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춤이다
김선우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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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춤꾼 최승희의 이야기이면서 최승희의 여러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최승희. 그녀는 멀리 있지 않은 사람이다. 최근 확인된 바에 의하면 그녀의 사망일은 1969년 8월 8일이다. 최후 정황은 여전히 안개 속이지만,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내가 태어나기 한 해 전에 그녀는 죽었다.

  너무 일찍 세상에 오는 사람들이 있다. ‘적당히 일찍’ 올 수 있다면 예술가로서의 운명치곤 퍽 행운인 것인데, ‘너무 일찍’ 와버려 불행했던 사람들, 최승희 그녀도 너무 일찍 왔다. 아니, 그녀가 너무 일찍 왔다기보다, 그녀의 존재를 받아내기에 우리의 근현대가 너무도 불우하게 기우뚱거렸던 탓도 있으리라. 기획된 근대의 전근대적 옹벽 앞에 내던져진 현대의 예술가. 그녀는 21세기 감각으로 20세기를 살았다. 불우는 당연했다. 1911년 출생.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 조선. 한국전쟁. 분단. 우리 근현대사의 혹독한 상처들을 고스란히 통과한 그녀는 8.15이후 북쪽 사람으로 살다가 숙청당했다. 당내 정치적 역학 관계에 의해 남편 안막이 숙청된 후 그녀도 곧 숙청당했지만, 남편의 숙청이 아니었어도 그녀는 북한이라는 닫힌 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힘든 사람이었다.

  나는 느낀다. 검은 불꽃, 강력한 죽음의 느낌, 초혼과 위령의 흐느낌이 그녀에게 묻어 있다. 이글거리는 빨강, 죽음만큼 강력한 삶의 느낌, 현실의 경계를 솟구쳐 가로지르는 담대한 탈주의 스케일이 그녀의 그림자에 어른거린다. 예술가로서 그녀가 싸우다 간 것은 인간의 조건이었다. 예술은 그녀를 노마드로 만들었고 그녀는 너무도 일찍 코스모폴리탄이 되었다.

  쿨하기엔 너무 뜨거운 심장을 가진 그녀가 기우뚱한 간극에서 도약하는 것을 바라본다. 불우와 찬란함의 공존, 화려한 외양속의 극한의 고독, 그녀에게 합당한 수식어가 있다면 그것은 ‘자유에의 갈망’일 것이다.

그녀는 일본 제국주의의 폭압에 자신의 예술-언어를 구속시키지 않았다. 무용가로서의 자존의 핵심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예술가. 자신의 몸, 자신의 춤 이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던 에고이스트. 전근대에서 근대로, 근대에서 현대로 탈주하는 최승희가 바람처럼 속삭인다. 자유인 춤. 자유인 예술. 자유인 영혼!

                                                                                            -----작가의 말 중에서

 

  ‘나는 춤이다’가 김선우 시인이 쓴 첫 장편소설인 줄로만 알았지 무용가 최승희를 모델로 삼은 줄은 몰랐다. 조선 최고의 춤꾼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최승희라는 이름도 알게 된 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이사도라 던컨은 아주 오래전에 알았으면서.

  이것이 내 개인의 한계인지,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의 한계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단 거다. 비단 그뿐이겠는가. 어쩌면 아우슈비츠에 관해서보다 만주에 대해서, 아니 수용소의 유대인들의 죽음보다, 만주 항쟁이나 시베리아에서 죽어간 우리 혁명자들에 대해, 제주에서 이름 없이 죽어 간 무고한 4.3의 희생자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죽음의 비중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고 세계사에는 그럭저럭 아는 척할 만큼은 알면서도 정작 우리의 근현대사에는 무지한 자신이 한심하고도 한심했던 것이다. 우리는 알지도, 알려 하지도 않는 사이에 그렇게 잊혀지고, 묻혀 버린 숱한 ‘너무 일찍’ 세상에 와버린 이들께 숙연한 마음이 들게 한 책이다. 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최승희라는 큰 나무의 가닥만 있을 뿐, 많은 부분 허구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시절을 살아 간 사람들의 척박한 생이 밟혀왔기 때문이다.

