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色 시작시인선 42
정진규 지음 / 천년의시작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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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정진규

 

  새벽 공기를 빠듯이 뚫고 지나와야 하루가 안심이 된

다 새벽 공기의 내음을 아니? 그만한 향수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노인인 내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젊은

너를 내게 쏠리게 하는 그 비방을 비로소 고백한다 오늘

도 화계사 솔숲을 지나왔다 눈이 내려서 새벽 정신 더욱

깔끔했다 하루를 너끈히 견딜만했다

 

                                                     

 

 

 

淸洌

                                정진규

 

   이 겨울 내내 내가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은 동상 걸린

내 발가락들 사이 사이 깊게 박힌 서릿발들, 날카롭게 반

짝거렸다 해동 무렵에야 그게 무에라는 걸 겨우 터득했

다 만져지는 빛, 삼십 년만의 추위가 있던 날 어둠 하늘

에서 내 몸에 避接된 별들의 눈물, 이런 降神도 있다 차

가운

 

 

 

 

봄비 

                               정진규

 

   미리 젖어 있는 몸들을 아니? 네가 이윽고 적시기 시작

하면 한 번 더 젖는 몸들을 아니? 마지막 물기까지 뽑아

올려 마중하는 것들 용쓰는 것 아니? 비 내리기 직전 가

문날 나뭇가지들 끝엔 물방울들이 맺혀 있다 지리산 고

로쇠나무들이 그걸 제일 잘 한다 미리 젖어 있어야 더 잘

젖을 수 있다 새들도  그걸 몸으로 알고 둥지에 스며들어

날개를 접는다 가지를 스치지 않는다 그 참에 알을 품는

 

   봄비 내린다

   저도 젖은 제 몸을 한 번 더 적신다 

 

 

                                         시집 [본색(천년의 시작 2004)] 중에서   

 

 시인은 1939년 경기 안성 출생,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마른 수수깡의 평화] [들판의 비인 길이로다] [매달려 있음의 세상]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몸詩] [알詩] [도둑이 다녀 가셨다] 외 다수

한국시인협회상, 월탄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 공초문학상 등 수상

현재 월간 시 전문지 [현대시학] 주간

 

 

 

 

아침 시간 짬을 내어 [본색]을 다시 읽는다 

하루를 너끈이 견딜만하다

불빛이 음표로 일렁이는 저 곳, 광교 수원지 뚝길 

일 끝나는 저녁마다 어슬렁 거린다

발바닥에 폭신하게 안기는 흙의 느낌이

촉촉하게 스며드는 안개 내음이

내 어린 날의 뚝길

먼 길임에도 꼭 그 길로 집에 가게 만들던 드들강 가는 길 닮았다

아직

내 발가락들 사이 사이 깊게 박힌 서릿발들,

 

봄비 내리신다

저도 젖은 제 몸을 한 번 더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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