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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리 시편 - 심호택 유고시집
심호택 지음 / 창비 / 2011년 1월
평점 :
물봉선이
심호택
싸가지 없는 아무개놈
속으로 욕하며 걷는 산길
바보여뀌 널려 있고
물봉선이 피어 있네
나밖에 볼 사람도 없는걸
시월이면 지고 말걸
빨간 물봉선이는, 아니
보라색 물봉선이는 뭐하러
저리도 곱게 피어 있나
여뀌는 또 무엇이 즐거워
저리도 깨가 쏟아지나
시집 [원수리 시편] 중에서
심호택 시인은 1947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1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빈자의 개] 등
8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하늘밥도둑] [최대의 풍경] [미주리의 봄]
[자몽의 추억]이 있다.
원광대 불문과 교수를 지냈으며
2010년 1월 교통사고로 타계했다.
읽고 나면 피식~ 웃음이 나는 시입니다.
시는, 어렵기만 하고 모르는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봅니다.
저 혼자 곱게 피어나고 저 혼자 맵씨를 뽐내는 꽃이 시인에게 지청구를 듣는 오소록한 산길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어느새 십일월,
바보여뀌도 물봉선이도 슬그머니 지고 없겠네요.
가을은
소박하게 왔던 것들이 올 때처럼
조용히 물러나는 시간.
우리도 그들처럼 언젠가 그러하겠지요.
빨간 물봉선이처럼 아니 보라색 물봉선이처럼
누가 알아봐주지 않아도 각자의 생에서 주인공인 그대.
이 아름다운 지구의 가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여기 머문 시간이
광교산의 단풍처럼 아름다운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