  역사 소설에서 특정 인물을 다룬다는 것은 자칫 실제보다 부풀릴 수도 있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기 때문에 객관화 되지 않으면 정형화된 모델로 만들어 버리기 쉬울 텐데 감성적이고 단단한 문장들은 여리고 예민하고 꿋꿋한 예술가의 표상을 잘 그려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반전처럼 드리운 최승희의 그림자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끌고 나가는 힘이 되었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책을 덮고 나니 말줄임표들이 유독 많았다는 생각이 났다. 나 또한 습관적으로 말줄임표를 많이 쓰는 편이다. 그런데 장편소설을 읽고 나서 문장은 기억이 남질 않고 말줄임표들이 떠오른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다행이 여운을 남기는 문장들이 시어처럼 가득했다.

 

  숨이 소진되면서 가슴이 꽉 차는 느낌. 내가 이편에 없는 순간 저 편에 있게 될 거라는 확신 같은 게 불현듯 들곤 해. 죽음과 삶의 경계가 아주 흐릿하고 심지어 뒤섞여 있다고 느끼게도 돼. 육체를 한계상황에 밀어 넣을 때 삶과 죽음의 경계는 덧없어지지 그래서 나는 춤에 미친 건지도 몰라.p56

 

  그 꽃이 얼마나 깊은 관능으로 흐드러지는지 옥수숫대를 잡아당기며 놀아본 이들은 안다. 있는 듯 없는 듯 피어 난분분 자욱한 냄새의 열락을 만드는 옥수수밭. 옥수숫대는 온몸으로 꽃냄새를 풍겼다.p64

 

  여자 몸속의 뼈들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와 박혔다. 발바닥과 연습실 바닥 사이가 엄청난 간격으로 느껴졌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감각. 그것은 낯설고 두려운 것이었지만, 열여섯 살의 여자를 기묘한 방식으로 자극했다. 바닥을 잘 느껴라. 움직이는 바닥이, 지구가, 이시이 선생이, 여자에게 요구했다. 바닥을 잘 느껴라. 그것은 춤에서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기본이 되는 것이었다. 바닥을 딛고, 바닥을 통해서만 사람들은 살아간다. 여자의 이마와 등에서 땀이 솟았다. 결국 여자가 휘청, 주저앉았다.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여자가 열 개의 발톱으로 처음으로 바닥을 움켜쥐었다.p81

 

  눈뭉치가 떨어지며 파아, 하고 가루눈이 되어 바람 속으로 흩어졌어.p88

 

  이런 독기, 여자가 계속 이시이 문하에 있었다면 품을 수 없었을 이 실패의 독기가 여자를 일본 최고의 무용가가 아니라 세계의 무용가로 이끌 힘이 될 것이다. 여자의 독기와 고독, 나는 그것에 패를 걸기로 한다. 지금 내개 필요한 것은 일본 최고의 무엇이 아니다. 조선의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무기, 그것도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매혹을 가진 무기를 나는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그것은 꽃이다.

  여자가 나를 날카롭게 일별했다. 나는 그 눈길을 칼자국처럼 예민하게 느낀다. 여자를 얻기 위해 여자의 감도에 나를 맞춰야 한다.p114

 

  그녀의 유행혐오증이 생래적인 것이듯 그녀는 계급적인 각성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그녀는 오직 최고의 춤만 생각하는 예술가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 속에 있는 자유에의 갈망, 이것이 이념적인 것과 그다지 멀리 있지 않음을 나는 느낀다.p120

 

  아름다운 것은 치명적인 것과 함께 온다.p125

 

