮아진 목소리로 짧은 편지들을 써서 내보냈다. 그 안에서 그는 바깥세상을 지배하던 근대성의 광풍에서 한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 P-1

대신 전근대의 교양과 비근대의 일상 경험을 엮어 탈근대의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감옥에서 나온 후에도 80년대 말의 혁명적 민주주의 운동들과 일정한거리를 두는 것으로 일관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있다.
그리하여 환원론과 인과론을 넘어서는 지혜를 구한다거나 의지와 욕망 대신 성찰과 겸손과 절제를 말한다거나 완결성대신 미완성을, 중심 대신 변방을 주목한다거나 존재론 대신 관계론을 말한다거나 인본과 성장의 패러다임을 넘는 자연과 무위와 반문화의 철학을 내세운다거나 하는 그의 인식론이 숙성된다. 그리고 그 인식론은 애정에서 연대로 연대에서 입장의 동일함으로 나아가야 한다거나 ‘머리에서가슴으로‘를 넘어서 ‘가슴에서 발로‘ 나아가야 한다는 실천적 윤리학과 결합하여 근대의 한계를 넘어서 탈근대를 향해 나아가는 대안적 사상 체계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의 바로 이러한 탈근대적 대안 모색의 행보는 그의 삶과 사상이 자기 세대의 한계를 넘어 여전히 오늘의 세대에게 이월되어 영향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신영복 선생 타계 10주기를 맞아 간행되는 이 책 『당신이 나의 숲입니다-신영복을 읽는 시간』은 선생이 세상을 떠난 십 년 전에 비해서도 현격하게 모든 근대주의적 사상과 이념들이 빛을 잃어 가고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선생의 - P-1

사상이 세상과 인간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글, 비참한 것들과 약한 것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파노라마를 통해 신영복 사상의 거점을 짚어 보는김미옥의 「숲에서 보내는 편지」, ‘관계를 맺으면 달라진다‘는관계론적 세계관의 핵심을 깨치며 나아가 신영복 선생의 여성적 관점에 주목하는 김하나의 「신영복이라는 바다,
‘기찻길 옆 공부방‘과 ‘청구회 추억‘의 기억의 병렬을 통해 약하고 가난한 이들의 연대와 희망, 만남과 연결의 힘을 증거하는 김중미의 「동호와 희철에게」, 신영복 선생의 고전 공부를 되짚으며 본다-만난다 안다‘는 관계론적 실천론에 주목하는 정지우의 「우리 시대 동양고전을 다시읽는다는 것」, ‘의기방자‘라든가 ‘호연지기‘ 같은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정념들과 거의 반대편에 있는 신영복 선생의 약한것들, 부족한 것들에 대한 애정과 보살핌의 윤리, 근대적인간성에 대한 비판에 주목하는 정희진의 「신영복의 평화를 생각한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살이가 언어를 버리고 몸과 실천의 세계에 주목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음을, 그로부터 선생의 품성과 감수성이 벼려졌음을 말하고 있는 최재봉의「신영복 선생과 서오릉 걷기, 신영복 선생에게서 삶과 글의 일치라는 어려운 경지의 증거들을 찾아내 보여 주는강원국의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된다」, 선생의 독창적 - P-1

서법인 ‘쇠귀체‘에서 조형과 내용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글씨 예술의 근본을 돌이켜보고 있는 이동국의 「쇠귀체,
내력과 구조 너머의 아름다움에 대하여」가 바로 그 예중이다.
신영복 선생이 생전에 늘 힘주어 말했고 이 책의 곳곳에서 서로 다른 필자들의 글 속에서도 거듭 만날 수 있는 겸손, 성찰, 하방, 만남, 대화, 공감, 관계, 연결, 연대 같은 단어들, 대교약졸이나 불계공졸, 상선약수 같은 성어들은 경쟁, 성공,
상승, 투쟁, 희생, 헌신, 승리, 성취, 각자도생, 승자독식, 약육강식, 의기양양 같은 말들과는 다른 세상의 말들이다. 언뜻 들으면 매우 무력해 보이는 말들이지만 이제는 그런 말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이 지옥이거나 정글같은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은 만들어질 수가 없다. 선생이 원한 것은 아니었을지 모르나 세상이 이러한 말들을 원하고 있다. 돌아가신 분께 무슨 욕심이 남아 있으랴마는 세상이 선생을 놓아드리지 못하는 형국이다. 십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곁에 살아 계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이유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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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


창문은 창밖에 서 있는 나를 보게 한다. 내 허벅지위로 도로가 나 있고 내 허리 속으로 막차가 도착한다. 사람들이 쏟아져 내리고 내 가슴 속 빌딩으로 걸어 들어간다. 가슴에 손을 넣어 창문을 연다. 한 여자가 화분을 분갈이하고 있다. 그 아래 창문을 열면쪼개어진 석류가 식탁에 있다. 그 아래 창문을 열면하얗다. 갓난아이가 눈을 움켜쥔 채 설원 위를 기어간다. 그 아래 창문을 열면 내 눈썹에서 가로등이 켜진다. 내 이마에서 비행기가 지나간다. 몸속에 있던도시가 몸 밖으로 배어 나온다. 마지막 창문을 열면창 안에 서서 창문을 세어보는 나를 볼 수 있다. 알알이 유리가 빛나고 있다. 불을 끄면 창밖에 서 있는나와 창 안에 서 있는 내가 함께 사라질 수 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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