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좋아하는 시인 K를 만나러 간 연희동에서 베를린에서 온 B를만났을 때 나는 베를린에 가게 될 수밖에 없으리란 걸 알았다. 잎담배를말아 피우던 B는 순수해 보였지만 퇴폐적인 데가 있었고, 명랑하게 우울했고, 자신의 근원에 대한 냉소와 함께 가난한 자신에 대한 자부가 있었고, 세상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열정과 그래서 또 뭐하겠느냐는 허무가 한데 있었다. 나는 B가 내 쌍둥이로 보였다. 외모도, 성격도, 말투도, 식성도, 체취도, 그 어떤 것도 닮지 않은 완전한 이란성 쌍둥이, 나는 종종 B와 베를린을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그 둘은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베를린은 내게 환상의 도시가 되었다. 성가신 환상이었다. 왜냐하면 베를린에 가기 전까지 그 환상은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소극적이지만 집요하게 베를린을 그리워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가 자기 집인 것 같은 사람이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내집을 떠나기 귀찮아하는 나로서는, 그 예감이 매우 버거운 것이었다. - P231
2016년 2월, 삼 개월의 베를린 체류가 결정되었다. 2016년 6월에는 이책을 계약했고, (계약서에 명시된 원고 인도 시기이도 한) 2016년 10월에쓰기 시작해, 2017년 9월에 끝냈다.(내내 이 책만을 쓰고 있던 건 아니지만.) 그리고 2018년 2월인 오늘 에필로그를 쓰고 있다. 베를린에는 2016년 7월부터 9월까지 90일 가량을 머물렀다. 나로서는유래 없이 바쁘게 지냈는데, 그래서인지 집에 돌아오면 어떤 문장도 쓸수 없었다. 한국으로 송고해야 하는 원고를 몇 편 쓰긴 했지만 뭔가 자발성을 갖고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런던에서 그 이유를 깨달았다. (베를린에서 서울로 돌아오기 전 런던에서 열흘가량 머물 일이 생겼다.) 글을 쓸수 없던 이유를 말이다. 길거리에서 펄펄 날뛰고 있는 글자를 해독하지못했기 때문이었다. 런던에서 간판들, 지하철역의 이름들, 거리의 이름들, 사람들 등뒤에 쓰인 글자들을 읽는데... 더듬더듬 읽는데.... 행복했다. ‘아, 나는 글자를 아는 사람이었지!‘하는 안도감이 밀려왔고, 마음이 이상해졌다. - P232
참 이상한 일이었다. 베를린에서 나는 내내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에접속해 기사를 서칭했고, 한국어로 메일을 주고받았고, 활자중독증이삼십 년 만에 재발해 베를린에서 구할 수 있는 한국어 텍스트(주로 소설)는 모조리 읽었고, 그것도 모자라 전자책 단말기에 담아간 고전들을 읽었는데도, 그것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질서를 갖춘 언어가 아닌 이상한 언어들, 구어에 가까운 날것의 언어들이 그동안 나를 얼마나 자극해왔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이 나라‘를 영원히 떠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는 것도. - P232
런던을 거쳐 서울로 돌아온 것은 2016년 10월 초. 나는 그해 말까지도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자도자도 졸렸고 그래서였을 가능성이 높지만늘 멍한 상태였다. 이 책은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쉽게 써지지 않았다. 써야 할 것은 너무 많은데, 정리는 되지 않았고, 급기야는 챕터가 40개가 넘어가기도 했었다. 두 개의 챕터를 하나의 챕터로합치거나 과감히 없애는 일을 했고, 그래서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 또 쓰기 어려웠던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삼개월을 살아보고 감히 베를린에대해 뭐라뭐라 떠들고 있는 나에 대한 자기검열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 P233
언제나 그렇듯 가장 쓰고 싶었던 테마에 대해서는 쓰지 못했다. 이를테면, 베를린의 헬무트 뉴튼, 비오 열풍과 케피르, 오스탈지(구동독적인것에 대한 향수를 이르는 말), 베를린의 부유한 유태인들, 유태인이 끌려간자리의 표식인 길거리의 황금빛 금속, 유태인 카페의 유태 음식, 베를린의 고용지원센터, 텐트 피플, 텐트 피플을 위한 거리의 체스판, 한밤의폐허 관광자들, 구동독 출신 남자, 드레스덴에서 만난 네오나치, 와타나베와 갔던 노이쾰른 음악회, 베를린의 북한 대사관, 베를린 초밥집에서만난 북한 외교관, 크로이츠베르크 걸, 일 년에 한번 열리는 배추 싸움, 보데 뮤지엄 앞에서 탱고를 추는 사람들, 위스키를 파는 약국, 베를린 미용실의 베를린 무드, 푸른 수염의 방 같은 지하실, 에밀 놀데와 브레히트, 타이 음식점에서 만난 포대화상, 유람선 모비딕, 백조로부터의 습격, 나체로 수영하는 호수, 귄터 그라스 와인, 베를린 발코니 아트, 맨발의자유인, 노벨상 수상자의 방, 뉴저먼 시네마, 만날 수도 있었던 다와다요코, 베를린의 서점, 베를린의 프랑스 거리, 프리드리히 슈트라세, 르 - P233
코르뷔지에의 아파트, 발터 그로피우스의 말굽 모양 주택단지, 트럭 테러, BMW가 개최하는 롤러 블레이드 마라톤…… 이런 것들에 대해 쓰다가 결국 쓰지 못했다. 엉킬 대로 엉켜버린 생각의 꾸러미들을 제대로 풀지 못했던 것이다. 오래 품고 있던 이 책을 그만 내려놓는다. 이로써 ‘베를린 시절‘을 마감한다. 내게 자신의 베를린을 보여준 G와 D와 I, 베를린에서 따뜻한 집밥을 여러 번 차려준 Y, 베를린 곳곳의 탐험을 제안해준 K...... 를 비롯한모두에게 감사했다. 누구보다 씩씩해서 또 누구보다 우울할 이 책의 편집자 김민정 시인, 이 책을 쓰는 내내 죄스럽고도 고마웠다. 베를린 사람, 베를린에서 태어난 사람, 베를린에 사는 사람, 베를린에 살았던 사람, 베를린에 잠깐 머물렀던 사람, 베를린을 떠나온 사람, 베를린에 가기로 한 사람에게,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환상을 갖고 있는 2년전의 나 같은 사람에게, 어쨌거나 베를린을 떨쳐버릴 수 없는 사람 모두에게 이 소박한 책을 바친다. 그리고 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 당신들 때문에 쓸 수 있었습니다.
2018년 2월 한은형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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