  사랑의 모순처럼 인생은 어떤 지점에서 바라보든 모순으로 가득했다. 여자는 힘을 원했다. 예술, 명예, 돈, 모든 면에서. 그런데 자꾸 여리고 약한 것들을 향해 여자의 마음이 움직였다. 힘을 원하는데 힘이 결핍된 것들을 향해서 마음이 움직이는 모순. 여자는 보살핌 받기를 원했다. 누군가 자신을 안전하고 강건하게 보살펴주기를. 그런데 자꾸 보살펴주어야 할 것 같은 이들에게 마음이 가닿곤 했다.p130

 

  모든 돌연한 말들이 한 줄로 꿰어지는 듯한 느낌, 살아온 날의 마디들이 공중에 흩뿌려 놓은 점들 같다가 느닷없이 한 줄로 꿰어지면서 손목이나 목 언저리에 감겨 오는 듯한 느낌.p142

 

  단지 소름 끼치는 정체감, 오래도록 고여 있어 심장이 썩어 들어가고 있는 듯한 정체감을 견디기 힘들었다. 몸을 움직여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이 멎어버리는 순간, 그것이 곧 몸의 타락임을 여자는 그때 알았다. 몸의 타락은 마음의 타락으로 이어진다. 현상은 본질을 반영한다고 하던가.p144

 

  배롱나무 꽃 타래가 흔들리는 소리까지 다 들릴 듯했어요.158

 

  최승희. 그녀가 왔다. 두 눈에 가득 불을 품고 왔다. 기묘한 광기와 외로움이 흐르는 눈빛이었다.p209

 

  아름다운 것들은 기록하고 싶어지죠. 세상이 미쳐가서 아름다운 것이 드물 땐 더욱.p210

 

  우리는 살아 있고, 살아 있는 한 꿈꾸고, 욕망하고 움직이고, 흔들리며 달릴 것이다.p216

 

  해탈한 마음이 해탈하지 못한 중생들을 아파하며 함께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보살도라 하였어요. 그래서일까요. 당신의 보살춤을 보는 일은 황홀하고 고통스러워요. 어머니를 보는 일처럼 힘들고 아파요. 세상의 모든 고통을 듣는다는 관음보살의 얼굴을 상상해요. 관음의 자비. 관음의 슬픔. 아름답고 아프고 고요해요.p256

 

  이성과 감성, 두뇌와 심장, 자아와 초자아 사이에 위태로운 다리처럼 걸쳐져 있는 목. 그리고 목의 뒤편. 가장 명랑한 무용도 노출한 목을 통해 감정의 균형을 무언으로 조절한다. 무용가의 목선은 그래서 중요하다. 기쁨 배면의 슬픔, 슬픔 배면의 쓸쓸함, 쓸쓸함 배면의 자존감, 이런 이중적인 감정을 존재 자체로 표현하는 것이 인간의 목이다.p267

 

  여자가 떠난 빈방 어디서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창 아래 나란히 놓인 다섯 개의 둥근 등에 기타로가 천천히 불을 붙였다. 세상에 온 첫 번째 바람을 밟듯이 나비가 가만히 눈을 떴다. 빈방 한가운데로 나비가 떠올랐다. 빛의 나비와 검은 나비 그림자. 그러니까, 몸을 버리는 순간 몸이 얻어지는 거야. 고치에서 춤을 꺼내듯, 이 순간의 몸과, 다음 순간의 몸이 그렇게 연결되는 거야p285

 

  마지막 구절처럼 춤은 몸의 예술이다. 몸을 오래토록 등한시해왔다. 또한 몸의 말에도 그랬다. 소설은 몸의 말이기도 하고 머리의 말이기도 한 것은 아닐까, 둥근 등에서 날아오르는 나비가 장자의 꿈이기도 하고 최승희의 꿈이기도 하듯이.

  몸의 말을 받아 적는 일에 김선우시인은 탁월하다. 그녀를 통해 여자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관능의 언어로 몸의 말을 듣는 것은, 무대 위 여자의 보살춤을 보고 있는 듯 했다. 시에서와는 다른 환상으로 황홀한 경험이었다. 그녀의 두 번째 소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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