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꽃
나희덕
꽃만 따먹으며 왔다
또옥, 또옥, 손으로 훑은 꽃들도
광주리를 채우고, 사흘도
가지 못할 향기에 취해 여기까지 왔다
치명적으로 다치지 않고
허기도 없이 말의 꽃을 꺾었다
시든 나무들은 말한다
어떤 황홀함도, 어떤 비참함도
다시 불러올 수 없다고
뿌리를 드러낸 나무 앞에
며칠째 앉아 있다
헛뿌리처럼 남아 있는 몇 마디가 웅성거리고
그 앞을 지나는 발바닥이 아프다
어떤 새도 저 나무에 앉지 않는다
시집[야생사과 (창비2009)]중에서
꽃은 나무의 존재증명이라는 생각을
꽃 핀 나무를 보면서 하게 됩니다.
잎만 무성하거나 비어있을 때의 나무에게는
이름이 궁금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말의 꽃’은 말의 존재증명이 되는 건가요.
달콤한 말의 향기에 취해 또옥, 또옥, 말을 따먹으며 살다가
시인은 문득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고 말았군요.
‘헛뿌리처럼 남아 있는 몇 마디가 웅성거리고
/그 앞을 지나는 발바닥이 아프다/어떤 새도 저 나무에 앉지 않는다’
마지막 연에서 주춤주춤, 독자인 저는 반성합니다.
`어떤 새도 저 나무에 앉지 않는다`니
오래 뿌리를 드러 낸 나무 앞에서 서성이는 기분이 드는 것이
저 또한 구업(口業)을 많이 쌓은 듯 합니다.
‘치명적으로 다치지 않고/허기도 없이 말의 꽃을 꺾’은
상처받은 누군가 있다면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존재증명이네요.
상대에게 꽃으로 피어나는 말을 많이 해야 스스로 꽃이 되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